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양버들 우거진 힉교에서 다람쥐를 잡겠다고 나무를 기어오른 친구는 다람쥐를 쫓는데..

다람쥐보다 더 빠른 내 친구

 

벌써 제목만 보고도

“에이, 거짓말, 어디 그런 사람이 있어?”하고 믿지 않을 사람이 훨씬 더 많을 것이다. 나도 믿지 않았으니까. 그렇지만 내 친구는 늘 자랑을 하였다.

“나무를 올라가는 다람쥐를 내가 쫓아가서 꼬리를 잡았다. 그런데 이놈이 고개를 홱 돌려서 손을 물어 버리잖아. 그래서 얼른 집어 던져 버렸지. 그랬더니 나무 아래로 떨어져 뒹굴잖아. 잡으려고 했지만 달아나더라.”

이런 이야기를 3학년 때부터 늘 들어 왔지만, 우린 그 말을 믿지 않았다. 사실 공부도 잘하지 못하고, 장난이 심해서 그 친구의 집안 아저씨뻘 되는 담임 선생님께 늘 꾸지람을 듣는 아이라 그 말을 믿는 사람은 없었다. 그러나 나무를 잘 오르는 것만은 틀림이 없었다.

우리가 다니던 학교에는 아름드리 수양버들이 13그루나 운동장 가에 빙 둘러 있어서 <수양버들 우거진> 이란 말이 교가에도 나온다. 그중에 커다란 나무 한 그루가 운동장 한쪽에 자리 잡고 있어서 여름이면 늘 이 나무 그늘이 우리들의 놀이 장소였다. 체육시간이면 서로 차지하려고 쟁탈전이 벌어지는 명당자리 노릇을 하였다.

▲ 수양버들

이 나무의 둥치 부근은 친구들 두 사람이 손을 맞잡아야 할 만큼 커다란 나무였고, 우리는 붙잡을 곳이 없어서 감히 올라갈 엄두도 못 내는데, 내 친구 환승이는 이 나무에 오르기를 마치 우리가 운동장에서 놀듯이 하는 것이다.

그 커다란 나무 둥치를 손을 벌려서 붙잡고 오르며 “이것은 원숭이 나무 오르기”라고 이름까지 붙이고 쪼르르 가지가 뻗어 나가는 자리까지 올라갔다가 쪼르르 다시 내려왔다.

또 허리띠를 풀어 나무 둥치를 돌려 양쪽 끝을 잡고 다리를 빳빳이 펴서 발바닥으로 나무를 밀면서 한 손씩 교대로 허리띠를 당기면서 나무를 오르면서 “이것은 전기 기술자들이 전봇대 오르는 기술”이라고 하였다.

우리는 흉내도 내지 못할 별난 재주를 가진 친구는 다시 주르르 타고 땅바닥으로 내려오더니, 이번에는 손바닥에 침을 탁탁 뱉어 쓱싹 문지른 다음에 손바닥을 나무줄기에 찰싹 붙이면서 “다다다닥” 소리가 날 만큼 재빠르게 나무를 기어오르면서 “이것은 치타가 나무에 오르는 방법”이라는 것이었다. 우리는 입을 다물지 못하고 친구가 나무 오르는 재주를 보면서 완전히 멍해졌다.

나는 나무라면 단 한길도 올라본 적이 없으므로 속으로 “저건 사람이 아니야. 아무래도 원숭이가 다시 태어났거나, 아니면 원숭이인지도 몰라.”라고 중얼거릴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이런 내 친구가 정말 자신의 묘기를 보여주는 기회가 왔다. 초등학교 4학년 시절이었다. 어느 여름날 점심을 먹고 운동장에서 왁자지껄 놀고 있는데, 운동장 가에 있는 아주 조그만 학교 동산<교실 두 개 넓이>에서 다람쥐가 쪼르르 나와 운동장 가에 있는 그 커다란 수양버들 중의 한 나무로 올라가는 것을 보고 소란이 일어난 것이다.

“와, 아 ! 다람쥐가 나왔다.”

“다람쥐가 수양버들로 올라간다!”

여기저기 소리를 지르며 아이들이 우르르 몰려들었다. 다람쥐를 향하여 돌멩이를 던지고 소릴 지르며 야단법석이 났다. 이때 내 친구 승이냐 나서면서

“야 ! 내가 올라가서 잡을 테니까 너희들 돌멩이질은 하지 마! 만약 밑으로 내던지면 잡을 수 있겠지?”

하고 나무 둥치로 다가서자, 우리 반의 반장 환이가 어림없는 수작이라는 듯 “니가 자식아 다람쥐를 어떻게 잡아 ? 떨어진디 조심이나 해 임마 !”라고 했지만 승이는 그딴 소리 하지 말라는 듯 침을 바른 손으로 나무 둥치를 잡으면서

“자, 간다. 다람쥐가 어디 있는지 잘 보고 알려 줘!”하면서 벌써 쪼르르 나무가 두 갈래로 갈라진 부분까지 올라가 아래를 내려다보며, “다람쥐가 언 쪽인지 알려 줘야지.”하자, 아이들이 모두 쳐다보면서 “오른쪽”하고 소리를 지르자 벌써 오른쪽 가지를 타고 저만치 올라간다.

정말 다람쥐보다 빠른 것만 같았다. 한참을 타고 오르는 승이를 보고 아이들은 그때마다 “오른쪽, 왼쪽”을 부르고 승이는 그쪽으로 재빨리 오르곤 하였다. 벌써 나무 꼭대기 가까이 올라가서 나뭇가지가 흔들흔들 거리는 것이 무게를 견디지 못하는가보다 싶었다. 그러다가 승이는 다람쥐가 있는 가지를 발견하였다. 다람쥐는 승이가 쫓아 올라오자 자꾸만 기어오르다가 이제는 축 늘어진 가지의 꼭대기에서 더 올라갈 자리는 없고, 밑에서 쫓아오기는 하고 어쩔 수가 없었던지 늘어진 가지를 잡고 아래로 쪼르르 내려오기 시작하였다. 이제 아무리 나무를 잘 오르는 승이라고는 하지만 다람쥐가 있는 가느다란 가지를 타고 내려올 수는 없는 일이었다.

▲ 다람쥐

승이는 이제 다람쥐가 붙어 있는 나뭇가지를 붙잡고 “야 ! 다람쥐가 뛰어 내리거나, 떨어질 거야. 너희들 밑에서 꼭 잡아야 해 !”하고 소리를 지르면서 흔들어 대기 시작하였다. 팔뚝 굵기만 한 나뭇가지는 승이가 흔들어대기 시작하자 마치 감은 머리를 말리기 위해 터는 것처럼 이리저리 흔들리기 시작하였다. 다람쥐는 이제 더 내려올 수도 없고 밑에는 수많은 아이가 소리를 지르면서 야단을 하며 쳐다보고 있으니 갈 곳이 없었다. 다람쥐는 더 견딜 수가 없었던지 다시 기어오르기 시작하였다. 이 모습을 본 아이들이 일제히 소릴 지른다.

“야 ! 다람쥐가 다시 올라 간다.”

물론 승이도 이 모습을 보고 있었다. 승이는 흔들던 나뭇가지를 잡고 가만히 다람쥐가 하는 양을 지켜보고 있었다. 다람쥐가 가까이 오자 승이가 덥썩 다람쥐를 덮쳤다. 그러나 다람쥐도 만만찮았다. 죽느냐 사느냐를 가르는 판이니 어찌 사람이 동물을 따라잡을 수 있을까 싶었다. 다람쥐는 아차 싶었던지 다시 가지를 타고 쪼르르 내려가기 시작하였다. 이 모습을 보면서 승이는 다시 그 가지를 붙들고 흔들기 시작하였다. 나뭇가지는 마치 굿하는 무당이 흔드는 대나무 줄기 마냥 힘차게 흔들리기 시작하였다. 다람쥐가 가지에 붙어 있기에 힘이 겨운지 몸뚱이가 나뭇가지와 거리가 멀어졌다가 찰싹 달라붙었다 하는 모습이 보이기 시작하였다. 이 모습을 본 밑의 아이들이

“야 ! 다람쥐가 곧 떨어지려고 한다.”하고 소릴 질러대었다.

‘이제 끝났다’ 이렇게 생각한 승이는 마지막 한 번 힘을 주어서 흔들어 보려고 팔에 힘을 주어서 팍팍 흔들었다.

역시 승이의 생각은 옳았다. 약 10m는 되는 높은 가지에서 다람쥐가 떨어지기 시작하였다. 그 순간에 다람쥐는 마치 낙하산을 탄 것처럼 네 다리를 활짝 벌리고 마치 종이비행기를 날리면 스르르 미끄러지면서 나르듯 천천히 나르는 것만 같았다. 아이들이 갑자기 술렁이면서

“야, 아! 다람쥐가 떨어진다. 다람쥐 잡아라.”

소리를 질렀지만, 다람쥐가 땅바닥에 살짝 내려앉았다가 쪼르르 달리기 시작하자 아이들은 모두를 다리를 종종거리면서 혹시 자기 다리로 기어오르지 않을까 겁을 집어먹고 달아나기 시작하였다. 그 덕분에 다람쥐는 무사히 자기 굴이 있는 동산으로 달아나고 말았다. 아이들은 그 짧은 순간에 긴장이 풀리고 차라리 잘 되었다는 듯이 “후유.”하고 한숨을 내쉬었다.

다람쥐를 잡겠다고 모두 소리를 지르고 야단을 했지만, 이렇게 다람쥐가 무사히 제 굴로 달아나고 만 것이 정말 잘 되었다는 생각들이었다. 이어서 아이들은 아무런 일도 없었다는 듯이 모두 제자리로 돌아가서 제각기 하던 놀이로 돌아가 버렸다.

모든 사람의 눈을 끌면서 오늘의 주인공이었던 승이가 나무에서 내려오는 것을 바라보는 친구는 아무도 없었다. 내가 승이였다면 다람쥐를 잡지도 못하였으니, 별 볼일이 없다는 듯 뿔뿔이 흩어져 버린 아이들이 섭섭하였을 것이지만, 승이는 이제까지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이 운동장에서 벌어지고 있는 진 빼앗기 놀이에 끼어들어 한바탕 땀을 빼는데 정신을 쏟고 있었다. 어쩜 모두가 벌써 잊어버리고 있는 것 같은 일이었지만, 나는 정말 승이를 잊을 수가 없었다. 그건 내가 아직도 나무를 올라가는 일이라면 단 2m만 되어도 겁을 먹고 자신이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내 평생에 가장 높은 나무에 올라가게 된 것은 바로 이듬해인 5학년 때 가을의 일이었다. 내가 살던 집의 뒤뜰에는 무척 커다란 감나무가 한 그루 있어서 가을이면 감이 매우 많이 열린다. 감나무가 숫제 빨간 낙하산처럼 보일 정도였다. 내 팔로 한 아름 반 정도나 되는 감나무에서 감을 따면 적어도 50접<접은 100개>을 따고도 남을 정도였다. 그 많은 감이 열려 있는 순간 우리 집은 석양이면 감나무 때문에 빨갛게 보인다는 말을 할 정도였다. 이 감나무에 감이 아주 빨갛게 잘 익은 어느 날 우리 담임 선생님께서 우리 마을에 오셨다가 우리 집을 찾아오시게 된 것이다.

학교에서는 호랑이 선생님으로 소문이 났지만, 나를 무척 아껴주시는 그런 스승님이었다. 농촌의 가난한 우리 집에서는 선생님께 내어놓을 차 한 잔을 끓일 수조차 없었다. 요즘에는 시골에서도 어느 집에나 차 정도는 준비되어 있지만, 6.25 전쟁이 끝난 뒤 아직도 가난을 벗어나지 못하고 끼니 걱정을 하던 그 무렵이라 선생님이 오시면 가장 잘 대접해드리는 부잣집이라야 겨우 막걸리를 한 주전자 사다 삶은 달걀 두어 개를 놓는 것이 가장 큰 대접이었다. 물론 그렇게 대접할만한 부잣집이 아닌 가난뱅이이기도 했지만, 그런데 하필이면 그날은 우리 집에 어머니도 안 계시고, 아버지도 안 계시는 날이라 아무런 준비를 할 수도 없었다.

나는 뒤뜰에 있는 감나무에 올라가 홍시가 된 감을 찾아서 따드리기로 마음먹었다. 선생님은 내가 상당히 겁쟁이여서 높은 나무에는 못 올라가는 것을 잘 아시고 계셨다. 그러나 다시 오시지 않을 선생님께 대접할 것이 아무것도 없는 것이 부끄럽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하고, 죄송하기만 하여서 얼른 나무 위로 올라갔다.

보통 때 같으면 나뭇가지가 갈라지는 첫 갈래까지도 무서워서 잘 올라가지 못하던 나였는데, 그날은 왜 그렇게 나무를 쉽게 올라갈 수 있었는지 모른다. 나는 갈라진 부분에서 지붕 위로 뻗은 가지를 기어올랐다. 이 가지는 비스듬히 뻗은 가지가 민틋하게 올라가고 있었지만, 잡을 가지가 전혀 없이 뻗어 올라가서 우리 식구 중에서 아무도 올라가지 않았다. 때문에 위에 홍시가 열려 있었고, 감 봉지<감이 여러 개 달린 가지를 통째로 꺾은 것>를 딸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나는 친구 승이가 하던 것처럼 가지에 배를 바짝 붙이고 나무줄기를 힘껏 붙들고 발로 버티면서 팔은 위로 뻗어 붙들고 몸을 끌어올리곤 하였다. 그런데 오늘은 쉽게 금세 나뭇가지가 없는 부분을 지나 버틸 수 있는 가지를 붙잡고 나무에 기대어 홍시를 땄다. 이렇게 혼자 애를 쓰고 있을 때 할아버지와 말씀을 나누시던 선생님께서 뒤뜰로 와서 까마득히 올라간 나를 올려다보시며 걱정스러운 얼굴로, “어떻게 거기까지 올라갔어? 너 무섭지 않니? 조심해야 해.”하고 말씀하셨다.

나는 자랑스럽게 “선생님 드릴 홍시를 따고 있어요. 자 우선 이것 좀 받아 주셔요.”하며 홍시를 매단 줄을 내려 드렸다. 선생님은 한참을 기다려서 내가 내려드리는 홍시를 받으면서

“야! 너 그렇게 높은 나무에 올라갈 줄 알았어? 넌 잘 못 올라가는 줄 알았는데…….” 하셨다. 나는 얼굴이 빨개지면서

“잘 못 올라가는데 오늘 처음으로 올라왔어요.”하며 다시 감이 열두 개나 달린 감 봉지를 꺾었다. 가지가 무거워 간신히 잡을 수가 있었다. 이렇게 열 개 안팎의 감 봉지를 두 개 더 꺾은 다음 내려 보내고 땀을 뻘뻘 흘리면서 간신히 감나무를 내려왔다. 어떻게 올라갔는지 어떻게 내려왔는지 생각이 나지도 않았지만, 어찌나 다리가 후들거리면서 떨리는지 나무에서 내려와서는 그만 풀썩 주저앉고 말았다.

“저런 네가 선생님께 드리려고 감 봉지를 꺾는 것이 너무 힘들었었나 보구나.”

선생님은 그런 나를 보면서 이렇게 말씀하시면서 머리를 쓰다듬어 주셨다. 내가 초등학교에 다니는 동안에 선생님께 해드린 가장 자랑스러운 일이며, 우리 집에서 오직 한 번 선생님을 대접해 드린 일이었다. 그전에는 물론 그 뒤로도 선생님께 담배 한 갑, 막걸리 한 되를 사다 드려 보지 못하고 졸업을 할 만큼 가난한 집안이었다.

편집 : 김동호 객원편집위원

김선태 주주통신원  ksuntae@empa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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