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선언서가 아닌 '평화통일선언서'로 통일을 꿈꾸는 백윤선의 <동학상인혁명>

4월 8일 오전 10시 반에 의암 손병희 선생 탄신 제157주년 기념식이 동 기념 사업회와 청주시 발전위원회 주관으로 약 350여명이 참여한 가운데 손병희 유허지에서 진행되었다.

청주중학교 학생들과 주식회사 영우정밀 기업체 등의 도움을 받으면서 37사단 군악대의 연주속에 천도교 합창단이 연출하는 공연은 이날의 깊은 의미를 만들기에 충분했다. 

▲ 문재인 대통령이 보내온 손병희 선생 탄신 제157주년 축하의 화환이다. 

 식전행사로 청주시 산남태권도장(관장 반상훈 경희대 국가대표) 시범단의 3.1운동 퍼포먼스와 북이면 주민들이 연출하는 '모듬북공연'이 우렁차게 포효하였다.

▲ 청주의 산남 태권도장 시범단이 손병희 탄신의 서막을 알렸다.

손윤 손병희기념사업회 이사장은 격려사를 통해 "민족대표 33인이 100년 전 1919년 3월 1일의 '3.1혁명' 당시만 해도 천도교 15명, 기독교 16명, 불교 2명이었는데 지금은 안타깝다."고 말했다. 

▲ 손병희 기념사업회 손윤 이사장은 민족종교 천도교가 청주에서부터 전국으로 요원의 불길이 되어 민족통일의 그 날을 만들어 나가자고 하여 우렁찬 박수를 받았다. 

 청주시 시의원으로 출마하고 있는 변종오는 "가장 민족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이다."라고 흔히 말하고 있지만 적어도 청주에서만이라도 민족 종교 천도교가 부흥되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기자가 천도교 이정희 교령은 전국의 교당에 '민족통일'을 기원하는 현수막을 걸고 남북통일을 기도하고 있다면서 변의원이 속해있는 민주평화통일 자문회의 자문위원들 중에 과연 민족종교 천도교 교인들이 얼마나 되는지를 물으니 말끝을 흐린다. 

청주시장으로 출마한 한범덕에게 종교가 무엇이냐고 물으니 민족종교 천도교가 청주에서만이라도 발전하도록 지혜를 발휘하겠다고 말했다. 청주시의 '복지이장' 서민종은 서울을 가게되면 대한민국의 수도가 밤하늘이면 서학 기독교의 붉은 십자가의 일그러진 대한민국을 보는 것 같아 넘 마음이 아프다고 말했다.

이곳 청주에서부터 민족종교 천도교가 활화산이 되어 천도교의 중심이 되어야 한다면서 청주에서부터 '서도서기를 동도서기로'로 만들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천도교 청주교구장인 주선자 동덕(천도교의 신자를 일컫는 말)은 자신의 능력이 부족해서라면서 죄송하고 미안하다라고 말했다. 그리고 청주의 자존심인 무심천을 달리다보면 굴러들어온 기독교가 청주만이라도 '동도서기'가 되어야 한다고 절규했다. 기자는 신바람나게 바빠지는 주 교구장의 그 날이 오기를 바란다면서 내년의 청주 변화를 꿈꾸는 그의 얼굴에는 미소가 있기를 기대해본다.

농업회사법인 청주시친환경유통센타 주식회사 이종성 대표는 기념사를 뜻깊게 마치고 천도교는 1894년 농민전쟁이 일어나자 북접 교단은 처음부터 '무위이화(無爲以化)'라는 종교적 입장을 가지고 동학교단내에서 대립과 갈등을 겪고 있었다. 그러나 농민군의 2차봉기에서는 남접 교단과 함께 협조하혀 연합전선을 만들어 외세의 침략을 추방하는 전민족운동의 대열에 나서게 되었다."는 뜻깊은 민족대단결의 역사라고 했다.                                         .

전국 밀양손 화수회 대의원이자 수원종중회 손병필 고문은 "손병희 선생은 우리 민족사의 큰 줄기를 이룬 분으로 혁명가이자 사상가로 1894년 보국안민의 기치를 내건 동학혁명운동이 일어나자 북접 교단의 통령으로 임명되어 그 기수로 활약했다."며 최시형의 뒤를 이어 동학의 제3세 교조로 활약하면서 동학을 천도교로 선포한 위인이라고 말했다. 앞으로 천도교의 부흥을 위해 전국 손씨 종친회를 통해 손병희가 만든 천도교를 활성화하자고 할 것을 기자에게 약속을 하였다. 

▲ 서울에서 내려온 천도교연합합창단의 공연이다. 한 합창원은 식사준비를 봉사하고 있는 분에게 종교를 물으니 서학의 천주교라고 했다. 이럴 수가 있느냐며 밥을 제대로 먹지를 못했다면서 천도교를 만든 의암의 탄생지가 어찌 이럴수가 있느냐고 절규했다. 어서 천도교가 대한민국의 제1의 종교가 되어 이정희 교령이 열망하는 민족통일의 시발점이 되기를 기원하는 마음으로 의암 손병희를 떠올리면서 목청껏 합창을 하였다고 말했다. 이를 본 이애준 성동교구장은 한시를 지었는데 여기 그의 한시를 소개한다.

 

義菴聖師157周年誕辰祭(의암성사 157주년 탄신제)

 

義菴嶽降幾何年-----의암 위인이 태어나신지 몇 년인가

後學追懷讚嘆連-----후학들은 추억하며 칭찬을 이어가네.

憂國衷情欽仰日-----성사님의 우국충정 공경 하며 사모하는 날.

濟民善政贊揚筵-----백성을 구제하려함을 찬양하는 자리일세.

堂堂大志千秋範-----인륜의 큰 뜻의 당당함은 천추의 모범이고

烈烈貞忠萬古賢-----높고 큰 뜻의 곧은 충정은 만고 없이 현명 하신 분.

高節丹心天感動-----높은 절개와 참된 마음은 한울님도 감동했네.

聖師偉業永承傳-----성사님의 위대하신 업적 오래도록 받들어 전하세.

김영백, 신상민 동덕은 서울에서 합창단의 버스에 함께 내려오는데 마냥 즐거웠다고 말했다. 왜냐면 고속도로를 달리면서 그리고 청주시내를 돌아보면서 <천도교>의 표기가 된 버스를 타고 내려오면서 여기 민족통일의 종교 '천도교'가 있음을 알리는 생각으로 기분이 좋았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곳 청주에서 참석한 사람들과 인사를 하면서 만난 사람들은 천도교 식구들은 없다면서 어서 민족종교 천도교가 서학의 기독교를 앞지르는 그 날이 오기를 바란다며 "민족", "천도교"를 새겨보는 자리가 되었다고 말했다.

정문화 동덕(성동교구, 조흥은행(현 신한은행) 지점장 역임)은 우리나라 역대 대통령과 정치인들은 대부분이 "폴리티시안 혹은 정략가들"이라면서 그저 권력 유지를 위해 머리를 쓰고 자기 코드가 맞는 사람들만 데리고 뭘 하려 하니까 일이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 지도자들은 어디가 맞고 틀리다(wrong)가 아니라 사회주의와 자본주의는 서로 다르다(different)임을 모르고 동족을 향해 주적교육을 했다면서 어서 총칼을 녹여 농기구를 만드는 민족화합의 평화통일 교육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 동덕은 "이승만이 한 강연에서 단독정부라도 세워 우선 남쪽만이라도 정부를 만들어야겠다고 했다는 말을 듣고 깜짝 놀랐다."면서 "그가 여운형이나 김구같은 다른 사람들하고 좀 비슷한 생각만 가져도 이렇게 70년의 분단은 안 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대통령은 좌익이든 우익이든 방향성은 서로 같아야 한다"며 외세에 의하여 만들어진 분단, 분열을 우리가 거부하고 나가야 한다는 바로 그 점에서 우리의 지도자들은 한목소리를 내야한다"고 말했다.  

최일 동덕(의학박사, 육군대령 예편, 성동교구)은 동학사상과 이념을 강조하면서 천도교를 조금이라도 포덕(포교)하려고 일요일 시일식(천도교 의식)에 나올때와 집으로 갈 때는 택시를 타고 오가면서 택시기사에게 민족사상의 뿌리인 동학과 천도교의 안내책자를 선물하면서 건강비결을 강의하면서 포덕한다. 그는 민족통일을 위해서도 서학은 대한민국에서 안방에서 나가주는 제2, 제3으로 물러나고 천도교가 그 자리를 되찾아야 한다고 절규하였다.

그는 박근혜 전 대통령이 민족통일의 천도교에 눈을 돌리기만 하였어도 오늘과 같은 저항세력은 없었을 것이라면서 통찰력이 없는 지도자의 자업자득이라고 말했다. 그의 부친 박정희 전 대통령은 최덕신 중장을 외무부장관으로 임명하였고, 나아가 천도교 교령이 되었을 때에는 2층의 작은 건물을 헐고 지금의 19층 빌딩을 지어주었다. 그러나 그 딸인 박근혜는 천도교에 나오기는 커녕 관심도 없었다.

(필자 주/ 최덕신 교령의 부친 최동오는 김일성과 만주에서 초등학교와 중학교를 같이 다녔는데 빨치산 항일투쟁을 함께 하였다. 최교령이 월북하여 대한민국의 장군과 외무장관을 하였음을 용서바란다고 하였을 때 김일성은 "왜 용서를 안하겠느냐?"고 한 일화는 유명하다. 그는 청우당의 당수로서 그리고 부인 류미경이 이어 평양에서 청우당을 관리하다가 운명하였다. 그의 아들 최인국이 지금 남에서 살고 있는데 이념이 무엇인지 참담하다며 이번 남북정상회담에서 이산가족의 만남이 이루어지는 일이 합의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일제의 패망과 함께 해방공간을 맞은 천도교는 남북통일을 위한 운동을 전개하였으니 이것이 곧 '남북분열저지운동'과 '청우당운동'이다. 청우당은 단지 종교적 활동만이 아니라 천도교의 이념에 따라 '신국가건설'을 위한 정치적 활동에 목적을 두고 있었다. 1945년 10월 31일 전당대회를 통해 '민족통일기관 결성촉진'을 결의하고 12월 5일에는 천도교, 기독교, 불교, 유교, 천주교의 각 100명씩을 연합하는 '조선독립촉성종교단체연합회'를 조직한다. 그러나 이승만과 한민당 계열의 인사들이 단독정부의 수립을 기도하자 청우당은 강력하게 반대하는 등 남북통일정부 수립을 촉구한다. 단독정부 수립을 반대하고 통일정부의 수립을 이룩하고자 했던 천도교청우당의 염원은 미군정이 단독정부 수립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청우당 당원 30여 명이 검거되고 결국 청우당은 1949년 12월 26일 이승만 정권에 의하여 강제로 정리, 해체되고 만다.)  

▲ 천도교 중앙총부가 있는 인사동의 일대 상가를 돌면서 '독립선언서'격인 '평화통일선언서'를 돌리고 있는 백윤선은 분향준비를 하고 있다. 좌측부터 천도교 성동교구장 이애준, 김영백, 최일 그리고 한사람 백윤선 평화통일신문 수석공동대표가 보인다.

 천도교 본부가 있는 인사동에서 일제시대에 민족경제운동을 펼쳤던 개성상인의 송상을 꿈꾸는 4.19 국가유공자 백윤선은 3.1독립운동의 성공은 대중화, 일원화, 비폭력의 3대원칙에 의거한 독립선언서 2만1천부를 전국으로 배포하면서 33인중심의 독립선언식을 3.1혁명으로 이끌었다고 말하였다. 백 유공자는 이제 분단의 시대를 통일로 이끌어가는 통일시대라면서 '이곳 참석자들에게 돌리면서 분향을 하고 <평화통일선언서>를 돌렸는데 그 내용의 일부를 소개한다.

"통일의 꿈은 이루어집니다. 곧 통일이 됩니다!"고 지인들에게 통일인사를 합시다! 통일은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민족의 생존을 위한 필수적 과제입니다. 우리는 원래 하나였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다시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이 시대정신은 '통일정신'입니다. 우리의 소원 통일은 '자주, 평화, 민족대단결'이라는 3대원칙을 마련한 남-북 두 정상이 두 손을 맞잡았던 2000년 6.15공동선언과 2007년 10.4 정상선언까지의 통일방향을 중심으로 펼쳐져야 합니다. 4월 27일의 남-북정상은 통일의 시발점은 송상(松商)의 자부심으로 평화통일을 꽃피우는 상인의 실천강령을 고객들에게 제안합니다."로 시작되는 것이었다.(끝)

편집 : 안지애 편집위원

고순계 주주통신원  sangdo114@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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