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라시아에서 들려주는 사랑과 모험, 평화이야기 350~355일째

나는 고집스럽게 내 길을 달리는 것이 창조의 시작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길 위를 달리면서 스스로를 재창조하고 있다. 아스팔트에 박힌 나사못에 걸려 넘어져 하루 쉬고 아침에 일어났지만 다친 부위인 무릎이 부어올랐고 통증이 느껴졌다. 잠시 나약한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하루 더 쉴까 했지만 하루 더 쉰다고 바로 좋아질 것 같지도 않았다. 일단 길 위에 나서서 뛰지 못하면 걷고 정 그것도 못 하겠으면 그때 다시 숙소를 찾아 들어오면 된다고 생각했다. 절뚝거리며 한 5km쯤 걸으니 몸이 더워지고 모공이 열리며 하늘의 정기가 그리로 들어온다.

▲ 2018년 8월 18일 중국 헝산현(横山县) 지나 위린시를 향해 달리면서

이제 아주 조심스럽게 뛰기 시작한다. 처음 연애를 시작하는 소년처럼 떨리는 가슴은 안고 무릎에 아주 세심한 배려를 한다. 대지 위에 새색시의 발걸음처럼 사뿐사뿐 옮겨놓는다. 처음에는 약간 통증이 왔다. 심장의 박동이 빨라지더니 아드레날린이 샘솟으며 발걸음은 정상적으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그러다 잠깐 쉬었다 다시 시작하려면 다시 무릎에 통증이 온다. 그럴 때면 다시 살살 걷다가 다시 모공이 열리면 달리기 시작한다.

운동에는 과부하 법칙이 있다. 몸에 약간씩 과부하를 걸어주고 그것을 넘어서면 운동능력이 향상되며 신체능력이 발달하는 것이다. 우리 몸 세포 내 환경을 변화시킬 수 있는 자극을 이해하면 이해가 쉬울 것이다. 세포 내 환경을 변화시키기 위해서는 일상보다 조금 다른 자극이면 된다. 이제 거의 1년을 몸에 과부하를 걸면서 나의 한계를 넘어 연약하고 찌질한 내가 아니라 새로운 내가 되어 그리운 집을 향해 달리고 있다.

▲ 2018년 8월 17일 중국 Miaowan(庙湾)인근에서 헝산현(横山县)까지 달리면서 만난 사람들

나의 집은 통일된 터전 위에 앞으로는 평화의 강이 흐르고, 뒤로는 평등의 산이 바람을 막아 주는 곳이다. 집은 안락과 휴식과 몸과 마음의 평화를 제공한다. 집에서 가족과 살을 비비고 나눈 추억이 친밀감과 그리움을 불러일으킨다. 때로 집을 벗어나기를 갈망하지만 그런 것들이 집으로 다시 회귀하게 이끄는 마력이 된다.

▲ 2018년 8월 17일 중국 Miaowan(庙湾)인근에서 헝산현(横山县)까지 달리면서 만난 모습

아직도 무더운 한낮 뜨거운 열기 속에 간혹 도둑처럼 스며드는 찬바람이 살갗에 닿는다. 헤르만 헤세의 싯구처럼 ‘이제 여름은 늙고 병들었다’ 육 칠 팔월 사막 폭염에 맞불처럼 마주서서 묵묵히 달렸다. 내 안에 붉은 용암처럼 솟구쳐서 뜨거움으로 더위를 녹여내는 응어리가 있다. 젊은 날 태우지 못한 응어리 같은 덩어리가 있다. 그때 나는 그것을 태울 만큼 발화열이 높지 않았다. 그때 태우지 못한 첫사랑이 내 안에서 농축되고 압축되어 핵보다도 더 폭발적이고 태양보다도 더 안전한 연료가 되어서 유라시아를 달리는 원동력이 되었다.

▲ 2018년 8월 18일 산시성에서 위린을 향하여 달리면서 만난 길

이곳 산시 성의 위린으로 향하여 달리는 길은 영화 ‘집으로 가는 길’의 배경이 된 삼합둔과 비슷한 두메산골 분위기를 연출한다. 나는 언제부터인가 영화를 보지 않았다. 시간과 비용대비 거의 매번 실망을 하고 나오기 일쑤였기 때문이다. 그러다 우연치 않게 보게 된 장이머우 감독이 메가폰을 잡고 갓 스물이 된 장쯔이의 화장발 없는 생얼굴이 유난히 청순하게 나오는 ‘집으로 가는 길’은 감동의 여운이 길게 남은 보기 드문 작품이었다. 시골 소녀의 순박함과 자연의 아름다움을 장이머우 특유의 서정성을 화면에 담아낸 작품은 아련한 애수를 자아내기에 충분하였다.

중국의 전통 장례는 상여를 이고 고인이 살아생전에 다니던 길을 되돌아가는 것이다. 이것은 죽은 자가 집으로 오는 길을 잊지 말고 기억하라는 의미라고 한다. 이 작품에서 길은 사랑하는 연인을 기다리고, 그에 대한 끝없는 연정을 쌓아가던 길이다. 사랑하는 이의 가는 길에 마지막으로 추억과 사랑이 담긴 그 ‘길’을 걷고자 하는 여인의 소망은 진한 감동을 선사한다. 시골 선생님 장례를 위해 도시에서 생업을 멈추고 먼 길을 마다하지 않고 찾아온 수많은 제자들은 선생님이 오셨던 그 길을 함께 다시 걷는다.

아버지의 부음을 듣고 고향으로 도시에 나가 살던 뤄성은 한걸음에 고향을 찾는다. 어머니는 상여를 들고 고인이 다녔던 길을 돌아보는 전통방식으로 장례를 치르고 싶다고 말한다. 그런 어머니에게 뤄성은 젊은이들이 도시로 다 나가있어 상여를 들 사람도 없거니와 날씨도 추우니 간단하게 현대식으로 하자고 대답한다. 자신의 방에 들어온 뤄성은 책상에서 젊은 시절 부모님 사진을 발견한다. 두 사람의 러브스토리는 온 동네 사람이 다 아는 유명한 이야기였다.

오지에 젊은 총각선생님이 발령을 받아 온다. 도시에서 온 그를 보러 마을 전체가 웅성웅성한다. 새로 지울 학교가 준공할 때 나무에 두르는 천을 마을에서 제일 예쁜 처녀가 짜기로 했는데 눈먼 어머니를 모시고 사는 자오디가 뽑혔다. 선생님을 처음 보는 순간 한눈에 반해버린 자오디는 나무에 두를 천을 더욱더 열심히 촘촘히 정성들여 짠다. 신축공사에 동원된 인력들을 위해 마을 사람들은 매일 점심 식사를 준비하는데 자오디는 선생님이 행여 자신이 만든 음식을 먹게 될까 온갖 정성을 다해 음식을 만든다.

마을에 우물이 두 개가 있는데 선생님의 책 읽는 소리를 듣기 위해 자오디는 일부러 먼우물에서 물을 길어온다. 그러다 선생님도 자오디의 존재를 인식하게 되고 머리핀을 선물하며 마음을 전한다. 두 사람이 사랑을 이루어진 후에는 40년 동안 떨어진 적이 없다. 뤄성은 부모님들의 이런 숭고하고 애절한 사랑을 떠올리며 아버지의 장례는 어머니의 뜻에 따라 전통방식으로 치르기로 결정한다.

세상에서 가장 먼 길을 택해 아버지 고향집으로 가는 길에 “집으로 가는 길‘이라는 영화가 다시 되새김질 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남북한이 갈라진 기형적인 구조 아래서 여지없이 짓밟혀버린 우리의 전통적 가치와 헤어져 살아야 했던 수많은 숭고한 사랑들을 떠오른다. 전통 가치와 의미가 철저하게 유린되었던 문화혁명을 겪은 중국인들에게 장이모우 감독은 옛 전통의 가치, 숭고한 사랑의 의미, 참 교육의 고귀함을 이 영화를 통해 다시 생각하게 해주는 감동을 주었다.

나는 아버지가 첫사랑을 느끼고 가슴 졸여하며 걸었던 그 길 위에 떨어진 낙엽을 밟으며 따라가 보고 싶었다. 그 길 위에 소주를 부어가며 아버지와 화해를 하고, 아버지와 나의 못 이룬 첫사랑을 같이 놓아주는 의식을 치루고 싶다. 내 못 이룬 첫사랑의 꿈을 보상받으려 내 아버지를 평생 짓눌렀던 아버지의 첫사랑의 흔적을 찾아 4만 리 길을 나선 것은 오이디프스 콤플렉스에서 시작된 무의식의 발로였을 것이다.

'희망이란 본래 있다고도 할 수 없고 없다고도 할 수 없다. 그것은 마치 땅 위의 길과 같은 것이다. 본래 땅 위에는 길이 없었다. 걸어가는 사람이 많아지면 그것이 곧 길이 되는 것이다' 루쉰의 <고향> 중에서...

▲ 2018년 8월 18일 중국 헝산현(横山县)에서 Mazha Liang(马扎梁)까지 달리면서 만난 모습
▲ 2018년 8월 20일 중국 위린 시를 지나 선무현을 향해 달리면서
▲ 2017년 9월 1일 네델란드 헤이그에서 2018년 8월 21일 중국 Pengyan(碰墕) 인근까지(최소 누적 거리 12,193km, 중국 누적거리 3,255km)

* 평화마라톤에 대해 더 자세한 소식을 알고 싶으면 공식카페 (http://cafe.daum.net/eurasiamarathon)와 공식 페이스북 (http://facebook.com/eurasiamarathon), 강명구 페이스북(https://www.facebook.com/kara.runner)에서 확인 가능하다. 다음카카오의 스토리펀딩(https://storyfunding.kakao.com/project/18063)과 유라시안마라톤조직위 공식후원계좌(신한은행 110-480-277370/이창복 상임대표)로도 후원할 수 있다.

[편집자 주] 강명구 시민통신원은 2017년 9월 1일,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1년 2개월간 16개국 14,500km를 달리는 유라시아대륙횡단평화마라톤을 시작했다. 그는 2년 전 2015년, '남북평화통일' 배너를 달고 아시아인 최초로 미대륙 5,200km를 단독 횡단한 바 있다. 이후 남한일주마라톤, 네팔지진피해자돕기 마라톤, 강정에서 광화문까지 평화마라톤을 완주했다. <한겨레:온>은 강명구 통신원이 유라시아대륙횡단평화마라톤을 달리면서 보내주는 글과 이와 관련된 글을 그가 마라톤을 완주하는 날까지 '[특집]강명구의 유라시안 평화마라톤'코너에 실을 계획이다.

사진 : 강명구, 현지 동반자

편집 : 김미경 편집위원

강명구 주주통신원  myongkukang@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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