찝찝한 땀으로 옷이 젖는 것보다, 곧 녹을 것만 같은 케이크보다, 집에 서둘러 돌아가 쉬는 것보다 중요했던 아름다운 하늘.

다음 주 월요일 미팅을 위한 리서치를 하느라 퇴근이 늦어졌다. 내일이 친구 생일이라 회사에서 직원대상 할인 케이크를 샀는데 핑크색 크림 위에 진주가 앉아 있는 유치한 케이크다. 친구에게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사무실에서 나와 차를 세워둔 곳을 향해 걸어가다 하늘을 마주하고 잠시 멍해졌다.

석양이 비구름을 비추고 있는 모습이 강렬하게 다가와 걷던 걸음을 멈추게 했다. 케이크를 사무실 냉장고에 두고 왔다는 걸 알았지만 지금 사무실로 들어가면 이 하늘은 다시 만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침 가방에 카메라가 있었다.

사무실 건물 뒤쪽으로 나오면 항상 하늘이 아름다웠다. 내가 기억하는 그 화각에 지금 이 하늘을 담기 위해 퇴근 하는 길 반대 방향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하늘에 자그마하지만 밝은 빛줄기가 보였는데 구름이라 하기엔 너무 밝다는 생각이 들었다. 움직이지 않는 모습을 보니 공사장에서 나는 연기라 할 수도 없었다. 나무 사이에 가려 조금밖에 보이지 않았기 때문에 더 높은 곳에 올라가고 싶었다. 가방은 잔디 위에 던져두고 건물 이정표가 쓰인 반석 위로 기어 올라갔다. 거미줄이 검은 바지에 흰 얼룩으로 묻고 있었지만 신경 쓰지 않았다. 주변에 지나가는 차는 종종 있었지만 걸어 다니는 사람은 없어서 다행이라 생각했다. 분명 이상해 보일 테니까. 그렇게 한참을 찍어대도 만족할 만한 사진이 나오지 않았다. 해도 거의 졌고 이제는 집에 가야할 시간이라는 게 생각났다.

사무실로 돌아가 케이크를 챙겨 들고 천천히 걸어 나오다 다시 한 번 놀라 발걸음을 멈췄다. 좀 전보다 훨씬 멋지게 하늘이 변해 있었다. 나무 사이에 보일락 말락 살짝 걸려있던 빛줄기는 그 위로 올라와 하늘 전체를 가로지르고 있었다. 이미 어두워져 빛줄기는 더욱 돋보였다. 오로라를 보면 이런 느낌일까. 나는 건물로 다시 달려 들어와 계단을 뛰어 올라갔다. 건물 위가 가장 높은 곳인데... 아까 왜 옷을 더럽혀가며 반석 위에 올라갔던 건지.. 라는 생각이 잠시 스쳤지만 무시하며 한 손에는 핑크 펄 케이크를 든 채 셔터를 눌렀다. 밝은 빛줄기와 그 앞을 지나는 어두운 구름이 만드는 분위기, 미약하게 남아있는 석양의 잔상이 마음을 동하게 했다.

사진을 찍는 것은 ‘감동을 주는 순간을 공유하고 싶기 때문에 하는 행위’라지만 사실 자신에게 감동을 주는 가장 좋은 방법은 조용히 눈으로 감상하는 것이다. 좋은 날을 남겼다는 홀가분한 기분으로 나 자신을 위해 천천히 하늘을 음미하며 걸었다.

그러다 또 오늘 만난 하늘 중 가장 아름다운 하늘을 만났다. 모네의 그림 같았다. 그만~~ 하려 했고, 내가 가진 카메라는 이렇게 어두운 하늘은 담을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참을 수 없어 다시 꺼내 들었다. 의미 없는 셔터를 몇 번 누른 후 카메라를 넣은 가방과 케이크를 바닥에 내려 두고 하늘을 바라보며 한참을 서 있었다.


편집 : 양성숙 편집위원

염하경 주주통신원  duagkrud@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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