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는 큰 명절, 설과 추석이 있지요. 이 때는 조상님들께 제사(祭祀)를 드리지요. 한 해를 시작하고 한 해를 갈무리하는 제사는 천지자연과 한 민족의 조상신께 감사를 올리는 행사이지요. 또한 돌아가신 고조부모, 증조부모, 조부모, 부모님에 대한 기제사도 있지요. 4대 봉사, 7대 봉사를 말하지요. 하늘에 계신 조상님들께 문안드리고, 지금의 우리들이 있기까지 그 은덕에 감사를 올린다고 생각을 한 것이겠지요.

제사의 어원적 의미를 살펴보면 갑골문에서 ‘제祭’는 피가 뚝뚝 떨어지는 희생의 고기를 손으로 바치는 상형 글자이고, 金文에서는 회의 글자로 신을 제사지내다의 뜻을 나타내지요. ‘사祀’는 형성 글자로 신으로서의 뱀을 본뜬 것이며 신을 제사지내다의 뜻이 있네요.

제사를 ‘봉제사(奉祭祀)’라 한다지요. 조선시대에는 유교 조상 숭배사상과 관련하여 제사 의식을 관(冠)·혼(婚)·상(喪) 의식과 함께 4례(四禮)라고 부르면서 대단히 중요하게 여겼다지요.

제사의 종류로는 사계절마다 각 중월(仲月:음력 2·5·8·11월) 혹은 계월(季月:음력 3·6·9·12월)에 받드는 ‘시제(時祭)’와 조상이 사망한 기일(忌日)에 받드는 ‘기제(忌祭)’ 및 봄 또는 가을에 조상의 묘소에서 받드는 ‘묘제(墓祭)’가 그 주요한 것이라지요. 그 중에서 묘제는 지역에 따라 그 받드는 조상의 범위가 또 다르다네요.

영남지방에서는 그 묘가 확인되는 모든 조상의 제사를 받드는 데 비하여 다른 지방에서는 기제에서 모시는 조상을 제외한 5대 이상 조상만을 받들기도 한다지요. 그 밖에도 음력 매월 초하루, 보름, 명절 및 조상 생일 등에 모시는 제사가 있지요. 그것들을 차례(茶禮)라고도 하고, 명절에 모시는 제사는 절사(節祀)라고도 한다지요.

절사를 모시는 주요 명절로는 정월 초하루, 보름, 2월 한식, 3월 삼질, 5월 단오, 6월 유두, 8월 추석, 9월 중양(重陽), 11월 동지 등이 있네요. 그러나 차례는 후기에 내려오면서 그 횟수가 생략되고 또 지역에 따라서도 많은 차이가 있으나, 정월 초하루와 8월 추석 차례는 어디서나 공통적이네요. 이 차례에서 모시는 조상의 범위는 시제 및 기제의 경우와 같이 4대까지로 되어 있다네요.

그러나 시제·기제·묘제에서는 그 절차에 독축(讀祝)이 포함되지만 다례에서는 독축이 없다지요. 이러한 제사는 조상을 숭배하는 하나의 형식적 의식이지만, 그 의의는 형식에 그치지 않았다지요. 무엇보다도 그러한 의식을 계기로 해서 조상들의 훌륭한 유풍과 행적을 자손들에게 일깨워줌으로써 자손들이 가문에 대한 긍지를 갖게 하고 그들에게 가문의 발전에 대한 동기를 부여하는 데 크게 이바지하였다는 것이지요.

특히, 4대인 고조까지 제사를 모시는 제도는 고조까지 상을 입는 복상제도와 함께 고조를 같이하는 친족, 즉 8촌까지의 친족을 하나의 핵심적인 친족집단으로 만들어서 유지하는 데 크게 기여하였다네요.

그러나 4대 봉사를 같이하는 이러한 친족집단은 안으로는 각 가족과 친족성원들의 자율적인 행동을 제약하고, 또 밖으로는 파벌을 조성하는 등의 폐단도 없지 않았던 것이지요. 1973년에 제정된 <가정의례준칙>에서는 봉사하는 조상의 범위를 2대인 조부까지 한정하고, 또 제사의 종류도 기제와 추석에 모시는 절사 및 정월 초하루에 모시는 연시제(年始祭)로 제한하고 있네요.(네이버 자료에서)

이런 제사가 시대의 변화로 요즈음은 일거리가 되고 있지요. 명절과 제삿날이 되면 먼저 걱정이 앞서는 것이지요. 명절 증후군이라고도 하고, 명절이 지나면 이혼이 늘어난다고도 하지요. 그 동안 쌓였던 앙금들이 명절 갈등으로 폭발하는 경우가 되겠지요. 분명한 것은 모든 의례와 의식들은 그 지역, 그 사회, 그 나라의 관습이고 문화이지요. 이런 문화와 관습은 본질이 아니고 형식이고 시대에 따라 변하는 것이지요.

▲ 한겨레 자료사진

 

이런 형식적인 것이 사람들을 구속하면 안 되지요. 형식적인 것들에 사람이 구속당하면 안 되지요. 형식적인 것으로 사람을 규정하고 판단하면 안 되지요. 형식적인 잣대로 사람을 평가하면 안 되지요. 그렇다고 형식적인 것의 필요성마저 무시하면 안 되겠지만요. 사람들이 만들어 놓은 관습과 풍습과 문화가 사람을 구속하고 사람들의 의식을 옭아맨다면 그것은 없는 것이 오히려 낫지 않을까요?

형식적인 것들은 사람들이 살아나가면서 정성을 모으고 드리는 방편으로 설정한 것들이지요. 때문에 그 사람이 무슨 생각을 하고 어떤 행동을 하는가가 중요한 것이겠지요. 이것으로 사람을 보는 판단 기준이 되어야겠지요. 결국은 철학 부재가 내용에 충실하기보다는 형식에 끌려 다니게 하지요. 그리고 냉소, 체념, 기회주의, 위선적, 이중적으로 살게 되면서 서로서로를 피곤하게 만드는 것이지요.

우리나라는 이런 형식적 요소가 사람들을 지배하지요. 그 이유는 철학적 마인드 부재라 할 수 있지요(연재물 50회). 이런 철학적 마인드가 부족하면 선입견, 고정관념, 색안경, 편견 그리고 눈치 체면과 명품 선호, 아파트 평수와 좋은 차 등등. 외형적인 것에 집착하고 이런 것으로 사람을 보는 잣대가 되지요. 이런 행태는 후진국, 의식의 후진국일수록 심하지요. 지금 이 나라, 이 사회의 현실이지요. 형식이 내용과 본질을 규정하면 안 된다는 것이지요. 혁명적인 의식의 변화가 따라야 하겠네요.

제삿날에 멀리 흩어져 있던 가족들이 만나서 음식을 나누고 정성을 함께 올린다는 것은 매우 바람직한 일이지요. 그런데 만나서 얼굴을 붉히고 서로가 피곤하다면 구태여 모여서 제사를 지낼 일이 없지요. 제사라는 행위는 하나의 행위에 불과한 것이고, 가족들이 모여서 오히려 갈등이 발생한다면 돌아가신 조상님들도 좋아하지 않겠지요. 우리는 싸울망정 만나야 한다고 생각한다면 어쩔 수 없겠지만요.

제사 드리는 일이 문제가 된다면 조상님들을 절에 모시고 제사를 올려도 되겠네요. 교회 성당에 나가는 사람들은 그 곳 의식에 따르면 되겠지요. 이런 형편도 안 되는 사람들은 그냥 산소나 납골당을 찾아도 되겠네요. 이것조차도 형편이 안 되면 순국선열들과 민중들의 역사 현장을 찾아보고 그 곳에서 함께 조상님들을 추모하면 되겠지요. 그러고 나서 적당한 성금을 백혈병 어린이 돕기, 소아암 환자 돕기, 장애우 돕기, 불우 이웃 돕기, 시민단체 등등. 후원금으로 보내 주면 좋겠지요.

이제 우리 사회는 가부장적 대가족 제도가 무너지고 자식도 하나를 두고 있지요. 혼자 사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해서 언젠가는 제사도 많이 사라지게 되겠지요. 제사 행위를 하지 않는다고 해서 죄의식을 가질 필요는 전혀 없는 것이지요. 세계에 제사를 안 지내는 사람들이 어디 한둘인가요? 그 나라의 풍습에 따라 각각 행위를 할뿐이지요. 이번 추석 명절부터는 각자 자신들의 형편에 따라 정성 올리는 방법을 선택해서 피곤하지 않고 보람 있고 알찬 명절을 보내면 좋겠네요.

얼씨구, 한가위!

[편집자 주] 공자는 <주역>을 읽은 지 3년 만에 '지천명', 즉 하늘이 만물에 부여한 원리를 깨달았다고 합니다. 주역은 동양학의 뿌리라고도 합니다. 동양의 가장 오래된 경전이란 뜻이죠. 주역은 유학에서 말하는 '삼경' 중 하나입니다. 원래 이름은 <역경>인데 '주(周)나라시대의 역(易)’이란 뜻에서 <주역>이라고 부릅니다. 한겨레 주주인 김상학 선생님은 현재 대학 교육원에서 주역 노자 장자 역학 등을 강의하고 있습니다. 요즘 동양철학 특히 주역에 대해 관심 갖는 분이 많은 것 같습니다. 막상 호기심에 책을 들추면 너무 어려워 곧 덮어버리곤 할텐 데요. 이번 기회에 주역을 쉽게 접해보시면 좋겠습니다. 김상학 주주의 '쉬운 역학(易學)'을 2주에 한 번 연재합니다.

편집 : 김미경 편집위원, 이동구 에디터

김상학 주주통신원  saram54@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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