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낭에서 하노이까지 간 것은 순전히 하롱베이를 보고 싶어서였다. 하롱베이는 1994년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에 지정되기도 했지만 하롱베이 사진을 본 순간 죽기 전 꼭 가보고 싶은 곳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하롱베이 방문 준비는 허술했다. 호텔 예약 시 메모칸에 ‘하롱베이 1박 2일 관광을 갈 예정이니 소개해 달라’고 쓴 것이 전부였다. ‘하노이에 도착하면 호텔에서 소개받지 뭐‘가 다였던 것이다.

하노이 호텔 매니저는 우리를 위해 자리를 잡아 놓았다고 했다. 적정 가격 같아서 바로 구매하려했는데 크루즈 회사로부터 막 자리가 나갔다는 답변을 받았다. 매니저는 당황해하면서 지금 ‘연말휴가성수기’에다 '비 오는 하노이' 때문에 다른 곳에 자리가 있을지 모르겠다고 했다. 여기저기 전화하고 기다린 끝에 크루즈는 아니고 작은 목선 자리를 찾았다. 목선임에도 처음 제시한 가격보다 비쌌다. 가격만큼 더 좋은 숙소라며 어렵게 자리를 잡았다 하여 군소리없이 구매했다. 혹 호구가 된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살짝 들기도 했지만 금액 따지다 하노이에 온 목적을 놓치면 안 되니까...

우리도 참 대책 없는 사람들이다. 수백 척의 배가 있다 해서 우리 자리 하나 없겠나 하고 왔는데... 하필 연말성수기, 비 오는 하노이를 생각지 못한 거다. 며칠째 하노이에 비가 오니 관광객들이 하롱베이로 몰려들었다 했다.

아침 8시, 현대 엠블럼를 선명하게 단 25인승 버스를 타고 하롱베이로 향했다. 하노이에서 하롱베이까지 약 180km 거리다. 한국에서 이 정도 거리면 차로 2시간이면 충분하지만 이곳은 거의 4시간 걸린다. 그만큼 도로사정이 좋지 못하다. 한국의 초스피드 도로시공사업을 수출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 가는 도중 쇼핑센터에서 한 번 쉬는데 현대 25인승 버스가 즐비하다. 현대, 삼성을 좋아하지 않지만, 심지어 삼성불매운동가지만, 외국에 나가서 그 글자를 만나면 반갑고 자랑스러운 것은 왜일까?

▲ 쇼핑센터에서는 자수 제품이 많았다. 많은 사람들이 귀신같은 솜씨로 수를 놓고 있었다. 몸이 불편한 사람들도 많았다. 왜 직접 수놓는 것을 보도록 그들을 거기에 앉혔는지 모르겠다. 마음이 좋지 않았다..

하롱베이 항에는 조금의 빈터도 없이, 연간 수백만 명을 실어 나르는 배가 여행객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는 정원 16명인 작은 목선에 탔다.

▲ 우리가 탄 안남 목선. 가족적인 분위기에 음식도 굉장히 맛있고 깔끔했다. 혹시 하롱베이 목선에서 1박 할 경우 '안남 목선'을 추천한다.

우리 방은 그 목선에서 젤 전망 좋은 2층에 있었다. 호텔 매니저 말이 맞았다. 한쪽 벽면이 큰 유리문이라 침대에 누워서도 하롱베이를 볼 수 있었다. 우리만의 베란다에 테이블도 있어 1박 2일 동안 사람들에게 부대끼지 않고 지낼 수 있겠다 싶었다. 하지만 그림의 떡이었다. 시원하게 창문을 열거나 베란다에 나갈 수가 없었다. 배 뒤 방향이라 배가 달릴 때 배기가스가 심하게 올라왔고, 정지 상태에서도 약하지만 골아픈 냄새가 올라왔다.

▲ 우리가 묵은 목선. 1층은 1인, 2인실과 조리실, 2층은 식사 하면서도 섬을 구경할 수 있는 식당과 우리 방(원래 2인실인데 보조침대를 하나 놔줬다). 3층은 자유롭게 눕거나 앉아 섬을 구경할 수 있는 공간.

하롱베이는 해안선을 따라 넓이 1500㎢에 이르는 광대한 석회암 지대가 3억년 동안 침식작용으로 깎여나가 크고 작은 2천 개 섬으로 유명한 곳이다. 긴 세월동안 조금 조금씩 풍화작용에 의해 만들어진 기암괴석과 석회암 동굴 등은 '신이 용을 보내 내려준 선물'이라는 말이 맞다는 생각이 든다.

▲ 항 더우고 동굴

유명한 '항 더우고' 동굴 모습이다. 홀이 3개 있다. 가이드는 처음 홀에서는 '오우', 두 번째는 '와우 와우' 하다가 세 번째는 '오우, 와우, 믿을 수 없네' 한다고 했다. 세 번째 광장은 입이 딱 벌어질 만큼 크고 다채롭다. 세 번째 홀 모습만 사진에 담았다.

▲ 항 더우고 동굴

하롱베이는 하룡만(下龍灣)이라는 말이다. 전설에 따르면 중국민족이 베트남을 자주 침략했다. 이를 안타깝게 여긴 신이 용의 가족을 보내 베트남을 지키도록 도와주었다. 이 용이 입에서 진주, 비취 등 각종 보석을 토해냈는데 이것이 작은 섬들이 되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또 다른 전설은 산에 살던 용이 바다로 내려오면서 꼬리로 바다를 쳐서 작은 바위들이 생겨났다고 한다. 다낭에도 용다리가 있었는데 베트남은 용을 좋아하는 민족 같다.

 

하롱베이는 파도가 없다. 수많은 섬들이 파도를 막아주어 잔잔하고 평화롭다. 그렇기 때문에 다른 바다처럼 해류의 순환이 활발하지 못하다. '고인 물을 썩는다'는 진리는 바다도 예외가 아닐 거다. 바다위에 옹기종기 떠 있는 섬들 사이로 수백 척의 배들이 천천히 지나가거나 멈춰서있다. 어떤 배들은 반나절 돌고 돌아가지만, 어떤 배들은 2일~4일 하롱베이에 머문다. 이 배들이 바다에 쏟아내는 오염물질은 얼마나 될까? 우리 배도 1층 뒤편에 주방이 있었는데 그 오수를 다 어떻게 버릴까? 작은 구형 목선에 과연 제대로 된 정화시설이 있을까?

우리와 같은 테이블에서 식사를 한 독일인들은 인터넷 구매를 했는데 환경보호 세금을 추가로 지불했다고 했다. 그만큼 환경훼손이 심각하다는 이야기다. 환경훼손을 줄이기 위해 섬에 살던 사람도 거의 다 이주시켰고, 어류 양식장도 점차 줄이고 있고, 관광선을 제외한 어선과 화물선 통과도 제한 한단다. 하지만 너무나 많이 몰려드는 관광선과 인간으로 인한 오염은 막을 수 없을 거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바다 위에 떠있는 건축물이 없다는 것이다. 관광수입만 생각했다면 콘크리트 구조물로 된 거대한 플로팅 리조트를 짓고도 남았을 텐데...

▲ 티토프 섬에 방문한 여행객을 태우고 온 관광선들이 셀 수도 없이 들어왔다 나간다. 티토프섬은 하롱베이 수많은 섬 중에서 드물게 모래사장을 갖고 있는 섬이고,. 전망대에 올라서면 하롱베이의 아름다운 섬들이 끝도 없이 펼쳐져서 여행객들이 가장 기본코스로 방문하는 곳이다.  티토프 섬은 이 섬에 홀딱 반해 이 섬을 사고 싶어 했던 러시아 우주비행사 티토프의 이름을 따서 지었다고 한다

바다 속 생태파괴는 배에서 내뱉는 오염물질 뿐만 아니라 배에서 내는 소음으로도 일어난다. 소리는 밀도가 공기보다 큰 물 속에서 오히려 더 빠르게 전달되어 고래와 물고기는 소음으로 스트레스를 받는다. 무척추동물 중 오징어가 소음에 가장 민감하고, 굴은 아예 뚜껑을 닫는다고 한다. 하롱베이 밤이 보고 싶어 하룻밤 자는 일정을 택했지만, 밤새 나는 엔진 소음과 사람들이 웃고 떠드는 소리는 바다생물을 더 괴롭힌 것이다. 환경훼손에 나도 일조를 한 셈이다. 미안해요 하롱베이!!!

▲ 이틀 동안 흐린 날씨만 보여준 하롱베이. 어둑어둑해지는 하롱베이 저녁...

16명 정원의 목선이지만 손님은 15명이었다. 식사할 때 브라질 가족 4명이 한 테이블에 앉았고, 유럽에서 온 3명과 미국에서 온 2명이 다른 테이블을 차지했고, 독일에서 온 3명과 우리 가족 3명이 한 테이블에 앉았다. 우리는 네 끼 식사를 하면서 남편이 선생인 60대 독일인 부부와 같은 학교에서 일하는 베트남 출생의 30대 젊은 선생과 정말 재미있는 이야기를 많이 나눴다. 어려운 말이나 내가 못 알아 들은 말은 딸이 통역해주어 대화가 수월했다.

나는 독일인에게 호감을 갖고 있다. 9년 전 미국에 출장 갔을 때 독일, 태국, 일본, 미국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영어가 유창하지 못해 버벅대며 의사소통 하느라 진땀을 빼고 있었다. 당시는 북한이 미국 여기자를 억류해서 반북 감정이 미국 전역에 소용돌이 칠 때였다. 미국여성이 나에게 왜 김정일이 미국기자를 억류했는지 아느냐고 물었다. 나는 북한과 남한은 다른 나라이기 때문에 모른다고 했다. 북한을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또 무례하게 물었다. "북한정권은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지만 나의 아버지, 시아버지, 시어머니는 북한에서 태어나서, 친척들이 북한에 살고 있으며, 우리는 하나다" 라고 했다. 이 때 영어가 유창한 독일여성이 따뜻한 눈으로 나를 쳐다보며 나서줬다. “독일도 너희 나라처럼 분단되었지만 지금 독일은 하나다. 너희도 꼭 하나가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언젠가 친척들을 꼭 만나게 되길 바란다.”고 했다. 나는 독일여성에게 고맙다고 했고 미국인은 더 이상 내게 질문하지 않았다.

그때 진 빚을 갚고 싶었다. 또 독일 ‘애버트 인권상’을 한국촛불시민에게 준 것에 대해서도 감사하고 싶었다. ‘애버트 인권상’을 설명하려면 촛불집회와 부패한 전 대통령 이야기도 해야했다. 그들은 ‘애버트 인권상’에 대해 잘 몰랐지만, 내가 우리 국민을 대신해 감사한다고 하니 너무나 좋아했다. 강명구 평화마라토너 이야기도 했다. One Korea를 위해 헤이그에서 출발해서 독일 베를린을 지나 터키를 달리고 있다고 하니 눈이 휘둥그레졌다.

하롱베이 환경훼손에 관한 이야기를 하다가 내가 음식물 쓰레기 먹어치우는 지렁이를 기른다는 이야기도 했더니, 셋 다 깜짝 놀라면서 재미있게 들어주었다. 지렁이가 온도, 습도와 이동에 민감한 동물이라고 알려줬더니 60대 독일선생은 거머리 이야기를 해줬다. 독일에서는 염증 대안치료로 ‘거머리 치료’를 하는데 관절염이 있어서 치료를 받았다고 했다. 염증이 있는 곳에 피를 내고 거머리를 붙이면 거머리가 피를 빨면서 타액을 분비하는데 그 타액이 염증을 완화시키는 효과가 있다는 것이다. 그때 피를 빠는 거머리를 건들면 막 꿈틀거리면서 더 아프게 피를 빤다고 거머리도 민감하다고 해서 같이 깔깔 웃었다. 그 이야기를 하고 나서 밤 프로그램으로 오징어 낚시를 하러 갔다. 먼저 하고 있는 사람들이 한 마리도 안 잡힌다고 했다. “오징어도 아주 민감해요” 말이 두 사람 입에서 동시에 나왔다. 우리는 마주보고 더 깔깔 웃었다.

▲ 하롱베이 밤
▲ 하롱베이 밤

생각지도 못했던 곳에서, 생각지도 못했던 사람들을 만나, 생각지도 못했던 고마운 마음을 전하고, 평화마라톤에 One Korea까지 이야기 했다. 지렁이, 거머리 이야기를 하면서 하롱베이 환경오염에 대해 같이 걱정도 했다. 마음이 통한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단번에 그 눈빛으로, 미소로, 태도로 느낄 수 있었다.

하롱베이를 생각하면 멋진 섬들보다 동그란 눈으로 내 말에 귀 기울이던 그분들이 먼저 생각난다. 헤어질 때 “독일에 놀러 와라.”, “한국에 놀러 와라” 했지만. 서로 아무 연락처도 주고받은 것이 없으니 아마 죽을 때까지 볼 수는 없을 거다. 그래도 혹시 독일에 갈 기회가 있다면, 같이 즐거워 깔깔 웃었던 그분들이 생각날 것 같다. 영어가 좀 되는 딸을 믿고 겁 없이 입을 뗀 덕에 여행의 재미를 맛본 기분이다.

하롱베이에서 섬 구경에 취해... 이야기 나누는 재미에 취해... 사과하는 걸 잊어 먹었다. 이제 하루 남았는데 마음먹었던 사과를 2번 더 하고 베트남을 떠날 수 있을지 모르겠다.

* 딸이 이글을 보더니 위키피디아에서 찾은 하롱베이 환경오염에 대해 알려주어 추가해본다. 

'Environmental damage

With an increasing tourist trade, mangroves and seagrass beds have been cleared and jetties and wharfs have been built for tourist boats.

Game fishing, often near coral reefs, is threatening many endangered species of fish.

Local government and businesses are aware of problems and many measures have been taken to minimize tourism affect to the bay environment for sustainable economic growth like introducing eco friendly tours and introducing tight waste control on resorts.'

간단하게 설명하자면 지방정부나 관광선 사업자들도 하롱베이 물고기 개체수 감소나 산호초의 훼손을 잘 알고 있다. 해법으로 '친환경 관광'과 '꼼꼼한 정화시설'을 제시하고 있다. 

하롱베이 최악의 결말은 환경오염으로 인한 출입금지다. 부디 그런 결말로 이어지지 않기를 바라면서, 이번엔 아무 개념없이 하롱베이를 다녀왔지만 언젠가 다시 간다면 '친환경관광'을 찾아서 가야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참고 사이트 : https://en.m.wikipedia.org/wiki/Hạ_Long_Bay

▲ 하노이에서 하롱베이까지

편집 : 박효삼 편집위원

김미경 편집위원  mkyoung6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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