내가 사는 아파트 바로 윗집에는 아이가 둘이 있다. 여섯 살쯤 되어 보이는 꼬맹이와 누나인 초등학교 2학년생 아이다. 이 아이들이 얼마나 에너지가 넘치는지 토·일요일 낮밤을 가리지 않는 것은 물론이고 평일에도 어떨 땐 밤11시가 넘도록 쿵쿵거리며 뛰어논다. 물론 부모가 주의를 주기는 할 것이다.

한 3년이 지났나, 하도 시끄러워 그 집 현관문에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정중하게 주의를 촉구하는 쪽지를 붙여놓은 기억이 난다. 그러면 한 1주일 정도 조용하다가 또 시작된다. 그러나 그 이후로는 지금까지 한 번도 항의를 하지 않아서인지 그 집에서는 뛰어놀아도 되는 모양이다, 아마 그렇게 생각하는 것 같다. 작년에 내부 수리를 하고 에어컨까지 설치하는 것으로 봐서는 전셋집은 아닌 것 같다. 오늘도 조금 전까지 아이들이 쿵쿵거리며 뛰어노는 소리가 들렸다.

그런데 나에게 놀라운 변화가 일어났다. 미처 나 자신도 인식하지 못한 일이다. 언제부터인가 윗집 아이들이 쿵쿵거리며 뛰어노는 소리가 전혀 귀에 거슬리지가 않았다. 웬일인지 오히려 흐뭇하게 느껴지는 것이다. 뭐랄까 마음에 위안이 된다고나 할까 아무튼 편안하기까지 하다. 그러다 문득 이런 생각을 하게 된다. 어, 나 정신이 좀 이상해 졌나봐, 내가 이런 소리에 기분이 좋아지다니, 아이들 장가도 안 갔는데 벌써부터 할아버지가 다 되었나보다.

▲ 한겨레 자료사진

어제 저녁에는 가게에 전구를 사러 가는데, 갑자기 뒤에서 폭발적인 굉음과 함께 노래를 부르며 오토바이 두 대가 쏜살 같이 달려와 저쪽 1호라인 앞에 멈추는 것이었다. 고등학생쯤으로 보이는 한 녀석의 손에 피자상자가 들려있는 것을 보니 배달하러 온 모양이었다. 나머지 세 녀석들은 그 친구 따라온 것 같고. 평소 같으면 그런 녀석들은 잡아다 크게 혼을 냈을 텐데 어제는 정말 거짓말 같이 전혀 화가 나지 않았다. 저 나이 때에는 저렇게도 놀아봐야지 하는 생각이 저절로 드는 것이다.

오늘이 세월호 참사 3주기다. 티비에서는 김훈 작가를 등장시킨 세월호 3년 다큐가 방영되었다. 지금 생각해도 아이들이 너무나 어이없이 죽임을 당했다. 가만히 있으라는 안내방송만 하지 않았어도 모두 살아서 이 푸른 청춘의 계절에 발바닥에 땀이 나도록 친구들과 웃고 떠들고 때론 싸우면서 뛰어 놀고 있을 텐데, 왜 밖으로 나가라는 말을 하지 않았는지, 왜 정부는 구조를 제대로 지휘하지 않았는지, 참으로 통탄할 일이다!

죽음이 닥쳐오는 와중에 한 아이가 절규하며 찍은 동영상이 머리에 떠올라 피가 거꾸로 솟는다. 미안하고 또 미안하고 한없이 미안하구나, 아이들아. 그래서 더 사무치도록 너희들이 보고 싶구나, 아이들아. 혈육 아닌 자의 마음도 이러하거늘 그 부모 마음이야 오죽하겠는가, 무슨 말로 그 심정을 위로할 수 있을까.

세상의 모든 아이들아! 어디에 있든지 떠들고 싶으면 떠들고 소리치고 싶으면 소리쳐라. 노래하고 싶으면 노래하고 욕하고 싶으면 마음껏 욕도 해 보거라. 가끔가다 19금 담배도 피워보고 술도 마시고 싶으면 그렇게 해 보거라. 공부하기 싫으면 하지 마라. 그러다 마음 내키면 다시 하면 된다.

너희들은 그저 엄마아빠가 부르면 언제든지 달려와 주기만 하면 된다. 언젠가 때가 되어 하늘이 너희와 우리를 갈라놓을 때까지, 너희들은 그저 마음껏 뛰어놀아주기만 해도 고맙다 아이들아.(4월16일 밤에)

편집 : 심창식 편집위원, 이동구 에디터

리인수 주주통신원  least-people@hanmail.net

한겨레신문 주주 되기
한겨레:온 필진 되기
한겨레:온에 기사 올리는 요령

저작권자 © 한겨레:온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