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아들은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한마디로 잘~~ 지내고 있다. 평일에는 학교에서 공부만 하고 주말 저녁에는 알바하면서 생활비와 용돈을 벌며 제 표현대로 ‘나름 열심히’ 살고 있다.

아들은 초등학교, 중학교는 2번씩 옮겨 다녔고 고등학교와 대학은 3번 옮겼다. 사실 아들 탓이 아니고 상황 탓이지만, 피해를 본 건 아들이다. 적응할 만하면 옮기고 친구 사귈 만하면 옮겼다고 했다. 지금 생각하면 미안하기도 하지만 아들의 적응력은 좀 발전하지 않았나 싶다.

처음 대학은 아들 맘에 드는 학교는 아니었다. 하지만 거기서 큰 성과를 얻었다. 최고학점을 받기도 하는 등 공부가 할 만하다는 자신감을 얻은 것이다. 더 나은 곳이라 생각하고 간 두 번째 기독교 사립대학, 아들 말로는 최악이었다.

내가 주장해서 간 그 학교는 겉으로 보기엔 장점이 많았다. 첫 번째는 학비가 저렴했다. 캐나다 학생과 같은 금액으로 유학생 학비를 받아 비교적 싼 학비에 장학금도 넉넉히 주었다. 두 번째는 캐나다는 대부분 공립대학이다. 캐나다인이 학비가 저렴한 공립대학을 두고 사립을 택했다는 것은 자녀 교육을 최우선으로 여기는 가정의 학생들이라 학습 분위기가 좋을 것으로 생각했다. 세 번째는 작은 학교여서 학생 개개인에 맞는 밀착 수업이 진행될 것이라고 보았다. 하지만 아들은 1년 만에 중도 포기했다.

아들이 그 학교를 지원할 때 지원서에 신앙심을 묻는 칸이 있었다. 아들은 이렇게 썼다.

“저는 신앙심이 없습니다. 어려서 아무 것도 모를 때 천주교에서 영세를 받았습니다. 부모님의 권유에 의해 성당을 다녔지만 중학교 2학년부터는 다니지 않았습니다. 저는 하느님이 있는지 예수님이 있는지 잘 모릅니다. 성당에서 미사에 참여한지도 오래되었습니다만, 길거리에서 하는 미사는 여러 번 참석한 적이 있습니다. 해고노동자를 위한 미사에서 그들을 위해 기도했을 때 뭔가 뭉클 하고 느꼈습니다. 얼마 전 한국에서 비극적인 사건이 있었습니다. 페리호가 가라앉으면서 300명이 넘는 학생들이 빠져나오지 못하고 죽었습니다. 그 학생들을 위한 길거리 미사에 참석했을 때, 나도 모르게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그것이 신앙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아직 종교는 저에게 멀리 있다 생각합니다.”

개신교 신자도 아니고 가톨릭에 몸담았다가 지금은 신앙심이 없다고 했는데도 입학을 허락했다. 비록 기독교계 학교지만 종교를 강요하지 않는 학교인 줄 알았는데 실상은 그렇지 않았다. 특별 밀착수업은 가능했지만 수업내용이 문제였다. 아들은 학기마다 2과목씩 수강해야하는 필수 종교과목을 몹시 힘들어 했다. 종교과목이 아닌 다른 수업에서도 신앙적 고백이 차지하는 비중이 컸다. 학생 수가 적다보니 선택할 전공과목 수도 적어 부전공을 선택해야만 졸업학점을 채울 수 있었다. 예상했던 대로 학생들은 술과 담배도 꺼리는 아주 모범생(?)이지만 어린 시절부터 God과 가까워서 모든 것을 God으로 돌리는 데 대화를 이어나가기 어렵다고 했다. 결국 친구를 사귀지 못했다. 다른 건 어찌 참고 다닐 수 있다고 해도 수강할 수 있는 전공과목이 부족한 것은 심각한 결점이었다. 멀리 볼 때 손해를 보더라도 옮겨야만 했다.

작년에 작은 사립대학이냐 큰 공립대학이냐를 놓고 고민하다 제쳐놓았던, 꽤 알려진 큰 공립대학을 다시 선택했다. 올 9월부터 2년 동안 전공만 60학점(20과목)을 들어야 한다. 이전 사립에선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굉장히 빡빡하지만 전공과목은 해볼만하다며 별로 걱정하지 않는다. 학기 시작한지 한 달 돼 가는데 힘들다 소리 한마디 없다.

그간 기숙사 생활을 했지만 올해부턴 방을 구해 자취한다며 일찍 캐나다로 갔다. 보름동안 매일 발품을 팔아 기숙사 반값으로 도보 15분 거리의 학교 앞 방도 구했다. 자취 생활도 초기 적응을 마쳤다고 하니 정말 다행이다.

앞으로 대학 졸업까지 2년 남았다. 산전수전 다 겪고 들어간 대학이니만큼 소중히 여기면서 다닐 거라 생각한다. 알 수 없는 큰 외부요인이 없는 한 대학을 졸업하고 어디서든 제 밥벌이는 하지 않을까 싶다. 대학원이나 추가전문코스까지 마치면 취업할 수 있는 곳이 넓어질 거라는 생각에 은근 의사를 떠보지만 아직 추가전문코스는 몰라도 대학원 갈 맘은 없다고 한다. 대학원은 나의 욕심일까? 중학교, 고등학교도 안가겠다고 한 아들인데 대학을 마친다면 그것만으로 만족해야겠지..

아들이 얼마 전 이런 말을 했다.

“엄니. 아들놈이 유학생이라 미안합니다. 진짜 이런 복 어디 가서 못 받을 것 같아요. 엄니 너무 감사해요.”

예전 아들은 이런 표현을 잘 안했는데 이젠 자주 한다. 아이들은 세 번 변한다는데, 아들은 두 번은 변한 것 같다. 순하고 겁 많고 정 많은 어린이에서, 자신에게 희망이 없다던 거친 투덜이 청소년에서, 지금은? 예전처럼 한없이 순한 것은 아니지만 대체로 순한 아들로 돌아왔다. 자신의 본성으로 돌아와서 그런지 아들은 편안해졌다. 가족하고도 아주 편안하다. 어딜 가도 늘 ‘식구들 먼저’, ‘식구들 하고 싶은 대로’를 우선한다. 어릴 때랑 똑 같다. 이젠 아들 걱정은 얼추 마무리해도 되지 않을까 싶다. 그냥 지켜보면서 격려해주는 정도만 남았다 할까? 아니 나머지 1년 유학비 대주는 건 확실히 남았네. ^^*

▲ 지난 여행에서, 아빠 엄마를 위해 뱃사공이 되었던 아들 

누나가 보는 동생은 어떤 모습일까? 한마디로 “순수청년”, 순수하고 솔직해서 누구나 좋아할 것이라 했다. 또 어떤 순간에도 화를 잘 내지 않는 것, 그리고 남자아이들 같지 않게 상대방 말을 잘 들어주고 공감하는 능력이 높다고 했다. 딸은 어려서 동생의 반은 제가 키웠다고 할 정도로 동생에 대한 애틋함이 많아 굉장히 좋게 봐주는 것 같다. 하지만 단점도 이야기 했다. 자신감 부족. 충분히 자신감을 가져도 되는데 답답할 정도로 자신을 과소평가한다고 했다. 고칠 점은 운동집착증.

▲ 사이 좋은 두 남매

아빠가 보는 아들은 어떨까? 한마디로 “나보다 나~” 체력, 체격에서 우월하다고 했다. 하긴 우린 부부 둘 다 비실비실 멸치형인데 아들은 누가 봐도 펄떡거리는 탱탱 고등어형이다. 영어능력도 아빠를 능가하고, 사회성, 대인관계 기술도 훨씬 낫다고 했다. 아쉬운 점은 아빠를 더 좋아했으면... 하하하 남자들이란... 예순을 바라보는 나이에도 애들 같다.

아들은 자신을 어떻게 볼까? 아들에게 “현재 모습을 말해줘” 했더니 아들은 “폐인 ㅋㅋㅋㅋ”이런다. 바로 덧붙여 “학교는 그냥 전공만 열심히 들으면 되는 거라 편해. 공부해야 할 건 많지만 흥미 있는 쪽이라 목적 없이 공부하진 않아. 교수들도 재미있게 강의해주고... 나에 대해 말할 것? 넘 길어. 요새는 실수를 많이 하고 살았다는 생각이 들어. 그때 이랬으면 어땠을까 그런 생각을 해. 바꿀 수 있었던 것들부터, 바꿨으면 좋았을 것들이 생각나. 실수를 하면서 실수를 통해 배우기엔 인생은 짧고 청춘도 짧은 것 같아서 인생 멘토나 학업 멘토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 내가 하나하나 겪으면서 살기엔 잃는 것이 너무 많으니까....” 이제서야 자신에게 욕심을 내는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더불어 부모가 멘토 역할을 해주지 못한 것 같아 미안한 마음도 든다.

나는 왜 아들 글이 쓰고 싶었을까? 제목에 ‘세상 살아남기’라는 말이 있듯이 어떤 아이라도 믿고, 기회를 주고, 기다리면, 이 세상을 살아낼 수 있다고 말하고 싶었다. 그런데 글을 쓰면서 남에게 말하고 싶은 것보다 나 자신에게 더 많은 이야기를 한 것 같다. 엄마로서 적절한 때에 적절한 보호와 교육을 해주지 못한 것 같아 많이 미안했다. 당시는 최선이라 생각했지만 뒤돌아 보니 내 욕심이 우선이었던 부족한 엄마였다. 어린 시절 이해하지 못했던 아들의 어떤 면을 늦었지만 더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아들의 단점보다는 장점을 되새기는 시간이 되어 아들을 자신 있게 지지할 수도 있게 되었다. 글을 쓰면서 살짝 스트레스를 받기도 했지만 결국 서로에게 도움이 되었다. 감사할 일이다.

▲ 아들바라기 엄마를 모른 척하다가 엄마 애원에 고개 돌려주는 아들

아들 키우는 이야기를 매월 두 편씩 20개월 썼다. 어떤 이는 그랬다. 어떻게 그렇게 세세히 기억하냐고... 예전에 써놨던 글들이 큰 도움이 됐다. 그때그때 속상해서 또는 웃겨서 써놓았던 글들을 차근차근 정리하고 다듬어 가다보니 생각보다 길게 이어질 수 있었다. 1년 8개월 동안, 지루할 수도 있었겠지만 ‘순둥이 아들 세상 살아남기’를 읽어주신 분들에게 고마운 마음을 보낸다. 또한 항상 정성을 다해 편집해준 박효삼 편집위원과 아들 이야기를 풀어낼 공간을 만들어준 <한겨레>에도 고마운 마음을 보낸다.

편집 : 박효삼 편집위원, 이동구 에디터

김미경 편집위원  mkyoung6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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