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라시아에서 들려주는 사랑과 모험 평화이야기 396일 ~ 400일째

▲ 2018년 10월 1일 중국 Lingshang(岭上)인근에서 Xinglongzhen(兴隆镇) 인근까지 달리면서

펭귄은 휴식을 취할 때 바다 밖으로 나온다. 얼음 위에서 한참 휴식을 취하고 놀다가 보면 다시 배가 고파진다. 펭귄 무리들은 뒤뚱뒤뚱 줄을 서서 바다로 걸어간다. 바다가 바로 코앞에 펼쳐지는 순간 펭귄들은 멈칫한다. 바다 속에는 물고기가 많아 금방 배를 채울 수 있지만 자신들을 노리는 범고래, 상어, 바다표범, 물개 등 천적들도 많기 때문이다. 바다는 먹이를 구하기 위한 멋진 공간이기도 하지만 목숨을 걸어야 하는 공포의 공간이기도 하다. 

이럴 때 한 마리 펭귄이 먼저 바다에 뛰어들면 다른 펭귄들도 두려움을 이기고 잇따라 뛰어든다. 처음으로 물속으로 뛰어든 펭귄은 누구보다도 배가 고팠다. 누구보다도 간절해서 용기를 갖고 먼저 물속으로 뛰어든 펭귄은 누구보다도 더 많은 물고기를 먹을 수 있다. 이때 가장 먼저 바다에 뛰어들어 다른 펭귄들도 뒤따라 뛰어들도록 이끄는 펭귄을 퍼스트 펭귄이라고 한다.

▲ 2018년 10월 3일 중국 Yanghezhen(슈옌)에서 Yiquanzhen(椅圈镇) 인근까지 달리면서

긴 인생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아무도 알 수가 없다. 우리나라에서 과감한 퍼스트 펭귄이 나오지 않는 이유는 새로운 일에 처음으로 뛰어드는 일은 생존에 불리하기 때문이다. 항상 위험이 없는 것을 확인한 다음 재빨리 2등으로 출발해 온갖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마침내 1등까지 앞지른 2등 전략이 언제나 효과적으로 작용하는 사회였다. 눈치 보기와 비굴한 처신을 하며 오로지 시험을 잘 보는 머리 좋은 영악한 인간이 두각을 나타냈다.

과감하게 시도하는 스타트업을 선택하면 생존율이 3-5% 밖에 되지 않는다고 한다. 한번 탈락하여 낙오자가 되면 취업을 하거나 경력을 쌓는데 치명적 결격사유로 작용한다. 다시 역전 기회를 잡기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자본주의 무한 경쟁체제에서 젊어서 실패하는 것은 재기가 거의 불가능한 낙오자를 만들어버렸다.

기러기 떼 지어 날고 서풍은 계절을 재촉하는 듯하지만, 백두산 호랑이 한 번 울어대면 곧 동녘 하늘이 밝아올 것이다. 지금 달리는 여기가 바로 영웅들이 수없이 싸웠던 전쟁터 만주 벌판이다. 천하가 편안한지 위태로운지는 언제나 만주 벌판에 달려 있었다. 만주 벌판이 편안하면 나라 안이 잠잠하다. 만주 서북방향 따싱안링(大興安嶺) 산맥과 남동방향에 백두산이 있는 장백산맥에 둘리어져 있는 곳이 '東北평야'로 발해가 있던 지역이다.

압록강을 건너 광활한 만주 벌판을 처음 대면하고 감격한 연암 박지원이 이곳이야말로 ‘통곡하기에 좋은 장소’라고 외쳤다. 저 만주 벌판과 같이 한없이 드넓은 세계로 나선 해방의 기쁨은 통곡으로 밖에는 표현될 수가 없었을 것이다. 당시 조선 선비들은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좁은 국토를 벗어날 수 없었으며 이를 숙명으로 알고 살았다. 그러니 휴전선을 운명처럼 받아들이고 살아온 우리들은 얼마나 갑갑했을까? 

▲ 2018년 10월 3일 중국 Yanghezhen(슈옌)에서 Yiquanzhen(椅圈镇) 인근까지 달리면서

만주벌판을 달리면서 지나온 생을 반추해보니 특별히 앞으로 나서서 한 일 없이 경쟁에서 지는 못난이였었다. 그 못난이가 뒤뚱뒤뚱 퍼스트 펭귄이 되어 유라시아대륙을 다 달려서 이제 곧 단둥에 도착한다. 압록강은 내게 빙하의 끝자락 같은 곳이다. 이제 평화와 통일의 물고기가 가득한 압록강 너머로 뛰어올라야 한다. 내가 퍼스트 펭귄이 되어 세상에서 가장 슬픈 강 압록강과 임진강을 건너는 일은 가슴 벅찬 일이다.

처음 시작할 때 나는 내가 단둥까지 무사히 도착할지 의문이었지만 압록강을 건너는 일은 믿어 의심치 않았다. 때로 근거 없는 자신감이 있을 때가 있다. 단동까지만 무사히 오면 압록강을 건너 뒤뚱뒤뚱 한반도를 남북으로 달리는 평화의 퍼스트 펭귄이 될 거라 확신했다. 생각지도 못했던 난관과 시련 속에서 달려 무수한 고난을 뚫고 여기까지 왔다. 난 훗날 젊은이들과 맥주 한잔 하며 대화를 나눌 때 나는 두려워서 아무 일도 하지 못했노라고 말하는 대신 나는 용기를 내어 그 일을 했는데 잘 되었는지는 모르겠다고 말하고 싶었다.

▲ 2018년 10월 4일 중국 Yiquanzhen(椅圈镇) 3.5km전에서 둥강 시(东港市)까지 동반주하며

이제 단둥 도착 며칠을 앞두고 서울에서 응원단들이 속속 들어오고 있다. 평화통일 마라톤을 함께 달리는 사람들의 모임을 줄여서 ‘평마사’라 한다. 평마사 사무총장으로 수고하는 김창준과 나와 같은 마라톤클럽 백형식형, 전주에서 김안수씨, 경기도에서 김종익씨가 와서 동강까지 함께 달렸다. 이제부터는 조중 국경지역이라 중국공안이 무척 신경을 곤두세우며 나를 바라보고 있다. 이 지역에서는 달리지도 말고 구호도 외치지 말며 더욱이 현수막은 들지 마라는 엄중한 경고가 떨어진 상태에서 눈치껏 조심하며 달렸다.

▲ 2018년 10월 4일 둥강 시(东港市)에서 심양으로 이동 하여
▲ 2018년 10월 4일 심양에서 만난 동지들

동강까지 달리고 마지막 단둥 철교까지 한 구간을 남겨놓고 심양, 푸순 환영문화에 참가하려 심양으로 이동했다. 그곳에서 송인엽, 박민서, 연상흠씨 등을 만나서 다음날 일찍 푸순의 교포가 운영하는 신안 민속촌으로 이동하였다. 벌써 교포들로 구성된 풍물패와 교포들로 꽉 차 있었고 입구에는 ‘환영 강명구 마라토너의 유라시아 평화의 길’이라는 현수막이 나를 반가이 맞아주었다. 이곳에서 동포들의 뜨거운 환영이 나의 가슴을 요동치게 하였다.

▲ 심양 푸순 환영제

250여 명이 함께 김봉준 화백의 평화의 띠그림을 이어 들고 풍물패의 길맞이 행사가 이어졌다. 이장희 상임대표 경과보고, 김성곤 전 의원의 축사, 조선족 대표의 환영사에 이어 나도 인사말을 했다. 황량한 벌판에서 뜨거운 생명력과 근면함으로 일어선 이곳 동포들의 통일 열기는 더 뜨거울 수밖에 없다. 조국의 화해와 통일을 목말라 했던 동포들, 지금 조국은 둘로 갈라졌지만 이들 기억 속에서 조국은 언제나 하나였다, 조·중 접경지역이라서 더 뜨겁고 간절할 지도 모르겠다.

▲ 왼쪽 상단부터 시계방향으로 인사하는 평마사 이장희 상임대표의 인사, 축사하는 김성곤 전 국회사무총장.인사하는 강명구 마라토너, 축사하는 심양 만속촌 김관식회장

조국의 통일은 정상들끼리 백두산 천지에서 두 손을 마주잡는다고 오지 않는다. 우리 같은 민간인들이 뜨거운 가슴으로 부둥켜안아야 오는 것이다. 나는 다시 한 번 간절히 북녘 땅 대동강변 버드나무 아래서 세계적인 평화의 축제가 신명나게 펼쳐지기를 제안한다.

“남한, 북한 시민 5만 씩 재외동포와 세계시민 포함하는 약 15만이 대동강맥주와 남한 막걸리를 마시며 서로 손을 마주잡고 축제를 벌이자. 이념을 뛰어넘는 어울림 속에 마음의 분단선을 지워버리자”

누구보다도 갑갑증을 느꼈던 내가 먼저 바다 속 같이 멋진 공간이기도 하지만 목숨을 걸어야 할 유라시아 대륙으로 뛰어들었다. 지금까지 달려오면서 내 발걸음에 수많은 남북한 시민들, 해외동포들, 세계시민들의 간절한 마음이 얹어졌기에 나는 기꺼이 퍼스트 펭귄이 되어 압록강을 뛰어 넘어 이 슬픈 강을 기쁨의 강으로 영원토록 흐르게 하고 싶다.

▲ 2018년 10월 1일 중국 Lingshang(岭上)인근에서 Xinglongzhen(兴隆镇) 인근까지 달리면서 만난 옥마을에서
▲ 2018년 10월 2일 중국 Xinglongzhen(兴隆镇) 인근에서 Yanghezhen(슈옌)까지 달리면서 만난 중국 모습
▲ 2018년 10월 3일 중국 Yanghezhen(슈옌)에서 Yiquanzhen(椅圈镇) 인근까지 달리면서 만난 중국의 자연
▲ 2018년 10월 3일 중국 Yanghezhen(슈옌)에서 Yiquanzhen(椅圈镇) 인근까지 달리면서 만난 사람들과 이정표
▲ 2018년 10월 5일 심양 환영제를 마치고 오랫만에 한혈마와 함께

 

▲ 2017년 9월 1일 네델란드 헤이그에서 2018년 10월 4일 중국 둥강 시(东港市)까지(최소 누적 거리 13,742km, 중국 누적거리 4,804km)

* 평화마라톤에 대해 더 자세한 소식을 알고 싶으면 공식카페 (http://cafe.daum.net/eurasiamarathon)와 공식 페이스북 (http://facebook.com/eurasiamarathon), 강명구 페이스북(https://www.facebook.com/kara.runner)에서 확인 가능하다. 다음카카오의 스토리펀딩(https://storyfunding.kakao.com/project/18063)과 유라시안마라톤조직위 공식후원계좌(신한은행 110-480-277370/이창복 상임대표)로도 후원할 수 있다.

[편집자 주] 강명구 시민통신원은 2017년 9월 1일,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1년 2개월간 16개국 14,500km를 달리는 유라시아대륙횡단평화마라톤을 시작했다. 그는 2년 전 2015년, '남북평화통일' 배너를 달고 아시아인 최초로 미대륙 5,200km를 단독 횡단한 바 있다. 이후 남한일주마라톤, 네팔지진피해자돕기 마라톤, 강정에서 광화문까지 평화마라톤을 완주했다. <한겨레:온>은 강명구 통신원이 유라시아대륙횡단평화마라톤을 달리면서 보내주는 글과 이와 관련된 글을 그가 마라톤을 완주하는 날까지 '[특집]강명구의 유라시안 평화마라톤'코너에 실을 계획이다.

사진 : 강명구, 평마사 

편집 : 김미경 편집위원

 

 

강명구 주주통신원  myongkukang@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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