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북부 연천. 포천지역 역사탐방

[편집자주] 이 글은 ‘문화공간 온’과 <한겨레:온>이 주최한 제2회 "잊혀진 항일독립투사를 찾아서" 역사탐방에 참석한 양주 삼숭중학교 2학년 최조은 학생이 역사탐방 해설을 맡았던 김재광 주주통신원에게 보내온 글이다. 중학교 2학년의 시선으로 본 역사탐방 기행문이 감동을 준다.

잊혀진 독립투사분들의 자취를 찾아 떠나는 모험

-내가 제목에 모험이라 이름을 붙인 까닭 : 그 날 날씨가 매우 춥고 스펙터클한 날씨였고, 이 프로그램에서 값진 교훈을 얻기까지 과정이 매우 환상적이었기 때문에 모험이라는 단어가 이 경험을 부르기에 알맞은 단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나는 11월 18일(토)에 ‘잊혀진 항일독립투사를 찾아서’라는 역사 프로그램에 동참하게 되었다. 이 프로그램은 경기북부 연천, 포천 지역에 있는 항일독립투쟁과 관련이 있는 유적지를 탐사하는 프로그램이다. 나는 본디 밖으로 돌아다니며 체험하는 아웃도어형이 아닌 이불속에 거주하는 것을 선호하는 인도어형이기에 관심이 가긴 하지만 신청할 생각이 전혀 없었다. 그런데, 때마침 역사 유적지 두 곳을 다녀오고 보고서를 작성하는 역사숙제를 받게 되어 숙제를 수행하기 위해 이 프로그램을 신청하고, 참여하게 되었다.

사실 관광버스를 타기 전까지만 해도 나는 매우 불만이 많은 얼굴로 여기저기 트집을 잡으며 툴툴거렸다(그 이유는 이걸 읽는 당신이 더 잘 알고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김재광 해설사분이 안내 책자를 나누어 주시고 설명을 시작하자, 끝없이 나왔던 불평이 들어갔다. 그 이유로는 안내 책자가 매우 정성스럽게 작성된 것을 보며 이 프로그램을 위해 얼마나 많은 사람이 고생을 하였을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고 또 다른 하나는 안내책자를 받은 후 버스 내에서 받은 간식이 너무 맛있어 보였기 때문이었다(이걸 읽는 당신은 나의 불평이 들어간 이유로 전자보다 후자가 더 크게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 생각했을 것이다, 맞다).

그렇게 흔들리는 버스 안에서 숙제를 끼적이며 바깥 풍경이 몇 번이나 바뀌었을까, 첫 번째 유적지인 호로고루성에 도착했다. 호로고루성에 도착해 버스에서 내리자 칼바람이 옷을 잘라낼 기세로 불어댔는데, 정말 과장 1도 없이 그때 나는 이곳에서 장렬하게 전사하겠구나 생각했다. 정말로. (나의 어머님의 말로는, 내가 멋을 부리느라 옷을 얇게 입고 갔기 때문이라고 하는데, 나는 따뜻한 옷을 입고 갔으며, 전혀 1도 멋을 부리지 않았다.) 이 호로고루성의 근처에는 고랑포구가 자리하고 있다고 하는데, 대체 어디가 호로고루성이고 어디가 고랑포구인지 알 수가 없어 그냥 열심히 책자만 읽었다. 그리고 한 20분간 탐사를 했는데, 추운 칼바람을 맞으며 탐사를 하고 있자니, 이곳에서 의병을 이끌고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 정신으로 항일운동을 하셨던 독립투사분들이 너무나 존경스럽고, 숙연한 마음이 들었다. 옷을 따뜻하게 입고 서있기만 해도 전사할 것 같은 날씨인데, 이곳에서 얇은 옷으로 버티며 격렬한 투쟁을 하신 독립투사분들은 정말 멋진, 아니 멋지다는 말로는 표현이 안 될 분들이라고 생각했다.

▲ 호로고루성 성벽에서 단체사진(오른쪽에서 다섯 번째 최조은 학생)

그 다음으로는 백학면사무소에 도착했는데, 책자의 설명을 잠시 빌리자면 1919년 3월 21일 두일리 장날에 조우식, 정현수, 이낙주, 구금룡 등의 주도로 장터에 모인 군중들은 일제히 독립만세를 외치고 군중을 집합시킨 후, 시장 부근의 이 곳으로 몰려와 직원들에게 독립만세를 같이 부를 것을 요구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이 요구에 직원들이 응하지 않자 정현수는 면사무소에 돌을 던져 기물을 파괴하였다고 하며, 이로 인해 조우식과 정현수, 이낙주, 구금룡 외 독립만세를 외쳤던 군중들은 징역을 살았다고 한다. 책자의 설명을 빌리느라 이야기가 조금 길어졌다. 나의 의견을 조심스레 말하자면, 이 날 독립만세를 위해 모인 항일독립투사분들의 행동은 꽤나 과격하긴 했으나, 변화와 개혁은 과격함이 동반하지 않는다면 이루어질 수 없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이 분들의 과격한 행동은 우리나라의 변화와 개혁, 즉 나라의 광복이 오는데 좋은 영향을 끼쳤다고 생각한다. 이곳에서 나와 다른 몇몇 분들은 가져온 꽃을 동상 앞에 두고 묵념했다.

▲ 연천 독립운동 순국선열에게 헌화하는 최조은 학생(사진 가운데 여학생)

여기서 내가 서술한 유적지 외에도 몇 군데를 더 갔으나, 인상적으로 보았던 곳만 서술하도록 하겠다. 마지막으로 간 유적지는 채산사라는 유적지였다. 채산사는 면암 최익현 애국지사의 넋을 위로하기 위해 향사를 지내는 곳이다. 그 날은 특별히 면암 최익현 애국지사의 후손분이 나오셔서 면암 최익현 애국지사의 초상을 보여주시고, 설명까지 해주신 날로, 해설사분이 매우 이례적이고 특별한 것이라고 이야기해주셨다. 여기서 또 책자의 설명을 빌려 면암 최익현 애국지사의 소개를 하자면, 강화도조약을 체결하자 불가함을 외치고, 친일 개화파 정권을 적으로 규정하고 개화정책의 폐지를 요구하는 등, 많은 업적을 세우신 분이다. 나는 그 많은 업적 중에서도 대마도에 압송되신 후에도 일왕이 주는 일체의 음식을 거절해가며 항일운동을 계속하신 업적이 기억에 남았다. 만약 내가 그런 상황에 처해진다면 그런 나라를 위한 행동을 할 수 있을지 많은 의문이 들었다.

▲ 면암 최익현 만화를 읽고 있는 최연소 참가자 김서하 학생과 함께(채산사)

이번 모험을 마치며, 나는 이 프로그램을 참여하기 전까지 우리나라의 독립은 이름이 알려진 유명한 사람들만의 주도하에 이루어진 것이라는 짧은 생각을 했으나, 사실은 우리나라의 독립이 특정 몇몇 분들만의 주도로 이루어진 것이 아닌, 우리나라를 사랑했던 지키고 싶어 했던 모든 분들의 애국심으로 인해 이루어진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런 의미에서 이 프로그램은 매우 나에게 값진 경험이었다.

▲ 연천 항일의병비 학생참가자 단체사진(오른쪽 두 번째 뒤줄)

사진 : 마이너리티 김영준 사진작가의 허락 하에 게재

편집 : 김미경 편집위원

최조은 학생  gamkooda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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