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라시아에서 들려주는 사랑과 모험, 평화이야기 155~156일

모든 것이 다 순탄하게 풀렸으면, 내가 이렇게 자유를 품에 안고 맘껏 유라시아대륙을 달릴 수 있을까? 내 인생이 살지고 풍요로웠다면, 평화가 그렇게 소중한지 알았을까? 그래서 내 스스로 그 어느 때보다 강건하다는 것을 느꼈을까? 이렇게 고통스럽지만 가치 있는 발걸음을 옮기고 있었을까? 위기 속에서 작은 것이라도 건지려 바동거렸으면, 언제까지 얼마나 바동거리며 살아가고 있을까?

중년의 위기에 빠졌을 때 모든 무게를 내려놓고 위기와 정면으로 마주서니 위기는 내게 새 세상을 열어주었다. 위기와 정면으로 마주볼 때 위기는 경이로운 날개가 되어 새 세상으로 날게 해주었다. 때로 앞이 안보이고 뜻대로 되지 않을 때면, 불편함과 외로움과 고통 속에 스스로를 유배 보내 대자연이 주는 삶의 이치를 깨달으며 강인해지는 생활이 필요하다.

▲ 2018년 2월 2일 금요일 아제르바이잔 Mehdli에서 아그다베디를 향헤 출발하면서 만난 일출

지금의 나를 나의 전부라고 생각지 않았기에 감추어진 80%를 찾아 나섰다. 익숙하고 편안한 것을 떠나 새롭고 낯선 것을 찾아 나섰다. 달리면서 생각의 깊이는 깊어질 것이고, 달리면서 나의 활동영역은 넓어질 것이다. 달리면서 우주를 덮고도 남는 본래 마음을 되찾아 진정한 자유인이 되어가고 있는 것이다. 삶에 한기와 바람을 느낄 때 오히려 그 한가운데 홀연히 뛰어들어 고통과 외로움 속에서 달리며 절망과 환희를 반복하며 거듭나기를 시도하고 있는 것이다.

세상의 모든 아름답고 귀한 것은 고통 속에서 태어난다. 산고 고통 없이 태어나는 어린 아기가 어디 있으랴! 아기가 열병을 앓고 난 다음 부쩍 자라듯 절절한 아픔을 견디어낸 후에야 진정한 삶의 새 지평은 시작되는 것이 아닐까. 고통과 좌절, 외로움 속에서 흙먼지 매연 다 뒤집어쓰고 만신창이가 되고나서야, 불가마 속 같은 뜨거움을 견뎌내고서야, 비로소 태어나는 달 항아리 백자 같은 자신과 마주하게 된다. 역설적이지만 위기 속에서도 생의 근본적 아름다움이 피어난다

▲ 2018년 2월 2일 금요일 아제르바이잔 Mehdili에서 아그자베디까지 달리면서

아제르바이잔의 내륙은 거칠고 황량한 광야가 끝없이 펼쳐진다. 산유국 도로답지 않게 비포장도로를 먼지와 매연을 뒤집어쓰며 달린다. 이 나라는 모든 메르세데스 벤츠가 노년을 보내는 나라 같다. 내가 가 본 그 어느 나라보다 메르세데스 벤츠가 많이 굴러다닌다. 본고장인 독일 그리고 미국보다도 더 많이 보인다. 3,40년의 족히 됐을 차들이 시커먼 매연을 뿜고 지나간다. 거의 폐차 단계 중고차를 헐값에 들여와 고쳐 쓰고 있는 것 같다. 그래서 간혹 마을이 보이면 구멍가게보다 자동차 정비소가 더 많다. 매일 끼니때마다 식당을 찾는데 애를 먹지만 자동차 고치는 곳을 찾기는 쉽다.

먼지와 매연 속에 지평선만이 저 멀리 아득하게 펼쳐져 보인다. 간혹 풀을 뜯는 양떼들과 소떼들 사이로 목동이 보일뿐이다. 끝없이 달리다 간혹 길과 길이 만나는 삼거리나 사거리가 나오면 조그만 가게나 과일 행상들 그리고 정육점이 보인다. 여기서는 길거리에서 소나 양을 도축해서 그 자리에서 판다. 사료는 당연히 먹이지 않고 풀만 먹여 방목해서 키워 냉동도 시키지 않고 바로 그 자리에서 파니 몸에는 좋겠지만 고기는 질기다. 조지아에서는 돼지도 방목시켜 흙을 파먹고 살게 하는 걸 여러 번 보았다. 비계가 상대적으로 적어 돼지고기 맛은 기가 막히게 좋은데 여기는 회교국가라 돼지고기 살 곳이 많지 않다.

▲ 2018년 2월 2일 금요일 아제르바이잔 Mehdili에서 아그자베디까지 달리면서 만난 간이시장

오늘도 숙소 찾는 것이 쉽지 않아 보였다. 요즈음은 차가 따라오니 무리하지 않고 보통 풀코스 마라톤 거리인 42km를 뛴다. 40km쯤 뛰다가 세차장을 만나서 이 근처에 호텔이 있냐고 물으니 조금만 더 가면 있다고 한다. 요 며칠 숙소 잡는 일로 고생이 많았는데 다행이다 싶었다. 택시를 탈거냐고 물어봐서 내 뒤로 차가 쫓아와서 택시는 필요 없다고 했는데도 자꾸 쫓아와서 돈은 안 받을 테니 타라고 한다. 나는 42km를 마무리 할 생각이었는데 그 친구가 계속 쫓아오면서 호텔까지 안내한다고 하여 41km에서 마무리를 했다. 덕분에 오늘 끝난 곳에서 가까운 곳에 숙소를 잡았다.

나는 지금 한국 모습이 한국의 전부라고 생각지 않았기에 그 감추어진 80%를 찾아 나섰다. 익숙하고 편안한 것을 떠나 새롭고 낯선 것을 찾아 나섰다. 휴전협정이 평화협정으로 바뀌어 유라시아까지 쭉 뻗은 철도망이 연결되어 사람과 물류가 오고가고, 석유파이프라인이 연결되어 더 싸고 안정적인 에너지를 공급받고, 국방예산은 교육과 복지에 활용되면 우리는 더 많은 자유와 풍요로움을 만끽하면서 김구 선생이 그렇게 꿈꾸었던 문화강국이 될 것이다.

창밖에 내다보이는 밤하늘이 유난히 맑다. 맑은 밤하늘에 기울기 시작하는 보름달이 애처롭게 빛난다. 저 달이 다 기울고 나면 정월 초하루가 된다. 객지에서 설을 맞을 생각을 하니 심난하다. 그러면서도 한편 나의 가슴은 초야의 밤을 기다리는 꼬마신랑처럼 마구 두근거리고 있다. 신부의 속살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최고의 흥분이 유지된다. 한반도에 봄처럼 평화가 찾아와 철조망은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리고, 외국 군인들은 모두 자기 고향을 찾아 오랫동안 떨어졌던 애인과 진한 키스를 하는 상상만으로도 최고의 흥분상태가 된다.

▲ 2018년 2월 2일 도착한 아그다베디 이정표
▲ 2018년 2월 2일 아제르바이잔 Mehdili에서에서 2월 3일 아제르바이잔 Turklar까지 달이면서 만난 사람들
▲ 2018년 2월 3일 토요일 아제르바이잔 아그자베디에서 Turklar까지 달리면서 만난 양떼들과 떠돌이 개들
▲ 2017년 9월 1일 네델란드 헤이그에서 2018년 2월 3일 아제르바이잔 Turklar까지 (누적 최소거리 약 약 5536.95km)

* 평화마라톤에 대해 더 자세한 소식을 알고 싶으면 공식카페 (http://cafe.daum.net/eurasiamarathon)와 공식 페이스북 (http://facebook.com/eurasiamarathon), 강명구 페이스북(https://www.facebook.com/kara.runner)에서 확인 가능하다. 다음카카오의 스토리펀딩(https://storyfunding.kakao.com/project/18063)과 유라시안마라톤조직위 공식후원계좌(신한은행 110-480-277370/이창복 상임대표)로도 후원할 수 있다. 

[편집자 주] 강명구 시민통신원은 2017년 9월 1일,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1년 2개월간 16개국 16,000km를 달리는 유라시아대륙횡단평화마라톤을 시작했다. 그는 2년 전 2015년, '남북평화통일' 배너를 달고 아시아인 최초로 미대륙 5,200km를 단독 횡단한 바 있다. 이후 남한일주마라톤, 네팔지진피해자돕기 마라톤, 강정에서 광화문까지 평화마라톤을 완주했다. <한겨레:온>은 강명구 통신원이 유라시아대륙횡단평화마라톤을 달리면서 보내주는 글과 이와 관련된 글을 그가 마라톤을 완주하는 날까지 '[특집]강명구의 유라시안 평화마라톤'코너에 실을 계획이다.

사진 : 강명구, 선한길 

편집 : 김미경 편집위원

#강명구선수유라시아평화마라톤 156일째(2018년 2월 3일)

강명구 시민통신원  myongkukang@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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