惡을 마주하라

“세상에 잊어도 될 범죄는 없다.”

<tvN>에서 인기리에 방영되었던 드라마 '시그널' 이재한 형사의 대사다. 수많은 범죄가 빈번히 일어나고 오늘도 어딘가에서 이유 없는 묻지마 살인이 일어난다. 우리는 어김없이 입에서 입으로, SNS 등으로 신랄하게 비난한다. 그리고 어김없이 다른 화제로 이야기를 돌리거나 예능과 드라마를 찾아본다. 이렇게 범죄가 끊이지 않는 오늘날, 매일 스스로를 지키며 살아가는 우리들 삶에 웃음과 희망 가득한 이야기들은 없어서는 안 될 일종의 처방전이자 힐링이다. 하지만, 여기 살기 위해 어둠과 대면해야 한다고 외치는 작가가 있다. 빛이 아닌 그림자를 보고 범죄의 징후를 읽어내는 것은 문학가의 몫이라고 말하는 그녀, 정유정이다.

◈ 한국형 스릴러의 여왕, 인간의 본성을 마주하다

▲ 한국형 스릴러의 여왕, 정유정

책을 싫어하는 사람들에게도 익숙한 그녀의 이름 석 자는 방송에도 자주 등장한다. 그녀의 작품은 대부분이 연극이 되고 영화가 되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감독들이 그녀의 작품을 탐내는 데는 이유가 있다. 마치 영화를 보는듯한 섬세한 표현력과 살아 숨 쉬는 매력적인 묘사들이 눈뿐만 아니라 모든 자극을 일깨우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것은 그녀가 가지고 있는 기본 옵션일 뿐, 감독뿐만 아니라 모든 이들이 그녀의 작품에 더 깊게 빠지고 싶어 안달이 나는 이유는 바로 그녀가 가지고 있는 일관성 있는 테마, 바로 ‘악’에 대한 그녀의 폭발적인 세계관 때문이다. 그녀의 ‘어둠의 세계관’ 속 명작들은 그 어떤 표현으로도 설명할 수 없을 만큼 ‘잔혹하게’ 아름답다.

▶ 악인의 탄생: 진정한 악인은 누구인가, 『7년의 밤』

▲ 2011년에 발간된 『7년의 밤』 표지

표지부터 심상치 않은 이 소설, 지금의 정유정을 있게 한 작품이다. 출간 된지 6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베스트셀러 목록에서 굳건히 자리를 지키고 있는 작품이기도 하다. 전작 『내 인생의 스프링캠프』, 『내 심장을 쏴라』에서는 ‘작은 존재들의 어둠’에 집중했다면, 『7년의 밤』부터 그녀는 작정하고 ‘악인의 탄생기’ 를 그린다. 이 작품은 평범한 가장에서 살인자가 된 남자와, 이 살인자에게 딸을 잃고 그의 아들을 죽이기 위한 7년의 복수계획을 세우는 남자의 이야기다.

‘운명이 난데없이 변화구를 던진 밤’

서원의 아버지이자 전직 2군 야구선수 출신의 보안업체 직원 최현수, 그가 어린 소녀의 생명을 앗아간 밤이다. 죽은 소녀 세령의 아버지이자 세령마을의 땅 대부분을 소유하고 있는 지역유지, 치과의사 오영제. 7년의 긴 밤을 복수를 꿈꾸며 기다린 인물이다. 언뜻 줄거리만 보면 피해자의 가해자를 향한 복수 이야기처럼 보이지만, 정유정은 그리 단순히 이야기를 풀어나가지 않는다.

오영제의 딸 세령을 교통사고로 죽이게 된 최현수는 트라우마를 갖고 있는 인물이다. 누구나 가질 수 있는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로 아버지에게 폭행을 당한 상처로 지니게 된 것이다. 그는 실수로 친 소녀가 살아있음을 느꼈음에도 소녀가 속삭인 “아빠” 라는 단어에 이성을 잃고, 이미 그의 이성을 떠난 손은 아이의 남아있는 목숨을 끊어버린다. 아주 깊은 곳 심연에 머물러있는 트라우마가 이성을 잃게 된 그 순간 수면 위로 떠오른 것이다.

이 우발적이고 순간적이었던 사건은 모든 이들의 운명을 바꿔 놓는다. 하지만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이 작품에서 최현수는 악인이 아니라는 것이다. 12살의 어린 소녀를 죽이고, 마을 사람 모두를 몰살시킨 그가 정유정이 탄생시킨 악인의 주인공이 아니라니, 책을 읽지 않은 사람들은 의아해 할 것이다. 지금껏 수많은 사람들이 비난하고 혐오해왔던, 그게 당연한 ‘살인자’ 이기 때문에.

하지만 책을 읽은 독자들은 모두가 알 것이다. 이 살인자를 만든 근본적인 원인, 서원이라는 복수의 마지막장을 채우기 위해 7년이라는 시간을 기다려온 그 진짜 ‘악인’ 은, 오영제라는 사실을. 정유정이 첫 번째로 탄생시킨 이 악인은, 그녀의 전작 (『내 인생의 스프링캠프』의 정아 아버지, 『내 심장을 쏴라』의 점박이) 의 ‘나쁜 놈’ 들과는 차원이 달랐다. 일종의 소시오패스, 반사회적 인격장애이다.

세령이 죽던 그날 오영제는 몹시 화가 나있었다. 화가 날 때마다, 또는 심심할 때 분풀이로 삼던 샌드백 세령이가 도망쳤기 때문이다. 세령마을의 사람들이 모두 몰살되던 그 순간에도, 그는 몹시 안타까워하고 있었다. 당연한 말처럼 들리지만, 그 안타까움의 근원은 마을사람들의 죽음이 아닌 복수의 실패에서 비롯된 것이다. 자신의 샌드백을 없앤 최현수에 대한 복수로 그가 보는 앞에서 자신의 아들이 댐의 물에 잠겨 죽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지만, 아들을 살리기 위해 최현수가 댐을 연 것이다. 그렇게 서원의 아버지는 모든 이들의 말로 ‘죽어도 마땅한’ 사형수가 되었고, 서원은 ‘살인마의 아들’ 로 낙인찍혀 7년간 숨어 지낸다. 그리고 그 긴 7년의 밤을 지내야 했던, 그 원인에 있는 모든 사건의 전말을 알게 된 서원은 그 밤의 벼랑 끝에서 오영제를 기다린다.

이 작품에서 정유정 작가는 독자들에게 계속해서 질문을 던진다. '세령이를 죽인 사람은 누구인가. 마을 사람을 죽인 사람은 누구인가. 서원을 사회에서 버림받게 만든 사람은 누구인가. 이 사회의 진정한 악인은 누구인가.' 그녀는 작품 속 등장하는 모든 인물이 악인이 될 가능성을 안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 모든 가능성의 총체적인 집합체가 오영제의 소시오패스적인 만행으로 대표되고 있을 뿐이다. 난데없이 던져진 운명의 변화구를 최현수와 서원, 오영제는 각기 다른 방식으로 되받아 쳤다. 작품의 끝은 표현할 길이 없이 아름답지만, 그 잔혹한 아름다움 속에서도 그녀는 계속해서 질문하고 있다. '당신은 그 변화구를 어떻게 받아칠 것이냐' 고.

* 영화 <7년의 밤>, 2017년 개봉

▲ 정유정 작가의 『7년의 밤』 을 영화화하여 개봉을 앞둔 영화 <7년의 밤>

정유정 작가의 책을 영화화한 '7년의 밤' 이 올해 개봉을 앞두고 있다. <광해, 왕이 된 남자>의 추창민 감독과 최현수役 류승룡, 오영제役 장동건, 승환役 송새벽, 서원役 고경표가 만났다. ‘영화 속’ 의 최현수와 오영제는 아들을 지키기 위한 아빠로서, 딸의 복수를 꿈꾸는 악인으로서 어떤 모습을 보여줄지 기대해보자.

▶ 악인의 탄생: 사이코패스의 자기 변론서, 『종의 기원』

▲ 2016년에 발간된 『종의 기원』 표지

그녀의 전작 『7년의 밤』, 『28』에서는 소시오패스, 즉 반사회적 인격장애를 가진 악인들이 등장했다. 이들의 거북한 악행에서 헤어나기도 전에 정유정은 그동안의 악인은 비교도 할 수 없는 악의 끝판왕을 데리고 왔다. 그녀 왈 ‘다른 인종’ 이라고 할 수 있는 사이코패스 한유진이다. 지금까지 악인들을 3인칭의 시점에서 ‘관찰했다’ 면, 이 작품에서 정유정은 1인칭의 시점에서 악인을 ‘변론’ 한다. 독자가 화자의 말을 전부 믿을 수가 없는 사이코패스의 자기 변론서, 이 작품을 통해 그녀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무엇일까.

인류의 3%에 속하는 사이코패스. 그 중 상위 1%에 속하는, 정신의학자들 사이에서는 ‘프레데터’ 라 부른다는 ‘순수 악인’. 이 어마무시한 악인 치고 작품 속에서 묘사된 한유진이라는 남자는 평범하기 그지없는 사람이었다. 누구나 가질 수 있는, 어렸을 적 트라우마를 갖고 있을 뿐 어머니의 말을 신의 말처럼 받아들이던 착한 아들이었다. 하지만 꿈에서 깬 그가 마주한 비참한 현실, 작품 속 표현으로 ‘누군가’의 살해 현장이 묘사되고 나서부터 우리는 아주 조금이나마 예측할 수 있게 된다. 이 작품은 한유진의 일기라는 것, 그의 자기 합리화와 변명의 늘어놓음 이라는 것을 말이다.

이것을 알아채고 끊임없이 의심하면서도 거짓말인지 진실인지 모를 그의 변론서에 동화되고 그를 연민하게 되는 이유는, 아마 1인칭 서술에서 오는 과한 몰입감 때문일 것이다. 이 작품은 전작들과는 달리 매우 단순한 구성으로 되어 있다. 어머니의 말을 잘 듣던 유진이 조금의 방황으로 매일 먹던 약을 끊게 된다, 평소와 같이 몰래 밤 외출을 하고 들어와 자고 일어나니 어머니가 무참히 살해된 현장과 피범벅인 자신을 발견한다. 이것이 주된 내용의 전부이다. 한유진은 그의 입장에서 어머니를 죽인 범인을 찾아 나간다. 아무 기억이 나질 않는 자신은 뒤로 하고(기억이 나지 않는다는 것조차 거짓말일 수 있지만), 아주 미세한 빛처럼 떠오르는 잔상들을 따라가며 진실을 마주하려고 노력한다. 그렇게 서서히 그는 진실보다 더 위험하고 위대했던, 자기 자신의 내면과 마주한다.

자신의 단하나의 기쁨이자 꿈이었던 수영을 미끼로 원인 모를 약을 먹여왔다는 어머니에 대한 배신감, 어머니를 뒤에서 조종한 정신과 의사 이모에 대한 혐오감, 형의 자리에 들어와 어머니의 감시 대리인 역할을 하는 해진에 대한 멸시감. 이 모든 극단의 감정과 마주하는 순간 유진은 ‘날것’ 의 자신을 받아들이게 된다. 그 ‘날것’ 의 첫 시작, 이야기의 초반부터 그가 부정하는 어머니의 기억, 유진이 약을 먹게 된 계기인 유진의 형 유민의 죽음에 대해서도 ‘어머니가 옳았어.’ 라고 인정하게 된다. 어머니가 옳았다는 것은 그녀의 기억이 옳았다는 것, 즉 유진이 그의 형을 죽였다는 사실이다.

실수로 밀쳤다는 그 생생한 증언과 억울함으로 독자를 홀리다가 서서히 밝혀지는 그의 진실을 마주하는 순간 이제는 한유진이 더 이상 제어할 수 없는 사이코패스라는 사실에 확신을 갖게 된다. 10살 때 첫 살인 이후, 16년의 냉각기 이후 돌아와 몇 차례의 살인을 저지른 26살의 훤칠한 청년 사이코패스. 마치 알이 부화하고 애벌레가 나비가 되듯 평범한 남자가 ‘순수 악인’ 으로의 각성을 마치고 사회로 복귀하는 것이 이 작품의 끝이다. 이렇게 찝찝하고 오싹할 수가 없다. 전작들이 그리워질 정도로 노골적이고 절대적인 악을 마주한 기분이다.

하지만 정유정은 이런 독자들을 비웃기라도 하듯 이 작품은 늘 그래왔듯 ‘희망의 이야기’라고 말한다. 순수 악인은 한 개인이 아니라 사회를 위협하기에, 스스로 악인이 되어 보고 느끼는 것은 곧 그들을 대비할 수 있다는 것이다. 수많은 범죄자들을 비난하고 혐오하기 이전에, 우리의 본성 안의 ‘어두운 숲’ 을 응시하고 이해해야 내면의 악, 타인의 악, 나아가 삶을 위협하는 포식자의 악에 제대로 대처할 수 있다는 그녀의 신념은 어쩌면 유진 같은 순수 악인의 탄생을 막기 위한, 지금은 평범한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노력일지도 모른다.

『종의 기원』도 『7년의 밤』의 바통을 이어 잡아 영화제작사 부천만화홀딩스와 영화화 판권 계약을 체결했다. 날것의 느낌이 가득한 한유진이라는 인물을 어떤 배우가 맡게 될지도 궁금하지만, 순수 악인의 탄생을 1인칭의 시점으로 다룬 이 뻔뻔한 자기변론서를 얼마나 더 집적적이고 섬뜩한 영상으로 그려낼지 기대 된다.

'태양은 만인의 것, 바다는 즐기는 자의 것'

▲ '어둠의 숲에 모든 답이 있다.'

『종의 기원』 작가의 말에 인용된 문장이다. 정유정 작가가 전하는 이야기는 충분히 누군가에게는 거북하게 읽힐 수 있는 어둠 그 자체이다. 하지만 그녀는 '예방 주사를 맞는다는 기분으로 부디 즐겨주었으면 감사하겠다' 고 말한다.

우리가 보편적으로 가지고 있는 진심, 들여다보이지 않는 심연. 낯설게 느껴지지만 언제나 우리가 지니고 있는 이러한 것들을 독자들에게 보여주는 것이 목적인 그녀에게 '예방 주사' 라는 단어는 가장 적절한 표현일지도 모른다.

정유정 작가는 전작의 어떤 인물보다도 악한 ‘순수 악인’ 사이코패스 한유진을 가장 사랑한다고 말한다. 그녀는 ‘악’에 대해 어떤 여성 작가보다도 털털하고 터프하게, 무엇보다 솔직하고 정확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작가이다.

그녀는 쨍쨍한 햇살 속의 밝은 빛이 아닌, 그 아래 들여다보이지 않는 아주 깊은 심연의 숲. 그 어둠의 숲에 모든 답이 있다고 말한다. 행복하고 희망적인 내러티브가 넘치는 작품들 속에서 날것 그대로의 악함을 보여주는 정유정의 작품은, 그녀가 말하듯 어쩌면 ‘진짜 희망’ 을 위해서 지금 가장 필요한 이야기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그녀가 탄생시킬 다음 악인을 기다려야 한다. 남자든, 여자든, 성인이든, 청소년이든, 어린이든 간에. 그들을 똑바로 마주하는 순간, 이성과 본성의 경계에 서있는 당신의 고귀한 본성을 마주할 것이다.

정세영 대학생기자  youjs1226@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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