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과 시간

암 환자는 시간을 재며 사는 사람이야. 끝을 가늠하며 살지. 걸어갈 이 길 '어디 쯤'에서 끊길까 맥살없는 궁금증 일어나면 그 '어디쯤' 한없이 아득하고, 어느 날은 그 '어디쯤' 성큼 내 앞에 와있기도 하지. 걸어갈 외길 답답하기만 하고.

암판정 받기 전에는 나도 내 시간 스스로 가늠할 일 없었어. 숲처럼 내 앞날 함부로 금 긋지 않았지. 사람 사이 난 길 끝없이 이어졌고 하늘 향해 뻗은 나뭇잎 닮은 파란 희망 머리 위로 출렁거렸지. 3기, 4기 그깟 숫자가 뭐간디, 이렇게 주춤거리게 만드나.

얼마나 갈까, 어떻게 갈까, 내일은 올까, 그렇게 살면, 저렇게 살면...! 소문으로 권위로 걱정으로 세운 시간들이야, 팔랑 내려앉는 갈참나무 이파리 하나 만으로도 와르르 무너지는 허깨비인줄 이제야 알게 되었지.

숲은 오늘로 걸어가는 길. 이 길 저 길로, 저 길은 이 길로 이어져. 바지런히 움직여야 할 발은 발대로 제 갈 길 걷느라, 길라잡이로 앞장서 뱅글뱅글 도는 산길 오르는 머리는 먼 앞 길 살피느라, 가슴은 불어오는 바람 맞느라, 눈길은 살랑거리는 우듬지 보듬고 흘러가는 구름 곁눈질 하느라, 어제 돌아보고 내일 톺아 볼 틈새 없지.

숲 속 모든 삶은 오늘이야. 우듬지 위로 뻗고, 가지 옆으로 나가고, 뿌리 아래로 내리고, 잎 또르르 몸 말았는가 싶으면 잎맥 곧추세우곤 화들짝 뛰쳐나가고. 겨울 그 삭막한 날도 오늘로 반기고, 봄 그 따뜻한 날도 어제로 간다면 미련 없이 보내지.

"너, 어쩜 좋니? 조금만 빨리 알았다면... ." 안타까운 마음들, 걱정 마.

나 지금 숲이거든.

 

편집 : 박효삼 편집위원, 심창식 편집위원

김시열 시민통신원  abukung@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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