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과 관계
2018년 8월. 암 판정 받은 날.
뜨거운 불덩이 안고 병원 가는 길, 더위 조금도 느낄 수 없었어. '잘 먹고, 많이 걷고, 자주 웃으라.'는 뻔한 말은 별 감흥 없이 쇳덩이 같이 무거운 내 마음에 부딪혀 쟁그랑쟁쟁 산산조각 났지. 아침에 일어나면 나와 이어져있던 단단한 인연의 밧줄 하나 둘 툭툭 끊어져 나가고, 가지런하던 시간은 제멋대로 공중에 붕붕 떠다녔어. 그해 여름가을이 그렇게 흘러갔지.
겨울 들어서자 잊어버린 '느낌' 돌아오고 세상 보이기 시작했어.
눈물 마르고 '시큰둥하게' 말라비틀어진 몸에 물기 돌았지. 찬바람 목덜미에서 손끝으로 따르르 내리훑는 날, 눈 부라리며 달려오는 자동차 비켜선 채 짜부라진 리어커에서 호떡 파는 아줌마 보이고. 겨울 저녁 위세 앞에 자라목 만들어 총총 집으로 돌아가는 사람들 발걸음 보았지. 빨간 빛깔로 가늘게 그어놓은 수은주 눈금 사이로 오르내리는 내 변덕도 보았어.
"누우면 죽고, 걸으면 산다."는 말에 이끌려 겨울숲 찾았어.
숲은 죽은 삭정이와 돋는 새잎 손잡고, 텅 빈 하늘 나는 새와 차가운 땅에 누운 새 어제오늘로 맺고, 오르는 언덕 내리닫이로 달리는 비탈 산허리로 서로 안고 돌아가지. 숲은 누에고치 같이 홀로 옹그린 채 자기연민에 빠져 이 사람 저 사람 찌르고 뿌리쳤던 손, '다시 잡으라.'며 속살거렸어.
아프면 말을 곱씹게 돼. 사람 사는 세상에선 말이 관계를 맺는 '처음이자 끝'이잖아. 어제 텔레비전 뉴스에서 이 말이 번개처럼 지나갔어. "사회에 암적인 존재"
여태 아무 생각 없이 들었는데 이제는 이런 말 들으면 가슴이 철렁하더라고. 암(이란 병)은 어떻게 해 볼 수조차 없다는 체념이 담긴 말 같아 무섭고, 멀쩡한 사람들이 이런 말로 빗대어 몸과 마음 약해진 우리들을 한 번 더 아프게 헤집는 무심한 나날이 슬펐지.
가끔 암 보다 말이 훨씬 더 지독하다는 생각이 들곤 해.
편집 : 박효삼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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