몬트리올 생활도 익숙해지고 날씨도 따듯해질 무렵, 고모에게서 연락이 왔다. 나보다 10살 정도 어린, 이제 막 대학에 입학한 사촌동생 연서를 방학기간 동안 나에게 보내고 싶다고 하셨다. 연서는 나와 나이 차이가 많이 나기 때문에 같이 보낸 시간은 별로 없지만, 가족모임이나 명절에 만날 때면 밝고 명랑한 모습으로 살갑게 인사를 하고 얘기를 나눠서 그런지 정이 가는 동생이라 단번에 보내도 된다고 말씀드렸다.

연서가 몬트리올에 올 시간이 다가오니 이런저런 얘기를 해줄 기대감과 함께 조금씩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하루 대부분 시간을 실험실에서 보내는 나로선 연서가 놀러 와도 평일엔 거의 같이 있을 시간이 없다. 토요일 하루 정도는 시간을 보낼 수 있더라도, 일요일에는 다음 주 실험계획과, 일주일 동안 먹을 음식을 해놓고 집도 치워야한다. 빡빡한 스케줄로 인해 내가 해줄 수 있는 것이 많지 않은데 기대를 많이 하고 오면 어쩌지~ 걱정이 되었다. 그리고 가족이 아닌 다른 누군가와 오랫동안 지내본 적이 대학생 이후 처음이었기 때문에 신경이 쓰이지 않을까 염려되었다.

이런저런 걱정에 고모께 내 스케줄을 말씀드리고 연서를 많이 못 챙겨줄 것 같다고 솔직히 말씀드렸다. 고모는 그간 부모가 모든 걸 다 해주던 환경에서 연서가 독립적으로 혼자 해야 하는 환경이 될 수 있을 것 같다며 오히려 좋아하셨다. 그리고 나의 라이프스타일을 배우고, 앞으로 무엇을 하고 싶은지 생각할 기회를 줄 수 있을 것 같다며 연서를 빨리 보내고 싶어 하셨다.

연서는 1학기 기말고사를 끝내고 6월 말 몬트리올에 도착했다. 서로 많은 교류가 없어 처음 만났을 때 어색한 인사가 오갔지만 곧 동생처럼 친근해졌다. 연서한테 기본적으로 같이 지내면서 지켜야할 것과 청소하는 날, 장보는 날 등 날짜별로 해야 할 일을 알려주고 우리의 동거가 시작되었다.

처음 동거를 시작했을 때는 사실 쉽지 않았다. 화장실 변기통 안에 거뭇거뭇한 동그란 것들이 들어있어 깜짝 놀랐다. 자세히 봤더니 연서가 칼라렌즈를 화장실 변기통에 버리고 물 내리는 걸 깜빡했던 것이다. 또 양말이나 옷이 테이블 위에 있을 때면 내가 막 치우고 싶었고, 설거지도 바로바로 안하면 내가 다 해버리고 싶었지만, 연서에게 하나하나 지적하며 엄마 같은 잔소리를 했다. 음식도 거의 해본 적이 없어, 칼질하는 법, 조리하는 법도 하나하나씩 알려주어야 했다.

명랑하고 씩씩한 연서는 하나하나 알려주는 것을 잘 귀담아 듣고, 바로 실천에 옮겼다. 나중에는 청소도 알아서 잘하고, 요리도 처음부터 끝까지 혼자서 하고, 장도 혼자 보기도 했다. 가끔 일이 늦게 끝나 집에 오면, 설거지도 다 되어있고, 쓰레기도 제대로 버려져있고, 알아서 장도 봐놓고 하여 잘 따라 와주는 연서가 너무 고맙고 사랑스러웠다.

▲ 어느 토요일 연서와 함께 카약을

연서는 몬트리올에서 영어학원을 다니기 시작했는데, 처음엔 친구가 없어 어색해 했지만, 일주일도 안 돼 여러 나라 친구들을 사귀어 학원이 끝나면 다 같이 미술관, 공원, 놀이공원, 맛집을 찾아다니며 재미있게 놀러 다녔다.

어느 날 오늘은 학원에서 무엇을 배웠냐고 물어보았다. 연서가 좀 특이한 주제에 대해 다뤘다고 얘기하면서, 남녀 평등에 대해서 토의하고, 남자육아휴직에 대해서 서로 의견을 주고받았다고 했다. 그러면서 자기는 그런 것은 잘 몰라 얘기를 많이 못했다고 했다. 그 말을 들었을 때 나는 거의 흥분하며 학원에서 너무나 좋은 주제를 다뤘고, 캐나다에선 남녀평등에 대해 굉장히 큰 의미를 둔다고 알려주었다. 그리고 연서에게 물어봤다.

“우리나라가 OECD국가 중에서 남녀 임금격차가 큰 나라일까? 작은 나라일까?”

연서가 머뭇거리더니 대답했다.

“클 거 같은데?”

“맞아, 우리나라가 OECD 34개 국가 중 남녀 임금격차가 가장 큰 나라야. 젤 꼴찌지. 캐나다도 임금격차가 있긴 하지만 우리나라와는 비교되지 않지. 제일 작은 나라는 그리스, 벨기에, 이탈리아, 덴마크 등 유럽 국가들이야. 캐나다는 이런 격차를 줄이기 위해 현재도 끊임없이 나라에서 제도를 개선하려고 노력하고 있어. 남자육아휴직에 대해서도 법적으로 무조건 지켜야 해. 언니 연구소에 연구기술직을 담당하는 남자가 있는데 모두 두 달 동안 육아휴직을 갔다 왔어. 이를 너무나 당연하게 생각하고 있더라고. 캐나다 남자들은 부인이 아이를 낳았을 때, 남편이 부인을 돌봐주는 것이 당연한 의무라고 생각하고 있어. 우리나라는 남자육아휴직제도가 있어도 회사에서 눈살을 찌푸리기 때문에 못쓰고 있는 게 현실이지. “

연서가 내 말을 듣고 어리둥절해서 물었다.

“왜 회사에서 못쓰게 하는 거야? 다 같이 쓰면 좋은 거 아니야?”

“우리나라는 아직 남자는 육아에 책임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아. 여자의 몫이라 생각하지. 물론 젊은 사람들은 생각이 조금 다른데, 휴직을 허락하는 윗사람들은 다들 자기 부인들이 알아서 아기를 돌보았기 때문에 남자가 아이를 돌본다는 것 자체를 남자답지 못하다고 생각해. 그런 걸 요구하는 여자를 보고 어리광을 부린다고 생각하지. 그런 인식 때문에 젊은 남자들도 회사에 당당하게 말을 못하는 거고... 하지만 너희 시대는 좀 다를 거야. 10년이란 시간이 있기에 사회가 충분히 변할 수 있다고 생각해. 그동안 남녀평등제도가 형식적으로 존재했다면 앞으로 그것을 정말 실행에 옮기는 나라로 발전할 수 있다고 봐. 그러기 위해선 연서 또래 학생들이 남녀평등에 대해 끊임없이 생각하고 고민하고, 그것을 이루기 위해서 행동해야해. 올바른 지도자도 뽑아야 하고. 지도자가 제대로 된 정치를 하는지 안하는지 매의 눈으로 보면서 잘못하면 비판도 해야 하고”

이제 막 부모 품에서 사회에 나온 연서는 이런 얘기가 새롭고 흥미로운지 눈이 동그래져 잠자코 내 얘기를 듣고 무언가를 다짐하는 듯 표정을 지었다.

최근에 친구가 몬트리올에 여행을 왔다 갔다. 그 친구는 자기가 많은 나라를 다녀봤지만, 캐나다가 진정한 선진국 같다는 얘기를 했다. 그 이유는 캐나다인 대부분이 행복해보이고 친절하다는 점이었다. 외국인 여행자임에도 차별을 느끼지 못하고 마음 놓고 여행을 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레스토랑에서 일하는 종업원 표정들이 다들 너무나 밝고 즐거워 보이고 자신이 하는 일에 자부심을 느끼는 것 같아 자기 또한 고객으로서 마음이 편안해진다고 했다.

캐나다인들은 어떻게 이렇게 밝고 행복해보일까? 식당 종업원으로서 자부심을 느끼는 것이 한국에서는 어려운 일 같은데 캐나다에서는 가능한 일일까?

캐나다는 ‘평등’을 중시하는 나라다. 그렇기 때문에 이 모든 것이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남녀 간 평등뿐만 아니라, 나이, 직업, 인종, 소수성 등에 모두가 평등하다고 생각하며, 이를 지키기 위해 시민과 국가가 끊임없이 노력한다. 우리나라에선 새로운 사람을 만났을 때 나이, 직업, 학벌을 물어보는 것이 다반사다. 이것에 근거하여 일종의 잠재적 우월의식을 형성하며 대화가 진행된다. 하지만 캐나다에선 이 세 가지 중 단 한 가지도 물어보지 않는다. 자연스럽게 대화를 나누다 기껏해야 직업에 대해서만 얘기를 하곤 하는데, 대부분 사람들이 자기 직업에 자부심을 갖고 있다. 이렇게 사람 간 관계에 있어 편견 없이, 우월의식 없이 서로를 대하는 것이 캐나다 사회다.

중·고등학교 때부터 끊임없이 평등교육을 시키기 때문인지 서로를 존중하고 배려하는 것이 자연스럽게 몸에 배어있다. 존중받으면 행복해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래서인지 캐나다인들은 대부분 행복감을 갖고, 자신이 캐나다인인 것을 자랑스러워하며, 자신의 나라를 정말 사랑한다.

아직은 ‘평등’에서 멀게만 느껴지는 대한민국. 앞으로 연서와 같은 순수한 아이들이 차별을 느끼지 않고 사회에서 즐겁게 일할 수 있기 위해선 어른들부터 평등에 대해 끊임없이 생각하고, 평등을 진정으로 이룰 방안을 제시하고. 이를 실행에 옮겨야 가능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편집 : 박효삼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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