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세상을 하나의 존재, 더 나아가서 하나의 '거대인간'으로 본다면 이 거대인간만큼이나 굴곡진 인생을 살아온 인간도 없을 것이다. 이 인간의 부모가 누구일까는 궁금하지 않다. 빅뱅설이 유력하지만 창조설을 무시할 수도 없다. 논의 자체가 무의미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아무도 눈에 보이게 검증할 수도 없거니와 창조의 주체가 스스로 '내가 창조했다'고 모습을 드러내지 않기 때문이다. 이 거대인간의 나이가 몇살인지 수명은 언제까지일지 아무도 아는 이가 없다.

그의 삶은 지구에 국한되어 있기에 지구의 역사가 곧 그 거대인간의 역사일 것이다. 그의 육체는 지구라는 공간이다. 그는 지구를 단 한시도 떠난 적이 없으며 지구의 변화를 온 몸으로 체험하며 살아왔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그 거대인간에게도 영혼이 있을까? 그에게 영혼이 있다면 아마도 세월속에, 시간속에 있을 것이다. '시간이 세상의 영혼'임은 피타고라스*가 이미 논증한 바 있다. 장구한 세월과 영원한 시간이 이 거대인간의 정신과 영혼이다.

이 거대인간에게는 수많은 균과 세포들이 있다. 바로 인류를 비롯한 생명체들이다. 인류는 자신이 거대인간을 지배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거대인간이 그에 동의하는지 여부는 알 수 없다. 거대인간은 태양을 끊임없이 돌면서 영양분을 섭취하기도 하지만 자신보다 먼저 태어난 형제 행성들과의 교류를 더 즐거워한다. 저 멀리 은하계를 동경하기도 하며 조상별들에게 문안인사도 드린다.

▲ 지구 온난화에 의한 해수면 상승으로 수몰 위기에 놓여 있는 남태평양의 투발루.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이 거대인간이 우리 개개인의 인간들을 낳았다고 볼 수 있을까? 그것은 장담할 수 없지만 분명한 건 인류의 조상들이 그 거대 인간이 지켜보는 가운데 태어나고 죽었다는 사실이다. 그 거대인간은 인류의 후손들이 어떻게 살아가고 죽어가는지도 똑똑히 볼 것이다. 그래서 오늘 이 거대인간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는 것이다. 거대인간도 언젠가 죽음을 맞이하게 될까? 최근들어 거대인간의 신음소리가 들려오는 듯하다. 전 지구적인 폭염으로 인류가 몸살을 앓고 있다. 거대인간이 얼마나 힘겨워하는지를 말해주고 있는 듯하다. 거대인간이 체온조절에 실패할 경우 인류의 미래 또한 장담할 수 없다.

이 거대인간에 대해 연민의 정을 느끼는 사람들이 있다면 그들은 아마 조금은 철이 든 사람이라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인류를 비롯한 지구의 생명체들은 거대인간에 속해 있는 세포들이거나 균에 불과한 존재들이다. 세포나 균들이 거대인간에 의존하듯이 거대인간 또한 세포나 균들의 멸종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맹위를 떨치는 폭염을 맞이하여 거대인간에게도 이제 휴식이 필요한 듯하다.  어쩌면 거대인간은 인류에게 정중하지만 다소 거친 방법으로 문명의 휴식을 요구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주)피타고라스는, 시간이 무엇이냐는 질문을 받으면 세상의 영혼이라고 대답했다. 

편집 : 김동호 객원편집위원

심창식 편집위원  cshim777@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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