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교육'은 '배움'으로 바뀌어야 하는가

봄비가 내리는 4월 셋째 주, 4호선 한성대입구역에 자리한 참배움연구소를 찾아 갔다. 경기고 교사 김두루한 선생님이 소장을 맡은 참배움연구소는 서울 교사 노조 소속으로 협력하여 참배움 연구를 수행하고 있다.

▲ 김두루한 참배움연구소에 함께 자리한 교사와 학부모 당사자.

참배움학교를 만들고 싶다는 소망을 들으니, 하이데거의 <숲길>과 <이정표>책이 떠올라 그 순수한 열정에 생기를 함께 북돋우고 싶어 진다. 때마침, <정책 학습과 배움권> 이야기마당의 첫 발제를 맡은 양성호(정치철학, 건국대 명예교수) 교수도 독일에서 공부를 하였기에 서로 배우는 관계의 소통을 강조한다. '정치가 정책이다'라는 발제에서 '교육'이 아닌 ‘배움’의 필요성에 동의한다. 우리가 민주시민으로서 저마다의 사회적 역할을 고민해야 하는 것이 곧 정치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 참배움 연구소를 알리는 사람, 공간, 환대

두 번째 발제로 김두루한 소장의 현행 교육권을 어떻게 배움권으로 바꿀것인지에 대한 헌법 제31조 들여다보기 시간이 있었다. 간단한 점심을 먹고 성북동 성곽길을 걷는다. 삼선교를 지나 북정마을 심우장을 찾아 함께 걷는다. 반듯하지 않은 돌계단을 걸어 올라 보니 금세, 봄비 내리는 습한 기운 너머, 산자락에 포근히 내려 앉은 안개낀 풍경이 보이기 시작한다. 혜화문에 올라 깊게 심호흡 한 번을 한다. 깊은 숨을 들이키니 스스로 깨닫음의 길에 이르는 듯하다. "아이들은 교실에서 절반은 잠을 자죠. 강남에 사는 학생들이라 성북동 비둘기 시를 배우면서도 강북에 별로 관심을 갖지 않습니다." 김 두루한 선생님이 와룡 공원을 지날 쯤 안타까운 속마음을 내비친다. 절반의 학생이 책상에 누워있는 교실에서 학생만 힘든것이 아니였다.

▲ 참배움이란 무엇일까. 숲길 산책로를 걸으며 생각 한다.

학교의 터가 영혼의 생기를 주는 것이 아니라, 생기하는 영혼을 파괴하는 곳이 된 까닭은 우리나라 공교육 역사가 나라 뺏긴 식민지 역사에서 시작 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여전히 변함없이 제 생각을 펴지 못하는 ‘교육’을 표방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한 '교육'의 관점을 '배움'으로 바꾸고자 뜻과 의지를 펼친지 32년이다. 교직생활 32년을 순수한 열정으로 버텨온 것이 기적일 만큼, 학교는 죽어있다. 선생님에게 슬며시 교육감 도전의 뜻을 물어본다. 도전할 생각이 있다는 의지에 더욱이 교육을 배움으로 바꾸겠다는 열정의 한 표를 먼저 던져 본다.

▲ 성북동 성곽길을 걸으며, 성북동 비둘기 시 한편을 떠올려 본다.

길상사로 향하는 길, 헉헉대며 길을 헤맬 즈음 초등 학생이 길을 알려준다. "길상사 가는 길을 알아요." 김두루한 선생님이 묻는다 "너는 꿈이 뭐니?" 초등학생이 대답한다 "선생님이요" "그렇구나, 난 고등학교 선생님이란다" 이런 순수한 대화를 들으니 어느덧 길상사로 향하는 골목길이 나온다.

▲ 참배움 연구소, 성북동 성곽길 걷기편-길상사

김 두루한 선생님은 헌법31조의 변화를 요구한다. '교육을 받을 권리'에서 '배움 누릴 권리'로 바꿀 것을 내세운다. 대한민국 사회 성원 모두가 '배움'을 제대로 누릴 수 있는 새로운 질서를 만들고 싶기 때문이라고 한다.

▲ 자연스럽게 스스로 깨우치는 배움.

좀 있으면, 다섯 살 딸 율리도 학교를 간다. 공보육 단계에서부터 초중고 대학까지 연결되는 우리나라 교육 현실이, 생기하는 배움의 터로 변화되려면 무엇을 어떻게 바꾸어야 할까? 참배움연구소!, 나도 부모로서 함께 연구하고 참여하여 ‘배움’의 뜻과 길을 펼쳐 보고 싶다. 스스로 깨닫는 길로 나아가고자 한다. 참배움으로 가꾸는 소중한 연구 공간이 생겨서 좋다. 참삶의 결을 다듬고자 하는 분들과 서로 배움으로 함께 나누는 환대의 열린마당으로 초대장을 보낸다.

편집 : 안지애 편집위원

심연우 시민통신원  vvvv77vvv@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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