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 북한산 비봉탐방지원센터에서 시작해 산에 올라 능선을 타며 이런저런 몇 봉우리를 보다가 구기탐방지원센터로 내려왔다. 

먼저 비봉에 올라 서쪽으로 떨어지는 향로봉을 보고 사모바위와 승가봉을 지나, 문수봉을 거쳐 문수사로 내려오면서 대웅전 앞에서 보현봉을 보고 구기계곡으로 떨어지는 코스다. 

▲ 좌상 향로봉. 좌하 비봉, 우 사모바위
▲ 문수봉과 보현봉

모양이 조선시대 문무백관이 착용하던 사모(紗帽) 같다 해서 이름 지어진 사모바위 근처에 갔는데 눈에 번쩍 띄는 아름다운 꽃이 보였다. 향기도 솔솔 났다. ‘수수꽃다리’다. 사모바위 아래 무리지어 피어있다.

▲ 사모바위 아래 털개회나무

수수꽃다리는 ’꽃이 수수 꽃처럼 피어 있다’고 해서 붙인 순수 우리 이름이다. 수수 꽃은 7~9월에 피는데 원추꽃차례를 이룬다. 수수꽃다리도 원추꽃차례다. 보통 라일락이라고도 부르는데 라일락하고는 좀 다르다. 라일락은 동유럽이 원산지이고 키가 5m까지 크지만 수수꽃다리는 한국이 원산지이고 키가 2~3m 정도로 작다.

오늘 우리가 만난 수수꽃다리 나무는 엄격히 말하면 물푸레나무과, 수수꽃다리속에 속하는 털개회나무다. 수수꽃다리속에는 개회나무, 털개회나무, 꽃개회나무 등 여러 종이 있는데 서로 많이 닮아 구분하기 쉽지 않다. 털개회나무는 잎 뒷면에 털이 있어서 '털'자가 붙었다(주). 중국에서는 이를 모두 정향(丁香)나무라 부른다. 꽃 모양이 丁자를 닮았는데 香이 좋아 정향나무라 이름지었다.

처음에 우리가 만난 나무가 꽃개회나무인 줄 알았다. 박효삼 주주통신원이 올린 글 ‘관악산 꽃개회나무’를 보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가 본 것은 꽃개회나무와 아주 조금 다르다. 아래 사진에서처럼 꽃개회나무는 그 해 나온 새순에서 꽃이 피고, 털개회나무는 2년 된 묵은 가지에서 꽃이 핀다(주). 북한산 털개회나무가 관악산 꽃개회나무보다 훨씬 더 예쁜데... 예쁜 꽃개회나무 이름을 뺏겼다. 아쉽다.

▲ 왼쪽이 새 가지에서 꽃이 나오는 관악산 꽃개회나무, 오른쪽이 묵은 가지에서 꽃이 나오는 북한산 털개회나무(관악산 꽃개회나무 사진 : 박효삼 주주통신원 제공)

지금 한국에서도 알려진 ‘미스김라일락’이라고 있다. 원조는 북한산 털개회나무라고 한다. 1947년 미군정에 근무한 ‘엘윈 M. 미더’가 북한산 털개회나무 씨앗을 미국으로 가져가 개량종을 만들었다. 비서였던 ‘미스김’을 붙여 ‘미스김라일락’이라 지었다고 한다. 유럽 라일락에 비해 향기가 짙어 더 인기 좋다고 하고... 우리도 로열티를 주고 종자를 수입해온다니... 좀 억울하다.

5~6월에 피는 땅비싸리 꽃도 한창이다. 자연의 분홍색이 참 곱다. 그 옆 조록싸리는 아직 꽃이 피지 않았다. 6월 지나야 핀다고 하니 6월 산행에서 만날 수 있을까 모르겠다.

▲ 땅비싸리와 조록싸리

지난 5월 초순에 만났던 팥배나무는 벌써 꽃이 다 떨어지고 열매가 달렸다.

▲ 왼쪽이 5월 7일 만난 팥배나무 꽃, 오른쪽이 승가봉에서 만나 팥배나무 열매

어~~ 이 꽃은 뭘까? 꼭 산수국 같이 생겼다. 동그란 접시 모양을 가져 접시꽃나무라 불리는 백당나무다. 지난 5월 초 북한산에서 덜꿩나무를 만났을 때처럼 감탄이 절로 나온다. 어찌 저리 생겼을꼬? 그런데 이 꽃은 나름 비밀을 갖고 있다. 그 비밀은 다음 기회에...

▲ 백당나무

5월에 꽃이 피는 병꽃나무도 여전하다. 꽃 모양이 옛적에 사용하던 백자 병이나 청자 병처럼 생겨 병꽃나무란 이름이 되었다. 보통 똑바로 선 줄기에 여러 송이가 조로록 달리지만 어쩌다 한두 송이 핀 꽃도 있다. 이제 5월이 갔으니 다시 보려면 내년을 기약해야 할 것이다.

▲ 병꽃나무

대남문에서 구기동으로 내려오는 하행 길에 국수나무 꽃이 절정이다. 국수나무는 가지 속 공간에 ‘수’가 있다. 인간 뼈 속 골수 같은 거다. 국수나무 양끝을 잘라 한쪽에 가는 막대를 집어넣으면 반대쪽에서 ‘수’가 밀려나오듯 나온다. 그 모습이 마치 국수틀에서 국수가 나오는 것 같다 하여 국수나무라 이름 지었다(주). 북한산 정상보다는 오르막, 내리막길에 많이 피어있다. 흔하면 귀히 여기지 않는다지만... 가까이 들여다보니 이렇게 곱다.

▲ 국수나무

하행 길에 단풍나무 아기 싹을 보았다. 그 잎 모양이 눈 결정체 같다는 생각에 사진을 찍었다. 내 뒤에 따라오던 남자가 물었다.

남자 : 뭐 예쁜 것 있어요?
나 : 새 잎이요.
남자 : 아~~~ 네~~~ 채집 나오셨어요?
나 : 아뇨. 그냥 예뻐서 찍어요.

그 남자는 나를 지나쳐갔다. 나는 대여섯 걸음 앞에서 뭔가 찍고 있는 남편에게 말했다.

나 : 여보 ~~~ 여기 단풍잎 모양이 눈 결정체같이 너무 아름다워

남편을 지나치려던 그 남자는 남편에게 또 말을 걸었다.

남자 : 뭐 찍으세요?
남편 : 몰라요. 그냥 잎이 아름다워서요.
남자 : 아~~~  저는 아름다움을 잃어버렸나 봐요.

그 남자가 보기엔 우리가 별 것도 아닌 이파리를 찍고 있었던 거다. 그런데 우린 이제 이런 이파리 하나하나도 너무 사랑스럽고 예쁘다.

▲ 단풍나무 새 잎, 조록싸리 잎

* 주의사항 : 문수봉을 올라가려니 두 길이 보였다. 하나는 쉬운 길, 하나는 어려운 길. 남편이 고른 어려운 길을 따라 갔는데 쇠 난간을 잡고 벌벌 떨면서 올라갔다. 무서워 얼마나 꼭 잡고 긴장하며 올라갔는지 문수봉에 올라가니 손과 발이 진짜 덜덜덜... 눈도 시원찮은데 무모했지... 겁 많은 사람은 절대 가지 마시길...

(주) 이호균 주주통신원과 박효삼 주주통신원, <숲과문화연구회> 김강숙 해설사가 털개회나무와 꽃개회나무의 차이를 알려주었다. <숲과문화연구회> 회장 박봉우 주주통신원은 국수나무 작명 이유를 알려주었다. 박봉우 주주통신원과 김강숙 해설사는 전체 내용도 점검해주었다. 네 분께 감사 드린다.

참고기사 : 관악산 꽃개회나무 / http://www.hanion.co.kr/news/articleView.html?idxno=3117

편집 : 박효삼 편집위원

김미경 편집위원  mkyoung6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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