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품명 : 喜慶(희경. 집안 경사) 집안에 경사가 있으면 음식장만을 위해 몹시 분주합니다.

1981년 7월 29일 영국 찰스 황태자와 다이애나의 결혼식이 전 세계에 텔레비전으로 중계가 되었습니다. 여자들은 부러움이 가득한 목소리로, 어쩜! 면사포 좀 봐! 저 길고 하얀 면사포. 진짜 아름답다!

저는 마음속으로 다짐 했지요. 나중에 나도 결혼을 할 때는 반드시 다이애나 면사포보다 길게 할 거야. 최소한 1센티라도.

1989년 8월 26일로 날을 받은 결혼식을 위해 23일 나와 가족들과 함께 서울에 도착했습니다. 24일 아침에 신랑이 될 아리랑은 회사로 출근을 했습니다. 부탁을 받은 아리랑 형수가 저를 데리고 예식장 주변의 웨딩드레스 대여점에 가서 드레스를 고르게 했습니다.

들어서는 순간, 맙소사! 저의 상상과는 너무도 달랐습니다. 하지만 말은 안 통하고, 이틀 후에는 입어야 할 상황. 할 수 없이 그중 하나를 골라 결혼식에 입었습니다. 결혼 후 몇 년이 지나 결혼예식 사진을 보던 중 갑자기 생각이 났습니다. 하다못해 1센티라도 더 긴 면사포를 쓰겠다던 염원!

‘아! 이제는 평생 다시는 이룰 수 없는 꿈이 되고 말았구나.’

▲ 작품명 : 喜慶(희경. 집안 경사)

한국 사람들은 결혼을 주로 주말에 합니다. 따라서 주말 예식장은 초만원입니다. 새로 들어오는 신랑 신부는 식장 사용을 두 시간에 마쳐야합니다.

제가 기억하는 것은 식장에 발을 들여놓고 주례 앞으로 걸어갔던 20여 미터, 일생에 한 번 뿐인 결혼행진곡을 추억하며 황홀한 기억을 되돌리거나, 한발 한발 천천히 피안의 결혼이란 고지를 향해 걸어갈 여유도 없었습니다. 오로지 옆의 도우미들이 재촉하던 ‘빨리! 빨리!’ 뿐.

주례는 많은 이야기를 했습니다. 마지막으로 아리랑에게 시집가는 걸 원하느냐고 물었지만 전 못 알아들었고요. 아리랑이 팔꿈치로 툭 치며 작은 목소리로 원한다고 대답하라고 했습니다.

혼인예식이 끝나고 우리 둘은 한복으로 갈아입었습니다. 저는 양쪽 볼에 나쁜 일을 당하지 말라는 의미의 빨간 연지를 붙이고 웃어른들께 술을 올리는 폐백준비를 했습니다. 옆에 따로 마련된 한국식 방으로 가서 신랑 쪽 어른 순서대로 부부가 자리를 잡고 앉으면 우리는 함께 절을 하고 술을 올렸습니다.

탁자에는 커다란 쟁반에 빨간 대추와 밤을 줄줄이 꿰어 둘러싼 폐백닭이 올라와 있었습니다(이 음식은 신부 어머니가 집에서 준비를 해야 하는데, 결혼식 전날 시어머니가 이 음식들을 준비하면서 ‘내가 며느리를 맞이하는 건지, 딸을 시집보내는 건지 모르겠다.’고 내내 중얼거리셨다고 합니다).

웃어른은 술을 마신 후에 탁자에 봉투를 내놓고, 밤과 대추를 탁자 앞으로 던지는데, 우리 둘은〈百年好合〉이라는 한자가 써진 하얀 천을 마주 잡고 기다립니다. 밤과 대추를 던지며 웃어른은 ‘아들 딸 많이 낳아라!’라고 말합니다. 대추는 딸을, 밤은 아들을 나타냅니다. 우리가 받아내는 수만큼 아이를 낳는다고 하여 열심히 〈百年好合〉라고 쓰인 천에 대추와 밤을 넘치게 받았습니다. 하지만 몇 년 후 결과는 ~물극필반(物極必反. 역주: 사물이 극에 이르면 반전한다. 차면 넘친다)이라. 우리 둘 다 문제가 있어 하나도 낳지 못했습니다. 폐백이 끝나고 우리 둘은 탁자의 봉투를 챙기고, 옷을 갈아입고 신혼여행을 떠났습니다. 다시 술을 올리고, 손님을 접대하지 않았지요.

결혼식에 참석하는 친지들은 예물 접수대에서 식권을 받습니다. 1인 1장을 받아 부근에 지정된 식당으로 가서 순서대로 식사를 합니다. 예식을 보지 않거나 늦게 도착한 사람들은 식권을 받아 곧장 식당으로 갑니다. 친정어머니는 식당에서 하객들이 겨우 국수 한 그릇에 작은 접시에 올라와 있는 몇 가지 음식을 먹는 걸 보고 초라함에 크게 낙담 했다고 합니다. (역주: 대만은 결혼식 개념이 음식을 잘 장만하여 가족 친지를 모시고 신랑 신부가 부부가 되어 인사를 올리는 행사. 보통의 가정에서 결혼식에 들어가는 상차림은 일인당 5-7만 원 정도)

▲ 사진 : 김동호 (역주: 최근에 참가한 대만 친구 아들의 약혼식. 약혼식 행사는 신부 측에서 부담. 신랑 측은 가족과 가까운 친척만 참석. 10인 테이블 두 개 우측에 따로 준비)
▲ 사진 : 김동호 (역주: 한국인 독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사진을 더 첨부합니다. 결혼식은 10인 테이블에 미리 하객들 명함이 올려져있고, 자리로 안내를 받습니다. 신랑 신부 측 구분이 되어있고, 음식은 차례로 상에 올려집니다. 여기 타이난 풍속은 결혼식 비용은 신랑 측 부담이라고 합니다. 한 테이블에 보통 원화 50-70만원. 30여 년 전 참석한 결혼식 테이블도 20여개 정도. 50여개 테이블이 차려지는 식장에도 가봤습니다.

예전에 한국에서는 결혼식에 국수를 먹었습니다. 그래서 옛날 어른들은 혼기에 이른 남녀를 보면 모두가 언제 국수를 먹느냐고 물었지요. 한국은 백의민족으로 흰색을 좋아합니다. 홍빠오(紅包, 빨간 봉투. 역주: 격려금이나 팁, 사례금을 넣어주는 봉투. 뇌물의 의미도 있음)를 쓰지 않고, 결혼이건 장례건 모두 흰 봉투를 사용합니다. 단지 쓰는 글자만 다릅니다. 祝 華婚(축 화혼)이나 賻儀(부의)라고 쓰는 한자만 다르지요.

폐백이 끝나고, 어머니는 신부인 제가 많은 축의금 봉투를 들고 만지작거리며 좋아하는 모습을 보더니, 쓰게 웃으시며 “살아가는 문화가 크게 다르구나. 이 모든 선택을 너 스스로 했으니 앞으로의 나날은 네가 참고 견뎌야 한다.”

한국에서는 남녀가 만나 결혼을 하여 부부가 되겠다고 결정을 하게 되면, 먼저 상견례라고 양가 가족들 부모와 형제자매들의 만남이 이루어집니다. 그런 후에 날짜를 정해 신랑과 몇 명의 친한 친구들이 함을 지고 가는데 그 속에는 신랑의 사주와 목각 기러기, 오곡 등이 들어갑니다. (중략) 결혼 택일은 여자 쪽에서 합니다.

남자 쪽에서는 살 집을 준비하고, 가족 명단을 여자 쪽에 전합니다.(조부모, 큰아버지, 작은아버지, 고모, 삼촌 등이 몇 명인지.) 여자 쪽은 살림살이 일체를 준비하고, 남자 쪽이 제시한 명단에 따라 예물을 준비합니다. 예물은 두 집안의 사회 경제적 형편에 따라 다르고, 지방과 풍속 가격에 따라 다릅니다. 1989년 당시 듣기에는 기본적으로 조부모와 부모에게는 이불 세트(요, 이불, 베개)에 한복 한 벌씩. 그리고 큰아버지와 작은아버지 고모 형제들에게는 한복이나 양복을 마련합니다.

결혼을 한 후 한국에 살면서 저도 친척들 결혼식에 참가를 했는데, 친척들이 이번 신부는 혼수를 뭘 했는지가 주된 대화더군요. 저는 알게 되었습니다. 한국에서 여자로 태어난다는 건 손해가 많다는 사실을...... 그래서 아리랑에게 물었지요. 나는 단지 다섯 벌 옷만 준비를 했는데 시부모님이 크게 실망을 했느냐고? 그랬더니 아리랑이 하는 말. “부모님께 대만 풍속은 결혼을 하려면 남자가 여자 집안에 많은 금액의 초빙료와 결혼떡값을 지불해야 하는데, 우리는 하나도 내지 않기로 했다고, 이건 우리 집안 조상 삼대로 큰 덕을 쌓은 덕분이다.”고.

그렇지요!

모든 일은 보는 각도에 따라, 또 생각을 달리하면 즐거움이 샘처럼 솟아납니다.

 

愛上阿里郎(七)

1981年7月29日電視播放着英國威爾斯王妃戴安娜的婚禮,女人們都羡慕的說:妳看啦!她那頭紗,那麽長的白頭纱,好美好美啊!

我心裡想着,將來我结婚時,我的頭紗一定要比戴安娜長,至少也要長1公分。

1989年8月26号將舉行婚禮,23号和家人一起到首爾,24号早上阿里郎要上班,請他的大嫂带我去结婚禮堂附近的禮服店挑婚纱, 一踏進婚纱店,天啊!這不是我想要的,但語言無法溝通,後天就要穿了。我只能從這家小店裡尋找最適合我的婚纱,就這樣穿上了。婚後幾年,有天看到结婚照,才忽然想起了我那至少長一公分的願望。

唉!那已是這輩子再也無法完成的心願了。

韓國人结婚日期是以周末為主,所以周末禮堂爆满,每對新人禮堂的使用時間只有两小時, 我只記得從步入禮堂到走到證婚人面前的那20公尺,我無法沉醉在一輩子就這麽一次的结婚進行曲裡,我無法碎步慢走的邁向婚姻陂岸. 因為工作人员一直推着我說~ 巴力!巴力!

(韓文)(快!快!)

證婚人說了跟多話,最後問我願不願意嫁给這位阿里郎,我聽不懂,這位阿里郎用手肘碰着我小聲的說:妳說願意。

婚禮结束,我倆换上韓服,我的臉颊兩侧被貼上了红色的小圆點(避邪用)還有一個長輩喝茶的儀式要完成。在另一個韓式房間,男方長輩們依顺序夫妻上坐,我倆给磕頭,奉酒。

桌上一個大盤子,放隻白煮雞,雞上圍繞着串好的红棗和栗子。(這是新娘母親要準備的,结婚的前一天,婆婆準備這些東西時,嘴裡唸着:我是在娶媳婦還是在嫁女兒。)

長輩喝酒,會在桌上放上红包,再抓起桌上的红棗,栗子灑到桌子前,我們俩跪在地上拉着上面有寫着漢字<百年好合>的白布條上。

灑红棗,栗子的時候,長輩會說:多生幾個兒子,女兒啊。红棗代表女生,栗子代表男生。

有點距離,能接到幾個就會生幾個,我們倆很認真的接着,整條<百年好合>的白布上满满的栗子和红棗。但幾年後的结果是 ~物極必反,我們家兩台機器都故障了,一個也没有生。

喝茶儀式结束,我倆把桌上的白包(红包)拿着,换了衣服,新婚旅行去。不用去敬酒,招呼客人。

來参加婚禮的客人,给贺禮時收禮的人员會给一張餐劵,餐廳都在禮堂的附近,先到先吃,一人一份。拿到餐劵不觀禮或趕場的人就直接去餐廳吃飯,我媽媽到餐廳看到韓國喜宴是一人一碗喜麵,幾小碟小菜和傳統糕點時,她說她的心已冷了一半了。

以前結婚吃喜麵, 所以老人家看到適婚男女時,都會問說,你什麽時候要吃喜麵啊!

韓國是個白衣民族,喜好白色,不用红包袋,不管婚喪喜慶都是白色信封袋,只是上面寫的漢字不一樣。祝華婚,賻儀的差别。

喝茶儀式结束,媽媽看到新娘我,抓着一大把白包袋(红包),開心的數着,媽媽苦笑著說:生活文化很不一樣,這一切都是妳自己决擇的,往後的日子妳要忍耐承担。

 

韓國人當两位男女有意结為夫妻時,會先安排雙方家人見面,雙方父母,兄弟姊妹互相認識。

然後選一天,新郎和幾位要好朋友,背着一個木箱韓國人稱(函),

裡面放有新郎的八字,木雁,五色穀………。(禮俗繁琐,在此不细述。) 到女家巷口,喊着:賣函喔!賣函喔!女方聽到來賣函了,就拿幾袋红包出来,放在地上,讓背函箱的人踩着红包走進女方家裡(這背函的人,臉上會戴着用曬乾的鱿魚做的假面具,背上背著一個用白布條绑的緊緊的大木箱)賣函的朋友收了這些红包,等儀式結束後去喝酒用,有的背函箱的朋友會故意走小步或不走,這時女方會用一個小的矮脚桌端出酒菜,讓新郎朋友吃喝,高興了再走。所以看到有背函箱的人在路邊吃喝,大概就知道是附近有人要嫁女兒了。

结婚由女方挑選日子。

男方準備房子,和给一份家族名單

(有没有爺奶啊,有几位伯父啊,姑姑,叔叔啦)。

女方準備房内一切用品,和按男方给的家族名單準備禮物。

當然這禮物依門當户對,各地方習俗價位也會不同。

1989年我聽說基本是爺奶,父母各一套被褥。(墊被,蓋被,雙枕)外加韓服各一套。其他伯父,姑媽,叔叔,兄弟姊妹,各一套韓服或男西裝,女大衣。婚後幾年,我参加了親戚的婚禮,聽到親戚們談論着這新娘的嫁妝。

我才明白,在韓國生女兒真的是賠錢货啊。我也問了這阿里郎,我只带五套衣服來,你父母很失望吧?他說他告訴父母,台灣男人結婚時要给女方很多聘金,囍餅錢,我們都不用給,是祖上三代修得的好福氣。

是啊!凡事换個角度想,就會有開心的泉源。

[편집자 주] 라문황씨는 고향이 대만이다. 유학 온 한국남성을 만나 결혼해 현재 한국에서 살고 있다. 대만에 거주하는 김동호 주주통신원으로부터 <한겨레:온>을 소개받아 한겨레 주주가 되었다. 남편 이은모씨는 한겨레 애독자다. 라문황씨는 한국에 살면서 한지그림의 아름다움에 빠져 한지 민속그림작가가 되었다. 대만과 한국에서 수차례 전시회도 가졌고, 지난 7월 3일부터 8월 21일까지 종로에 있는 <문화공간 온:>에서 한지 민속그림전시회도 열었다. 2017년 9월 12일부터 10월 24일까지는 매주 화요일(11시~13시) <문화공간 온:>에서 한지 민속그림강좌를 열고 있다. 위 글은 본문 하단의 한문을 김동호 주주통신원이 한글로 번역한 글이다.

편집 : 심창식 편집위원

라문황 주주통신원  low0309@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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