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격적이었다. “늑대 발처럼 생긴 물석송 81년 만에 국내에서 발견” 우연히 꺼내 본 스마트폰 뉴스 중앙일보 머리기사 제목이다. 아니 지난 8월에 내가 완도에서 찾아낸 물석송이 아닌가? 가을이 깊어가는 10월 하순 우리 연구회 마지막 삼척지역 식물상 조사를 마치고 귀가하는 차 안에서였다. 보는 순간 왠지 나도 모르게 가슴이 두근거리고 얼굴이 화끈 달아오른다. 저녁 9시 조금 넘어 집에 들어서니 KBS 뉴스가 진행 중이다. 난 또 한 번 깜짝 놀랐다. 국립공원관리공단 측에서 내가 만나본 바로 그 자리에서 물석송을 발견한 사실을 취재한 화면이 나온다. 아! 이게 그렇게도 큰 뉴스거리일까?

▲ 1961년 제주도에 분포하는 것으로 알려진 물석송이 확인되지 않다가 지난 8월 (주)동북아생물다양성연구소에서 실시하는 전라남도 완도 도서지역 식물상조사 과정에서 재발견되었다.

폭염주의보가 내려진 지난 8월 중순 우리는 국립생태원의 위임을 받아 ㈜동북아생물다양성연구소에서 실시하는 전라남도 도서지역 식물상 합동조사차 완도에 내려갔다. 첫 날 조약도, 고금도에서 채집한 식물표본을 정리하면서 팀원 중 양치식물에 대한 지식이 해박한 한 선생님의 얘기가 나왔다. 멸종된 것으로 알려진 물석송이 이곳 완도 어딘가에 자생한다는데 자생지를 절대로 알려 주지 않는다. 우리가 잘하면 찾아낼 수도 있다고. 이름이 물석송이니 모양이 석송 비슷한데 물기가 있는 곳에서 자라나 보다, 그땐 그저 그렇게 생각했다.

이튿날 우리는 2인 1조가 되어 팀장이 배당한 조사 코스에 다다랐다. 공교롭게 지난 5월에도 내가 조사에 참여한 구간이다. 홍자색 자란이 지천으로 피어 황홀했던 꽃길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 지난 5월 홍자색 자란이 지천으로 피어 황홀한 꽃길이 펼쳐졌다.

꽃이나 열매와 같은 생식기관이 있는 관속식물을 조사하는데 그 중 인물이 빼어난 것을 간택하여 확증표본으로 채집한다. 채집된 개체는 비록 오늘로 지상에서의 생을 마감할지라도 국립생물자원관 표본관 수장고에 보내져 영구 보존된다. 나는 사진을 찍고 나서 채집을 하고, 짝꿍은 좌표와 주위의 생태환경 등 채집지 정보를 기록한다. 계절에 따라 식물상이 사뭇 달라져 봄철보다 채집할 식물이 더 많아졌다.

바닷가 산자락을 따라 난 임도 둘레길, 바람 한 점 없는데다가 나무들 키가 그리 크지 않아 그늘이 없는 데서는 숨이 막힐 지경이다. 일당을 받는 일이라면 절대로 하지 않을 텐데 내가 좋아 자원하여 하는 일, 덥다고 누굴 원망할까? 이런 얘길 나누며 앞으로 나아가는데 임도 양쪽에 물이 조금 고인 도랑이 나온다. 어디서 물이 새어 나오는지 모르게 임도 위 아래쪽이 축축하게 물기에 젖어 있다. 나중에 지도를 검색해 보니 그리 멀지 않은 산자락 위쪽에 조그마한 저수지가 있다는 걸 알았다.

▲ 포자로 번식하는 물석송은 임도 위쪽 절개지 촉촉하게 젖은 황토 바닥을 기는 듯 뻗으며 자란다.

허리 높이 정도의 임도 위쪽 절개지는 벌건 황토인데 촉촉하게 물기에 젖어 있다. 얼핏 보니 그곳에 발이 많이 달린 초록색 벌레 같은 것이 황토 바닥을 기는 듯 뻗어 있다. 절개지 바로 위쪽 산사면에는 발풀고사리가 군락을 이루고 있으니 어린 발풀고사리겠지. 자세히 살펴보니 발풀고사리 어린 개체만 있는 것이 아니다. 도대체 이게 뭐지?

▲ 임도 절개지 바로 위쪽 산사면에는 발풀고사리가 군락을 이루고 있다.

줄기에 다닥다닥 붙어 있는 잎이 솔잎처럼 뾰족한 게 석송 비슷한데 키도 작고 잎도 여린 것이 어딘지 석송과는 달라 보인다. 임도 아래쪽 사면으로 내려가 살펴보았다. 거기에도 키가 좀 더 큰 여러 개체들이 축축하게 젖어 있는 황토 바닥 위에 뿌리를 박고 군데군데 자라고 있다. 일단 가져가서 확인해 볼 심산으로 반듯한 개체 하나를 골라서 사진을 찍고 조심스럽게 채집하였다.

▲ 임도 위쪽 절개지에 어린 발풀고사리(왼쪽)와 어린 물석송이 섞여 자란다.

비포장 임도가 끝나고 시멘트 포장도로가 나온다. 주차장 쪽으로 진행하는데 햇볕은 더욱 따갑고 복사 열기가 턱밑까지 확확 달아오른다. 산모퉁이를 돌아 백사장 해수욕장 가까이 다가서는데 주위가 예전과 뭔가 달라졌다. 그 사이 누군가 바닷가 산자락을 깎아 내고 시멘트로 덮어 널찍한 터를 닦아 놓았다. 양어장이라도 만들 셈인가, 지난 5월에 없던 시설이 그 사이에 들어선 모양이다. 물석송 자생지에서 그리 멀리 떨어져 있지 않는 곳인데 괜찮을까. 이렇듯 개발이란 미명하에 자연은 하루가 다르게 훼손되어 간다.

다른 한 곳을 더 들러 조사를 마치고 약속 시간에 숙소로 돌아왔다. 저녁 식사 전 숙소 옆 마당에서 채집물을 펼쳐 놓고 정리하면서 궁금했던 그 석송 비슷한 것이 뭔지 물었다. 우리나라에 분포하는 양치식물을 거의 섭렵하여 해박한 그 샘은 깜짝 놀라며 이게 바로 물석송이란다. 내가 물석송을 찾아낸 것이다. 어깨가 으쓱해진다. 우리는 한 사람씩 돌려가며 그간 멸종된 줄 알았던 물석송과 감격의 첫 대면을 하였다. 오늘 조사에서 최고의 성과는 물석송을 찾아낸 일이란다.

조사 마지막 날인 다음날, 조사팀장은 일정을 조정하였다. 우선 대원 모두가 함께 자생지에 가서 물석송을 직접 확인하기로. 이후 각자 배당한 조사 코스로 가서 오전 조사를 마치고 집결지에 모여 점심식사를 하기로. 채집한 표본만 보는 것으로는 만족할 리가 없었으리라. 9시경 우리 조사 대원 모두가 어제 물석송을 발견한 그곳 자생지를 찾아 나섰다. 내가 앞장서 길안내를 하였다. 드디어 그곳에 도착, 그간 멸종된 것으로 여겨졌던 물석송을 자생지에서 대면한다. 밟힐까 조심스럽게 발을 옮겨가며 모두가 정성들여 카메라에 담는다. 이구동성으로 물석송 자생지에 대해 함구해야 한다고 다짐하였다.

▲ 물석송의 학명은 줄기 끝에 달려 아래로 처진 포자낭이삭의 모양이 늑대의 발 모양과 흡사한 데 유래한다.

고작 표고 200m도 안 되어 보이는 산, 남향 완만한 사면에는 햇볕이 잘 들고, 사람 키보다 작은 떨기나무들과 다양한 초본류들이 지표면을 덮고 있다. 그곳에서 축축한 땅에 나는 키 작은 개미탑, 병아리다리, 좀고추나물과 사초과의 가시개올미, 좀네모골, 좀개수염, 좀고양이수염 등 여러 종류를 더 채집하였다. 습기가 있고 햇빛이 잘 드는 곳이라야 식물 종이 다양하다 것을 다시 한 번 실감한다.

식물분류학의 아버지 스웨덴의 린네는 1753년에 물석송을 석송과(Lycopodiaceae)의 석송속(Lycopodium)으로 분류하여 학명 “Lycopodium cernuum L.” 로 최초 기재하였다. 그 후 이탈리아의 식물분류학자 Pichi-Sermolli는 1968년에 이를 물석송속(Lycopodiella)으로 따로 분리하여 “Lycopodiella cernua (L.) Pic. Serm.” 이라는 학명으로 이명 처리하였다. 이들 학명의 라틴어 속명은 그리스어로 '늑대'를 뜻하는 리코스(lycos)와 '발'을 뜻하는 포디온(podion)의 합성어로 ‘늑대의 발’을 뜻하며, 종소명 ‘케르누(cernu)’는 ‘아래로 처진’을 뜻한다. 이로 보아 물석송의 학명은 줄기의 끝에 달려 아래로 처진 포자낭이삭의 모양이 늑대의 발 모양과 흡사한 데서 유래한 것으로 여겨진다. 국명 물석송은 축축한 물기가 있는 곳에서 자라는 생육지의 특성을 나타내는 ‘물’과 ‘바위에서 자라는 소나무’라는 뜻의 ‘석송(石松)’을 합성하여 명명한 것이다. 물석송을 달리 땅석송이라고도 한다.

▲ 서울대 생물학과에서 1936년 8월에 채집한 표본 5점이 채집지에 대한 정보와 국명 없이 과명, 학명만 기재되어 서울대 표본관에 전한다. (국립수목원 국가생물종지식정보시스템에 실린 사진을 네이버에서 가져옴)

물석송은 전 세계의 열대와 난대 지역에 두루 분포하며 늪지 환경을 좋아한다. 대부분의 열대 지방에서 알려져 있고 미국 최남부 지역뿐만 아니라 하와이와 이웃나라 일본에도 자생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서울대 생물학과에서 1936년 8월에 채집한 표본 5점이 서울대 표본관에 전한다. 그러나 과명과 학명만 기재되어 있을 뿐 채집지에 대한 자세한 정보가 없고 국명도 기재되어 있지 않다. 그 후 한국식물분류학의 거두 박만규에 의해 <한국양치식물지(1961)>에 물석송이 최초로 등재된다. 그런데 이창숙, 이강협은 최근 발행한 도감 <한국의 양치식물(2015)>에서 박만규에 의해 제주도에 분포하는 것으로 알려진 물석송(Lycopodiella cernua (L.) Pic. Serm.)의 자생지가 확인되지 않고 있다고 하며 물석송속을 제외하고 우리나라의 석송과 식물을 뱀톱속과 석송속의 2가지로 정리하였다.

▲ 줄기에 다닥다닥 붙어 있는 물석송 잎은 아래로 처지며 솔잎처럼 끝이 뾰족하고 키도 석송보다 작아 보인다.

우리 한반도에는 대략 400여 분류군의 양치식물이 분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 중 석송과(Lycopodiaceae)는 여러해살이풀로 착생하거나 지생하는데 뱀톱속, 석송속, 물석송속 등의 3가지가 있다. 뱀톱속에는 뱀톱, 다람쥐꼬리, 긴다람쥐꼬리, 좀다람쥐꼬리, 왕다람쥐꼬리 등 5종이 있고, 석송속에는 석송, 만년석송, 개석송, 비늘석송, 산석송 등 5종이 분포한다. 물석송속에는 물석송 1종만 분포한다.

씨로 번식하는 종자식물과는 달리 포자로 번식하는 물석송은 주로 햇볕이 잘 들고 물기가 있는 키 작은 떨기나무 숲 속의 땅 위를 길게 뻗으며 자란다. 키는 약 15~25cm 정도로 곧추서며 가지를 친다. 줄기나 가지에 빽빽하게 달리는 잎은 끝이 뾰족한 바늘 모양으로 비스듬히 처진다. 포자낭이삭은 가지 끝에 달리는데 아래로 처지며 8~9월경에 옅은 황갈색으로 성숙하여 포자를 발산한다.

▲ 물석송은 햇볕이 잘 들고 키작은 떨기나무 숲 속 물기가 있는 곳에서 잘 자란다.

카페 ‘고사리사랑’에서 만나 교분이 있는 이강협 씨와 우연한 기회에 통화하면서 완도에서 물석송 찾아낸 사실을 아냐고 물어 봤더니 소식을 들어 알고 있다고 한다. 며칠 후 이강협 씨로부터 전화가 왔다. 물석송을 보려 완도에 내려왔는데 못 찾겠다며 정확한 위치를 묻는다. 누군가로부터 자생지 위치에 대한 정보를 대충 듣고 확인하려 내려간 모양이다. 모른다고 발뺌할 수도 없는 처지, 자세히 알려 줄 수밖에 없다. 두세 번 통화한 끝에 드디어 찾았다고 전화가 왔다. 이런 일이 있은 지 2개월쯤 되었을까, 10월 22일 갑자기 물석송이 매스컴을 탔다.

보도를 접한 다양성연구소 측에서는 우리가 완도 자생지에서 확인한 물석송이 어떻게 2개월 사이에 국립공원관리공단 측에서도 같은 장소에서 발견하여 보도를 하게 되었을까 의심한다. 설령 우리가 발견한 물석송 정보를 어떤 통로로 입수했을지라도 공단 측에서는 연구소 측에 양보를 하든지, 아니면 연구소 측과 공동으로 발표를 했어야 마땅한데 이런 경우는 연구계에서는 절대로 묵과할 수 없은 일이란다. 연구소에서 당일 조사에 참여한 사람들에게 발견 사실을 공개한 사실이 있는지 소명해 달라는 연락이 왔다.

미루어 짐작컨대 국립공원관리공단에서는 국립공원 내 자연자원조사 과정에서 이미 우리가 확인한 완도 그곳에서 물석송을 찾아내고 이를 공개하지 않고 수년 간 모니터링을 해온 것으로 보인다. 그러던 차에 ㈜동북아생물다양성연구소에서 실시한 도서지역 합동조사 과정에서 우리가 물석송을 찾아낸 사실이 누군가에 의해 국립공원관리공단 측에 알려지자 서둘러 전문가들을 초정하여 현장에서 진위를 확인하고 보도자료를 내 언론에 공개한 것으로 판단된다.

이 마당에 숨길 게 뭐 있겠는가 싶어 “제 탓입니다.” 하고 사실대로 해명했다. 그리고 사려 깊지 못한 내 자신을 한없이 자책했다. 이젠 모든 것을 내려놓아야 할 때가 되었다고 다짐했다. 아무튼 멸종된 것으로 알려진 물석송이 다시 발견되어 매스컴의 뉴스거리가 되고 세상에 알려지기까지 어쩌면 내가 일조를 한 셈이다. 이렇게 자위해 본다.

편집 : 김미경 편집위원

이호균 주주통신원  lee1228hg@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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