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귀권세 쫓지 않고 정의에 살며, 억강부양하는 기개로운 삶이 고매한 대장부요, 진정한 선비

 
 

“삭발피당세 유수표장부(削髮避當世 留鬚表丈夫=비록 머리는 깍고 세상을 등졌으나, 수염은 남겨 대장부임을 표하노라!)”

이 말은 임진왜란 때 구국 성승 송운대사 사명당이 남긴 말로 전해온다. 비록 세속을 떠나 산속에서 수도를 해도 대장부로서 의연한 기개(氣槪)는 잃지 않아야 한다 의지의 표명이리라.

현재 환갑을 넘긴 세대가 어린 시절엔 동네어른들이나 부모님들이 남아들의 포부와 마음의 그릇을 키워주기 위해 늘 하던 말이 있었으니 바로 ‘사내대장부’란 말이다. 속칭 ‘사나이’, 싸나이’등으로도 불린 ‘대장부’ 이 한마디에 남자아이들은 울다가도 그치고, 먹던 과자도 동생들에게 나누워 주게 되고, 친구 간엔 의리와 나라엔 충성, 부모에겐 효도, 세상살이엔 지조와 절개를 배우고 익혔다.

대장부란 무엇인가? 한국이나 중국에선 남자 중에서도 뛰어난 사람을 일컫는 말이다. 일본말로는 다이죠부(괜찮아/남자니까)라고 한다. 동양 삼국이 통하는 바가 근사하다. 요새는 극중에서 무슨 상남자니 하는 대인배니 하는 이상한 말로 대체된 것인지 대장부란 말은 아예 없어진 것 같다.

일찍이 성인 맹자는 대장부의 삶을 말했다. 『모름지기 대장부란 세상의 가장 넓은 곳에서 살며(仁), 가장 바른 자리에 서며(禮), 올바른 길을 걸으면서(義), 뜻을 얻으면 백성들과 같이 하고 뜻을 얻지 못하면 혼자 그 길을 가야한다. 부귀해도 결코 마음이 삿된데 흔들리지 않고, 빈천해도 그 절개가 변하지 않으며, 위세와 무력에도 굴복치 않는 불굴의 정신을 갖춘 자가 대장부』 라고 강조했다.(居天下之廣居 立天下之正位 行天下之大道 得志, 與民由之 不得志, 獨行其道 富貴不能淫 貧賤不能移 威武不能屈 此之謂大丈夫)

즉, 부귀권세와 무력에 의해 위세를 보이거나 남을 위협하는 자 보다 내면적 인격의 함양, 극기하는 깊은 수양과 실천하는 자가 훌륭하다고 말한 것이다. 지금의 우리들이 처한 이 황량세태 속에서 비록 실천은 못하더라도 이 말이 그르다고 부정하는 자는 있지 않을 것이다.

오늘날 우리 주변엔 어디에 대장부가 보이는가? 시장판에도, 사회에도, 학교에도, 정치판에도, 군에도, 경찰에도, 사회 구석구석 어디 하나에도 대장부의 멋진 모습을 보이는 자가 과연 있을까. 물론 과거 살벌했던 유신시절에도 꿋꿋히 버티다가 옷 벗고 박해받은 판사도 있고, 쿠데타 세력에 저항했던 장군, 학생, 노동자도 있었지만, 지금은 다들 어디로 갔는지 눈을 씻고 찾아도 통 안 보인다.

사회에는 미래 이 나라 주인인 젊은이의 신음이 들린다. ‘금수저·은수저’ 타령에 ‘헬조선’, ‘갑질’ 이런 말이 풍미하는 것은 그만큼 병들고 절망적인 사회상을 말한다. 국민 모두가 그저 아득바득 이를 갈면서 피곤하게만 산다. 일자리도 별로 없다고 아우성이다. 몇 년 전엔 젊은이 보고 중동에나 가라고 해서 욕먹은 사람도 있었다. 물론 누가 나서도 대책이 쉽진 않다. 무슨 대안을 내놔도 언 발에 오줌 누기 식에 급급하다. 서울 젊은이들은 혼인도 쉽게 못한다. 시내에 집을 얻기가 어렵기 때문이라고도 한다.

사상누각이란 말이 늘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는다. 경제만 건설했다고 그 국민들이 제대로 된 인간이 아닌 것이다. 정신문화의 토양 없이 허겁 대는 경제적 동물로만 양육되고, 동물본색으로 살아왔기 때문이 아닐까. 온 사회가 이미 정글화 돼 사각의 링처럼 살벌하다. 걸핏하면 불특정인까지 잔인하게 찔러서 죽이는 살인을 저지른다. 조금만 화나면 죽여 버리겠단 말을 입에 달고 산다. ‘이미 금수의 나라’가 됐다는 비탄이 있다. 아닌가? 선조가 얻은 미명인 동방예의지국은 사람의 머릿속에 지워져 그만 옛 전설이 되고 말았다.

 

물론, 알려지지 않아서 그렇지 작은 부조리에도 몸을 사리면서 오직 나라와 국민위해 헌신봉사로 청렴하게 살면서 밤을 지새는 애국심 있는 공무원과 어려운 환경에서도 올바르게 살려고 몸부림치는 사람들이 왜 전혀 없을가만은 부지수 수의 노출된 범죄와 비행이 이미 정상의 도를 한참 넘었기에 개탄하고 지적하는 것이다.

 

현재 우리 사회는 ‘정의와 도덕’을 찾기 힘들다. 비록 의식(衣食)이 풍족해져도 정신적 토양이 없다. 밥이나 돈보다 인간답게 한 번 살아보자는 ‘도덕재무장운동’이 시급하다. 유사한 맥락에서 과거 우리사회에서 흔히들 말하던 ‘대장부 의식’의 부활을 제시코자 한다. 그렇다고 남성우위 성차별적 세상이 좋다는 그런 말은 전혀 아니다. 여성은 여성대로 현대형 여장부가 되면 된다. 일단 현실적으로 사회 주도층인 남성부터 올바르게 살려고 더 노력해 완전 개과천선 해보자는 주장이다.

 

어쨌든 아직까지는 우리 사회 주도 세력이 남자다. 각종 사고나 범죄, 부정부패 등을 저지르는 사람도 남자가 태반아닌가. 이제부터라도 이 땅 남자는 대장부 정신으로 돌아가자. 약자를 보살피고, 강자와 싸우는 기개와 패기를 보이자. 호연지기를 길러서 내·외의 불의를 과감히 무찌르고, 정의롭게 사는 풍토를 복원시키자. 우리에겐 수천 년 내려온 ‘정의감’과 ‘대장부’란 DNA가 있다. 온 나라에 만연하던 망국적 고스톱 문화가 어느 날 보기도 흔지않게 사라져 버린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세상이란 게 지금의 남북상황처럼 아주 쉽게 한순간에도 변할 수 있는 것이다. 어제의 로켓맨이 1년 만에 체어맨도 되는 세상아닌가.

 

이명박 시대처럼 “부자 됩시다” 이런 말 하지 말고, “올바르게 삽시다”고 외치자. 부귀영화에 몰입 또는 올인 하지 말자. 사람 간 승리를 과하게 다투지 말고, 경전들을 많이 읽고, 오직 대장부처럼 사는 사람을 존중하고 따라 배우자. 그러면 우리사회의 근원적 문제들인 불의도, 부패도, 갑질도, 수저타령도, 저질정치도, 불안전도 단기간에 해소되지 않을까 하는 간절한 기대가 있다.

 

귓전을 스쳐가는 가을바람에 대고 외쳐보자 “어차피 짧은 인생, 나는 정의롭게 살다 가겠다”고. 불의의 부귀는 뜬 구름일 뿐이다. 욕망에 쩌려서 금수처럼 살지 말고, 사람답게 살다 가자. 처자식 핑계대지 말자. 사람이 되자. 대장부가, 여장부가 또는 대인이 되자.

편집 : 심창식 편집위원

김영배 주주통신원  kimyb1236@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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