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많은 동서양 고전(古典)이 있지요. 책(冊) 중에 책을 고전이라 하지요. 고전 중에 고전은 경(經)이지요. 모두 경전(經典)이라 할 수 있지만 구별해 본 것이지요. 한 마디로 진리, 지혜 말씀을 엮어 놓은 고전(classic)이네요.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서 널리 읽고 보는 문학 영역의 예술 작품이지요.

경(經)의 어원은 형성글자로서 금문金文에서 ‘巠(경)’은 베틀에 세로 곧게 단단히 켕긴 날실의 상형으로 날실의 뜻이고, ‘糹(가는 실 멱)’을 덧붙여 뜻을 명확히 한 글자이네요. 다른 측면에서 ‘경經’ 자를 파자(破字)해 보면 물이 한 곳으로 모이고, 하늘과 땅과 사람이 하나가 되고, 가로 세로 씨줄 날줄로 옷감을 짜고 있지요. 진리, 도, 법(眞理 道 法)의 의미를 담고 있네요.

경經에는 시경, 서경, 역경(3경), 불경, 도덕경(노자), 바이블(성경) 등등 그 외에도 많은 고전들이 있지요. 이 중에는 이름 모를 수많은 성현(聖賢)들에 의해 집필되어 전해 온 책들과 정확히는 모르지만 작가와 연대를 추정해 볼 수 있는 책들도 있네요. 이런 문헌학적 고증은 학자들에게 맡기고 우리는 선인들이 전하려 했던 진리의 고갱이를 이해하고 현대에 맞게 수용하면 되겠지요.

▲ 노자(사진 출처 : 2012년 10월 5일자 한겨레)

<노자(道德經)>라 하면 무위자연(無爲自然)을 떠올리지요. 바로 노장사상(老莊思想)이지요. ‘함이 없는 자연, 인위와 조작이 없는 스스로 그러함, 자연과 일치하는 삶, 자연스러움’을 말하네요. 그런데 오늘날 우리들은 이와는 동떨어진 최첨단 과학문명의 홍수 속에 살고 있지요. 4차 인공 지능시대라고 하지요. 부자연스럽고 인위적인 것들이지요. 편리함을 추구한 그 결과는 자연스러움과 멀어졌고 지구촌의 재앙과 맞닥뜨리고 있네요.

이미 많은 학자들이 여러 가지로 그 해법을 제시했고, 노장사상에서도 찾아야 한다고 부르짖어 왔지요. 사실 그러한 가르침들은 우리 몸과 마음과 주변의 자연에 항상 흐르고 있는 것들이지요. 이 순간도 물이 낮은 곳으로 흐르듯이...

 ▲ 산줄기 사이에는 계곡이 있고, 계곡에는 물이 있다. 물은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른다. 한 지점에서 발원한 물은 낮은 곳으로 흐르고 흘러 바다에 닿는다. 다시 공중으로 증발해 비로 내려 만물을 키운다. 그래서 노자는 ‘상선약수’(上善若水)라 했다(글, 사진 출처 : 2016년 6월 23일자 한겨레21).

지금 이 순간에도 인간들은 이기적 편리함을 추구하기 위해 쉬지 않고 지구 파괴 작업을 진행하고 있지요. 인간들이 이 생존의 열쇠를 모두 쥐고 있지만 순간순간 길을 잃고 있네요. 똑똑한 것 같지만 어리석은 것이지요. 살아남는 자만이 살아남아 있다가 언젠가는 지구별과 함께 모두 사라지겠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틈틈이 신발 끈을 조이고 나서 봐야하겠지요.

<노자老子>를 <도덕경道德經>이라 부르기도 하고 5천 여 글자로 이루어져 있네요. 내용도 얼핏 보면 지나치다 싶게 정치적으로 보이는 몇 장을 빼고는 논어나 맹자처럼 일상의 삶의 문제를 다루고 있지도 않네요. 그런데 중국의 수많은 고전 가운데서도 유독 이 노자만이 특별한 외경심(畏敬心)으로 다루어지고 있는 까닭은 무엇일까요?

<장자莊子>와 더불어 도가 사상의 근원을 이루면서도 장자가 자유분방하고 종횡무진한 비유로 일관돼 있다면 노자는 다만 신비한 면모를 띠고 <무위자연 사상無爲自然 思想>을 역설하고 있지요. 바로 이 무위사상이 노자 속에 묻혀있는 보석이라 할 수 있겠네요. 또 하나는 유무상생(有無相生)이지요(도덕경 2장). ‘있고 없음은 상대적인 것에 의해 생겨나는 것이므로 비교하지 말라’는 것이지요. 불교철학의 차별 분별하지 말라. 곧 색즉시공 공즉시색(色卽是空 空卽是色)과 연결이 되는 핵심 요체이네요.

노자는 <도덕경>이라 하여 경經의 반열에 올라 있지요. <장자莊子>는 그러하지는 못하지요. 노자가 무위자연을 말하면서도 권력을 가진 자의 덕치에 관한 말씀이기 때문이겠지요. 중국인들의 현실적이고 실리적인 측면이지요. 반면에 장자는 깨달음의 경지와 초월의 말씀이라서 현실성이 없다는 면이 강하지요. 물론 장자를 <남화진경南華眞經>이라고도 부르지만 도교 신앙적인 면이지요. 그래서 제자백가(諸子百家)의 모든 사상 철학들이 <주역周易>에 수원(水源)을 두고 있지만 장자는 주역의 범주에서 가장 멀리 떨어져 있다고 하네요.

<장자>는 분량이 많네요. 비판(批判), 조화(調和), 초연(超然)의 3가지 정신으로 요약할 수 있다고 하지요. 인도 불교가 중국에 들어 올 수 있었던 것은 노장 老莊의 그릇이 있었고(格義佛敎), 중국 특유의 선불교(禪佛敎)로 꽃 피워낼 수 있었던 것은 그 중에 장자의 경지가 있어서였다고 하지요(존 C.H 우).

동양 3교라고 하는 유교, 불교, 도교(儒佛仙) 공부는 서로 통해 있기 때문에 함께 공부하면 좋지요. 그리고 중국에서는 세 가지 현묘한 책이라 하여 삼현(三玄)을 말하지요. 주역周易(冠) 노자老子, 장자莊子이네요. 물론 으뜸은 <주역>이지요. 평생 공부해야 할 책들이네요.

요컨대, 경서 공부는 우주 인생 진리 공부이지요. 노장사상을 30년 공부하고 노자(老子), 장자(莊子)를 안다고 말하는 것은 세계 여행 30년을 하고 지구를 안다는 말과 같지요. 또한 인생 60년을 살고 우주를 안다고 하는 말과 같지요. 그래서 경서를 공부할 때는 ‘오직 모를 뿐! 오직 할 뿐!’이라는 화두(話頭)를 지니고 그냥 하는 것이지요.

‘나는 누구인가?’ ‘너 자신을 알라’는 말은 자신의 무지(無知)를 깨달으라는 말이겠지요. 지구상에 왔다간 수많은 성현, 사상 철학가들의 공통된 말씀은 ‘존재의 자각, 자신의 무지를 자각’하라는 말이네요. 그렇지 못하면 ‘살아도 사는 것이 아니고, 헛사는 것’이라고 하지요. 꼭 마음에 새겨야 할 말이네요. 인생의 모든 불행과 고통은 무지에서 시작한다고 하네요. 평생을 공부하다가 ‘모른다는 것’을 철저히 깨닫고 자연으로 돌아가는 것이 인생의 마지막 할 일이 되겠지요.

[편집자 주] 한겨레 주주인 김상학 선생님은 현재 대학 교육원에서 주역, 노자, 장자, 역학 등을 강의하고 있고, 한민족의 3대경서를 연구하고 있다.

편집 : 안지애 편집위원

김상학 주주통신원  saram54@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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