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공항에 아이를 놓고 비행기를 탄 여성 승객으로 인해 비행기가 회항했다는 뉴스를 보았다. 보통 사람들은 “어떻게 그럴 수 있지? 어떻게?”라고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뭐에 열중하면 그럴 수 있다는 것을 4차원 남편과 살고 있는 나는 안다.

1997년 잠시 미국에 살 때였다. 큰 마트에 장을 보러 남편과 갔다. 나를 마트 문 앞에 내려주고 가까운 곳에 주차 공간이 없어 저쪽으로 가서 주차하고 온다며 먼저 장을 보고 있으라 해서 그리 알고 마트로 들어갔다. 그런데 남편이 오질 않았다. 장을 보면서 두리번두리번 남편을 찾았는데 장을 다 볼 때까지 나타나질 않았다. 사람이 많아서 못 찾나 보다 생각하고 계산을 하고 물건을 카트에 끌고 밖으로 나왔는데도 남편은 없었다. 차에서 쉬나? 잠시 생각했다. 

휴대폰이 없을 때라 연락해볼 수도 없었다. 대체 무슨 일일까? 차에서 잠시 쉰다고 앉아 있다가 잠이 들었나? 주차하러 가다 사고가 났나? 그런 생각도 들었지만 말도 잘 통하지 않을 때라 누구에게 물어보지도 못하고 우두커니 서서 남편만 기다렸다.

얼마나 기다렸을까? 집까지 거리가 좀 돼서 구입한 물건이 많아 들고 갈 수는 없고 반품하고 걸어가야 하나? 길도 잘 모르는데... 버스를 타고 가야하나? 버스 노선도 모르는데... 막막하게 기다리고 있는데 남편이 차를 몰고 나타났다.

어찌 된 일이냐 하니, 주차하러 가는 그 짧은 시간에 나를 내려준 걸 깜박 하고 집으로 가고 있었다고... 그 당시 남편은 하루 16시간 연구에 몰두하고 있을 때라 머릿속이 가끔 텅 빌 때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던지라 짜증내지 않고 용서했다.

그 다음 약 10년 전, 나를 또 두고 간 적이 있다. 그 당시 전철로 출퇴근할 때였는데, 남편이 좀 편하게 가라고 전철역까지 데려다 줬다. 출근 준비가 끝나면 남편은 먼저 나가서 주차장에서 차를 가지고 아파트 입구에서 나를 기다리곤 했다. 어느 날 아파트 입구로 부리나케 가고 있는데 남편이 나를 기다리지 않고 휙 하니 도로로 달려 나갔다. 깜짝 놀라 막 뛰어 갔지만, 남편은 나를 보지 못했는지 계속 달려갔다. 얼른 전화를 했지만 받지 않았다. 어이가 없어서 가만히 서서 지켜보았더니 한참을 달려가다가 끽 하고 서더니 유턴을 하고 돌아왔다.

남편은 “미안해, 당신이 타고 있는 걸로 착각했어.”라 했다. 나의 존재와 부재를 헷갈릴 만큼 내가 존재감이 없다는 것에 섭섭했지만 그때도 연구에 몰두하고 있었을 때라 웃으면서 용서했다.

▲ 작년 여름 계족산에서, 요새는 이렇게 나를 졸졸 쫓아 다닌다.

요새는 그런 일이 없다. 30년 지나 뒤늦게 내가 남편 머릿속에 확실히 박혔다고나 할까? 가끔 산행을 할 때 무슨 생각을 깊이 하는지, 내가 오거나 말거나 혼자 온 사람처럼 걸어갈 때도 있지만 대부분 나를 먼저 챙긴다. 하긴 이 나이에 나를 두고 가면 어쩔 것인가? 심히 구박을 받거나 더 심하면 황혼이혼 당하기 십상이지...

편집 : 김동호 편집위원

김미경 주주통신원  mkyoung6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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