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5일은 박정희가 국민교육헌장을 만들어 발표한지 50년이 되는 날이다. 현재 50세가 넘은 사람이라면 자신이 다녔던 초·중·고 교가는 잊어버렸을지라도 ‘우리는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 땅에 태어났다’는 국민교육헌장은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국민교육헌장은 ‘건강하고 자주적이며 창조적이고 도덕적인 사람을 육성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5차교육과정으로 교과서 맨 앞부분에 인쇄되어 나왔으며 각급 교실과 관공서에는 빠짐없이 게시되어 학생은 물론 회사원, 노동자, 공무원, 군인, 경찰 등을 막론하고 어떠한 의문도 질문도 가지지 않고 닥치고 외워야 했다.

국민교육헌장을 외우지 못하는 학생에게 체벌이 가해지기도 하고, 사원이나 공무원의 경우 상사들에게 잔소리 듣거나 징계 조치를 당했으며 군인의 경우에는 혹독한 기합을 받았다. 심지어 국민교육헌장을 노래로 만들어 음반으로 판매하기도 했고, 해마다 국민교육헌장 발표일이 되면 국민교육헌장 암송대회가 열리기도 했다. 그러다가 1987년 6.29 선언 이후 민주화가 진전되면서 각급 학교에서 국민교육헌장 강제 낭독이 점차 사라졌고, 이후 문민정부 시기인 1994년 11월부터 각급 학교 교과서에서 국민교육헌장을 삭제하고 국민교육헌장 선포 기념식 역시 1993년에 열린 제25회를 끝으로 막을 내렸다.

“공익과 질서를 앞세우며 능률과 실질을 숭상하고...나라가 발전하며 나라의 융성이 나의 발전의 근본임을 깨달아...책임과 의무를 다하며...반공 민주정신에 투철한 애국애족이 우리의 삶의 길이며 자유세계의 이상을 실현하는 기반이다. 길이 후손에 물려줄 영광된 통일 조국의 앞날을 내다보며...” (국민교육헌장 일부)

“...그대들 신민은 부모에게 효도하고, 형제에게 우애하며, 부부 간에 서로 화목하고, 붕우 간에 서로 신의하며, 스스로는 공손하고 겸손하며, 박애를 여러 사람에게 미치고, 학문을 닦고 기술을 익혀 그로써 지능을 계발하고, 덕과 재능을 성취하며, 나아가 공익을 넓혀 세상의 의무를 다하고, 항상 국헌을 중시하고...(일본의 교육칙어 일부)

박정희가 만든 국민교육헌장과 1890년부터 1948년까지 사용된 일본의 교육방침인 교육칙어와 너무도 흡사하지 않은가? 일본인 정보장교를 지낸 오카모도미노루 박정희답게 그는 배운대로 일본의 흉내를 냈다. 1972년 10월 17일에 대통령 박정희가 위헌적 계엄과 국회해산 및 헌법정지 등을 골자로 하는 10월유신과 일본의 메이지 천황 때에, 에도 막부를 무너뜨리고 중앙 집권 통일 국가를 이루어 일본 자본주의 형성의 기점이 된 메이지 유신도 그렇다. 10월유신은 메이지천황의 ‘메이지 유신’을 모방해 만든 것이다.

<국민교육헌장을 만든 이유>

박정희가 1961년 4,19혁명정부를 뒤집고 5,16쿠데타를 일으킨 것도, 국민교육헌장을 만들고 국기에 대한 맹세니 유신헌법을 만든 것도, 하나같이 민족의 장래나 주권자인 국민의 복지나 행복을 위해서가 아니다. 박정희는 한민족의 피를 받고 태어났지만 머릿속에는 일본국민의 정신, 국가주의로 철저하게 무장되어 있었다.

“우리는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 땅에 태어났다.”? 대한민국 국민 개개인의 존재 이유가 자기실현이나 행복추구가 아니라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위해서.’라니. 개인이 국가를 위해 희생해야 한다는 이런 사상을 국가주의 혹은 전체주의라고 한다. 지금은 약간 달라지기는 했지만 ‘자랑스런 태극기 앞에 조국과 민족의 무궁한 영광을 위하여 몸과 마음을 바쳐 충성을 다 할 것을 다짐’하는 국기에 대한 맹세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대한민국의 주권이 국민에게 있다면 국민이 주인이다. 주인이 국기에 충성을 하면 국가의 주인은 국민이 아니라 태극기인가? 국가주의는 이렇게 주권자인 국민의 희생을 강요하고 당연시한다. 다양성을 무시하고 국가와 민족에 대한 충성을 지고의 가치로 여기도록 세뇌시킨다. 박정희가 국민교육헌장을 만든 ‘애국주의=전체주의’는 삼강오륜의 충효교육이나 반공교육과 무관하지 않다. 겉으로는 민족이니 애국으로 포장하지만 그의 속내는 헌정을 파괴하고 종신집권을 꿈꾸던 10월유신에서 고스란히 드러나고 만다.

헌법을 어기면 대통령도 탄핵으로 물러나야 한다. 하물며 혁명으로 쫓겨난 자를 국부로 모시자거나 헌법을 파괴한 자를 애국자로 존경하겠다는 것은 헌법 위에 군림하겠다는 발상이다. 국기에 대한 맹세를 만들어 국기에 충성하라는 애국주의나 국민교육헌장을 만들어 주권자 위에 군림하겠다는 사이비 애국자, 애국주의는 청산되어야 한다. 헌법이 정의다. 헌법을 무시하는 애국은 없다.

편집 : 심창식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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