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사시] 제주 4.3 관련, 행방불명이 되어버린 막내 삼촌 이야기

▲ 제주 4.3 평화공원

 

지금도 제주휘파람새는 울고 있다

김광철

 

해마다 보리가 누렇게 익을 때면 제주휘파람새는 더욱 구슬피 울어 댄다. 가련한 막내 삼촌 혼백이 우짖는 소리인양.

막내 삼촌 제삿날은 태어난 날이다.

내가 우리 아버지 밑에 막내 삼촌이 있었다는 것을 안 것은 초등학교 3학년 때쯤이다. 할머니는 삼촌이 살아있을지도 모른다며 제사 같은 것은 생각도 않으시다가 십 수 년을 기다려도 소식이 없자 막내 아들을 생각하며 친척들을 부르지 않고 조용히 뫼 한 그릇에 갱 한 그릇 떠 놓곤 하셨다.

영문도 모르고 제삿날이면 떡도 먹고 생선도 먹을 수 있어 그저 좋았지만 막내 삼촌 이야기를 알고부터는 그 떡이 떡 맛으로 다가오질 않았다.

"막내 삼촌이 계셨느냐" 아버지께 여쭈면 고개만 끄덕이실 뿐.
그러다 소주 한 잔 거나하게 걸치신 날엔 삼촌 이야기를 슬쩍 늘어놓으며 눈물을 흘리셨다.
"지레가 나보다 한 뽐은 더 컸져"
"인물이 하도 잘나고 공불 잘허니 동네에서 내 노라 하는 누구누구 집 처녀가 삼촌을 졸졸 따라 다녀신예“
"서귀국민학교 6년을 졸업하고 공부를 잘허난 제주시에 있는 농업학교를 보내신예"
일제가 물러간 해방 정국에서 제주농업학교는 제주의 최고 명문이었다.
"인물 좋고 지레도 크고 공부 잘허난 선생들의 신임이 두터워 학생회장을 시켰쟁 해라"

그 삼촌이 농업학교를 졸업하고 서울로 대학을 가기 위하여 둘째 형님과 함께 시험을 치고 오는 길에 목포항 터미널에서 잡혀갔다는데 그 후 어디에 갇혀 있는지, 죽었는지 살았는지 알 길이 없다 한다.

할머니, 할아버지 속이 얼마나 타 들어갔을까?
해마다 2월부터 제주휘파람새는 우리집 주변 돌담 위며 동백나무 가지 사이로 날아들어 '쿄오오오, 쿄오오옥' 울어댄다.
그 새소리를 들으며 할머니는 휘이휘아 한숨을 쉬신다.

이제나 저제나 불쑥 찾아와 “어머니, 나 왔수다" 할 것만 같은데...
차가운 서북풍에 실려오는 소리는 '대전형무소‘에 갇혔더라 하고
마파람에 실려오는 소리는 '인천형무소‘에 갇혔더라 하고
새파람이 불 때는 6.25때 인민군 장교 복장을 하고 서울 거리를 활보하고 있다더라 하고.
다 바람이 전하는 환청일 뿐.

4.3 때 총을 든 것도 아니고, 삐라를 뿌린 것도 아니고, 그저 학교 간부로 활동을 했을 뿐인데. 4.3이 터지고 1년 간 무사히 학교 잘 다니던 삼촌이 영문도 모르고 붙들려 갔으니 6.25 전쟁 통에 후퇴하는 군인과 경찰의 총질에 살아남았을 리 있겠나.
지금은 ‘고등학교 2학년 짜리 어린 삼촌이 무슨 대단한 사상을 지녔길래..’ 생각해 보지만.

5.16 이후에는 대공분실이나 경찰에서 한 달에 한 번 둘째 큰아버지를 통해 삼촌 관련 소식이 있는지 탐문을 하고 갔단다. 그러니 우리 집에서 '막내 삼촌' 이야기만 나오면 쉬쉬다.

우리 사촌형은 60년 대 외국에 나갈 일이 있어도 신원조회에 걸려 나갈 수가 없어 통곡하고 우리 아버지는 "너네는 사관학교는 갈 수 없다"며 우리 막내 삼촌 이야기는 쉬쉬, 쉬쉬, 금기어였다. 공직에 나가는 걸림돌이 될지 모르기 때문에 더더욱 아이들한테는 이야길 해 주질 않고 입단속을 했다.

삼촌께서 살아만 계시다면 오고 가는 바람결에라도 소식이 들려올 것이고, 겨울철에 날아드는 원앙이를 통해서 나뭇잎 편지라도 물어다 주지 않았겠나.

얼굴 한 번 본 적도 없는 그 상남자 삼촌이 4.3평화공원에 이름 석 자 남겨놓고 가셨다. 시신은 고사하고 사진 한 장 안 남기고 증발해 버린 막내 삼촌. 제주휘파람새가 피를 토하는 울음 울며 우리 집 주변을 맴돌 때면 돌아가신 지 몇 십 년이 지난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원통해하던 모습이 선연하고 아버지 삼 형제의 모습을 합성한 육 척 장신의 삼촌이 내 앞에 나타나 광란의 세월에 대한 한을 삼키며 눈물지으며 무슨 말씀인가 하실 것만 같다.

'쉬쉬가 전부가 아니여, 이 억울한 사연을 널리 알리고 풀어줘야지'
쉬쉬 들었던 얼굴 모르는 삼촌이 해마다 4.3 때면 쉬쉬하며 다가와 하시는 말씀이다.

이제는 저 세상 분이 되어버린 할아버지, 할머니, 큰아버지, 아버지, 사촌형의 쉬쉬하던 이야기의 편린들은 깨진 화석 조각으로 나뒹글고 있다. 그 조각들을 찾아 진실의 퍼즐이라도 맞춰드리고 싶지만 그 진실이 무엇인지... 무심히 떠가는 하얀 구름이 말해주리오. 방향도 없이 불어와 가는 곳도 모르고 흩어지는 바람결이 전해주리오.

보리를 벨 때면 어김없이 찾아드는 제주휘파람새의 울음소리는 더욱 처연하다.

 

<주>

• 지레가 나보다 한 뽐은 더 컸져 : 키가 나보다 한 뼘은 더 컸다
• 다녀신예 : 나녔다네
• 보내신예 : 보냈다네
• 시켰쟁 해라 : 시켰다고 하더라

 

편집 : 양성숙 편집위원, 심창식 편집위원

김광철 주주통신원  kkc0828@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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