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뉴브강 유람선 사고가 하루 속히 수습되어 아픈 유족들 마음을 조금이라도 달래주었으면 좋겠다

▲ 동녘 하늘에 보름달이 두둥실 떠올라 강물을 비추는 다뉴브강의 풍경은 그야말로 황홀경이었다.

지난 5월 29일 저녁 9시(현지 시간) 헝가리의 수도 부다페스트 한복판을 가로질러 흐르는 다뉴브강 유람선이 크루즈선과 충돌하여 7명의 사망자와 19명이 실종을 하는 사고가 일어났다. 그중 헝가리인 2명을 제외하고 대부분 한국인 관광객들이라고 하여 정부 당국은 물론 많은 국민들이 안타까워하고 있다.

침몰된 배를 인양하여 선장과 한국인 시신을 수습하기도 하였지만 아직도 실종자들이 세 명이 남아 있다는 소식이다. 이미 유해는 찾았지만 아직도 수습이 안 되고 있는 그 가족들의 애통한 마음이 오죽하겠는가? 하루빨리 남아있는 실종자들의 유해라도 수습이 되어 국내로 돌아올 수 있기를 기원해 마지않는다. 사고를 당한 분들의 명복을 빌며, 유가족들에게도 심심한 위로의 말씀을 드린다. 헝가리 당국은 물론 한국 정부, 여행사 등은 이번 사고에 대하여 배상은 물론 앞으로 이런 사고가 일어나지 않도록 세심한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 다뉴브(도나우)강이 잘 내려다보이는 겔레르트의 높은 언덕에서 기념사진을 한 컷 찍고
▲ 유람선을 타고 달리면서 사진기에 담은 다뉴브(도나우)강의 거센 물결
▲ 페스트 지역 도시의 모습
▲ '도나우강의 진주'라 불리는 부다페스트의 도나우강 상에 떠 있는 여의도 크기의 하중도 '마가리트섬'
▲ 해질녘에 강 건너 쪽에서 바라보는 세계 5대 국회의사당이라는 다뉴브강변에 위치한 헝가리 국회의사당의 웅장한 모습
▲ 밤에 유람선을 타고 도나우강을 여행하면서 강상에서 바라보는 헝가리 국회의사당의 화려한 모습

나는 이번 헝가리 다뉴브강에서의 사고를 보면서, 지난 2014년 8월 전교조 소속 교사들이 중심이 된 '베캄원정대'의 동유럽 4개국 연수를 다녀올 때를 떠 올렸다. 당시에도 여행 중에 한국 관광객들을 많이 만날 수 있었는데, 그만큼 헝가리 부다페스트는 한국인들에게도 유명한 관광지인 것이다.

▲ 겔레르트 언덕에 있는 '시타델라 요새', 제2차 세계 대전이 얼마나 치열했는지 총탄과 포탄 자국들이 선연하게 남아 있다. 2차 대전의 승리를 기념하기 위하여 소련이 세운 자유의 여신상이 우뚝 서 있다.
▲ '어부의 요새'로 헝가리는 외침을 많이 받아 잦은 전쟁을 겪었는데, 그 때마다 이곳 다뉴브강에서 고기잡이를 하던 어부들이 이곳 겔레르트 언덕 중간에 자리 잡고 있는 이곳 요새로 올라와 치열하게 전투를 벌이며 저항을 했다고 한다.

오스트리아의 비엔나에서 헝가리 부다페스트로 넘어오자마자 마주한 곳이 이 다뉴브강이다. 바로 이 다뉴브강에서 유람선을 타기도 하고, 부다페스트의 둘째 날 밤에는 이 강의 여러 다리들을 건너기도 하면서 야경을 즐겼다. 그렇기 때문에 다뉴브강의 유람선 사고는 남의 일 같지 않고 더욱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당시 여행길에서 부다페스트와 다뉴브강에서 찍었던 사진들과 여행기를 다시 들춰 보면서 기억을 더듬고, 인터넷 등을 통하여 관련 자료들을 더 확인하고 보완하면서 본 여행기를 써 내려가고 있다. 

▲ 겔레르트 언덕을 오르면서 만난 '당아욱'. 우리나라에도 귀화하여 전국 각지의 길거리에서 쉽게 만날 수 있는 식물이 이곳 헝가리에서 만나니 더욱 눈길을 끌었다.
▲ 겔레르트 언덕을 오르면서 만난 '가중나무'. 우리나라에도 귀화되어 도심 곳곳에서 만날 수 있다. 우리나라에 귀화되어 있는 수목, 족제비싸리, 아카시와 더불어 세종이 있는데, 그 중의 하나이다. 동유럽 여행 중에 만났으니 얘 또한 반갑지 않겠는가?

지구상에 물이 없었다면 생명체는 존재할 수 없다. 물은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르면서 이 골짜기, 저 골짜기에서 모인 물들이 내를 이루고, 그 내들이 모여 큰 강을 이루어 바다로 흘러들어 간다. 그 과정에서 넓은 들을 지나면서 대지를 적시고 토사들을 끌고 와 쌓아 퇴적이 되어 비옥한 땅을 이루기 때문에 강 주변의 범람원과 하구의 삼각주 등은 좋은 농토로 이용된다. 그런가 하면 육로 교통이 발달하지 않았던 시기에는 내륙수운으로 요긴하게 이용되고 있고, 지금도 많은 물자와 사람들을 실어 나르는 교통로로 이용된다. 따라서 사람들은 아주 오랜 옛날부터 강 주변에 많이 모여 살면서 문명을 이루어 오기도 하였다.. 세계 4대 문명의 발상지가 모두 큰 강변에서 이루어진 것이 우연이 아니다. 오늘날도 거대한 도시들은 대부분 큰 강을 끼고 있다.

▲ '도나우강의 진주'라 불리는 부다페스트의 도나우강 상에 떠 있는 여의도 크기의 하중도 '마가리트섬'
▲ 낮에 보는 '체르니 다리', 부다와 페스트 지역을 연결하는 중심에 있는 다리로 체르니 백작의 이름을 따서 붙여진 이름이라 한다.

유럽에서 두 번째로 큰 다뉴브강 역시 이런 인문 사회적 배경과 아주 밀접한 관련을 갖고 오늘에 이르고 있다. 다뉴브강은 유럽에서 볼가강 다음으로 두 번째로 큰 강이다. 독일 남부에서 발원하여 루마니아 동쪽 해안을 통해 흑해로 흘러가는 길이 2,860km의 강이다. 오스트리아와 헝가리 대평원을 지나 헝가리의 부다페스트에 이른다. 여기서 강은 남쪽으로 방향을 바꾸어 흐르면서 카르파티아산맥과 발칸산백 사이의 깊은 협곡을 통과한다. 다뉴브강은 독일, 오스트리아, 체코, 슬로바키아, 헝가리, 세르비아, 불가리아, 루마니아, 러시아 등 동유럽의 9개 나라를 관통한다. 동유럽 나라들의 역사의 흥망성쇠와 삶과 문화에 얼마나 많은 영향을 끼쳤겠는가? 헝가리 부다페스트는 물론이고, 오스트리아의 빈, 체코의 프라하, 세르비아의 베오그라드 등 여러 나라의 수도를 가로지르고 있고, 독일의 울름과 레겐스부르크, 오스트리아의 린츠 등의 큰 도시들을 관통하여 흐르고 있다.

다뉴브강(도나우강)은 동서 유럽을 잇는 동맥으로서 역사적으로 큰 역할을 해왔다. 이미 선사시대부터 이 강을 통하여 동방의 문화가 중부 유럽에 전파었다. 역사시대에 들어와서도 오리엔트의 여러 문화가 이 강을 거슬러 올라가서 중부 유럽에 영향을 끼쳤으며, 로마시대에는 이 강이 북쪽 방어선이 되어, 강 연안 곳곳에 요새가 건설되어 연안도시를 이루는 기초가 되었다. 민족 이동기에는 여러 민족의 통로가 되었고, 마자르인들이나 투르크인 등이 중부 유럽을 침입했을 때에도 그 진로로 이용된 것이다.

▲ 수많은 유람선들이 관광객들을 태우고 부다페스트 도나우강의 다리 밑을 통과하여 쉼없이 물살을 가르고 있었다.
▲ 이번 다뉴브강에서의 한국인 여행객들의 많은 목숨을 앗아간 것도 저 유람선들의 운항과 안전에 관하여 경험이 없는 헝가리 행정의 문제점이다. 저 배들은 그런 사고도 아랑곳 하지 않고 오늘도 많은 관광객들을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좀 더 세심한 안전에 대한 점검이 있어야 할 것이다. 그래야 안심하고 관광객들이 찾지 않겠는가?

중세시대에 도나우강은 동서 상업로가 되어 연안에 발전한 울름, 레겐스부르크, 빈 등의 중세 도시는 이 강을 이용해서 동방무역을 하여, 동방의 향료, 비단, 서방의 모직물, 소금, 보석 등을 거래하였다. 근세 초 하류 유역이 오스만 제국의 영토가 된 후부터 이 강의 통행권이 문제화되고 투르크가 크림전쟁에 패한 후 1856년에 맺은 파리조약에 의해 국제하천으로 규정되어, 영국, 프랑스 등 5개국의 도나우 항행위원회가 이 강의 관리권을 실질적으로 장악하고 있다고 한다.

우리 '베캄원정대'는 오스트리아의 비엔나를 뒤로하고 비엔나 인근의 '판도르프 아웃렛'에서 점심식사를 하고 우리 연수단을 태운 대절버스가 네 시간 남짓 달려 다다른 곳은 다뉴브강이 내려다보이는 다뉴브강의 진주라 불리는 부다페스트의 '겔레르트 언덕'이었다. 이곳은 부다페스트의 랜드마크이다. 겔레르트 언덕이 있는 부다 지역은 부다 왕궁이 있고, 헝가리 역사의 중심지이다. 오스트리아-헝가리 왕국과 오스만튀르크가 이 지역을 지배할 당시 다뉴브강을 사이에 놓고 국경을 이룬 적도 있다. 다뉴브강 건너쪽에 있는 페스트 지역은 넓은 평야지대이지만 과거 오스만 투르크가 지배했던 지역으로 상공업이 중심이지만 부다 지역보다 낙후된 곳이라 한다.

겔레르트 언덕에는 옛날 부다 왕궁이 있고, 현재 대통령 궁이 있는가 하면, 시타엘라 요새가 있다. 시티엘라 요새에는 제2차 세계대전 때 소련이 독일군을 물리친 것을 기념하기 위하여 세워진 자유의 여신상이 우뚝 서 있다. 다뉴브강에서 유람선 여행을 하면서도 그 모습이 선명하게 눈에 들어온다. 그 외에도 부다페스트를 상징할 수 있는 '어부의 요새', '성 마차시 성당' 등 헝가리 역사의 중심을 이루었던 주요 유적들이 많이 모여 있다. 그렇기 때문에 헝가리를 여행하는 사람들에게 이곳은 필수 코스인 것이다. 더구나 석양에 이 언덕에 올라 저녁놀이 드리워 겔레르트 언덕의 그림자가 물에 드리운 금빛 강물은 참으로 대단한 비경이 아닐 수 없다.

세계 5대 국회의사당이라는 헝가리 국회의사당이 강변에 웅장한 모습으로 서 있는데, 밤이 되어 불빛에 둘러싸인 의사당 건물이 다뉴브강에 비친 모습은 참으로 황홀경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이 언덕에 올라 강 건너의 넓은 들판에 펼쳐진 페스트 지역의 도시가 한눈에 들어오는 때문에 겔레르트 언덕에서 내려다보는 다뉴브강은 이곳 여행의 백미일 수밖에 없다. 

▲ 노을지는 어둘녘에 강 따라 바튼 숨 몰아쉬며 열심히 관광객들을 실어 나르고 있는 유람선

다뉴브강은 영어 표현이지만 독일이나 오스트리아 등에서는 '도나우강'이라 불린다. 위키 백과를 보면 다뉴브강의 각 지역별 명칭은 다음과 같다.

▲ '베캄원정대' 동유럽 연수단에는 부모님을 따라온 학생들도 있는데, 이번 유람선 사고에서 쟁점이 되고 있는 구명복을 입히지 않았다는 모습은 예나 지금이나 다름이 없다.

'도나우', '다뉴브'로 불리는 이 강을 소재로 하는 음악과 문학 등 예술 작품들을 많이 대하게 된다. 오스트리아 작곡가 요한슈트라우스의 '아름답고 푸른 도나오'와 루마니아의 '이바노비치'의 '도나우강의 잔물결' 등이 대표적인 곡이다. 이 곡들은 이미 세계적인 곡으로 지금도 많은 세계인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베이징대륙문화미디어'에서 엮은 ‘문명의 강’ 시리즈 제1권이 '예술의 강 도나우'라는 책 제목으로 선정되어 나올 만큼 도나우강은 많은 예술 작품들의 소재가 되고 있는 것이다. 이 책에 의하면,

"유럽의 역사는 도나우 강에서 시작되었다! 도나우 강은 독일의 슈바르츠발트 지역 동쪽 기슭에서 발원한 브리가흐와 브레크 두 지류가 합류하는 도나우에슁겐에서 시작된다. 여기서부터 약 2,850킬로미터의 거리를 남동쪽으로 흐르다가 루마니아의 도나우 삼각주 지대를 거쳐 흑해로 향한다. 로마 제국 초기부터 서양 문명은 도나우 강을 따라 끊임없이 유럽대륙 전체로 퍼져나갔고, 이 과정에서 오늘날 유럽의 근간을 이루는 여러 민족과 국가가 하나둘씩 형성되기 시작했다. 아울러 도나우 강의 양쪽 기슭에서 탄생한 빈, 프라하, 부다페스트, 베오그라드, 사라예보, 소피아, 부쿠레슈티 같은 도시에서 오늘날에도 널리 사랑받고 있는 위대한 예술가들이 탄생해 불멸의 예술작품을 인류에게 선물했다."

▲ 부다와 페스트 지역은 역사적으로 도나우강을 사이에 두고 분리된 적이 있다. 그 두 지역을 연결함으로써 드디어 부다페스트가 된 것이다. 그 두 지역을 연결하는 부다페스트의 도나우강의 상징과도 같은 '체르니 다리'의 야경이다.

음악의 도시 빈과 문학의 도시 프라하를 언급하면서, 부다페스트에 대하여서는 '도나우강의 진주'라고 칭하고 있다.

"도나우 강은 헝가리를 지나면서 같은 지점의 양쪽 기슭에 두 개의 도시, 부다와 페스트를 낳았다. 서쪽 기슭의 부다에는 산으로 성을 쌓은 듯 언덕이 많고, 동쪽 기슭의 페스트에는 평탄하고 단조로운 평야가 많다. 두 도시는 나름의 독특한 역사를 가지고 있지만 결국 하나가 되었다. 바로 이곳에서 훈족들의 말발굽 먼지가 일어났고, 샨도르 페퇴피가 격정에 찬 시를 남겼으며, 러요시 코슈트가 헝가리 독립운동을 벌였고, 프란츠 폰 리스트가 아름다운 피아노 선율을 연주했다."고 서술하고 있다.

▲ 석양이 드리운 도나우강, 희미한 실루엣으로 보는 풍광, 이 또한 아름다운 도나우가 아닐 수 없다.
▲ 저녁놀에 잠들어 있는 부다페스트, 저 해가 곧 산 너머로 가버리면 부다페스트는 화려한 전등빛으로 밝게 비치겠지만...

이바노비치의 '도나우강의 잔물결'은 루마니아 왕국 초대 군악대 총감독을 지낸 그가 1880년 군악대를 위한 곡으로 작곡된 곡이다. 미국에서는 《애니버서리 송》이란 이름으로 불리고 있으며, 우리나라에서는 일제강점기 때 윤심덕(尹心悳)의 (사(死)의 찬미)도 이 곡을 편곡하여 부른 노래로 우리들에게 친근한 곡입니다.

'사의 찬미'를 부른 윤심덕은 사랑하는 사람 '김우진'과 함께 현해탄을 건너오다 바닷물에 몸을 던짐으로써 더욱 유명하게 된다.

부다페스트를 시제로 하여 장요원의 '부다페스트'가 있고, 김춘수의 '부다페스트 소녀의 죽음' 등은 우리나라에서도 널리 알려진 시들이다.

▲ 겔레르트 언덕에서 도나우강을 내려다보면 강 가운데는 한강의 여의도와 같은 하중도 '마르키트'가 울창한 나무숲을 이르며 도나우강의 볼거리를 제공하면서 많은 관광객들을 찾게 한다.

헝가리의 부다페스트를 한복판을 흐르고 있는 도나우강은 낮에 겔레르트 언덕에 올라 내려다보는 경치는 유럽의 그 어떤 곳들의 강 주변의 풍경보다 아름답지만 역시 보름달이 휘영청 밝게 떠 오르는 도나우는 그 어떤 찬사로도 그 아름다움을 다 칭송할 수 없을 만큼 대단하다.

해질녘 여명을 뚫고 동쪽 하늘에 둥실 떠올라 내려 비치는 보름달에 반짝이는 강물살을 상상해 보라. 그리고 도나우강 주변에 흩어져 있는 국회의사당뿐만 아니라 수많은 건물들의 불빛, 강을 가로지르고 있는 '세체니 다리', '자유의 다리', '엘리자베스 다리' 등 많은 다리들을 밝히고 있는 조명들 또한 강물과 어우러져 독특한 밤 풍경을 연출한다. 도나우강 가운데 자리 잡고 있는 '마르기트 섬'에 가 보지는 못했지만 한강의 여의도와 같은 하중도로서 많은 사람들이 사랑을 받고 찾는 곳이라고 한다. 이 섬이 있어 부다페스트의 도나우는 더욱 더 많은 볼거리를 제공하고 즐길 거리가 되고 있다.

▲ 해질녘에 겔레르트 언덕에서 바라보는 헝가리의 국회의사당의 모습
▲ 헝가리의 대툥령궁, 겔레르트 언덕에 세워져 있는데, 관광객들이 그 앞을 자유롭게 왕래할 수 있도록 개방되어 있는 것도 퍽 인상적이었다.

헝가리는 대부분 평야지대이다. 물론 국토의 절반은 산악지역이라 하지만 최고봉이 1,015m인 케케슈 산이라고 하니 우리나라에서는 천마산, 북한산보다 약간 높은 산이 최고봉이라면 이 나라가 얼마나 낮은 지역인지 상상해 볼 수 있다. 사실상 농사를 짓지 못할 땅이 거의 없을 정도의 대평원을 보유하고 있는 나라인 것이다.

▲ 유람선을 타고 도나우강 여행을 하면서 유람선에서 바라다보는 '어부의 요새'의 모습, 요새라는 표현이 어울리게 가파른 강 언덕 중턱에 자리 잡고 있다.

헝가리는 우리나라의 남한 정도의 국토면적에 980만 명 정도의 인구, 1만 4천 달러의 국민소득을 유지하고 있으며, 리스트와 같은 유명한 음악가를 배출했고, 노벨상 수상자가 13명에 이를 만큼 작지만 큰 나라라 하지 않을 수 없다.

편집 : 박효삼 편집위원, 심창식 편집위원

김광철 주주통신원  kkc0828@hanmail.net

한겨레신문 주주 되기
한겨레:온 필진 되기
한겨레:온에 기사 올리는 요령

관련기사 전체보기
저작권자 © 한겨레:온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