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내천통일중앙회를 통해 통일은 사회주의도 자본주의도 아닌 인내천주의로

지난 2월 6일 김철 교령이 환원(별세라는 뜻의 천도교 용어)했다. 향년 91세였다.

▲ 김철 전 천도교 교령 ( 한겨레신문 2018.2.7)

1928년 1월 2일 평안남도 중화에서 태어난 김 전 교령은 1945년 평양고보(5년)를 졸업했다. 1948년 평양공대에서 전기공학을 졸업했다. 1949년에서 1950년까지 평양시 천도교지부에서 교화부장으로 활동했다. 한국전쟁이 일어나 1·4 후퇴 때 월남한 고인은 천도교 이론 서적들을 간행하고, 동학 강연회 – 인내천 강좌를 통해 평화통일과 천도교 포교와 후진 양성에 힘썼다.

▲ 고 김철 교령이 매주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저녁 7시부터 9시까지 인내천 사상강좌 안내문이다. 이 강좌는 서울 장안의 신문과 잡지들에 소개되어 많은 청강생들을 모았고, 일주일단위로 진행되어 보이지않는 포교에도 도움이 되었다.

2001년부터 3년간 교령을 맡았는데 2002년도에 북의 천도교 식구들과 함께 대교당에서 시일식을 같이 보면서 우리는 하나임을 확인하고 통일이 답이라고 선포하여 유명하다.

통일은 사회주의로도 안되지만 자본주의로도 안된다면서 ‘인내천주의’로 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여 많은 진보진영의 인사들과 통일담론을 펼침으로써 평화통일 교령으로 알려져있다.

인내천 사상 강좌를 통해서 “평화통일, 우리의 미래가 될 수 있다”고 주장했는가 하면 각종 통일단체 및 평화통일 신문과 인터뷰 하여 통일이 답이라고 말하였다.

당시 인내천사상강좌를 통하여 많은 천도교 교인들로 포교를 하면서 서울의 밤하늘이 십자가의 불바다로 변해버리는 서학으로 함몰된 현실을 안타까워했다.

당시 교육을 받았던 백윤선 평화통일신문 수석공동대표는 김 교령은 항상 강의에 들어가기에 앞서 "통일은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민족의 생존을 위한 필수적 과제입니다. 우리는 원래 하나였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다시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이 시대정신은 통일정신입니다.”라고 통일담론을 펼쳤다고 회고했다.

▲ 천도교 소개 강좌

<남북 정치지도자에게 권해 드립니다>는 조선일보와 한겨레신문의 광고를 통해서 “지금 우리는 대결의 시대를 청산하고 화해와 통합의 시대로 진입하는 대 전환기를 맞이 했습니다. 일찍이 3.1독립선언서에는 위력의 시대는 거하고 도의의 시대가 도래하도다”라고 밝혔다.

그러나 위력의 타다 남은 불꽃이 장장 80여년을 끌어 왔다면서 이제 그 잔 불꽃마져도 없어져가고 도의 시대가 열려가고 있다면서 이것은 천지의 대운수라고 김 철 교령은 말하였다.

인내천 사상은 평등과 자유를 동시에 실현시킬 수 있는 기본 토대가 될 수 있다고 선언하였다.

▲ 노수희 통일운동가는 김철 교령님이 아끼던 분이다. 교령은 많은 통일운동가를 접견하면서 곧 통일이 될 것임을 예견한 분이다. 바로 노의장 뒤로 백윤선 평화통일신문 수석공동대표의 모습이 보인다.

인내천이라는 기본표어를 남북이 함께 합창할 때 평화통일의 길이 환하게 열리게 될 것임을 확신한다고 <인내천정신선양회>라는 이름으로 2002년 3월 1일자에 보-혁신문(조선일보, 한겨레신문)에 전면광고를 하기도 한다.

G2로 미국과 중국을 알고 있지만 앞으로 우리나라 남과 북이 통일이 되면 ‘스승의 나라’가 될 것이라면서 정신적 물질적인 제3의 <G3코리아>가 될 것이라고 예견했다.

<인내천통일중앙회>의 조직을 통해서 자주중도 노선인 인내천을 알면 남남갈등과 남북갈등이 해결된다고 직접 동학강의를 평일 저녁 7시부터 9시까지 수운회관 9층에서 펼쳤다.

▲ 편향된 인식으로 분단된 우리는 마녀사냥을 한다면서 통일지향의 한겨레신문과 안보지향의 조선일보에 광고를 통해 "남북정치지도자에게 권해드립니다"이라는 평화통일을 호소한 김철 교령이다.

미국과 북한의 회담을 ‘미북회담’이라는 제목의 조선일보와 ‘북미회담’이라고 편집하는 한겨레신문에 인내천사상강좌를 광고를 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그는 기업인들이 광고를 하면서 조중동의 보수신문에만 광고를 해서는 안 된다면서 진보신문에도 함께 광고를 하는 기업인의 사회적 책임을 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남남갈등을 치유하는 길은 기업인들의 사회적 책임을 다하면 길이 열린다고도 강조하였다.

기업인의 사회적 책임차원에서 상술(商術)의 광고를 서학신문인 보수신문과 동학신문인 진보신문에 함께 광고를 하는 상도(商道)를 주문한 것으로 유명하다.

▲ 동학강좌 안내 전단지. 해월 최시형의 제자들이 언제 우리나라가 잘 되겠습니까 하는 질문에 만국병마가 돌아갈 때라고 말한다.

교령은 동학농민혁명이 좌절된 후 해월의 제자가 묻기를 “언제 우리나라가 잘 되겠습니까?”하고 묻자 해월선생이 대답하시기를 “만국병마가 우리 강토에 왔다가 돌아갈 때이니라.”면서 주한미군이 머지않아 철수하고 남북이 평화통일이 될 그날이 펼쳐질 것임을 예고한 통찰력으로 진보진영의 많은 통일 지도자들이 교령을 방문한 것으로 유명하다.

장례식장에서 만난 당시 천도교 여성회장을 맡았던 이순종 회장은 김철 교령을 비롯한 교령들의 한결같은 인내천 사상이 지금의 이정희 교령의 ‘인내천운동연합’을 출범하게 했다며 이는 '한결같은 민족종교 천도교의 실천철학'이라고 강조했다.

지금 전국의 천도교 교당의 입구에는 “민족통일”이라는 대형 현수막을 걸고 민족통일을 기도하는 수련을 하고 있다.

▲ 동학 인내천 사상강좌를 듣고 김철 교령을 존경한다는 백윤선 평화통일신문 수석공동대표이자 6.15실천평화통일운동 본부장은 자신의 생애에 반드시 통일이 될 것이라던 교령님이 먼저 가심을 안타깝다고 절규하였다. 좌측으로 노수희 통일운동가가 백 본부장의 절규를 듣고 있다.

이순종 전 회장은 대통령의 광화문에서 대통령의 당선소감을 잊을 수 없다고 말했다. “사랑하는 국민여러분, 안녕하십니까 문재인입니다. 정의로운 나라. 통합의 나라, 원칙과 상식이 통하는 나라다운 나라 만들기 위해 함께 하신 위대한 국민들의 위대한 승리입니다.”면서 “새로운 대한민국을 위해 그 분들과도 손잡고 함께 전진하겠습니다.

저를 지지하지 않았던 분들도 섬기는 통합 대통령이 되겠습니다.”고 말했다면서 이는 해월의 철학과 괘도를 같이 한다면서 대통령의 섬기는 철학이 곧 인내천이라면서 대통령이 우리 천도교를 주목하셨다고 기뻐했던 교령이라고 상기하였다.

▲ 연세대학교 장례예식장 17호실. 많은 통일운동가들과 천도교 동덕들이 찾아와 고인의 가는 길을 위로하였다. 부인 오순옥 동덕은 종로교구를 이끌면서 유감없이 피아노 연주를 하여 분위기를 한껏 고조시켰다고 교화관장 신상민 동덕은 회고하였다.

천도교 : 1905년 의암 손병희에 의해 창시되었다. 1860년 수운 최제우에 의해 창도된 동학을 모태로 하고 있다. 1919년 3·1운동에 적극 참여하여 상당한 탄압을 받았으며 그후에는 주로 문화활동과 계몽활동에 주력했다.

편집 : 안지애 편집위원

고순계 주주통신원  sangdo114@hanmail.net

한겨레신문 주주 되기
한겨레:온 필진 되기
한겨레:온에 기사 올리는 요령

저작권자 © 한겨레:온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