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학의 '쉬운역학(易學)' 80

사람은 왜, 사는가? 어떻게 살 것인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이런 근원적 본질적 질문에 봉착할 때가 있지요. 빠른 사람은 사춘기 시절에 경험해 본 사람도 있을 것이고, 또는 청년 시절에, 또는 먹고 사느라고 정신없이 바쁜 시기를 보내고, 인생의 가을이라는 40대 정도가 되어 할 수도 있지요.

그 즈음에는 자연의 스승께서 질문을 던진다고 하지요. 하늘의 명령(天命)이라고 하는 것이겠지요. 50대가 되어 퇴직 문제가 대두되고, 60대가 되어 자기의 인생을 돌아보는 경향이 자주 나타나겠지요. 이럴 때 인도 정통 바라문들의 ‘인생 4단계 수행(아쉬라마 āśrama)’은 우리에게 제시하는 바가 깊지요.

1) 학습기(學習期) - 학교를 다니며 경전공부를 하고 스승으로부터 가르침을 받는 시기. 25세까지.

2) 가주기(家住期) - 가정을 꾸려 자식을 키우고 돈을 벌며 사회적인 의무를 다하는 시기. 50세까지.

3) 임서기(林棲期) - 50세가 넘어 75세까지. 숲 속에서 사는 시기. 50이 되면 가정을 떠나 동네 뒷산에 오두막을 짓고 밥을 끓여 먹는 시기. 50이면 육체적인 에너지가 현격하게 쇠퇴하는 시기. 종족을 번식할 생물학적 에너지도 거의 다 썼다.

4) 유행기(遊行期) - 그 후로는 자신의 수행을 사회에 회향(回向)하는 시기.

“나는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스스로에게 물으려면 반드시 혼자 있어야 한다. 이것이 인간이 가야할 궁극의 길이요, 구원의 길이라고 인도인들은 생각했다.  ‘아쉬라마'는 수행처나 은둔처의 뜻, 목적 성취를 위해 노력을 집중시키는 시기라는 의미다.

'아쉬라마'는 오늘날 현대인들뿐만 아니라 인도인들에게조차도 잘 어울리지 않는 점이 많겠네요. 나라와 민족마다 문화와 풍토가 다르기도 하고요. 수행자들에게는 맞는 말이겠네요. 수행자와 수행을 성스럽게 존중하는 인도의 풍토에서나 있을 법한 얘기라고도 할 수 있지요. 또한 남성 위주의 수행이라고도 할 수 있고요. 여성들은 집을 떠나 밖에서 수행하기에 어려움이 있기 때문이겠지요. 그러나 그것이 전달하는 의미는 남녀를 떠나 모두 곰곰 생각해 볼 가치는 충분히 있네요. 아무튼 그 결과 인도라는 나라는 수많은 수행자가 나왔고, 위대한 인도 사상 철학을 이루어 냈네요.

중국도 그러하네요. 공자님은 만년 70살에 이른 자신의 삶을 아래와 같이 술회했다고 하네요(연재물 58회). 여기에서 제시해준 ‘나이’에 관한 지침도 ‘아마라쉬’와 비슷한 맥락으로 생각해 볼 수 있겠지요.

吾十有五而志于學, 三十而立, 四十而不惑, 五十而知天命, 六十而耳順, 七十而從心所欲不踰矩(오10유5이지우학, 30이립, 40이불혹, 50이지천명, 60이이순, 70이종심소욕불유구). <논어 위정편>

-나는 열다섯 무렵에 배움에 뜻을 두었고, 서른 무렵에 내 뜻을 세웠고, 사십 무렵에는 흔들리지 않게 되었고, 오십 무렵에는 천명을 알게 되었다. 육십대에는 남의 말이 순수하게 들렸고, 칠십이 넘자 마음 가는 데로 따라가도 이치에 어긋나지 않게 되었다-

이상의 두 가지 내용은 인생의 마지막 숙제를 해결하라는 가르침이라고 보면 좋겠네요. 이법(理法)은 터득하고, 심법(心法)은 깨달아야 하는 교훈이겠지요.(연재물 31회). 유교를 공부하는 사람들은 인(仁), 극기복례(克己復禮), 태극 원리(太極), 애지욕기생(愛之欲其生)을, 불교를 공부하는 사람들은 심(心), 공(空), 불이(不二), 색즉시공 공즉시색(色卽是空 空卽是色)을, 도교를 공부하는 사람들은 무위진인(無位眞人)의 도(道)를, 천도교와 동학을 공부하는 사람들은 인내천(人乃天)을, 기독교와 천주교인들은 하느님을 내 안에 영접(迎接)하는 깨달음을 이루면 되겠네요.(연재물 47회).

▲ 4대 종교 영성 교류 활동(사진 출처 : 한겨레 신문)

우리가 이런 고전 인문학을 공부하는 것은 내가 변하고, 사회 정의를 실현하고, 인류 행복을 위한 길이겠지요. 동양 3교로 일컬어지는 유불선(儒佛仙)의 한자를 보면 모두가 사람 인亻(人) 부수(部首)가 공통이네요. 인문학(人文學)이란 ‘사람이 사람답게 살기 위해 사유해 낸 배움(學)’으로 보면 되겠지요. 성현들의 가르침이 모두 그러하네요. 문학, 역사, 철학(文史哲)이 인문학 영역이라고 하지요.

옛 선각자들께서는 공부 수행하는 것을 밥 먹고 숨 쉬는 것과 다르지 않음을 말씀하지요. 몸과 마음이 둘이 아님을 말하는 것이지요.(不二 而 不一). 결국 일생을 공부하면서, 현실 역사에 깨어 있고, 사회에 참여 연대하면서 각자의 인생길을 가꾸어 가면 되겠네요.

 

수행자(修行者)

너희, 수행자들이여!
수행자들은 고독의 한 가운데 서서 살아라.
고독을 벗 삼아서 살아라.

밤이 무섭거든 밤을 피하지 말고
밤의 한 가운데 서서
밤이 우리를 위해서 왔다는 것을
네 몸으로 체득하라.

그러면, 밤의 무서움이 없어질 것이니
고독이 두렵거든 고독의 한 가운데 서라.

[편집자 주] 한겨레 주주인 김상학 선생님은 현재 대학 교육원에서 주역, 노자, 장자, 역학 등을 강의하고 있고, 한민족의 3대경서를 연구하고 있다.

편집 : 안지애 편집위원, 심창식 편집위원

김상학 주주통신원  saram54@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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