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짜르트가 첫 사랑에 실패한 사건은 너무나 잘 알려져 있지만 감춰진 일화도 있다. 멜라니 운젤트의 <모짜르트가 사랑한 여인들>에 의하면,

'모짜르트는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로 기존 질서에 대항해서 싸웠다. 그러나 연애 사건에 있어서 열혈 청년 모짜르트는 실패에 실패를 거듭한다. 불장난의 파트너 오틸리아는 수도원으로 쫒겨나고 사촌여동생 베슬레와의 사랑은 근친이라 실패했으며, 첫사랑 알로이지아와의 사랑은 좌초'되고 말았다.

지금까지도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 21번은 금지된 사랑을 위한 곡으로 사용되기도 했다. 특히 선율이 아름다운 피아노 협주곡 21번의 2악장은 영화 '엘비라 마디간'에 사용되면서 더욱 많은 사랑을 받았다.

'엘비라 마디간’은 1967년에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스웨덴 영화다. 한때 가장 아름다웠던 불륜을 다룬 영화로 유명하다. 귀족 출신의 젊은 장교와 서커스단의 소녀가 이룰 수 없는 사랑의 현실을 깨닫고 두 발의 총성 속에 사라지는 이 영화에서 2악장 안단테는 죽음으로써 완성된 사랑의 테마를 의미하는 것이었다.

모짜르트가 얼마나 사랑의 방황을 했으며 막판에 유부녀 막달레나와의 사랑을 불태웠는지에 대해 세간에 소문이 무성했다. 막달레나는 모짜르트의 친구이자 프리메이슨이었던 프란츠 호프데멜의 아내이고, 피아노 제자이기도 했다. 베토벤은 이들의 불륜을 전적으로 믿고 있었다.

그 사건으로 모짜르트가 천계에 오르지 못하고 제동이 걸리긴 했지만, 그 일은 200년도 휠씬 지난 과거의 일이었고, 더욱이 나와는 아무 상관도 없는 일이다. 나는 이 시점에서 모짜르트의 부탁을 들어줄 것인가 말 것인가를 결정해야 한다. 

나의  대처법에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장담할 수는 없지만 하는 데까지 해보겠다'고 얼버무리고 이 자리를 벗어나는 것이다. 이는 결과에 대한 책임이 없다. 다른 하나는 반드시 하겠다거나 할 수 없다거나 태도를 분명히 하는 것이다.

모호한 태도를 보일 것인가, 아니면 확실한 테도를 취할 것인가, 그것이 문제로다. 그것은 순전히 모짜르트가 나에게 어떤 카드를 제시하는가에 달려 있다.

"그대를 이곳 영계에까지 초대할 떄에는 이미 그대에 대해 어느 정도 파악한 상테에서 만났다고 보면 될 겁니다. 12자리 숫자를 해석해 준다면 그 댓가로 그대가 바라는 것을 해드릴 수 있습니다."

모짜르트가 이미 협상카드를 가지고 있다는 말이다. 나는 들어보기로 했다.

"죽은 자의 소원을 빌겠습니까, 아니면 산 자의 소원을 빌겠습니까?"

이건 무슨 수수께끼 같은 말인가. 죽은 자는 누구이고 산 자는 누구란 말인가. 그들이 무슨 소원을 가지고 있을지 내가 어찌 알겠는가. 그러고보니 죽은 자는 산 자로 있을 때 '하고 싶었던 일'이나 '해보고 싶었는데 하지 못한 것'을 원할 것이다. 하지만 나는 죽은 자가 아니고 산 자이다. 다른 사람들은 죽은 다음에야 영계에 올 수 있었지만, 나는 살아있는 상태에서 지금 영계에 와 있지 않은가.

"산 자의 소원을 빌겠습니다."

모짜르트가 나의 답변을 예상하기라도 했다는 듯이 말을 잇는다.

"산 자는 죽은 자 세 사람을 만날 수 있습니다. 한 사람은 그대가 원하는 사람을 만날 수 있고, 다른 한 사람은 천계에서 지정한 사람을 만날 수 있으며, 마지막으로는 그대가 만난 두 사람이 지정한 제 3의 인물을 만날 수 있습니다."

소원을 들어주는 게 아니라 지상에서 이미 죽은 자를 만나게 해주겠다는 것이다. 죽은 자 세 사람을 만나면 내가 원하는 것을 이룰 수 있다는 말일까. 천계에서 지정한 사람은 또 누구란 말인가. 하지만 흥미가 넘치는 제안인 것만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나는 그 제안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이는 12자리 숫자를 다시 한번 해석하겠다고 확약하는 것이기도 하다.

"먼저 그대가 원하는 사람을 만나게 해주겠습니다. 지상에서 살았던 사람 중에서 누구를 가장 만나기를 원합니까?"

만나고 싶은 사람이야 많지만 기회는 단 한 명뿐이다. 생각을 가다듬어 본다. 누구를 만나고 싶은가, 나는. 누구를 만나야 원하는 바를 이룰 수 있을까. 죽은 자들이 하나 둘이 아닌 다음에야 어떻게 딱 한 사람을 고를 수 있겠는가. 

학창시절에 좋아했던 짝사랑을 만나면 좋을텐데 그들이 영계에 와 있을지는 알 수 없다. 초등학교시절에 좋아했던 순진무구해 보이던 여자짝궁이 있긴 했지만 미국으로 이민을 가서 생사조차 알 수 없고, 중학교때 짝사랑했던 눈이 예쁘며 얼굴이 곱고 탐스러웠던 여선생은 소식을 들은 적이 없지만 아직 살아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일찍이 평등과 무차별의 겸애 사상을 설파한 묵자를 만나는 건 어떨까.  "하늘을 이불 삼고 땅을 자리 삼으며 산을 베개 삼아, 달빛은 촛불 되고 구름은 병풍이며 바닷물은 술통이라"는 멋진 시를 읊었던 진묵대사는 어떨까.

그도 아니면 불멸의 민족지도자 백범 김구를 만나보거나 민족혼과 민족정신을 고취시켰던 단재 신채호를 만나는 것도 좋으리라. 이런저런 생각으로 망설이는 나를 지켜보던 모짜르트가 뜻밖의 제안을 했다.

"그대의  조상이 되는 단군 시대의 영을 만나보는게 어떻겠습니까?"

나는 깜짝 놀랐다. 모짜르트, 이 자는 나에 대해 어느 정도가 아니라 상당한 정도의 조사를 마친 것이다. 왜 그걸 생각 못했을까. 단군 시대의 인물을 만나는 건 가슴 떨리는 일이다. 다른 누구를 만나는 것보다 더 가치있는 일이다. 더 이상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다.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모짜르트가 누군가를 하늘 정원의 테라스로 안내했다. 그는 딱 봐도 고조선 시대에 입었음직한 흰 의복을 입고 있었고, 얼굴은 세상 그 무엇도 품을 수 있을만큼 호기롭고 대륙적인 모습이었다. 모짜르트가 그를 소개했다.

"이 분은 그대 민족이 '단군 할아버지'라고 부르던 단군시대의 영입니다. 아마 단군을 가까이서 모시던 분으로 알고 있습니다. 두 분이서 말씀을 나누기 바랍니다. 나는 잠시 자리를 피하겠습니다."

단군시대에 대해 알고 싶은 게 어디 하나 둘인가?  환웅시대와 환인시대는 있었는지부터 한민족이 과연 수천 년동안 동서 2만리와 남북 5만리에 걸쳐 대륙을 지배했는지에 이르기까지 궁금한 것 투성이다. 나는 존경과 흠모의 마음으로 조상의 영에게 묵례를 했다. 그는 큼직한 눈망울로 나를 지그시 바라보고 있었다.

<계속>

 

편집 : 양성숙 편집위원, 편집 : 김동호 편집위원

심창식 편집위원  cshim777@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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