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깐 선을 보이고 사라진 모짜르트가 곧 나타나길 기대했지만, 그는 좀처럼 다시 나타나지 않았다. 그런 와중에 약간의 신상 변화가 있었다. 12자리 숫자를 생각할 때마다 일어나던 눈의 경련 현상이 사라졌고, 마음도 차츰 안정이 되어가고 있었다. 12자리 숫자를 해석한 다음, 모짜르트가 등장한 이후에 일어난 변화였다.

모짜르트를 잠시 잊고 지낼 즈음 모짜르트가 밤중에 다시 나타났다. 지난번에는 선만 보이고 사라졌으니 이번에는 무슨 연유로 나타난 건지 밝힐 것이다. 모짜르트가 반가운 표정으로 나를 본다. 나도 두 번째라 그런지 여유 있게 그를 대했다.

▲ 혼령

차 한 잔 마실 정도의 적막이 흐른 후에 놀라운 광경이 벌어졌다. 모짜르트가 나의 손을 덥석 잡아 끌더니 공중 위로 하늘 높이 올라가는 것이었다. 내려다보니 나의 육신은 침대에 누워 있는 채였다. 육신은 잠들고 나의 영이 모짜르트의 손에 잡힌 채 어두운 우주 공간을 유영하다가 어느 한 곳에 이르러서야 비행을 멈췄다.

너무나 뜻밖에 벌어진 일이라 당혹스럽기 짝이 없었다. 모짜르트는 무슨 이유로 이런 돌발적인 행동을 한 걸까. 나에게 한 마디 양해도 구하지 않은 채 말이다. 둘러보니 드넓은 우주 공간에 모짜르트와 나, 단 둘이 있었다. 주위는 평온했고 아늑했다.

우주 의식이라는 게 있다면 지금의 내가 그러할 것이다. 나의 생각과 감정이 갈등과 속박에서 벗어나 자유로운 영혼이 된 것같은 기분이 들었다. 의식세계는 물론이고 나의 무의식까지도 광활한 우주 속에 녹아들어 우주와 혼연일체가 된 듯한 느낌이었다. 적어도 이 순간만큼은 내가 우주이고, 내가 바로 하늘이었다.

우주 공간을 형형색색 수놓은 별들이 눈에 가득 들어왔다. 아름다운 모습이었다. 그 가운데 근사한 하늘정원이 공중에 펼쳐져 있었고 멋진 테라스와 안락한 소파도 있었다. 모짜르트의 친절한 안내로 테라스의 소파에 앉았다. 하늘정원의 테라스에서 바라보는 우주의 황홀한 정경을 어찌 말로 다 표현할 수 있을까.

▲ 추상적인 우주 공간

"이곳은 실은 자연계의 우주 공간이 아니라 영계의 우주 공간입니다. 즉 영들이 거주하는 세계이며 이곳은 영계 중에서도 보호구역입니다. 영계에도 자연계에 있는 형상들이 다 있다고 생각하시면 될 겁니다."

모짜르트의 표정과 말투에는 전혀 장난기라곤 보이지 않았다.

"많이 놀라셨을텐데 진정 좀 하시고 이제 마음 편히 가지셔도 됩니다."

아직도 얼떨떨한 나는 모짜르트의 설명을 잠자코 들을 수밖에 없었다.

"지금부터 내가 하는 말을 잘 들어야 합니다. 여기까지 모시고 온 것은 내가 하는 말이 꿈이나 환상이 아니라 실제 벌어지고 있는 일이라는 것을 알리기 위함입니다. 그대를 떠보기 위해서도 아니고 시험하기 위해서도 아닙니다. 내가 영계에서 처한 상황을 있는 그대로 솔직하게 알려드리기 위해서 이렇게 할 수밖에 없었음을 이해해주시기 바랍니다."

모짜르트는 사뭇 진지하게 말을 이어나갔다. 나도 진지하게 듣고 있었다. 그런데 놀란 마음을 진정하기도 전에 느닷없이 모짜르트가 나에게 큰 절을 하는 게 아닌가? 서양인이 동양인인 나에게 큰 절을 하다니. 한국인을 만나면 절부터 하라고 누군가에게 조언을 들은 걸까. 그래도 그렇지 다짜고짜 큰 절이라니. 절을 하고난 모짜르트가 드디어 입을 열었다.

▲ 디지털 창조숫자

"내 아내 콘스탄체에게 보낸 편지에 있는 12자리 숫자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해석해주신 데 대해 먼저 마음 깊이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자 합니다. 그 숫자에 대해 일시적으로 호기심을 갖거나 의아하게 생각한 사람은 있었지만 그대처럼 그 숫자의 뜻을 풀이하려고 작정하고 대든 사람은 처음입니다."

결국 그거였구나. 12자리 숫자. 그렇다면 그 숫자가 아주 의미 없는 숫자가 아니라는 말이다. 내가 헛수고를 한 게 아니라는 사실에 안도를 하는 한편 의문이 들었다. 그 숫자는 도대체 모짜르트에게 어떤 의미가 있길래 이렇게 멀리 영계의 우주공간까지 나를 데리고 오게 된 걸까. 나는 의구심을 감추지 못한 채 모짜르트의 일거수 일투족을 지켜보고 있었다.

<계속>

 

편집 : 양성숙 편집위원

심창식 편집위원  cshim777@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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