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상우 한겨레 대표이사가 지난 20일 전 직원에게 메일을 보내고 최근 악의적인 ‘삼성’의 광고 축소에도 한겨레의 길을 흔들림 없이 걸어가겠다고 밝혔다. 그는 메일에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사법처리와 함께 시작된 한겨레에 대한 삼성의 보복적 광고 축소는, 이 부회장의 1심 판결을 앞둔 지난 6월부터 더욱 극단적이고도 노골적으로 진행되고 있다”고 밝혔다. 

실제로 최근 삼성이 <한겨레>에 실은 광고는 다른 언론사에 비해 현저하게 적다. 이런 사정은 작년 10월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 국면부터 본격화 했다. 이에 대해 양 대표이사는 다음날 가진 사원들 대상 경영설명회 자리에서 “총수일가에 대한 보도로 특정 언론만 광고탄압 하는 곳은 삼성이 유일하다”며 “삼성은 우리 사회의 민주주의의 위협”이라고 지적했다. 

삼성은 지난 2007년에도 <한겨레>가 김용철 변호사의 삼성 비자금 폭로 보도를 하자 수년간에 걸쳐 광고를 중단하거나 대폭 축소했었다. 그 이후 좀처럼 삼성은 한겨레에 광고를 잘 싣지 않다가 서서히 늘려가는 모습을 보였다. 

이보다 앞선 2006년에는 시사주간지 <시사저널>이 삼성 고위 임원의 과도한 인사개입 기사를 내려다 노-사 간 싸움으로 번져 결국 대다수의 기자들이 회사를 떠나는 수모를 겪기도 했다.

양 대표는 이메일 맺음말에서 “어느 삼성 관련 기사에도 경영진이 더 쓰거나 덜 쓰라고 간여한 적이 없다”며 “편집권 독립은 한겨레의 고귀한 자산”이라 말했다. 그는 또 “자본과 권력 감시라는 소명은 우리가 지향해야 할 가장 숭고한 지표”라고 강조한 뒤, “이 위기의 가을이 씨앗을 뿌릴 중대한 ‘전화위복의 기회’”라며 광고매출 다변화와 신규사업 진출 및 경영효율화를 통해 독립언론의 정신적 기치를 물질적 독립 기반 구축으로 이어나가겠다고 밝혔다.

 

[이메일 전문 보기]

한겨레 임직원 여러분,
가을이 여물어갑니다.
돌이켜보면 올해는 참으로 많은 일들이 있었습니다. 언급하기조차 아픈 순간들도 많았습니다. 우리는 안팎으로 줄곧 이어져온 난제를 풀기 위해 애써왔습니다. 그러나 위기는 징후를 넘어 눈에 보이는 현실이 되고 있습니다. 풍요로운 보람으로 가득해야 할 추석을 눈앞에 두고 사우 여러분께 이 글을 보내는 마음은 무겁기만 합니다.
 
한겨레 동지 여러분, 
다시금 뜻을 모아 손잡고 위기를 헤쳐 나가야 할 때입니다. 
단단히 각오를 다지고 의연하게 외풍에 맞서야 할 때입니다. 이미 들어서 아시겠지만,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사법처리와 함께 시작된 한겨레에 대한 삼성의 보복적 광고 축소는, 이 부회장의 1심 판결을 앞둔 지난 6월부터 더욱 극단적이고도 노골적으로 진행되고 있습니다.
  
삼성의 이런 행태가 어제오늘 일은 아닙니다.
삼성은 총수일가가 위법한 행위로 법의 심판을 받는 경우 광고와 협찬을 대규모 감축하는 방식으로 비판언론을 길들여오곤 했습니다. 정확히 말하면, 총수일가에 대한 보도와 관련해 특정 언론에 대해 광고탄압에 나서온 곳은 재벌 가운데에서는 삼성이 유일합니다. 현대기아차, SK, CJ, 한화 등 총수가 형사 처벌을 받은 다른 기업의 경우, 관련 보도를 이유로 이처럼 폭력적 광고 집행 행태를 보인 적이 없습니다.
  
삼성의 광고 축소는 삼성 관련 보도를 스스로 검열하라는 협박입니다. 
총수일가에 불리한 보도를 걸러내지 않는다면 그만큼 경영적 어려움을 감수하라는 무언의 압력입니다. 대다수 언론은 이런 부도덕하고 부조리한 요구에 굴복하고 있습니다. 언론을 금력으로 순치하려는 이런 행태는 민주주의에 대한 ‘정면 도전’입니다.
  
한겨레 이외에도 JTBC, 중앙일보, SBS가 비슷한 상황에 놓여있습니다. 
삼성의 광고 편파 집행은 촛불혁명을 이끌어낸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보도에 대한 응징과 보복 성격도 강합니다. 지난 3개월여 동안 삼성의 광고집행 횟수는 총수일가에 대한 우호적/비우호적 보도의 양과 질에도 정확히 상응합니다. 
  
삼성은, 한겨레가 경영난과 임직원의 생존여건 악화를 우려해 그들 앞에서 위축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한겨레가 다른 매체처럼 굴복할 때까지 교묘하고도 집요하게 광고축소 상황을 지속할 게 분명합니다. 
  
그러나 그 어떤 상황에서도 우리는 위축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창간정신에 부합하는 소명을 늘 되새겨왔습니다. 사회적 공기로서의 한겨레의 책무는, 무엇을 잃더라도 우리가 끝까지 붙들어야 할 존재 이유입니다. 그 어느 삼성 관련 기사에도 경영진이 더 쓰거나 덜 쓰라고 간여한 적은 없습니다. 편집권 독립은 한겨레의 고귀한 자산입니다. 우리는 지금까지와 마찬가지로 언론의 본분과 창간의 소명을 굳게 새기며 냉철하게 가야 할 길을 계속 갈 일입니다.
 
 존경하는 한겨레 동지 여러분, 
저는 이 위기의 가을이 씨앗을 뿌릴 중대한 ‘전화위복의 기회’라고 생각합니다. 
독립언론의 정신적 기치를 경제민주화 진전에 발맞춰 확고한 물질적 독립 기반 구축으로 이어나가야 할 때입니다. 광고매출 다변화와 신규사업 진출 및 경영효율화를 통해 중장기적으로 극복해내야 합니다. 고달프고 힘든 길이지만 우리가 기필코 걸어가야 할 길입니다. 한국 사회가 한겨레에 부여하고 모든 한겨레인이 기꺼이 받아 든, 자본과 권력 감시라는 소명은 우리가 지향해야 할 가장 숭고한 지표입니다.
  
내일 경영설명회에서는 더욱 구체적인 상황을 공유하겠습니다. 아울러 위기를 기회로 바꾸고 금력으로 언론을 길들이려는 재벌로부터 창간정신을 흔들림 없이 지켜내기 위한 한겨레 동지 여러분의 의견을 수렴하고자 합니다. 지혜와 용기의 씨앗을 함께 뿌리자고 호소하려 합니다. 
 
2017년 가을이 한겨레 역사에 이정표가 되도록 힘과 뜻을 모읍시다.
감사합니다.
 
2017년 9월 20일 
대표이사 양상우

이동구 에디터  donggu@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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