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콜드 워>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2019년 아카데미상이 발표됐다. 한겨레 기사를 보면 이렇다.

“다양성 빛난 오스카… 작품상엔 인종차별 극복 담은 ‘그린 북’ 흑백 우정 그린 실화 바탕 영화…”(http://www.hani.co.kr/arti/culture/movie/883492.html)

주요 상을 받은 영화 세편을 보면 <그린 북>은 작품상, 남우조연상, 각본상을, <보헤미안 랩소디>는 남우주연상, 편집상, 음향편집상, 음향믹싱상을, <로마>는 감독상, 촬영상, 외국어영화상을 받았다.

<그린 북>은 피아니스트 ‘돈 셜리’와 그의 운전수 ‘토니 발레롱가’ 이야기를 그린 영화다. 어찌 보면 <극한직업>에 밀려 대중의 주목을 받지 못한 영화가 아닐까 싶다. <극한직업>이 1,500만을 넘을 때 <그린 북>은 간신히 30만을 넘었으니 말이다. 두 영화 다 보았는데 솔직히 비교할 수 없는 영화다. <극한직업>은 너무 웃기다는 이야기를 듣고, 아무 생각 없이 웃으러 간 영화인데 거의 웃지 않고 나왔다. 내가 웃는 코드와 좀 다르다고나 할까? 아니면 기대가 너무 컸다고나 할까?

반면에 <그린 북>은 박수가 저절로 나오는 인간애가 듬뿍 담긴 영화다. 피아니스트의 이야기니까 영화 곳곳에서 음악도 살아 숨 쉰다. 이번 아카데미상을 계기로 관객 수가 좀 늘지 않을까 해서 자세한 스토리는 소개하지 않으려 한다. 

그런데 나는 <그린 북>이 아카데미상을 받지 못할 것으로 생각했다. 영화 제작과정에서 '돈 셜리' 유가족들과 합의가 없었으며, ‘돈 셜리’ 유가족들은 영화에서 많은 부분이 사실과 다르다고 이의를 제기했기 때문이다. <그린 북>의 각본을 쓴 사람은 운전수 ‘토니 발레롱가’의 아들 ‘닉 발레롱가’다. ‘닉’은 '돈 셜리'가 생전에 영화 만들기를 원치 않았고, 사후 제작은 구두 허락을 했다고 주장하며 각본을 썼다.  

‘토니’는 영화에서 허풍쟁이란 별명을 갖고 있다. '닉'은 아버지 허풍으로 스토리를 엮지 않았을까? 이 영화는 당당히 실화라고 소개하지만 그건 토니의 머릿속에서 있던 토니의 관점에서 기억하는 실화일 수도 있다는 생각도 든다. 앞으로 ‘돈 셜리’의 다큐멘터리도 제작된다 하니 얼마나 차이 나는지 확인해볼 수 있겠다.

영화에서 ‘돈 셜리’가 연주하는 곡은 클래식, 재즈, 소울까지 두루 섭렵한 흑인 피아니스트 ‘크리스 바우어스(Kris Bowers)’가 맡았다. 세 곡만 소개한다.

Green Book Soundtrack - "Blue Skies (The Don Shirley Trio)" - Kris Bowers
https://www.youtube.com/watch?v=vDFnYOOovp8&index=2&list=RDRRfXmYs8xkU

Green Book Soundtrack - "Water Boy (The Don Shirley Trio)" - Kris Bowers
https://www.youtube.com/watch?v=8XhvYb8jnxw&list=RDRRfXmYs8xkU&index=7

Green Book Soundtrack - "Lullabye of Birdland (The Don Shirley Trio)" - Kris Bowers https://www.youtube.com/watch?v=Muf1uDXIqvs

영화 거의 마지막에 ‘돈 셜리’가 쇼팽의 피아노 에뒤뜨 'Winter Wind'를 연주하는 장면이 나온다. 러시아에서 클래식을 전공한 '돈 셜리'는 ‘흑인은 재즈나~’라는 미국 백인 상류사회의 고정관념 때문에 공연에서 주로 재즈를 연주하지만 흑인들이 가는 식당에서 보란 듯이 멋지게 쇼팽을 연주한다. 쇼팽의 곡을 나만큼 치는 사람은 없다고 했던 말을 증명이나 하듯 신들린 손가락으로 연주한다. 멋진 장면인데 그 영상은 공개되지 않아 아쉽다.

다음으로 4개상을 거머쥔 <보헤미안 랩소디>는 영국보다 한국에서 인기가 더 좋았다고 한다. 거의 천만을 육박하는 관객으로 전 세계 흥행성적 1위다. 작년 10월에 개봉했는데 아직까지 상영 중이다. 한국에서 개봉된 음악영화 중 1965년 제작된 ‘The Sound of Music’을 제외하고 이런 기록은 없지 않을까 싶다. 퀸을 모르는 연령대인 20-30대도 이 영화에 빠져들었다고 한다. 퀸 음악의 힘과 독특한 스토리, 배우들의 연기력이 영화의 인기를 떠받치지 않았나 싶다.

<로마>는 한국에서 곧 개봉될 영화다. 2월 27일 개봉한다고 하니 시간 내서 꼭 보고 싶다. <로마>말고 외국어영화상은 받았으면 하는 영화가 있었다. 폴란드 영화 <콜드 워(Cold War)>다.

▲ 영화 포스터(사진 출처 : 다음 영화)

<콜드 워>는 제71회 칸영화제 감독상과 2018년 뉴욕비평가협회 최우수외국어영화상을 수상했다. 제91회 아카데미 감독상, 촬영상, 외국어영화상에서 최종 후보에 올랐지만 상은 받진 못했다.

<콜드 워>도 폴란드 피아니스트와 가수 이야기라 음악이 많이 나온다. <치코와 리타>가 생각난다. 그들도 공산국가 쿠바의 피아니스트와 가수의 이야기다. '치코'와 '리타'는 1948년에 만나, 만남과 헤어짐을 반복하면서도 47년 동안 사랑을 지킨다. 너무 오래 걸리긴 했지만... 청춘은 다 가고 없지만... 그래도 47년 만에 행복한 재회를 한다.

<콜드 워>의 두 주인공은 피아니스트 ‘빅토르’와 가수 ‘줄라’다. 간단 줄거리는 이렇다.

빅토르는 폴란드 민속음악을 발굴하여 이를 부를 악단을 모집하는 음악감독이자 피아니스트다. 1949년, 빅토르는 단원 모집 과정에서 줄라를 만나 사랑에 빠진다. 줄라는 약점을 잡혀 빅토르를 감시하라는 명령을 받는다. 악단이 성공하자 공산체제를 선전하는 도구로 이용된다. 1952년, 불안한 사랑과, 감시, 강압에 지친 둘은 베를린 공연 중 탈출하기로 하지만 빅토르만 탈출한다. 1954년, 줄라는 악단 공연차 파리에 온다. 재회의 기쁨도 잠시 줄라는 다시 폴란드로 돌아간다. 1959년, 줄라는 다시 파리에 온다. 하지만 줄라는 소외감을 견디지 못하고 폴란드로 돌아간다. 빅토르도 줄라를 찾기 위해 폴란드로 돌아간다. 빅토르는 조국을 배신한 죄로 감옥에 갇힌다. 1964년 감옥에서 나온 빅토르는 줄라를 찾아간다. 둘은 처음 만났던 폴란드 시골로 간다. 폐허가 된 시골 성당에서 둘만의 결혼식을 올린다.

<콜드 워>의 매력을 보자면...

첫째, 흑백 화면이다. 화면은 4:3 사이즈로 정사각형에 가깝고 화질이 양호하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 그래서 그 시대에 찍은 흑백 다큐를 보는 것 같다. 마치 오래 전에 찍어 보관했던 빛바랜 필름 하나가 어느 누군가의 정성어린 손길을 거쳐 세상에 나온 느낌이라 할까? 영화는 꼭 수묵화 같다. 동양화에서 먹으로만 그리는 것이 가장 어렵다고 한다. 최고 실력자들이 그린 수묵화 한 장 한 장이 화면을 수놓고 있다. 

둘째, 간결함이다. 영화 시간은 88분이다. 요새 대부분 영화가 2시간짜리다. 이 영화도 충분히 2시간으로 만들려면 만들 수 있었을 정도로 강렬한 역정의 스토리지만 구구절절 설명하지 않는다. 깔끔하게 다음으로 이어간다. 마지막 장면은 간결함의 백미다. 영원을 앞둔 두 주인공의 마지막 대사는 “저쪽 자리로 가요. 거기 경치가 더 멋있어요.” 그들은 화면에서 사라지고 빈 의자만이 바람을 맞는다. 너무나 깔끔해서 여운은 더 길게 남는 것 같다.

셋째, 음악이다. 피아니스트와 가수가 등장하는 영화라 귀가 즐겁다. 특히 ‘Two Hearts, Four Eyes’는 시골 소녀가, 합창단원이, 줄라가 부른다. 줄라가 혼자 부르는 버전으로 가면 애절함을 넘어 처절해서 듣는 이의 심장에 균열이 온다. 줄라를 연기한 여주인공 요안나 쿨릭(Joanna Kulig)이 직접 불렀다고 한다. 파리에서 줄라는 영혼이 빠져나간 듯 노래를 부른다. 마치 그가 그녀 인생에서 빠져나갈 것만 같은 허무함을 예감하면서..

슬픈 음악만큼 관객 수도 슬프다. 지난 토요일 3시, 대한극장에서 영화를 보았다. 100 좌석 중 30개도 차지 않았다. 개봉한지 한 달 돼 가는데 2만3천이 약간 넘는다. 언제 종영될지 모를 운명이다. 아카데미상 하나라도 받았으면 장기상영이 될 수 있으련만... 안타깝다.

영화가 끝났다.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고 있었다. 혼자 온 한 사람이 벌떡 일어나 나갔다. 하지만 이후 아무도 자리를 뜨는 사람이 없었다. 아무 말도 없이 그대로 앉아 있었다. 마지막 장면의 여운이 너무 길어 우리 모두를 붙잡아 놓았을까? 그 둘의 사랑이 너무 뜨거워 아쉬움이 깊었을까?

영화 마지막 장면이 끝나고 나오는 첫 멘트는 '부모님께 바칩니다'. 이 영화의 감독은 폴란드 출신 파벨 파블리코브스키다. 감독은 만남과 헤어짐을 반복한 부모님의 40년 간 사랑을 모티브 삼아 10년에 걸친 작업 끝에 만들었다고 한다. 

영화 제목은 왜 <콜드 워>일까? 미국과 소련의 냉전을 말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냉전시대에 살면서 인간의 사랑도 그 시대 희생물이 되었다. 겉으론 격렬한 사랑을 할지라도 자존심 센 둘 간의 보이지 않는 차가운 내면전쟁을 <콜드 워>라 생각해서 이름 지었지 않았나 싶다.

<알리타>나 <극한직업>과 같은 영화만 즐긴다면 지루할 수 있다. 스트레스를 푸는 영화는 아니다 색다름이나 예술성 짙은 영화를 찾는다면 오랫동안 마음에 남을 명작이 아닐까 생각한다.

참고 자료 : 다음 영화 <콜드 워>

편집 : 박효삼 편집위원

김미경 주주통신원  mkyoung60@hanmail.net

한겨레신문 주주 되기
한겨레:온 필진 되기
한겨레:온에 기사 올리는 요령

키워드

#김미경 영화
저작권자 © 한겨레:온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