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유전자는 약 2만개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 유전자는 30억 개 DNA 염기쌍으로 구성된다. 이 DNA는 여러 단계를 거쳐 우리 몸에 필요한 단백질을 만들어 인간이 살아갈 수 있게 해준다. 유전요인, 외부 스트레스 등에 의해 DNA에서 단백질을 만드는 과정에 문제가 생기면, 특정 단백질이 비정상적으로 만들어지고 암과 같은 각종 질병이 발생한다.

전 세계 수많은 과학자들은 인간 질병 원인을 찾기 위해 DNA에서 단백질을 만드는 과정에 어떤 문제가 생기는지 연구하고 있다. 나 또한 이 연구에 참여하고 있다. 내가 하는 연구는 뇌질환 일종인 ‘다발성경화증’의 원인과 치료방법을 찾아내는 것이다. ‘다발성경화증’은 신경세포에 이상이 생겨 발병한다. 발병하면 감각상실이나 신체마비가 온다. 아직까지 뚜렷한 발병과정을 발견하지 못했고 치료방법도 없다.

캐나다만 보더라도 385명 중 한명이 발병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제대로 된 치료를 받지 못하고 있다. 그런 현실을 알기에 내가 할 연구가 소중하게 생각되었고 고통 받는 사람들을 도울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희망에 설렜다.

뇌질환 연구는 쥐실험이 큰 비중을 차지한다. 내 연구 주제도 뇌질환이라 실험에 쥐를 사용한다. 주요 실험은 유전자 조작된 쥐에 약물을 투여하여 안락사 시킨 후, 뇌조직을 꺼내 면역세포를 분리하여 관찰하는 일이다. 면역세포를 분리하기 위해선 특정기계를 사용해야 하는데 사용법이 복잡해 제한된 연구원만 다룰 수 있다. 이 기계를 다루는 연구원이 ‘Jasper’다. 나는 Jasper와 일주일에 2시간 정도 같이 일한다. Jasper는 대만에서 우리 연구소에 박사과정을 하러 왔고, 현재는 박사후연구원이다. 서두르거나 급한 모습을 보이지 않는 Jasper는 내가 실험에 사용할 세포를 가지고 갈 때마다 온화하고 평온한 표정으로 실험이 잘 되어 가냐고 물어보고 기계작동을 시작한다.

한번은 나에게 쥐실험을 하는 게 힘들지 않냐고 물었다. 자신의 아내도 과학자인데, 매주 쥐를 안락사 시키고 뇌를 해부하는 실험을 했었는데 엄청 힘들어했다고 했다. 특히 부인이 도교사상을 실천하고 있으며, 살생에 반대하기에 엄청난 죄책감을 느꼈다는 것이다.

나는 쥐실험을 많이 해보지 않았다. 익숙하지 않아서 쥐를 죽이는 것이 굉장히 힘들었다. 쥐를 케이지에서 꺼냈을 때 쥐가 본능적으로 나를 문 적도 있다. 쥐도 살고 싶었을 테니까.... 그래도 쥐를 죽여야 했다. 그럴 때마다 너무 괴롭고 죄책감을 느낀다고 하니까 Jasper가 안타까워하며 이렇게 조언해주었다.

“쥐를 죽이기 전 좋은 곳으로 가라고 기도하고 미안하다고 말해줘. 진심을 갖고 쥐를 생각하면 쥐에게 그 마음이 전달될 거야. 뇌질환으로 고통 받는 사람들을 언젠간 도와주는 거라고 생각해. 도교사상은 살생을 반대하지만, 특이적 상황에선 이해하고 있어. 그래도 앞으로 남을 도와주는 일을 같이 하도록 해봐“

Jasper의 조언에 도교사상이 궁금해져서 Jasper에게 물었다.

“Jasper, 나도 도교사상을 들어보긴 했는데 종교인 거야?”

Jasper는 차분하고 온화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도교는 종교라기보다 철학에 가까워. 우리는 모든 종교를 존중하지만 특정 존재를 믿지는 않아. 나 자신을 찾기 위해 도교에서 알려준 원칙을 실행할 뿐이야. 도교에서 시행하는 원칙 중 하나는 채식주의야. 채식주의를 시행하는 이유는 모든 동물에게 영혼이 있다고 믿고, 그 영혼을 존중하기 때문이지. 야채 중 양파와 마늘은 먹지 않아. 둘 다 강한 향을 지닌 야채라서 고기의 잡내를 없애기 위해 고기에 넣어 요리하지만, 이러한 강렬한 향을 먹으면 무의식적으로 우리 집중력이 분산된다고 생각해.”

“아 그래? 한국은 건국신화에 곰이 마늘과 쑥만 먹고 사람으로 다시 태어났다는 이야기가 전해져 오는데.. ㅎㅎ 도교는 마늘이 깨우침을 얻는 데 방해가 된다고 생각하는구나. 그럼 도교에선 주로 어떤 것을 가르쳐?”

“우리가 배우는 건 내가 이 세상에 온 이유를 아는 거야. 내가 이 세상에 왜 태어났는지에 대해, 참된 자신이 무엇인지에 대해 그리고 삶의 목적을 찾기 위해 끊임없이 생각하고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하지. 우리는 사람이 환생한다고 믿어. 환생을 일종의 굴레라고 생각하지. 참된 자신을 찾아 깨우침을 얻을 때 환생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생각해.”

“그래? 나도 종종 그런 생각을 한 적이 있어. 우리가 이 세상에 왜 태어났을까. 어떻게 사는 것이 참되고 의미 있는 삶일까. 나는 이상하게 친구들과는 달리 좋은 직장을 갖고, 결혼해서 자식을 낳는 것만이 내가 태어난 의미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어. 가끔 그런 생각을 하면 인생이 허무하단 생각이 들어”

“맞아. 좋은 직장, 좋은 집, 결혼, 자식을 낳는 것이 삶의 목적이 되어선 안 돼. 그런 것들은 일시적 목적이지. 70대나 80대에 그런 목적을 갖진 않으니까. 그래서 우리는 변치 않는 목적을 항상 갖고 있어야 해. 나 자신을 찾는 일, 나의 영혼을 깨우치는 일이지. 그러기 위해선 끊임없이 자신을 수양해야 해”

“맞아. 나도 여태까지 변하지 않는 목적이 없었어. 대학생 땐 대학교를 졸업하는 일, 대학원 땐 대학원을 졸업하는 일, 지금은 박사학위를 따는 일인데... 그걸 목적으로 삼는다면 막상 이루고 나면 너무 허무할 거 같다는 생각이 드네. 도교에선 어떤 식으로 자신을 수양하라고 가르쳐? 그리고 변하지 않는 목적을 어떻게 찾지?”

“우리는 일단 자신을 믿고, 남을 도와주고 존중하며, 이세상과 평화롭게 살아가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어. 내주위에 있는 사람들부터 항상 존중하고, 모두가 함께 평화로운 마음으로 지내고자 하지. 변하지 않는 목적은 도교의 원칙을 시행하다 보면 깨닫게 된다고 우리는 믿고 있어 ㅎㅎㅎ”

Jasper와의 시간은 긴박한 실험실 생활에서 마치 오아시스에 와있는 듯한 느낌을 갖게 했다. 잠시 바글바글 현실 과제인 실험은 접어두고, 저 멀리 푸른 하늘 뒤편에 있는 이상을 생각하게 해준다 할까?

나는 고등학교까지 성당을 다녔고 성가대원도 했다. 진정으로 하느님을 믿고, 예수님 말씀을 느끼고 실천하기보단 몸만 왔다 갔다 했다. 대학생 때는 다양한 종교를 알고 싶어 종교학을 들었다. 천주교, 기독교, 힌두교, 이슬람교, 불교, 도교, 유교에 대해 배웠다. 수박 겉 핥기였지만 종교학을 듣고 나니 모든 종교의 목적은 다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바로 '참된 인간이 되는 것'.

하지만 종교의 강압성, 내 마음에 와 닿지 않는 피상적 교리, 다른 종교 배척 그리고 개인 이익을 위해 종교를 이용하는 모습을 보면서 현실 종교에 대해 부정적 생각을 많이 갖게 되었다. 누가 종교가 뭐냐고 물으면 당당히 "무교”라 대답했다. 하지만 도교사상은 내 관심을 끌었다. 모든 종교를 인정하는 관대함, 피상적 교리보단 참된 자신을 찾기 위해 끊임없이 수양한다는 말을 들었을 때 나의 생각과 잘 맞을 것 같았다.

내가 엄청난 관심을 보여서일까? Jasper가 도교모임에서 여는 채식주의 파티에 초대했다. 원래는 야외에서 하는 파티인데, 비가 오는 탓에 실내에서 했다. 실내에 들어가자 따뜻한 물수건을 주며 손을 닦으라고 했다. 손 닦는 행위는 모든 잡념을 깨끗이 씻어내고 새롭게 하루를 시작한다는 의미라고 한다. 손을 닦은 후 관음보살에 3번 고개 숙여 인사하고 사람들과 인사를 나눴다. 테이블엔 채식 음식이 10가지가 넘었다. 콩으로 만든 햄버거, 병아리콩과 쿠스쿠스가 섞인 요리, 각종 야채에 허브와 올리브유를 두르고 오븐에 구운 요리, 콩으로 만든 면과 야채볶음, 두부야채볶음밥 등 다양했고, 하나하나 엄청 맛있었다. 다음엔 나도 잡채를 해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들 ‘평화’, ‘조화’가 몸에 배서 그럴까? 누구하나 서두르거나 긴박해 보이는 얼굴이 없었다. 다들 편안해보여 나까지 마음이 편안해졌다. 처음 온 나를 따듯하게 맞아주었고 도교를 자세히 설명해주었다. 어떤 한 분이 이론적인 면을 아주 열심히 설명했다. 일곱 가지 철학에 논어, 노자, 공자까지 나왔다. 음식에 정신이 팔려 배불리 먹은 데다 내용이 어려워 이해하지 못해 듣다가 졸 뻔했다. 도교에 대해선 내가 소화했을 때 쓰고 싶다.

예전에 부모님이 내가 어떤 힘든 일을 겪을 때 이런 말씀을 하시곤 했다.

“아~ 왜 나에게 이런 일이 일어나지? 생각하기보다는, 어떠한 이유가 있기 때문에, 혹은 더 좋은 일이 나중에 찾아올 거라 힘든 일이 앞서 왔다고 생각하렴”.

고통스런 쥐실험을 하면서 Jasper를 만났고, Jasper 덕분에 나와 비슷한 생각을 갖고 있는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다. 정말로 더 좋은 일이 일어난 것 같다.

편집 : 박효삼 편집위원, 심창식 편집위원

이지산 주주통신원  elmo_party@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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