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은 소리글자라서 발음에 따라 쉽게 변화를 하지요. 시간이 지나면서 겉모습이 처음과는 전혀 다른 형태의 글자로 둔갑을 하기도 하지요. 또한 언어의 자의성(恣意性)이라는 특성 때문에 어원 추적을 하기가 난감하지요. 그래서 그 말의 뿌리(語源)를 정확히 단정하기가 어려운 것이지요.

반면에 한자는 상형문자로 하夏나라(상고 시대. BC2100~BC1600), 은殷나라(중고 시대. BC1500~BC1100), 주周나라(하고 시대. BC1122~BC249) 때부터 있어 왔던 고대어-갑골문, 금문, 전문-라 할지라도 그 형태가 유지되고 있어서 글자의 뿌리를 알아낼 수가 있지요.(연재물 35회).

우리말이라고 생각하는 글자들이 한자(漢字)나 그 외의 다른 외국어에서 온 것을 알아보면 흥미 있지요. 문화의 교류도 물이 위에서 아래로 흐르고 섞이듯이 언어도 그러하다지요. 우리말을 알아 볼 때에도 주변 나라와의 관계를 조사해 볼 필요가 있겠네요. 그 대상으로 한자는 기본이고, 만주어, 티벳어, 몽골어, 일본어 그리고 불교 영향이 큼으로 인도어(산스크리트어. 빨리어), 임진왜란 이후에는 스페인어, 포르투갈어, 영어, 희랍어. 현대에 와서는 세계의 언어들. 이들과의 연관성을 알아보아야 하겠지요.

언어문자는 의미와 개념을 담고 있지요.(연재물 79회). 때문에 소리글자는 사상 철학을 담기에는 부족하지요. 또한 언어의 뿌리가 정확하지 못해서 개념(concept)도 허약하지요. 그래서 논리, 합리, 철학이 부족하게 되는 것이지요. 우리가 일본, 중국의 사상 철학과 비교하기가 곤란한 점도 언어의 문제에서 시작하지요. 일본인, 중국인들이 한국에 와서 문화재가 많은 고궁과 절, 박물관을 관람할 때 한자로 표기되어 있는 것들을 어느 정도 읽고 알지요. 우리는 한자로 되어 있는 것들을 잘 읽어 내지를 못하지요. 무엇인가 잘못 된 것이지요.

▲ 사진출처 : 노원서예협회

그래서 소리글자인 한글과 뜻글자인 한자를 자유롭게 쓸 수 있어야 하지요. ‘소리글자인 한글은 우리 글자이고, 한자는 중국 글자이다’ 이런 편협한 생각을 하면 안 되지요. 사실 한자가 성립하는데 있어서 우리 조상인 동이족(東夷族)이 많이 관여했다는 이야기도 전하지요. 뿐만 아니라 우리들 이름이나 지명, 용어 등이 대부분 한자어로 되어 있는데 말이지요. 우주 만물과 인류가 한 뿌리라는 것을 생각하면 더 좋겠지요. 자연 이치를 공부하는 데는 우주적 관점, 인류 문화를 공부하는 데는 지구적 관점이 필요한 것이지요. 그럼 다음 예시를 통해서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말을 한번 만나보시지요.

1) 이바구. 이배기 - 이야기의 경상도 사투리(방언). 이야기는 입으로 말하는 것으로 고어 형태의 경상방언 ‘이바구話’가 있는데 입의 어원이다. 입은 구멍의 어원이다. 일본어 ‘이야기하길’ ‘말하기를’을 ‘이와꾸ihaku-iwaku’라고 하는데 경상 방언 이바구와 같은 어원으로 입의 어원이다.

2) 단골. 당골. 당굴. 탱그리 - 단군(檀君)에서 변화했다고 본다. 강원도 태백시 소도동 태백산 입구에 얼음 축제가 열리는 곳이 당골 광장이다. 단골 손님. 무당이라는 말로 당골, 당굴이라 부른다. 자주 꼭 만나야 하는 분으로 사용된다. 몽골어 탱그리는 우두머리라는 뜻이다.

3) 댕기 - 단기(檀旗). 초대 단군을 추모하는 조기(弔旗)의 단기(檀旗단군깃발)에서 유래했다고 본다. 단군의 자손임을 표시하는 증표이다. 어린 아이들 머리에 고운 비단 헝겊을 달아 주는 댕기 풍속이 있다.

4) 마음 - 마하(Mahā. 거대. 위대) + 옴(omn. 무한). 마음은 허공과 같이 무한하다는 뜻으로 인도어(범어)에서 유래했다고 본다. 영어 mind(마음)도 여기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5) 시다림(尸陀林) - 시달림을 받다. 시다림이란 인도어 시타바나Śītavana의 음역音譯이다. 시다파나림尸多婆那林 또는 시마사나림尸摩賖那林 등으로 쓰이며, 시다림尸陀林, 屍陀林, 서다림 逝多林이라 쓰기도 한다. 의역意譯하면 ‘한림寒林’이라고 할 수 있는데 시타 Śīta는 ‘서늘함(寒)’을, 바나vana는 ‘숲(林)’을 뜻하는 단어라고 한다. 원래 中인도 마가다국 수도 왕사성(王舍城)의 북쪽 숲을 지칭한다. 이 숲에는 서늘한 기운이 서린 곳이 있어, 성 사람들이 이곳을 시체를 안치하는 곳으로 사용했다. 그리하여 후일 사체(死屍)를 묻는 장소를 폄칭하여 한림(寒林)이 부르게 된 것이다. 나중에는 죄인을 살게 하였다. 또한, 독수리가 시신을 먹기 위해 모이는 곳이었으므로, 조장(鳥葬)의 예가 행해지기도 하였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장례식장에서 스님들이 불자들의 극락왕생 염불을 해 주지요. 이것을 ‘시다림’을 한다고 하네요. 스님들이 하는 일 중에 이 일이 가장 힘들어서 ‘시달림을 받는다’는 말이 생겼다네요. 본 의미가 전이(轉移)된 것이지요.

6) 오징어 - 한자 오적어(烏賊魚)에서 옴. 적에게 검은 먹물을 쏘는 물고기라는 뜻이라 한다.

7) 과메기 - 한자 관목어(貫目魚)에서 옴. 눈을 뚫어 막대기에 꿰어 말리는 물고기라는 뜻이라 한다.

8) 함바 - 일본어 한바(飯場)에서 옴. 밥 먹는 곳. 공사장의 임시 식당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9) 다섯 - 닫다. 수를 헤아릴 때 손가락 다섯 개를 모두 닫으면서 다섯이라고 한다.

10) 열 - 열다. 수를 헤아릴 때 손가락 열 개를 모두 펴면서 열이라고 한다.

▲ 국립한글박물관의 한글 놀이터

<참고자료>

단동십훈(檀童十訓)

단군이 전한 놀이 육아법이 단동십훈이다. <도리도리, 짝자꿍>이나 <곤지곤지, 잼잼>은 어릴 적에 영문도 모르고 즐기면서 가르쳤던 놀이육아법이다. 거기에는 심오한 세계관과 생활철학이 면면히 스며있다.

어른들이 아이에게 <깍궁>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그 속에는 <각궁(覺躬)>이란 의미로 ‘자신을 깨달아라’는 뜻이 담겨져 있고, ‘너는 아직 어리지만 다음에 커서 자신을 돌아보고 세상을 바르게 살라’는 교훈적인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우리가 왜 살아야 하는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하여 갈팡질팡하고 있는 혼돈의 시대에서 다시 다져야 할 것은 이와 같은 기초와 기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한다.

전해오는 단동십훈(檀童十訓)은 다음 열 가지의 가르침으로 요약된다.

첫째는 도리도리(道理道理)다. 사람이 살아가면서 앞만 보고 가서는 자칫 자기자만에 빠지기 쉽다. 옆도 보고 뒤도 돌아보는 지혜는 사람 살아가는 고금의 진리다. 아이에게 머리를 좌우로 흔들면서 사람이 살아가는 도리를 바르게 깨닫게 해야 한다고 했다.

외골수로만 생각하지 말고 이리저리 상황에 따라서 생각을 바꾸면서 순리에 맞게 살아가야 한다는 뜻을 담는다. 하늘의 이치와 천지 만물의 도리를 바르게 깨우치라는 가르침이다.

둘째는 곤지곤지(坤地坤地)다. 하늘의 섭리도 중요하겠지만 땅의 이치는 오묘한 진리가 스며있다. 땅의 기운을 받고 살아가고, 땅에서 나온 온갖 곡식과 열매를 먹고 살아가는 것은 인간 삶의 진리다. 여기에서 두 번씩이나 '땅곤(坤)'자와 '땅지(地)'자를 지적하면서 강조한다.

아이에게 오른손 집게손가락으로 왼쪽 손바닥을 찍는 시늉을 하며 땅=곤(坤)의 의미를 깨닫게 했다. 땅의 이치를 깨닫고 땅을 잘 이용하면서 살아가라는 가르침이다.

셋째는 잼잼. 지암지암(持闇持闇)이다. ‘쥘 줄을 알았으면 놓을 줄도 알아라’는 깨달음을 은연중에 가르친다. 두 손을 쥐었다 폈다 하면서 자기 소유로 하기 위해 손에 쥐었던 것을 다시 놓을 줄도 알게 했다.

손목이 간신히 들어갈 만큼 가느다란 병목 속에 든 한 줌 쌀을 손에 쥐고 꺼내려면 쥐었던 물건을 다시 놓지 않고서는 결코 손을 뺄 수 없다. 내 손에 쥐었다고 해서 다 내 것이 아닐 것이니 이제 놓을 줄도 알아야 한다는 가르침이다.

넷째는 섬마섬마(서마서마西摩西摩)다. 고기를 잡아주기 보다는 고기 잡는 법을 가르치라고 했다. 맞는 말이다. 두 발을 딛고 선다는 것은 자립(自立)이다. 아이를 어른 손위에 올려놓아 두 다리로 버티면서 설 수 있도록 했던 육아교육법이다.

남에게 의존하지 말고 스스로 일어서서 굳건하게 살라는 뜻에서 손바닥 위에 올려 세우는 시늉 속에서 자립정신을 배우게 했다. 혼자 살아 갈 수 있는 능력과 자질을 기르게 했던 가르침이다.

다섯째는 어비어비(업비업비․業非業非)다. 선조의 글 속에는 ‘~해라’는 가르침보다는 ‘~하지 말라’는 가르침이 더 많은 것을 본다. 그만큼 어린이들은 어른의 기준으로 보아 칭찬보다는 꾸중을 듣는 과정에서 바르게 성장하는 법을 배웠는지도 모른다.

아이들은 해서는 안 될 일을 많이 한다. 모든 사람들의 어려서 커가는 과정은 다 그랬다. 아이의 잘못을 보았을 때 했던 말로서 장성해서도 도리에 어긋남이 없어야 한다는 가르침이다.

여섯째는 아함아함(亞含亞含)이다. 모든 화근은 입으로부터 나온다고 했다. 음식을 잘못 먹어 몸에 병이 생기는 것도 입이요, 말을 잘못하여 커다란 화근이 되는 것도 입이다. 특히 한번 잘못된 말은 다시 되돌릴 수가 없어서 커다란 화근이 되기도 한다.

잘못된 말이 나오거나 잘못을 저질렀을 때 손바닥으로 입을 막는 시늉을 한다. 두 손을 모아 입을 막는 식인 ‘아(亞)’자의 모양처럼 언제나 말을 조심하면서 근신해야 된다는 가르침이다.

일곱째는 불아불아(弗亞弗亞)다. 불(弗)은 기운이 하늘에서 땅으로 내려오는 것이고, 아(亞)는 기운이 땅에서 하늘로 올라가는 형상이다. 이처럼 기운이 순환하는 무궁무진한 생명력의 발현으로 철모르는 아이에게 자기 존중심으로 키우려는 뜻에서 허리를 부여잡고 좌우로 흔들면서 하는 말이 불아불아(弗亞弗亞)였다. 자기 존중심이야말로 사람이 스스로를 야무지게 부여잡고 살아가게 만드는 힘의 근원이 되기 때문이라는 가르침이다.

여덟째는 짝자꿍짝자꿍(작작궁 작작궁作作弓 作作弓)이다. 손바닥을 치는 것은 건강에 좋다고 했다. 다른 사람의 좋은 일을 보거나 더 잘하라는 뜻으로 박수를 치면서 격려한다. 두 손바닥을 치는 것은 음양의 결합과 천지의 조화 속에 흥을 돋우라는 뜻을 품는다.

아이에게 ‘짝자꿍’하면서 잘하라는 격려의 뜻도 담겨져 있지만 음양의 조화를 잘 이루어야 한다는 뜻을 담기도 한다. 너와 나를 위해 박수를 치면서 잘해 나가라는 가르침이다.

아홉째는 시상시상(侍想侍想)이다. 사람의 형체와 마음을 태극(太極)에서 받았고, 기맥(氣脈)은 하늘에서 받았으며, 신체는 지형(地形)에서 받은 것이므로 아이의 한 몸이 작은 우주(宇宙)라는 뜻을 담고 있다.

그 때문에 작은 우주를 한 몸에 모신 것이니 매사에 조심하고, 하늘의 뜻과 우주의 섭리에 순응하라는 의미에서 아이가 앉아 체로 몸을 앞뒤로 끄덕이게 했던 것이다. 그만큼 아이의 몸을 귀하게 여겨 함부로 하지 말라는 가르침이다.

열째는 질라라비 훨훨(자나아비 활활의支娜阿備 活活議)이다. 좋은 일이 있을 때 두 손을 상하좌우로 흔들면서 덩실덩실 흥을 돋구어 춤춘다. 가무(歌舞)를 통한 즐거움의 표시다. 그것은 흥을 돋구는 무용의 원형이다.

어른이 아이의 팔을 잡고 영과 육이 고루 잘 자라도록 기원하고 축복하며 함께 춤추는 모습이다. 천지자연의 모든 이치를 담고 지기(地氣)를 받는 몸이 잘 자라나서 작궁무(作弓舞)를 추면서 즐겁게 살아가라는 가르침이다(네이버에서 인용).

편집 : 안지애 편집위원, 심창식 편집위원

김상학 주주통신원  saram54@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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