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 주] 라문황씨는 고향이 대만이다. 유학 온 한국남성을 만나 결혼해 현재 한국에서 살고 있다. 대만에 거주하는 김동호 주주통신원으로부터 <한겨레:온>을 소개받아 한겨레 주주가 되었다. 남편 이은모씨는 한겨레 애독자다. 라문황씨는 한국에 살면서 한지그림의 아름다움에 빠져 한지 민속그림작가가 되었다. 대만과 한국에서 수차례 전시회도 가졌다. 7월 3일부터 8월 21일까지 종로에 있는 <문화공간 온>에서 한지 민속그림전시회를 열고 있다. 아래 글은 하단의 한문 문장을 김동호 주주통신원이 한글로 번역한 글이다.

▲ 라문황 작〈추수(秋收) 〉 작가가 어렸을 대 고향에서 본 벼를 말리는 장면.

1989년 결혼식이 끝나고 신혼여행을 떠났습니다. 남편이 여행사에서 중형 버스 한 대를 빌려서, 대만에서 온 친정식구들을 포함하여 열댓 명이 설악산과 속리산을 향해 의기양양 호호탕탕 출발을 했지요. 아침은 호텔에서 양식으로 먹었는데, 점심, 저녁이 되자 당시 대만사람들의 식습관과 입맛에 맞는 식당을 찾기가 어려웠습니다.

저는 속으로 결혼식이 끝났으니 망정이지, 안 그랬으면 아마도 이 한국남자는 날 버리고 날듯이 잽싸게 도망을 치고 말았을 거라며 안도를 해야 했습니다.

제 기억으로 설악산에서 속리산으로 향하는 도중에 산길을 따라가고 있었는데, 어디에서도 식당을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마침내 송어 전문 식당을 발견하여 점심을 먹으러 들어갔습니다. 이 식당은 살아있는 송어를 잡아 회와 매운탕 두 가지만을 파는 곳이었습니다.

생선회를 당시 대만사람들은 감히 먹지 못했고, 매운탕은 매워서 못 먹고.

그래서 음식점 사장에게 생강편을 썰어 넣고 담백한 탕으로 해달라고 부탁을 드렸는데, 생강이 없답니다. (한국은 생강이 많지 않고, 자주 사용하는 식재료도 아닙니다. 역주: 대만은 식재료를 사면 덤으로 얹어줄 정도로 보편)

결국 남편의 주선으로 사장은 제가 주방에 들어가 마늘을 넣은 송어탕을 직접 끓일 수 있게 해주었습니다. 그래서 그날 점심은 담백한 마늘 송어탕에 백반을 먹었지요. 식당에서 제공하는 반찬으로는 풋고추와 양파를 썰어 쌈장에 찍어먹으라고 내놓고, 김치도 무료로 나왔지만 아무도 먹지 않았습니다.

신혼여행 3일째, 도중에 한 할머니가 천으로 덮인 커다란 양푼을 머리에 이고 지나가는 모습을 친정엄마가 보더니, 남편에게 저 할머니 머리에 이고 있는 것이 무엇이냐고 물었습니다. 남편이 할머니가 삶은 찰옥수수를 팔고 있다고 대답을 하자, 어머니는 남편에게 빨리 차에서 내려 할머니를 모시고 오라고 했습니다. 어머니는 할머니가 이고 있던 양푼의 모든 찰옥수수를 전부 사서 챙겼습니다.

우리 모두가 여행 중 가장 행복하고 맛있게 먹었던 찰옥수수였지요.~ 한국의 동북 지역 가을 특산입니다.

한국생활이 28년이 된 지금은 잘 알고 있습니다. 송어는 깨끗한 물을 좋아해서 유일하게 계곡의 맑은 물에서만 양식이 가능한 아주 비싼 생선이라는 것을. 당시 사장님은 왜 탕을 안 끓여 줬는지, 남편은 왜 겨우 두 마리만 시켜줬는지......

이 글을 쓰다 보니, 그 한국남자를 꼭 안아주고 한마디 하고 싶습니다.~ ‘28년 전 그때 정말 고생 많았다고.‘

여행을 마치고 남편이 여행사에 가서 자동차를 반환하고 계산을 하는데, 사장님이 남편에게 당신 아내에게 여행 가이드를 해보면 어떻겠느냐고 물었답니다. 집에 와서 제게 묻자마자 바로 대답했습니다. 하겠다고!

나는 대만말도 할 줄 아니까 할 수 있다고. 꼭 하고 싶다고.

시아버지는 제가 나가서 일을 하겠다는 이야기를 듣고, “너는 한국말 한 마디도 할 줄 모르는데, 당연히 한국말부터 먼저 배워야하지 않겠느냐? 우리 가정이 네가 당장 나가서 돈을 벌어야 할 만큼 가난하지는 않다.”

남편도, “맞다. ‘안녕하세요, 감사합니다.’ 요 두 마디밖에 할 줄 모르면서 어떻게 밖에 나가서 일을 하려고 하느냐?”고 말렸습니다.

저는 자신 있게 대답했습니다. “나는 할 수 있다. 나가서 대만사람들만 상대하는 일이라면 어떤 일도 다 할 수 있다. 술 따르는 것만 빼고.” ㅎㅎㅎㅎㅎㅎㅎ!

이렇게 해서 결혼을 하고 14일 만에 회사에 나갔습니다. 먼저 견습생으로 기존 가이드를 따라 나갔습니다. 3차례 관광객을 따라다니며 실습을 한 후에 사장에게 직접 여행객을 데리고 나가겠다고 말했습니다. 사장은 화교였습니다. 이제 겨우 3번 따라 나가더니 혼자서 어떻게 감당할 수 있겠느냐며, 자기가 따라 나가서 도와주어야 하느냐고 물었습니다.

저는 혼자서 할 수 있다며 걱정 말라고 대답했습니다. 우선 시험 삼아 경유 관광단을 제게 맡겨보라고 했습니다. (경유손님은 1박 2일 일정으로 미국이나 러시아 관광을 마치고 한국에 들렀다 대만으로 돌아가는 관광객입니다. 이미 여행비용도 다 쓰고, 귀국길에 한국을 찾는 거라서 한국 가이드에게는 하루만 계산합니다. 기존 가이드들이 맡기를 꺼려하지만 저는 괜찮았습니다.)

이렇게 해서 사장은 저에게 경유 관광단을 맡겼습니다. 저는 정말 즐거운 마음으로 여행객을 맞이했습니다. 이번 단체 손님이 가고나면 또 언제 여행객을 받을 지도 알 수 없기에, 이 기회를 이용해서 반드시 가이드 경험도 쌓아야 했습니다. 틈만 나면 이런 저런 온갖 이야기를 했지요. 대만 관광객들은 제가 대만 자이(嘉義,가의)출신으로 한국남자에게 시집 온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가지고 있던 대만 물건들을 모두 제게 주었지요. 돈만 빼놓고. 저는 그들이 주고 간 러우송(肉鬆,육송. 역주: 육포를 가늘고 몽글게 만든 반찬 겸 간식)이나 해바라기씨 등을 보따리로 안고 집에 돌아오곤 했습니다.

운이 좋을 때는 신문도 따라왔습니다. 물건을 싸느라 꾸깃꾸깃한 신문지를 한 장 한 장 정성스레 펴서 잘 보관했다가, 단체 손님이 없을 때 꺼내어 천천히 음미하며 읽었습니다. 글자 하나하나 곱씹으며 세심하게 읽었지요. 제일 먼저 가장 좋아하는 문화면의 글을 읽습니다. 두 번째는 사회면 기사들을 읽고, 세 번째는 사설을 봅니다. 그리고 나면 ‘사람을 찾습니다.’ ‘부고.’ ‘구혼.’ ‘대출.’,,,등의 광고란도 자세히 봅니다.

그런데 제가 가장 좋아하기도 하고, 가장 싫어하기도 하는 건 바로 문화면입니다. 장편 소설일 경우 〈상편〉은 있는데 〈하편〉이 없거나. 아니면 〈중편〉은 있는데, 〈상편〉이나 〈하편〉이 없을 때이지요. 맙소사! 이건 정말 염장 오리고기를 못 먹었던 것보다 더 큰 고통이었지요. (아마 전 편 2화를 보셨으면 아시겠지요. 제가 꿈속에서 염장 오리고기를 먹었던 이야기를)

愛上阿里郎(三)
1989年婚禮後要蜜月旅行,先生到旅行社租了一輛中型巴士。
10多人,浩浩蕩蕩去了東部雪嶽山和中部俗離山。早餐飯店吃西餐,午,晚餐時,很難找到符合這一車台灣人的習性和口感的餐廳。
我只能說還好婚禮结束了,不然這韓國男人會跑的跟飛一樣快。
(逃亡)
我只記得從雪嶽山往俗離山去的是一條山路,沿途没有什麽像樣的餐廳,最後找到一家活的松魚餐廳午餐,這餐廳只賣松魚生魚片和辣松魚湯,
生魚片,怕,不敢吃。
辣魚湯,辣不能吃。
要求老板放薑片煮清湯,老板說没有薑(韓國薑不多,不是常用的食材)。
先生調解到最後請老板讓我進去厨房煮大蒜松魚湯,午餐就只能白飯配魚湯,小菜免费是生辣椒,生洋葱沾大醬,泡菜。
第3天路上,媽媽看到了一位老奶奶頭上顶着一個大盆子,上面蓋條麻布,媽媽問先生,她頭上那是什麽東西。先生說她賣煮熟的糯米玉米。媽媽叫先生快下車,把老奶奶追回来,媽媽說整盆都買,全部包起来。
這是讓大家吃得最開心的糯米玉米~韓國秋天東部名產。
在韓國生活了28年,我明白了松魚喜愛乾净的活水,唯有山泉才是最好飼養環境,老板為什麽不給煮,先生為什麽只買两條……。
寫到這裡,很想抱一下那個韓國男人說聲~28年前的那幾天,真的讓你辛苦了。
旅行结束,先生去旅行社結賬時,老板說你老婆要不要出来當導游。
他回家来告訴我。
我馬上說:去。
可以說台灣話,
去,我一定要去。
公公知道我要出去工作,他說:妳一句韓國話都不會,妳應該先去把韓文學好。我們家還没有窮到要妳馬上出去賺錢。
先生也說:是啊!妳只會說妳好,谢谢這两句話,如何出門工作。
我說:我可以,只要出去能看到台灣人,我什麽事都可做。
倒酒除外。
哈哈哈哈!
就這樣婚禮後第14天我出去上班了。先跟着老導游見習。見習了三團後,我跟老板說我要自己带團。老板是華僑,他說妳才跟三團妳就要自己带團,那是要我跟你團嗎?(讓他坐後面帮助我嗎?)
我說我可以的,請從過境團给我带带看。(過境團一夜两天,去
美國或俄羅斯回来的,錢都花光了,到韓國只给一天小费,老導游是不喜歡带的,但我可以的。)就這樣老板讓我带了過境團。
我開心的带團,因為不知道這一團结束後下一團是何時啊!我必须要把握機會說話,天南地北聊。台灣人知道我是嘉義人嫁到韓國,總會把身上有的台灣東西都给我………除了台幤。
我常抱着一大包肉鬆,瓜子回家。
幸運的時候,還會有報纸,我會把包過東西皺破的報纸一張張慢慢撫平放着,等没带團的時候再拿出来慢慢的享受。
每一個漢字都要细嚼慢嚥,第一輪先看喜歡的副刊文章,第二輪社会新聞,第三輪社論,最後連尋人,訃文,徵婚,贷……都仔细看過。
但是最喜歡也最恨的是拿到副刊。那長篇小說,看到(上)没有(下)。或有(中)没(上)
(下)文。
天啊!您可知道,那比没吃到鹽水鴨還難過啊!(待續)

* 역주: 이글은 라문황작가가 대만 독자들을 위해 쓴 글입니다. 그녀의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솔직하고 담백한 글이 큰 호응을 얻으면서 글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번역에 다소 부족하거나 어색한 부분이 있습니다. 이해 부탁드립니다.

편집 : 심창식 편집위원

라문황 주주통신원  low0309@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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