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도르프 아웃렛과 태양광 발전기들

▲ 판도르프 아웃렛 주변에는 수많은 풍력발전기들이 돌아가고 있었다.

2014년 전교조 교사들이 중심인 동유럽 연수단 '베캄원정대'는 오스트리아 비엔나의 중앙묘지를 둘러보고 나서 헝가리를 향해 길을 나섰다. 비엔나와 헝가리 부다페스트를 잇는 4차선 고속도로를 달리다가 비엔나의 '판도르프 아웃렛'을 들렀다. 점심 식사도 하고, 값싼 쇼핑도 하기 위해서다.

▲ 판도르프 아웃렛 안내판
▲ 판도르프 아웃렛은 비엔나 등 오스트리아 사람들은 물론 세계 각지에서 몰려드는 관광객들의 쇼핑으로 넘쳐나고 있었다.

판도르프 아웃렛이 들어서 있는 넓은 들판에는 헤아릴 수 없이 많은 풍력발전기들이 돌아가고 있었다. 그들이 생산한 전기를 옮겨 나르는 전신주와 전선들이 들판 위 허공에 무수히 널려 이어져 있었다. 오스트리아는 인구가 850만 명 정도 되는 별로 큰 나라는 아니다. 더구나 알프스 산자락에 자리 잡고 있어서 소수력 발전 등을 할 수 있는 조건은 그런대로 갖추고 있지만 전력이 그리 풍부하다고는 할 수도 없다.

오스트리아의 수도 비엔나는 유엔산하기구와 석유수출국기구, 국제원자력기구의 본부가 있는 에너지 관련 국제회의의 중심지로 그 명성을 이어가고 있다. 원자력 이용에 관한 주요 정책이 결정되는 곳이지만. 정작 오스트리아에는 가동 중인 원자력 발전소는 없다. 원자력 발전을 법으로 금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오스트리아가 원자력 발전을 처음부터 반대한 건 아니다. 비엔나에서 30km 거리에 있는 츠벤텐도르프 발전소는 1978년 완공되었는데, 오스트리아의 첫 핵발전소다. 750메가와트 용량의 원자로 2기로, 180만 가구가 사용할 전기를 생산할 계획이었다.

핵발전소가 가동되면 수십억 실링의 경제효과를 내면서 정체된 경제를 활성화시키고, 소비 지출도 늘게 될 것으로 전망되었다. 하지만 가동을 앞두고 안전성 문제가 불거졌고, 격렬한 핵발전 반대 시위가 벌어졌다. 핵발전소의 가동 여부는 사상 첫 국민투표에 부쳐졌고, 개표 결과 2만 표, 불과 0.9% 차이로 반대 여론이 앞섰다. 결국 원자로에서 핵연료가 분리되고 핵발전소는 한 번도 가동되지 못한 채 그 기능을 상실했다.

▲ 2017년 3월 4일 광화문 광장에서 대학교수, 교사, 법률가 등이 대선 후보 탈핵 공약을 요구하는 선언문 발표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나는 2011년 3월 일본의 후쿠시마 핵발전소가 폭발하는 것을 보면서 멘붕에 빠졌다. 나름대로 당시까지 기후변화 문제라든가 4대 강 반대, 새만금 반대 등 생태와 환경 보전을 위해 사회 운동과 교육 운동에 앞장서고 있다고 자부하고 있었다. 당시까지만 해도 핵폐기장 부지 선정과 관련하여 인천, 안면도, 부안 등 많은 지역에서 격렬한 반대 운동이 일어나곤 했지만 핵발전소 자체가 폭발한 것은 그보다 한참 전 우리와는 멀리 떨어져 있는 구소련의 체르노빌이었다. 그 사태 후에도 핵사고는 먼 나라 일로 받아들였다. 그러나 일본 후쿠시마 핵발전소가 폭발하는 것은 남의 일이 아니라 바로 우리의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 2017년 2월~4월 광화문 광장에서 '대선 후보 탈핵 공약하라' 요구하는 천막 농성장에서의 필자와 격려방문차 들른 청주지역 활동가들

후쿠시마 사고 이후 우리나라에서도 격렬하게 탈핵운동이 여기저기서 일어났다. 나 같은 경우는 교직에 있으면서 방학을 이용하여 강원대 성원기교수 등과 함께 전국의 시군 지역을 안 돌은 지역이 없을 정도로 탈핵도보순례를 하면서 탈핵 정책의 필요성을 많은 국민들에게 알리고 다녔다. 그 결정판은 촛불정국 이후에 있었던 대통령 선거에서 '대선후보 탈핵 공약하라'를 외치면서 영광에서 광화문까지 탈핵 도보순례를 마치고 나서 광화문 광장에서 천막농성에 들어간 것이다. 당시 추운 2월 광화문에서 천막 농성을 하는 노동자들 틈에 끼어 '대선후보 탈핵 공약'을 외치면서 릴레이 천막 농성에 들어갔다.

다행히 당시 유력한 대선후보들 중 자유한국당의 홍준표 후보만 탈핵 공약을 내세우지 않았고, 문재인, 안철수, 유승민 후보까지 탈핵을 공약으로 내걸도록 국민적 탈핵 열망이 높았다. 결국 문재인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이 되면서 우리 한국은 탈핵의 길로 나서게 되었다. 그러나 문대통령 취임 후 신고리 5,6기는 공론화 과정을 거치면서 기어이 공사 재개를 하였다. 그럼으로써 엄밀히 이야기한다면 우리가 완전 탈핵이 이루어지는 것은 2080년대에나 가능하게 되었다. 그러나 요즘 자유한국당은 틈만 나면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정책을 폐기하라고 요구한다. 소위 핵마피아라 불리는 한국 원자력공학과 교수들과 그 출신들, 한수원 노조, 조중동 등 보수언론, 핵발전 산업에 컨소시엄 등을 구성해 끼어들고 있는 대기업 등은 줄기차게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정책을 반대하며 시비를 건다.

▲ 오스트리아는 풍력뿐만 아니라 수력을 통하여 60% 정도의 전기를 생산하고 있는 재생에너지 모범 국가이다. 우리가 벤치마킹해야 한다.

오스트리아의 경우도 그렇지만 대표적인 탈핵 국가인 독일을 비롯하여 스위스, 벨기에, 이탈리아, 스웨덴 등 많은 유럽국가들은 탈핵 기조로 에너지 정책을 가져가고 있다. 한 때는 전체 에너지의 80% 정도를 핵발전을 통하여 해결하던 프랑스마저도 그 비율을 점차 줄여가고 있다. 그도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핵발전 사고는 한번 일어나면 경제는 물론이고 국민의 안전성 등 거의 국가 존망이 위태로운 지경에까지 이른다. 거기다가 미국의 스리마일, 구소련의 체르노빌에 이어서 일본 후쿠시마 등 핵 선진국들이 핵발전 사고를 보면서 핵발전이 안전하다는 논리가 얼마나 허망한 것인지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오스트리아는 전체 신재생에너지가 차지하는 비중이 34%에 이른다. 유럽연합의 평균보다 높다. 그리고 오스트리아는 수력발전이 전체 전기 생산량의 57%에 이른다고 한다. 물론 알프스산 계곡들을 이용하여 소수력 발전 등을 통하여 많은 전기를 생산하여 활용하고 있는 것이다. 이외에도 풍력과 태양광, 바이오메스 등 가용할 수 있는 재생에너지 자원들을 잘 활용하면서 수동하우스 등 건물의 단열 정책을 가장 모범적으로 이루고 있는 나라이다. 겨울철에는 건물을 덮어씌워 보온을 하는 방식의 수동하우스는 세계 제일이라고 한다. 우리나라는 재생에너지 사용비율이 1~2%에 머무르고 있으면서 에너지 소비량은 그 어떤 나라 못지않게 높은 현실은 참으로 반성할 점이 많다. 미세먼지를 줄이기 위해서라도 석탄발전소 대신 태양광, 풍력 등 재생에너지 발전으로 전환을 가속도내어 이루어 나가야 한다.

▲ 오스트리아의 드넓은 평원에는 옥수수, 밀, 감자 등 많은 농작물들이 자라고 있다.

오스트리아의 귀싱시는 1990년대 초까지만 해도 오스트리아에서 가장 가난한 마을이었다고 한다. 주민들은 옥수수와 해바라기씨유, 목재 등을 생산하여 생계를 유지했다. 변변하게 관광지로 내세울만한 것도 마땅치 않았다. 젊은이들은 일자리를 찾아 비엔나, 그라츠 등의 인근 대도시로 빠져나갔다. 귀싱 주민 중 70%가 인근의 대도시로 출퇴근하였고 타 지역으로 전출 비율도 매우 높았다. 인구 감소와 높은 실업률, 고령화 문제가 심각해지면서 귀싱시는 베드타운화 되었다.
그렇지 않아도 어려운 살림에 귀싱 지역 28개 마을에서는 주민들이 에너지 구입을 위해 해마다 에너지 3,600만 유로(한화 540억 원) 정도를 외지로 지출해야 했다. 낙후된 농촌 마을이 이러한 에너지 비용을 지불하는 것 자체는 큰 부담이었다. 이에 귀싱 지역 정부는 ‘화석연료로부터 100% 독립한다’는 정책을 수립하고, 구체적인 에너지 절약 프로그램과 함께 재생 에너지 발전 시설에 투자하기 시작했다.
귀싱시는 풍부한 농업 자원, 즉 나무와 폐식용유, 가축 분뇨 등의 농업 부산물인 바이오매스를 이용하여 에너지 생산 시설을 구축했다. 귀싱시의 이러한 모험은 유럽 최초, 재생에너지를 이용한 전기, 냉·난방, 연료 에너지 100%를 자립한 곳으로 탈바꿈 시켜 놓았다고 한다. 귀싱시는 재생에너지 보급을 통해 2005년 기준 에너지 관련 매출액만 연간 1,360만 유로(한화 약 176억 원)의 수입을 올린다고 한다. 그 외 매출을 포함해 연간 순수익은 900만 유로(한화 약 116억 원) 정도를 얻었다. 50개 이상의 에너지 기업이 귀싱시에 자리를 잡아 1,100여 개의 새로운 일자리도 만들어졌다. 에너지와 관련한 연구 성과들은 세계의 여러 마을로 판매되었다. 귀싱시의 재생에너지 정책을 배우기 위하여 전 세계의 많은 에너지 전문가들과 관광객들이 몰려들고 있다.

▲ 우리 연수단은 판도르프 아웃렛의 식당에서 팀별로 자유 점심식사를 했다.

우리 '베캄원정대'는 드넓은 벌판을 뒤덮고 있는 오스트리아의 풍력발전기들을 보면서 '반도르프 아웃렛'에서 각자 팀별로 자유 점심식사 시간을 가졌다. 점심 식사가 끝난 후 여행을 마치고 귀국할 때 가족이나 지인 등에게 선물할 것들 잠시 쇼핑을 하였다. 그 후 다시 비엔나와 부다페스트를 잇는 고속도로를 달렸다. 유럽에는 인구수나 국토 면적을 따져보았을 때 독일, 프랑스, 이태리, 폴란드 정도를 제외하면 국토 면적이 넓은 나라도 별로 없다. 유럽연합 전체 면적을 다 해도 중국 정도 밖에 안 되지만 많은 국가들과 국민들이 모여 살 수 있는 것은 역시 드넓은 유럽 대평원 때문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게 했다. 비엔나와 부다페스트로 이어지는 고속도로 주변은 가도 가도 끝이 안 보이는 드넓은 대평원이었다.

▲ 오스트리아와 헝가리를 잇는 고속도로 주변의 해바라기 농장이 펼쳐진 대평원
▲ 비엔나와 부다페스트를 연결하는 4차선 고속도로

그 평원 위에 밀과 해바라기, 옥수수 등의 작물들이 재배되고, 목축업을 하는 광경들, 풍력발전기가 돌아가는 것들만이 우리 눈에 들어왔다. 문화 강국이면서 경제적으로도 풍요롭고, 환경적으로도 살만한 나라, 특히 전 세계인들이 살기 좋은 도시 1위로 꼽히는 비엔나를 멀리두고 부다페스트를 찾아 나선 것이다.

편집 : 박효삼 편집위원, 심창식 편집위원

김광철 주주통신원  kkc0828@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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