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공간 온: 모바일 그림 수업 참관기

지난 금요일 3시 한겨레 주주들이 모여 만든 종로시민사랑방 문화공간 온:이 재잘재잘 재깔거리는 소리로 가득하다. 보통은 시민운동가들의 결의에 찬 당당한 목소리가 더 익숙한 이 공간이 금요일 이 시간이면 새들의 통통거리는 공간으로 변한다. 오늘은 스마트 화가 정병길 선생님의 모바일 미술 수업이 있는 날. 오래된 친구들로 보이는 수강생들은 오자마자 갤럭시 탭과 아이패드, 핸드폰을 꺼내며 수다를 떤다. 선생님은 이분들의 수다에 흥을 돋우듯 수박을 내온다. 놀라운 것은 수강생들의 평균연령이 70대 후반이라는 점. 그분들이 아기새처럼 조잘대며 모바일 수업을 기다리고 있는 중이었다. 내 앞에 앉은 80세 안경숙 선생님은 친구 따라 왔다며 이번에 자식들이 팔순 선물로 사줬다는 갤럭시탭 자랑이 한창이다.

▲ 모바일 그림 수업중

시간이 되자 정병길 선생님은 AI시대 모바일 미술에 대한 설명으로 수업을 시작했다. 어르신들의 눈이 반짝이기 시작한다. 정병길 선생님은 AI가 그린 램브란트 그림을 보여주며 인공지능 미술이 어디까지 왔는지 설명해주고 모두에게 드로잉 앱(app)을 실행하라고 했다. 수강생들은 아주 익숙한 듯 다들 가지고 있는 모바일 기기에서 어떠한 앱을 실행했는데, 알고보니 이 모바일 미술 수업에서는 ‘헬로크레용(Hello Crayon)’과 ‘ArtRage’라고 하는 드로잉 앱을 주로 이용한다고 했다. 이 앱들은 플레이스토어(Play 스토어)나 앱스토어에서 각각 1달러(약 1,133원), 5달러(약 5,667원)에 구매가 가능한데, 무료버전도 있기에 그것만 깔아도 재미로 사용하는데 문제가 없다고 한다. 오늘의 주제는 ‘여름의 갈증을 날려주는 수박 그리기!’

▲ 수박 / 채향순 화백

수강생들은 먼저 헬로 크레용을 이용해 선생님이 예시로 보여준 수박그림도 보고, 앞에 놓인 실제 수박도 보며 자신만의 수박을 그리기 시작했다. 유화를 30년간 그리다 모바일 그림에 빠졌다는 채향순 화백(80세) 그림이 예사롭지 않다. “알파고 시대에 새로운 것을 배우고 싶었다”는 채화백은 “해오던 것만 고집하지 않고 새로운 방식을 접하고 받아들여 짧은 시간에 나의 일상을 그려낼 수 있다는 점이 모바일 미술의 장점”이라고 했다. 그림을 그리면서도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수강생들의 기기 사용 애로사항을 해결해주던 민병균(77세) 전 외대 경제학 교수는 “그림 배운지는 7년이고 모바일 그림을 그린 지는 1년이 넘었다”며 “이런저런 이유로 모바일 그림을 트집 잡는 사람이 많이 있지만 편리하다는 장점은 무시하지 못할 것”이라고 했다.

그런데 그림을 그리던 안경숙 선생님의 볼멘소리가 들린다. ‘ArtRage’를 이용해 두 번째 그림을 그리고 있는데 무얼 눌렀는지 다 지워져 버렸다는 것이다. 보통은 드로잉 앱에 Undo(실행취소 ctrl+z)와 Redo(다시실행 Ctrl+y)기능이 있기에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을 지우거나 잘못 지운 부분을 복구할 때 매우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는데 기기에 익숙하지 않은 어르신들이 버튼을 잘못 누르면 이렇게 전체 삭제가 되어 아예 복구가 불가능해질 때도 있단다.(사실 밤새 쓴 리포트가 버튼하나로 전체 삭제가 된 경험은 누구에게나 있을 법하기에 비단 어르신만의 문제는 아닐 것이다.) 어떤 어르신은 그림을 저장도 안했는데 앱이 멈춰 버렸다고 발을 동동 구른다. 소중한 작품이 없어졌다며 아깝고 아쉬워하는 모습이 귀엽기까지 하다.

▲ 서로의 그림을 보고있는 선생님들

모바일 그림 수업이 끝나자 헤어지기 아쉬운 수강생들은 문화공간 온:의 별미인 비빔밥을 먹으며 못 다한 대화를 나눴다. 강혜자 화백(80세)은 “모바일 그림을 배우고 나서는 어디서든 시간가는 줄 모르고 그림을 그린다”며 즐거워했다. 이광복(80대) 전 수학교수는 모바일 그림은 “그림 배우는 시간을 단축시켰다”고 했다. 이렇듯 모바일 그림은 배우는 이들에게 많은 만족감을 주고 있었다. 물론 어떤 이들은 모바일을 이용해 그린 작품은 어찌보면 정통 미술 작품이 아니라는 이유로 작품성이나 가치 측면에서 낮은 평가를 내리는 경우가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분명한 것은 모바일 그림은 쉽고 편리하며 비용면에서도 부담이 되지 않을뿐더러 빠른 시간 내에 효과를 볼 수 있기에 보통은 연필데생부터 배워야하는 기존의 미술보다 훨씬 더 접근하기 쉽다는 점이다. 정병길 선생님은 모바일 그림수업이 어르신들의 두뇌운동에도 도움이 되겠지만 “부모와 어린 자녀가 소통하며 즐기기에도 좋은 작업”이라며 앞으로 “쉽고 재미있으며 이야기가 있는 모바일 그림 그리기 방법을 계속 전파하고 싶다”고 했다. 문화공간 온:에서 이루어지는 통통 튀고 재깔이는 모바일 수업에서 자라난 이들 7,80대 새싹화가들의 활약이 기대된다.

▲ 정물 / 민병균 화백
▲ 스케치 /  강혜자 화백
▲ 광화문 / 채향순 화백

정병길 선생님 프로필

• 개인전/ 12회, 그룹전/ 다수
• 대한민국미술대전 입선(2012)
• 행주미술대전 특선(2012)
• 상하이아트페어(2010)
• 고양국제아트페어 특별상(2008)
• 「2014 시니어 IT 일자리 사례 공모전」 최우수상 수상
- 미래창조과학부 주최, 한국정보화진흥원 주관
• 모바일스케치 마라도부터 백두산까지
• 현재/ 한국미술협회 이사, 모바일아티스트그룹 회장
• 김포시 청소년진로박람회 강사
• 종로구민센터 모바일미술 강사
 
<저서> 『이젠 아빠를 부탁해』 비움과채움, 2013
『내 아이 이웃과 함께 더 큰 세상으로』 휘닉스드림, 2011
 
<TV 방송 등>
• 2017.11.22. KBS 시시기획 창 인생 2모작, 어떻게 준비하시나요?
• 2016.01.01. MBC <2016 신년특별생방송 도전하라 대한민국> 외
YTN, KTV, 한국직업방송, 머니투데이TV 등 출연(방영)
• PEN.UP(삼성전자 개발 서비스) 초청, 모바일 드로잉 토크쇼 (2015. 12. 12.) - 삼성 딜라이트 룸
▲ 어느 섬진강 변 / 정병길 화백

편집 : 심창식 편집위원

안지애 편집위원  phoenicy@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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