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산, 벌써 집을 떠나온 지 20일이 됐구려. 그간 별고 없으리라 믿소. 이곳에 오니 날씨가 마치 한국의 초가을 날씨 같아 책읽기에 좋소. 新凉이 入郊하니 燈火可親이라 했던가! 문득 옛 글귀가 떠오르는구려...

오는 즉시 이곳 친구들 만났소. 이곳엔 여러 친구들이 있소. 서울대 지질학과를 나와 이곳 UBC에 유학해 학위를 받고 교수로 재직하다가 퇴임한 학송(鶴松) 구자학(具慈學)을 비롯해 서예가 백석(白石) 김진화(金振和), 그리고 이성식, 박금철, 이창헌, 문순탁, 조성대, 우준형 등이요.

아마 박금철, 이창헌이는 얼른 떠오르지 않을 거요. 이 친구들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일찍 이곳에 왔으니까. 허나, 우빈(又彬) 문순탁(文舜鐸)은 몇 차례 우리 동우회 역사탐방에 참석했으니 잘 알 것이고, 조성대는 오랫동안 동기회 총무를 봤던 친구로 나보다 앞서 이곳 딸네 집에 왔소. 이성식은 외대 영문과를 나오고 일찍 미국으로 나와 있다가 이곳에 온 친구로서 탄월 김원택, 처남 림상원과 아주 친한 친구요. 그리고 우준형인 미원그룹에 있다가 이곳으로 온 친구로서 현재 요양병원에 입원해 있소.

이곳 친구들은 매주 토요일 만나 점심먹고 공원을 산책하는 것이 하나의 일과로 되어 있어 소통이 잘되고 있다오. 사실 타국에서 이렇게 많은 동기들끼리 함께 만날 수 있다는 것이 어디 그리 쉬운 일이겠소? 그러니 얼마나 행복한 일이요.

7월 25일은 마침 조성대의 8순이어서 따님 초청을 받아 성대네 집을 방문해 축하해주고, 요양병원에 있는 우준형 찾아가 병문안 했소. 휠체어 탄 채 반가워 어쩔 줄 몰라 이야기 끈을 놓치 않는 것을 저녁 식사시간이 다 돼 아쉬운 마음으로 나왔소.

앞서 20일엔 린밸리 파크 호수길 돌았소. 그날 그걸 우리 동우회 7월 역사탐방으로 대신하기로 한 것이오. 이 탐방기는 바로 <한겨레; 온>에 실렸소.

그리고 27일엔 멘트로타운에서 만나 뷔폐로 점심 식사하고 센트럴 파크를 돌았소. 그날은 저녁까지 먹으며 학창시절 이야기로 한담(閑談)을 나눴소. 정말 시간가는 줄 몰랐소. 즐거운 하루였소.

범산, 그간 이곳 밴쿠버에서 지낸 친구들과의 생활을 적어보았소. 허나 친구들을 만나지 않을 때는 주로 산책과 독서로 소일하오.

내가 묵고 있는 이곳은 타운에서 멀리 떨어진 북쪽 작은 마을이라 한적(閑寂)한 곳이오. 마침 주위에 계곡이 있어 산책하기에 아주 좋소. 물소리, 새소리에 마음이 맑아져 저절로 시도 읊게 되오. 달이라도 휘영청 밝으면 더더욱 시심(詩心)을 자아내게 하오.

범산, 지난 어느 날 유난히도 달이 밝은 밤이었소. 달빛에 취해 최충(崔冲, 고려때 문신, 해동공자)의 시, <뜨락에 가득한 달빛 (滿庭月色)>을 읊으며 밤길을 걸었소.

滿庭月色無煙燭 뜰에 가득한 달빛은 연기없는 촛불이요,

入座山光不速賓 자리에 든 산빛은 청하지 않은 손님일세.

更有松絃彈譜外 맑은 솔바람 악보 없는 가락 타니,

只堪珍重未傳人 보배로이 여길뿐 남에게 못 전하리.

범산, 한번 마음에 그려보시오. 중천에 높이 뜬 달이 휘영청 밝아 뜨락을 가득히 채웠소. 마치 촛불이라도 밝히듯이 말이오. 그러나 그건 촛불이 아니라 달빛이었소. 그래서 시인은 그걸 '연기없는 촛불'(無煙燭)이라 했소. 그런데 그 달빛에 산그림자가 드리우는 구려. 누가 부르지도 않았는데 말이요. "入座山光"이란 산빛(그림자)이 들어와 앉았다는 뜻이요. 그런데, 그 산그림자는 누가 초청한 것도 아닌 불청객(不請客)이요. 그래서 그걸 "不速賓"이라 했소. 여기서 '速'은 '빠를 속'이 아닌 '부를 속'으로 읽어야 하오. 즉 "산그림자는 부르지도 않았는데 들어와 앉았다"는 뜻이오.

여기에 더하여 솔바람[松風]이 한줄기 휙~ 불어오오. 마치 가야금 소리인양. 그래서 시인은 그걸 그냥 '松風'이라 표현하지 않고 '松絃'이라 표현했소. 얼마나 멋지오. 그러나, 그 소리는 어느 악보에 있는 가락이 아닌 '자연의 소리'라오. 그래서 '彈譜外'라 했소. 그러니 그 소리는 보배롭고 귀중해 나만이 간직한 채 남에게 전할 수 없구려! 시인은 그걸 "只堪珍重未傳人"이라 했소. 순간 난 한동안 명상에 잠겼소. 이 기분을 누구에게 전할까?

범산, 왠지 허전함을 느꼈소. 그건 내 이 감정을 전해 줄 아내 한솔이 없었기 때문이요. 한솔이 옆에 있으면 "여보, 저 달 좀 봐요!"하며, 이태백의 달노래도 불렀을 터인데...

범산, 사실 난 6년 전에 아내의 '폐섬유성질환'이란 진단을 받고 바로 한의원을 폐업하고 환경 좋은 이곳에 와 반년 동안 생활했소. 그래서 여기엔 그때 당시 아내와 함께 지냈던 흔적들이 많이 남아 있소. 매일 새벽미사 다니던 성당길이며, 고사리 꺾고 딸기도 따던 계곡, 그 어느 곳에도 아내의 자취 없는 곳이 없소.

그래서 이곳에 오니 더욱 아내 생각이 나는구려. 이 허전한 마음 누구에게 전하겠소. 허나 이렇게 전할 수 있는 당신이 있어 난 행복하오. 늘 배려에 감사하오.

범산, 난 어제 아침 비행기로 샌프란시스코 딸네 집에 왔소. 이곳에 와보니 여기에도 아내의 흔적들이 여기저기 있더구려. "당신이 나보다 먼저왔네."하며 안으로 들어가니 족자에 이렇게 쓰여 있더군요.

"서로 가까운 사이부터 신용을 지킬 것이요, 서로 오래갈수록 더욱 공경할 것이요, 서로 근검하여 자력을 세울 것이니라."

이 글귀는 아내 한솔이 딸 시집 올때 써준 족자 글이오. 새삼 아내의 딸에 대한 모정(母情)을 읽으면서 마음이 울컥했소. 또한 한동안 숙연했구려.

범산, 세월이 흘러 그때 시집간 딸애 아들이 올해 대학을 갔구려. 애인까지 데리고 와 소개하지 뭐요. ㅎㅎㅎ~ 참!

할머니가 계셨으면 얼마나 좋아하셨을까? 그래도 엄마의 뜻을 받아 열심히 살아준 딸애가 고맙고 대견해 "고맙다!"하고 엄마를 대신해 껴안아 주었소.

범산, 어제 저녁에도 이곳 뜨락을 걸었소. 여전히 달빛이 뜨락에 가득했소.

滿庭月色이라! 풀벌레 소리에 한동안 머리 숙여 고향 생각 했소. 아~ 가을인가!

生也何處来, 死也何處去. 生也一片浮雲起, 死也一片浮雲滅!

(태어남이란 어디서 오고, 죽음이란 어디로 가는 것인가? 삶이란 한 조각 뜬구름이 일어남이요, 죽음이란 한조각 뜬구름이 사라지는 것이니라) 咄!

범산, 난 이곳에 잠시 머물다가 8월 4일 다시 밴쿠버로 돌아가 쉬었다 다시 횡단열차타고 토론토에 가서 그곳 관광하고 16일 다시 돌아와 쉬다가 20일 귀국할 예정이요. 어디 운수납자(雲水衲子)가 따로 있겠소?

그럼, 또 소식 전하리다. 안녕!

2019. 7. 30. 샌프란시스코 다뢰당(茶耒堂)에서 한송(漢松) 포옹(髱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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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 허익배 객원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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