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봐야 안다’는 어른들 말씀은 결혼한 즉시 깨닫는 사실이다. 나는 남편이 남을 배려하는 형이라 결혼했는데, 평생 설거지 한번 안 해본 사람이란 것을 결혼하고야 알았다. 결혼 시 나도 직장을 다녔기에 가사노동 분담은 당연하다 생각했다. 하지만 남편은 남 배려는 잘해도 아내 배려는 인색했다. 시누이, 시동생 둘을 데리고 살아 눈치가 보였는지 가사 노동에 협조하지 않았다. 자신도 미안했던지 주말에는 청소, 빨래 널고 개기, 시동생들 없을 때 설거지 해주기는 한다고 했다. 아주 안한다고 하지 않았기에, 직장 다니면서 공부도 하는 처지였기에, 시누이가 살림을 같이 해주고 있었기에, 그 선에서 내가 양보하고 수용했다.

▲ 남성 “가사 공평분담 해야” 43%…실천은 16%(사진출처: 한겨레 신문)

시누이, 시동생 다 시집장가 보내고 우리끼리 살 때도 부엌일 중 설거지만 자신 몫이라 생각하고, 라면과 달걀 부치기 외 다른 음식 조리는 할 생각을 안했다. 아니 어떻게 하는지 전혀 몰랐다는 말이 맞다. 설거지만 해주면 부엌일 반은 한 것처럼 생각했다. 명절에 그 많은 음식을 하다가 힘들어 부탁하면 도와주었지만 스스로 알아서 하진 않았다. 어떤 때는 부탁하는 것도 치사해서 그냥 나 혼자 한 적도 있다. 그런 날이면 꼭 부부싸움을 했다. 힘들어 짜증나서 신경질 내고, 자발적으로 도와주지 않는 섭섭함에 삐져서 말도 안했다.

그러던 남편이 10년 전부터 내가 부엌에 있으면 뭘 도와줄게 없나 하고 들여다본다. 명절 음식 조리도 시작부터 끝날 때까지 같이 해준다. 주로 야채 다듬고 썰기, 전 부치기, 나물볶기, 실시간 설거지 등 보조업무지만 함께 하니 덜 힘들어 말이 상냥하게 나오고, 고마워서 더 다정하게 대하니 명절에 화기애애 싸움할 일이 없다.

그런 남편이 요새는 음식 조리에도 나서기 시작했다. 우리는 주말이면 떡볶이를 자주 해먹는다. 국물과 재료를 준비해놓으면 남편은 순서대로 착착, 라면 사리까지 넣고, 만두까지 삶아 한 상을 차려주곤 한다.

지난 3월 초, 아침부터 컴퓨터 서류 작업이 바빴다. 집중을 해서 오류가 난 곳을 찾아야 했고 빨리 마치고 외출을 해야 해서 아침은 뒷전으로 미루고 일을 하고 있는데, 남편이 떡볶이를 해줄 테니 와서 먹기만 하라고 했다.

드디어 야채도 안 들어간 좀 허연 떡볶이가 한 상 차려졌다. 한 점을 집어 먹었을 때 맛이 좀 이상했다. 두 점을 집어먹었을 때 속에서 받지 않았다. 떡볶이에서 생선 비린내가 났다. 남편이 고개만 조금 숙이면 찾을 수 있는 떡볶이 전용 그릇을 못 찾아, 그 많은 그릇 중 하필 생선 굽기 전용 프라이팬에 떡볶이를 한 것이다.

“어떻게 그럴 수 있어? 어떻게” 소리가 10번도 더 나왔다. 평생 먹어본 적 없는 비린 떡볶이 맛에 속이 뒤집어져 저녁까지 음식 생각이 없을 정도였다. 남편은 끓은 물에 떡을 넣은 순간, 비릿한 냄새에 어~ 이상하다 생각하면서도 고추장을 넣으면 괜찮아지겠지 했다는 거다.

그날 이후 바로 시아버님 제사가 있었다. 동서와 ‘이’씨 남자 흉을 보던 중 떡볶이 사건을 말해줬더니... 동서는 “아유~~ 그래도 아주버님은 음식을 해주시다 그랬네요.”하고는 시동생 흉을 보기 시작했다.

시동생 네는 아들만 둘이다. 남자들 모두 집안일을 돕는 편이 아니다. 동서가 전업주부로 생활할 때가 많아 가사 일은 혼자 전담했다. 힘도 세고 일도 척척 잘해 누가 꾸물거리면 팔을 걷어붙이고 해치우는 형이다. 최근 잠시 식당을 운영할 때 너무 힘이 들어 세탁기 빨래만 널어달라고 부탁했다. 집에 와보니 세탁조에 빨래가 그대로 있었다. 순간 너무 화가 나서 소리를 질렀는데 세 남자가 빨래를 널었다고 했다. 베란다에 가보니 빨래 바구니에 담겨져 있던 꼬리꼬리 냄새가 나는 세탁 안한 빨래가 널려있었다. 동서는 나와 똑같이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요? 어떻게” 소리를 수차례 했다.

정말 남자들은 다 그런가? 남편은 이번 일로 큰 경험했다고, 용기사용의 중요성을 확실히 알았다고 했다. 이런 당연한 걸 겪어야 아나? 황혼이혼이 유행이라 겁이 났는지 남편은 이런 말을 미리미리 한다. "그간 고생했으니 퇴직하면 음식조리부터 모든 부엌일은 내가 다 해줄게." 진짜 그리 해줄지 모르겠지만... 그리 해준다 해도 이런 사람 믿고 부엌을 맡겨도 되는지 모르겠다.

사진 출처 기사 : http://www.hani.co.kr/arti/economy/economy_general/720712.html

편집 : 김태평 객원편집위원 

김미경 편집위원  mkyoung6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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