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회 최운산장군기념사업회 학술세미나

우리는 만주 무장독립운동에 대한 이미지 하나를 갖고 있습니다. 우리 독립군들이 추위와 굶주림에 떨면서 단지 애국심 하나로 몇 십 명씩 이리저리 몰려다녔을 거라는 생각입니다. 다 해진 옷에 무기도 없는 빨치산들이 소규모 게릴라전이나 벌이던 독립군들이 러일전쟁과 중일전쟁에서 승리한 세계 최강의 일본군대를 어떻게 이길 수 있었을까요?

만주 독립전쟁은 신화가 아니라 역사 속 현실입니다. 100년 전 만주 봉오동에 어떻게 대규모 독립군기지가 건설될 수 있었는지 당시의 시대상을 살펴보는 세미나를 개최합니다. 1910~20년대 중국의 지배구조와 대부분의 거주민이 조선인이었던 간도지역의 사회문화를 돌아봅니다. 대한민국 군인이 되어 일본과의 전쟁에 임했던 만주의 무장독립군들의 삶을 다시 생각해볼 것입니다.

1919년 창설한 임시정부 창립 100주년과 1920년의 봉오동·청산리전투도 100주년을 앞두고 있습니다. 임시정부 창립과 함께 대한민국이 군인으로 거듭난 우리 독립군들이 일본 정규군과의 전쟁에서 승리했다는 그 자랑스러운 역사적 의미에도 불구하고 우리에게 만주의 무장독립전쟁은 몇몇 영웅을 탄생시킨 신화 속 이야기처럼 인식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100여 년 전 간도에서 살았던 우리 애국선열들의 삶은 신화 속의 전설이 아닙니다.

각자 이유는 달랐지만 이미 많은 선조들이 두만강을 건너가 황무지를 옥토로 개간하면서 삶의 터전을 일구고 살았던 곳입니다. 먼저 건너간 사람이 뒤에 들어오는 이웃의 부족함은 돌보고 먼저 거둔 것을 나누면서 새로운 공동체를 이루고 살았습니다. 투철한 민족의식으로 자생적인 독립군부대가 자리 잡을 수 있었습니다. 모든 주민들이 가족처럼 독립군들을 돌보았습니다.

간도는 우리 선대 어르신들의 땀과 열정, 그리고 그들이 구현하고 싶었던 민족애와 인류애가 고스란히 담겨있던 치열한 삶의 현장이었습니다. 간도의 무장독립전쟁의 역사는 아직 100년이 채 지나지 않은 우리나라 근현대사의 중요한 장면들입니다. 독립전쟁을 상상속의 그림으로만 이해하고 지나갈 것이 아니라 사실로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 2016년 창립기념 세미나에서

편집 : 김미경 편집위원, 심창식 부에디터

최성주 주주통신원  immacoleta@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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