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몬트리올 이야기 18. 영화 ‘버닝’과 캐나다 노동자

작성 이지산 주주통신원 | 승인 2019.08.14  11:1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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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심한 일요일, 영화 한 편 볼까~ 하고 넷플릭스를 켰다. 요새 영화 제공 웹사이트도 똑똑해졌다. 특정 알고리즘을 사용하는지 내가 봤던 영화 목록을 바탕으로 비슷한 장르 영화들을 추천한다.

이번 추천 영화는 ‘Burning’이다. 영화 포스터엔 친숙한 배우 유아인과 처음 본 배우 전종서가 근심어린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다. 머리를 비우고자 코믹 영화를 보려 했기에 어둑한 분위기를 풍기는 포스터가 내심 마음에 걸렸다.

평점을 확인해보려 애용하는 영화정보 사이트에 들어갔다. ‘IMDB’는 1990년부터 영화, 티비 드라마, 다큐멘터리 등과 같은 영상 정보와 평점을 올려놓는 곳이다. 평점은 주로 대중 의견을 바탕으로 정해진다. 또 다른 곳은 ‘Rotten tomatoes’다. IMDB과 다르게 영화계 전문가들이 점수를 평가하고 리뷰를 작성해 올려놓는 곳이다. ‘버닝’은 IMDB에서 10점 만점 중 7.6점, Rotten tomatoes에선 100% 중 94%를 받았다. 굉장히 높은 평점이다. 칸영화제와 오스카에서 후보작으로 올랐다고도 해서 더 관심이 갔다.

영화는 길에서 유통업체 알바인 이종수(유아인)와 길거리 나레이터 알바 모델 해미(전종서)의 만남으로 시작한다. 둘은 파주에서 이웃집 친구이자 동창이었다. 종수는 문예창작과를 나온 작가 지망생이다. 해미는 삶의 의미를 찾는 것이 목표다. 하지만 서울로 올라와 제대로 된 직장을 잡고 꿈을 펼치기에 둘은 내세울 것도 없고 가진 것도 없어 현실은 팍팍했다.  

해미는 이런 현실을 벗어나고 싶었던 걸까. 알바로 돈을 모아 삶의 의미를 찾기 위해 아프리카 여행을 계획한다. 종수는 해미가 아프리카에 있는 동안 고양이 ‘보일’을 돌보기로 약속한다. 해미가 사는 집은 단독주택 원룸이다. 멀리 북쪽으로 남산이 살짝 보이지만 특정시간에만 집에 볕이 들어온다. 남산에 햇빛이 반사되어 들어올 때만이다. 진짜 빛이 아닌 빛의 형태만 들어오는 거주 공간은 힘든 해미 생활을 보여준다.

종수는 작가 지망생이지만, 어떤 소설을 써야할지 방황한다. 이 세상은 이해하기 힘든 미스터리라 생각한다. 항상 얼이 빠져 있는듯하고 말을 많이 하지 않는다. 어머니는 종수가 어렸을 때 아버지 폭력에 시달리다 못해 집을 나간다. 종수는 아버지 명령으로 어머니가 집을 나간 날, 어머니 옷을 모두 태워버린다. 종수는 이 날을 잊지 못하고 아프게 기억한다. 종수는 서울에서 생활하지만 축산업을 하는 아버지가 폭력사건으로 구속되자 송아지를 돌보기 위해 파주로 내려온다. 아버지를 벗어나기 위해 파주를 탈출했지만 현실은 아버지 굴레를 벗어날 수 없다. 파주는 대남방송이 들리고 젊은 종수가 살기엔 마땅한 직업이 없는 사라져가는 공간이다.

어느 날 종수는 해미에게 아프리카서 돌아왔다는 연락을 받고 공항에 마중 나간다. 해미에게 사랑을 느끼는 종수는 해미 옆 처음 보는 세련된 남성 ‘벤’을 보고 경계심을 갖는다. 둘은 아프리카 여행 중 만나 친해졌다고 하지만 ‘벤’은 금수저다. 모든 행동에서 여유가 묻어나는 벤은 포르쉐를 몰고 반포 단독주택에 살고 있다. 종수와 해미의 누추한 거주공간과 종수가 모는 낡은 트럭은 벤의 부르주아적 물질들과 내내 교차되며 부의 격차를 보여준다. 물질적으로 모든 것을 갖고 있지만 벤은 딱히 꿈이 없고 삶에 열정이 없다. 그래서일까 벤은 종수의 삶에 흥미를 느끼며 종수에게 접근한다.

어느 날 벤은 종수 집에 오고 싶어 한다. 종수는 허름한 집에 벤이 오는 게 내키지 않았지만 어쩔 수 없이 방문을 허락한다. 셋은 해가 지는 노을을 바라보며 와인을 마시고 벤이 제안한 대마초를 핀다. 벤은 Miles David의 ‘Lift to the scaffold(교수대로 가는 리프트)'를 튼다. 순간 트럼펫 연주가 분위기를 장악하며 곡의 제목과 같이 쓸쓸하고 으스스해진다.  

▲ 춤추는 해미

해미는 분위기에 취하여 웃옷을 벗어던지고 아프리카에서 본 Great hunger(삶에 진정으로 배고픈 자) 춤을 추기 시작한다. 노을을 바라보며 춤을 추는 해미는 마치 노을을 향해 훨훨 날아가 소멸해 버릴 것만 같다. 3분 넘게 돌아가는 이 아름다운 장면은 삶에 몸부림치는 해미 모습이라 아이러니하게도 너무도 슬프게 보인다.

해미는 지쳐 쓰러지고 종수는 벤과 이야기하다 벤의 무서운 취미를 알게 된다. 벤은 두 달에 한 번씩 쓰러져 가는 비닐하우스를 찾아 불태우는 것이 취미라고 한다. 불에 태워 10분 만에 사라지는 비닐하우스를 볼 때 삶에 희열을 느낀다고 한다. 종수는 벤에게 미스터리한 두려움을 느낀다.

▲ 새벽이면 비닐하우스를 찾아다니는 종수

우연일까. 벤에게서 무서운 비밀을 들은 뒤 해미와 연락이 끊긴다. 초조와 불안에 시달리며 비닐하우스를 뒤지고 해미를 찾기 위해 해미 가족, 직장, 집을 찾아가지만 해미 행방과 존재는 점점 더 묘연해진다. 종수는 비닐하우스를 태운다던 벤의 말이 쓸모없어진 여자를 죽인다는 은유(메타포)로 생각하고 벤을 추적하기 시작한다.

미행은 벤의 생활을 보여준다. 추적하지 않으면 종수가 알지도 겪지도 못할 생활이다. 알 수 없는 벤과 행방불명된 해미 사이에서 극도의 좌절감을 느낀  종수는 벤이 범인이라는 직접 증거는 찾지 못했지만 범인은 벤이라 생각한다. 아버지 칼로 벤을 죽이고는 죽은 벤과 피 묻은 옷을 포르쉐에 던져 넣고 불 질러 버린다. 발가벗은 몸으로 낡은 트럭을 타고 달려가는 마지막 장면 뒤로 불타오르는 포르쉐가 보인다.

영화는 나에게 많은 질문과 함께 머리를 복잡하게 만들고 끝나버렸다. 살인을 저지른 종수는 영화에서 피해자인가? 가해자인가? 사라진 해미는 진짜 죽은 피해자인가? 벤도 피해자인가? 그럼 가해자는 누구지? 그들이 처한 현실이 가해자인가? 이창동 감독은 영화 내내 나에게 이런 질문을 던지는 것 같았다.

캐나다에 온 뒤로 잠시나마 한국 현실을 잊고 살았다. 해미나 종수처럼 현실 장벽에 무력하게 살아가고 있는 청년들 존재가 기억에서 희미해져 갔다. 한국에서 많은 젊은이들은 종수와 해미 같은 삶을 살아가고 있다. 부모님이 물려준 정해진 굴레에서 벗어나기 위해 애쓰지만 현실은 넘기 힘든 장벽 같은 존재다. 특히 해미와 종수 같이 지방에서 올라온 젊은 청년들이 알바로 서울에서 생계를 유지하기 너무 힘들다고 들었다.

한국은 이런 알바들이 보다 더 인간다운 생활을 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을까? 한국은 최근 최저임금을 2.87%를 인상해 내년 시간당 8,590원을 준다고 한다. 한달 209시간 기준으로 월급은 180만원이 채 안 된다. 고향이 지방인 청년들이 알바로 월세, 생활비를 사용하고 나면 저축할 수 있는 돈은 거의 없다.

캐나다는 상황이 어떨까?

캐나다는 최저임금이 11달러다. 캐나다 환율을 고려하면 만 원 정도 된다. 한국과 크게 차이 나지 않지만 캐나다는 ‘팁’ 문화가 있다. 보통 금액에서 15-20%를 추가로 지불한다. 이 돈은 가게 주인이 아닌 노동자에게 100% 분배된다. 레스토랑에서 일하는 친구는 팁까지 포함하여 보통 시간당 2만원은 기본이고, 월 300만원까지도 벌 수 있다고 한다. 월세, 생활비를 넉넉히 사용하고 저축도 할 수 있는 금액이다.

처음 몬트리올에 도착했을 때 캐나다 팁 문화에 적응이 잘 안됐다. 팁은 택시, 레스토랑, 카페, 미용실, 택배 등 모든 직종 인간노동 서비스에 해당된다. 집만 나서면 돈이 술술 나가는 것 같아 나가기가 겁났다. 하지만 어느 순간 이런 팁 문화가 저임금 노동자 삶의 질을 높일 수 있다는 것을 깨닫고는 더 이상 팁으로 나가는 돈이 아깝지 않았다. 오히려 이렇게 나눌 수 있는 것이 좋았다. 팁을 주고나면 마음이 따듯해져서 팁 문화가 인간적이라는 생각까지 들었다. 우리가 조금씩 나눠 갖는다면 개인 삶은 변화할 수 있는 것이다. 

▲ 지난 6월 몬트리올 식당에서. 밴쿠버에 살고 있는 친구가 놀러 와서 제대로 된 식당을 찾았다. 팁 문화에 익숙해져서 손이 덜덜 떨리지 않을 때다.

캐나다는 이처럼 저임금 서비스직을 배려해 주기 위해 노력한다. 전문직종이 아니더라도 개인의 기본 삶, 더 나아가 복지를 위해 제도를 개선한다. 그래서일까. 캐나다는 행복지수에서 핀란드, 노르웨이, 덴마크, 아이슬란드, 스위스, 네덜란드에 이어 세계 7위다. 한국은 저 멀리 57위다. 한국에서는 대다수 사람들이 행복하다고는 할 수 없는 삶을 살고 있다.

‘버닝’이란 영화를 보고 이창동 감독에 대해 좀 더 알고 싶어 영화 ‘시’를 찾아보았다. 이 영화는 잔혹한 현실에 고통 받는 여성 이야기다. 주인공인 할머니는 시를 짓고 시인이 되고 싶어 한다. 하지만 현실은 아름다움을 감상하고 시를 짓는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오히려 할머니 순수한 마음을 아프게 잔인하게 갈라놓는다.

문득 ‘시’에 등장한 할머니와 ‘버닝’에 등장한 종수가 이창동 감독 본인을 투영시킨 인물일 거라는 생각이 든다. 세상은 잔인해서 이해하기 힘들지만 그 와중에도 약자 계층을 대변해주려는 감독의 마음이 아닐까?

이창동 감독은 ‘버닝’에서 종수와 해미와 같은 청년들이 우리 현실로 존재하고, 실제 고통 받고 소외 받고 있다는 걸 전달하려 했다고 생각한다. 칸영화제에서 극찬을 받은 이 영화는 정작 한국에선 흥행하지 못했다. 팍팍한 현실을 사는 우리들이 참담한 현실을 보여주는 영화를 보기 싫어 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흥행에 실패한 것이 안타까워 이창동 감독의 쓸쓸한 외침을 담은 인터뷰를 올려 본다.

-감독으로 ‘버닝’은 어떤 영화로 남을까.

“이 영화가 처한 상황이 참 아이러니하다. 종수나 해미 같은 처지에 놓은 청년 이야기인데 벤의 세계에 가까운 칸영화제의 붉은 카펫에서 공개됐다. 세상의 미스터리에 우리가 어떤 분노를 갖는지 말하는 영화인데, 극장에선 하필 수퍼히어로가 세상을 구원해준다는 마블영화와 맞붙어 처절히 깨졌다. 그 또한 이 영화의 운명이다. ‘버닝’이 지금 대중에게 별로 환영받지 못하는 서사라면 환영받는 서사는 뭘까. 우리에게 정말 필요한 것일까. 영화가 그런 것이라면 우리는, 나는 어떻게 해야 할까 그런 생각도 들고.”


편집 : 박효삼 편집위원

이지산 주주통신원 elmo_party@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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