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우주 천지 자연 원리가 태극 원리 곧 음양오행 이치임을 어느 정도는 이해했지요. 이 자연 이치(理法)로 인생사에 접근하려 했던 역술 - 사주, 占, 풍수지리, 작명, 궁합, 택일 등등-도 알아보았지요. 또한 이 원리·이치가 본체(體)가 되고, 이 적용 기술인 역술이 작용(用)이라는 것도 접근했지요(연재물 24회).

역술(易術)이라는 공부 영역은 역학(易學)이라는 학문이 우주 원리를 꿰뚫고 갈아엎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지요. 역학이란, 우주·천지·자연의 변화 이치를 연구하는 학문이지요. 사실 이 공부는 4서 3경을 공부하고 천지인 3재가 둘이 아님(不二)을 터득한 ‘도를 아는 사람(知道之士)’들이 웅용해야 하는 영역이지요.

그러나 현실은 전혀 그러하지 못하지요. 우리 국민들은 선입견, 고정관념, 색안경, 편견을 일용할 정신의 양식으로 삶기 때문이지요. 생활양식과 정신의 바탕의식이 기초 공사가 되어 있지 않아서 그런 것임도 알아보았지요(연재물 47회). 다른 분야도 그러하지만 특히 역학 공부는 더 곡해 왜곡되어 있지요.

아무튼 역학 공부(理法)는 인생 최대의 공부이며 마지막 공부이지요. 이것을 해결하고 대우주로 돌아가야 하지요. 인생에서 할 일 0순위가 되는 것이지요. 이 공부는 내가 누구인지에 관한 뿌리 공부이지요. ‘내가 누구인지 아는 것’이 마지막으로 할 일이니까요.

그런데 이렇게 자연 이치로 접근한 역술 해석 방법들은 대우주와 소우주의 관계성의 철학이지요. 바로 이것을 공부해야 하지요. 그렇지 않고 달랑 역술만을 공부하게 되면 허상과 망상에 끌려 다니게 되지요. 이런 술수를 사람들에게 적용하게 되면 헛소리를 하게 되지요. 선무당 사기꾼으로 사람 잡는 일을 하게 되지요. 이러한 짓들은 꿈속에서 또 꿈을 꾸고 있는 행위가 되는 것이지요. <왜, 사주 점집이 횡행하는가?>에서 이미 소개한 바도 있네요(연재물 12회).

그래서 우주 학문 철학을 공부해서 상담자로서 그 역할을 수행해야 하는 것이지요. 고통스럽고 힘들고 지친 사람들에게 힘을 불어 넣어주는 가치 있고 거룩하고 소중한 일을 하는 것이지요. 愛之欲其生!(연재물 2, 7회). 이 말이 상담학의 대전제이지요. 그래서 무엇보다도 공부해서 ‘나’를 알아야지요. ‘나’를 알게 되면 타인과 삼라만상이 보이니까요(연재물 49회).

불교 용어로 ‘마라(魔羅. 摩羅)’는 도를 닦는 데 방해가 되는 귀신이나 사물을 말하지요. 그러니까 가까이 하면 안 된다고 금지시키는 것이지요. ‘믿지 말라’고 할 때 부모형제, 부부, 친구...이런 사람들을 일상에서 서로 믿지 말라 하는 것은 절대 아니지요. 우주 삼라만상은 변하는 것이고, 그것이 진리이고, 그 진리의 세계에서 볼 때 그것들이 영원하다고 착각하지 말라는 것이지요. 그러면 주변 사람들의 배신, 이별과 죽음 등. 기타 변화를 내가 순수이 수용할 수 있다는 것이지요. 고통은 구하고 바라고 집착하는 데서 발생하고, 받아들이지 못하는 데서 일어나는 것이니까요.

생로병사(生老病死) - 생명계 - 나고 늙고 병들고 죽는다. 
생주이멸(生住離滅) - 정신계 - 나고 머물고 흩어지고 사라진다.
성주괴공(成住壞空) - 우주계 - 이루어지고 머물고 허물어지고 공으로 간다.

우리들은 믿음, 신앙 종교가 무엇이냐고 물으면 “저는, 나 자신을 믿습니다. 착하게 살려고 노력하지요. 그 이상 다른 무엇이 있나요?” 흔히 이런 대답을 듣지요. 할 말이 없지요. 그런데 보통 자기 자신에 대해 잘 알지 못하지요. 그것이 무엇인지 알고, 그 ‘참나(9식)’를 믿어야 하는데 잘 모르고 믿는다고 하는 것이지요(연재물 31회). 이것을 모르고 자신을 믿으면 자신에게 속으며 일생을 마친다는 것이지요.

예를 들면, 우리 ‘본 마음’을 영화 상영물의 ’백색 스크린‘에 비유해 보시지요. 백색 스크린에 나타나는 영상이 우리들의 인생살이라는 것이지요.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그 영상에 끌려 다니며 울고 웃고 화내며 살고 있는 것이지요. 그 영상은 잠시 머물렀다 사라지는 허상(虛像), 망상(妄想)이라지요. 또한 우리들의 본 마음을 ’태양, 청정수, 허공‘에 비유하는 것도 이러한 이치인 것이지요. 그래서 깨달은 사람이 진리의 자리에서 일반 사람들을 보면 일생 동안 꿈을 꾸다가 인생을 마친다고 하는 것이지요.

信과 不信

모든 마음법(心法)인 신앙 종교 체계는 마음을 떠나 진리가 있는 것이 아니라지요(心外無法). 모든 것은 마음을 바탕으로 해서 지어내는 것일 뿐이라지요(一切唯心造). 그리고 눈에 보이던 보이지 않던 ‘의식의 그림자’일 뿐이라는 것이지요. 때문에 의례(儀禮)와 의식(儀式)들이 아무리 장엄하고 중요하다해도 그것은 정성을 드리는 방편(方便)에 불과하다는 것이지요. 중요한 것은 정성(精誠)인 것이지요.

기억이라는 것은 생각 속에 있는 것이고 사실은 없다고 하지요. 그 생각은 진정한 나가 아닌 6, 7, 8식의 기억인 것이라지요(아래 도표 참조). 그런데 ‘아무리 생각이라 해도 기억이라는 것이 있는데 왜, 없다고 하느냐?’고 질문할 수 있지요. 이런 기억을 보고 ‘의식의 그림자’라고 하는 것이지요. 이 생각의 기억을 지우는 문제가 쉬운 일이 아니지요. 평생 이 기억에서 자기 아픔을 겪는 것이 보통 우리 사람들이지요.

그래서 공부하고 수행 - 절, 참회. 기도, 염불, 주력, 간경, 사경, 참선 등 - 을 하는 것이지요. 기억이라는 것은 본래 없는 것이니까 자신의 본 마음(一心)을 챙기라는 행위이지요. 이 수행 방법 자체가 중요한 것은 아니고 ‘마중물’이라지요. 내 안의 무한한 긍정적 에너지를 퍼 올리기 위한 것이니까요.

우리들은 평생 동안 일을 하고 살지요. 일이라는 것이 업(業)을 만드는데 업에는 세 가지 종류가 있다지요. 살아오는 동안 3독 5욕, 6 7 8식의 진흙 구덩이에서 습관적 반복적으로 살아왔지요. 그 와중에 좋은 일을 하면 선업(善業), 나쁜 일을 하면 악업(惡業), 둘 다 아니고 그저 그렇다면 무기업(無記業)이라 하네요.

이 중에 부정적인 업들은 공부와 수행의 마중물을 통해 내 안의 무한한 에너지(9식)를 퍼 올려 씀으로써 제어해야 한다는 것이지요. 이 중에 특히 악업들은 ‘기억’으로 잘 떠올라 스스로에게 고통을 당하는 ‘천벌’을 받게 된다지요. 이것이 심하면 신경성 질환들이 되겠지요. 기억은 생각이고 생각은 의식의 그림자이기에 본래는 없는 것인데 말이지요.

그런데 한 마디로 잘라 말하면 유교의 제사, 불교의 천도재 예수재, 기독교의 추수감사제, 천주교의 미사 그리고 고사(告祀) 등등. 모든 의식들과 경배 대상들이 모두 허상인 것이지요. 유학의 4서 중에 <중용>이 있는데 그 핵심어가 성(誠)이라 하지요. 정성이 지극하면 하늘도 감동을 한다(至誠感天)는 말이 그러한 것이네요. 인간 삶에서 생각과 행동의 요체가 정성이라는 것이지요.

유학에서는 인간은 천부적으로 타고난 인예신의지(仁禮信義智) 곧 5상(五常)의 덕이 있음을 말하지요. 이 덕성이 탐진치 3독 5욕의 먹구름에 가려 일관성 있게 잘 드러나지 않는다지요. 그래서 고통이 따르니 성경신(誠敬信)이라는 3실천행을 통해 5상을 현실에 실현하라는 것이지요. 이런 행위를 가치 있는 인간의 삶이라고 보는 것이지요. 물론 5상의 뿌리는 인(仁)에 있고, 3실천행의 뿌리는 성(誠)에 있다지요.

<오온=나. 사람. 우주 삼라만상>

※1.2.3.4.5식(전5식) - 안이비설신. 오관. 감각기관. 육체
※6. 7. 8식 - 생각. 선입견. 고정관념. 색안경. 편견. 착각. 오류. 차별, 분별심. 의식의 그림자. 아바타. 지식 - 밖으로 취한다.

7식의 칠칠이 칠뜨기는 8식에 저장되어 있는 것이 자기라고 알고 착각으로 판단하고 있다. 아집, 아만, 아상, 아애의 똬리를 틀고 있는 것이다. 분별 망상으로 바라고 구하고 기대하고 있다. 내가 영원하고, 절대적, 고정적, 독립 되어 있다고 착각한다. 견해를 세우고 시비를 주장한다. 번뇌 망상하고, 착각 하고, 집착해서 고통을 부른다. 자신에게 속고 있다.

※9식 - 본 마음. 진여자성(허공. 청정수. 거울. 태양). 불생불멸. 불구부정. 부 증불감. 지혜(반야). 무분별지. 초월지 - 안으로 돌이키는 기능. 아미타. 마음 이라는 본 바탕으로 생각하는 것이다. 기도, 수행으로 회광반조(廻光返照)하 는 공부가 필요하다. 우주 창조 이전과 이후에도 있는 자리. 이심전심. 불립 문자. 교외별전. 직지인심. 언어도단, 화두(話頭)가 대신하는 자리(참선, 간화 선 수행). 도가도비상도, 명가명비상명 자리. 7식(말라식)이 아니다 - 아말 라식.

[편집자 주] 공자는 <주역>을 읽은 지 3년 만에 '지천명', 즉 하늘이 만물에 부여한 원리를 깨달았다고 합니다. 주역은 동양학의 뿌리라고도 합니다. 동양의 가장 오래된 경전이란 뜻이죠. 주역은 유학에서 말하는 '삼경' 중 하나입니다. 원래 이름은 <역경>인데 '주(周)나라시대의 역(易)’이란 뜻에서 <주역>이라고 부릅니다. 한겨레 주주인 김상학 선생님은 현재 대학 교육원에서 주역 노자 장자 역학 등을 강의하고 있습니다. 요즘 동양철학 특히 주역에 대해 관심 갖는 분이 많은 것 같습니다. 막상 호기심에 책을 들추면 너무 어려워 곧 덮어버리곤 할텐 데요. 이번 기회에 주역을 쉽게 접해보시면 좋겠습니다. 김상학 주주의 '쉬운 역학(易學)'을 2주에 한 번 연재합니다.

대표사진 출처 : 능행스님 "호스피스 활동이 곧 수행입니다" / http://v.media.daum.net/v/20100422095132047

편집 : 김미경 편집위원

김상학 주주통신원  saram54@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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