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도 족보가 있는데 하물며 사람이 없어서야 되겠는가? 만약 내가 (X)이라면 성을 바꾼다.”라는 말이 있지요. 우리 한국인들이 족보(族譜)와 성씨(姓氏)에 얼마나 집착을 하고 그것을 정체성으로 삼고 있는지를 단적으로 짐작할 수 있는 말들이지요. 거의 순교자적 신앙심이라 할 수 있지요. 한 민족에게 있어서 집단의식이라는 것은 기후 풍토뿐만 아니라 문화 지리적 배경을 알아보아야 어느 정도는 접근할 수 있겠지요.

우리 민족은 강대국들의 틈바구니에서 약소민족으로 살아왔지요. 그러다보니 ‘폐쇄피해 콤플렉스’가 집단 무의식 속에 똬리를 틀고 있다 하지요. 집단 무의식 속에 사회병리적인 증상이 잠재되어 있는 것이지요. 그래서 끼리끼리 패거리, 학연, 혈연, 지연 등 緣구조의 비합리적 생활양식을 낳았지요(연재물 7회).

이에 대해서는 정신과 전문의이면서 정신 분석학자이고 칼 융 학회 회장인 이부영 교수와 그의 제자 이나미 교수 글들을 참조해 보면 되겠네요. 지금도 그 병리 현상은 사회 곳곳에서 속절없이 드러나고 있지요. 세월호 참사, 박-순실 사건, 강원 랜드 부정 채용 사건 등등. 이 사회, 국가 전반의 총체적, 구조적 문제가 패거리 문화의 결과물들임을 두 눈으로 보고 있지요. 우리들도 그 틀 속에서 살고 있지요. 여기서 벗어나려면 소위 ‘왕따’가 되어야 하지요. 이것을 구조적 모순이라 말할 수 있는 것이지요.

신을 모르는 민족! 영혼을 모르는 민족! 기도할 줄 모르는 민족! 이 땅, 이 민족의 현주소에 대해 돌아볼 시간을 가져야 하겠지요. 민족 경서를 지니고 기도하는 생활양식을 지양해 왔더라면 이런 비합리적 생활양식에서 어느 정도는 벗어날 수 있었을 텐데 말이지요. 신, 영혼, 기도라는 말은 신성, 영성, 철학적 마인드를 말하는 것이지요. 이것이 한 민족의 사상 철학의 흐름을 형성하겠지요. 그런데 그 뿌리가 허약하니까 오늘날에는 외래의 종교들이 범람하여 사회 혼란상에 극치를 더하고 있지요.

사람들이 생각과 느낌으로 움직이는 집단과 사상과 철학으로 움직이는 집단과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요? 사람들의 생각과 느낌은 대부분 편견과 오류이지요. 이것에 의존하면 그 사람, 그 사회, 국가 집단의 의식 수준이 저급해지겠지요. 양어장의 물고기들처럼 먹이 따라 움직이지요. 기회주의에 편승해서 사회는 혼란해지겠지요. 눈치와 체면, 그리고 형식적 요소에 끌려 다니는 노예처럼 주눅 의식으로 병들게 되겠지요. 사상과 철학으로 움직이는 집단과 사회는 법과 상식과 원칙을 존중하겠지요. 선진국들의 의식 수준을 말하지요.

한국 사회가 폐쇄적 조선 500여년, 일제 식민지, 한국 전쟁, 미군정의 해방 공간, 그리고 60년대 이후 산업화 도시화로 인해 농촌에서 도시로, 북한에 고향을 두고 월남한 이산가족들의 유랑 생활 등등. 혼돈의 떠돌이 생활을 이어 왔지요. 역사 속에서 어디에 안정적으로 정착하기가 너무나 힘든 시간들이었지요.

▲ 생물 진화 계통수를 연상시키는 나무 모양의 ‘나주 오씨 참봉공파 화수도’. 본줄기 아래에서 시작한 나주 오씨 자손들이 나무 중앙에서 세대별로 동심원 형태로 확장돼가는 모습을 일목요연하게 볼 수 있다. 이름과 사는 곳까지 꼼꼼하게 기록돼 있다. 왼쪽은 김효경 학예연구사.(사진출처 : 한겨레신문)

여기에 일반 서민들에게 족보라는 것을 말한다면 정신적 고문이 되겠지요. 사실 성씨 족보의 유래와 파의 갈래에 대해 알아보면 낯 뜨거워질 수뿐이 없지요. 한번 <한국인의 성씨와 족보>에 대해 검색을 해 보시지요.

한국인 성씨의 역사(참고 1)

우리나라 성(姓)은 중국의 한자문화가 유입한 뒤인 삼국시대부터 사용한 것으로 추정된다. 세계에서 처음으로 성을 사용한 것은 한자를 발명한 중국이며, 처음에는 그들이 거주하는 지역, 산, 강 등을 성으로 삼았다. - 신농씨(神農氏)의 어머니가 강수(姜水)에 있었으므로 강(姜)씨라고, - 황제(黃帝)의 어머니가 희수(姬水)에 있었으므로 성을 희(姬)씨로, - 순(舜)의 어머니가 요허(姚虛)에 있으므로 성을 요(姚)씨로 한 것은 이것을 실증한다.

한국인의 성씨는 현존하는 것만 해도 3백30여 성이 넘고 지금도 더해지고 있는 것을 알고 있다. 각 성씨에서 나누어진 본관의 수효만 해도 1천여 본이 넘는다. 그 1천여 줄기의 혈통은 대개 신화적 존재로 이 땅에 출현한 몇몇 분의 시조에게서 핏줄을 이어받아 분파된 것이다.

오늘 우리가 쓰는 성씨는 가문의 특성과 역사의 변화를 반영하면서 성쇠를 거듭한 뒤에 오늘날까지 살아남은 생명력의 증거들이다. 그렇기에 성씨는 생명의 이름이고 자랑스러운 존재의 증명이다.

우리나라의 성씨는 기원전 고대국가가 형성될 무렵부터 여러 씨족의 이름으로 자생되거나 왕으로부터 사성되거나 아니면 외래의 성씨로부터 시작했다. 그러나 그것은 아직 하나의 표시이거나 기호이지 삶의 흔적과 생명의 형질이 집적되어 강인한 생명력으로 형성된 성씨의 수준에 이른 것은 아니다.

우리 성씨는 고대 이래로 일어나고 사라지기도 하면서 언제나 새롭게 이어진 생명의 이름으로, 이 땅에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가장 중요한 존재의 증명이되어 온 것이다. 성씨는 그 발원과 생활의 근거지 아니면 오랜 시간과의 싸움에서 살아난 사람의 발자국들이 모여 한 핏줄의 특성과 동질성을 이룬 창조적 생명의 대명사이다.

특히 한국인의 성씨는 한 핏줄의 부계혈통이라는 절대조건에 의해서만 부여되며, 혼인 등 어떤 인위적 또는 사회적인 사유로도 어보애거나 바뀌지 않는 생명의 절대 증표이다. 그래서 우리의 성씨는 한국인의 생명력과 정체성의 비밀을 밝히는데 가장 직접적이고 중요한 단서가 된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에서는 언제부터 성을 쓰게 되었는가. 여러 가지 기록에 의하면 삼국시대만 해도 왕계나 특히 일부 계층에 한해서만 성을 사용하였던 것으로 되어 있다.

우리 역사상 고려조가 들어서면서 성으로서 사람의 혈통을 구분하는 일이 일반화되기 시작했고 지배층을 형성하는데 필요한 요건이 되었던 것이다. 왜냐하면 고려 초창기인 1055(문종 9)년 "성이 있는 자에게만 과거시험에 응시 자격을 준다." 는 법령을 공포하기 때문이다.

11세기에 이르러 우리는 1천년 이상의 국가 경영의 체험한 민족으로서 혈통의 자부심과 자긍심을 가지려는 계층이 급속도로 형성되기 시작한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성씨개념이 확립된 것은 고려 초, 중기 이후로 보아야 하는 것은 법적, 제도적 여건이 뒷받침되고 일반 사람들에 이르기까지 뿌리의식이 확산되기 시작했기 때문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현상은 역사적으로 국가 구성원의 힘이 가문중심 벌족세력 단위로 재편되고, 문벌의 세력구조가 강력한 국가를 형성하는 권력구조에 중요한 작용을 하게 되었음을 의미한다.

한 가계에 속한 인물들의 명예와 능력이 결집되어 하나의 힘의 단위로 형성된 가문은 서로 대립 또는 경쟁과 견제를 통해 국가 사직에 역동적인 힘을 불어넣었고 역사발전의 동력을 이끌어 내는 힘의 지렛대 역할을 하기도 했다.

[편집자 주] 공자는 <주역>을 읽은 지 3년 만에 '지천명', 즉 하늘이 만물에 부여한 원리를 깨달았다고 합니다. 주역은 동양학의 뿌리라고도 합니다. 동양의 가장 오래된 경전이란 뜻이죠. 주역은 유학에서 말하는 '삼경' 중 하나입니다. 원래 이름은 <역경>인데 '주(周)나라시대의 역(易)’이란 뜻에서 <주역>이라고 부릅니다. 한겨레 주주인 김상학 선생님은 현재 대학 교육원에서 주역 노자 장자 역학 등을 강의하고 있습니다. 요즘 동양철학 특히 주역에 대해 관심 갖는 분이 많은 것 같습니다. 막상 호기심에 책을 들추면 너무 어려워 곧 덮어버리곤 할텐 데요. 이번 기회에 주역을 쉽게 접해보시면 좋겠습니다. 김상학 주주의 '쉬운 역학(易學)'을 2주에 한 번 연재합니다.

편집 : 김미경 편집위원

김상학 주주통신원  saram54@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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