곧 4.3이다. 난 1992년 제주로 일하러 간 치과의사 친구가 이야기해주기 전까지 4.3을 몰랐다. ‘작별하지 않는다’에 이런 대목이 나온다. 
“그 후로는 엄마가 모은 자료가 없어, 삼십사 년 동안. 
인선의 말을 나는 입속으로 되풀이한다. 삼십사 년.
.......군부가 물러나고 민간인이 대통령이 될 때까지. ”

61년부터 94년까지니까 내가 삼십사 년을 살 동안 학교서도 언론에서도 4.3을 이야기하지 않았었다.

잡지사 기자인 경하는 취재할 때 사진기사로 같이하던 동갑내기 프리랜서 인선과 친해진다. 인선이는 제주도 출신이다. 인선이 어머니 가족은 해안에서 5km 이상 떨어진 중산간에 살았던 이유 하나로 엄청난 비극을 맞았다. 13살이었던 인선이 어머니와 17살이었던 이모가 바닷가 당숙네에 심부름 갔다 온 사이 인선이 할아버지, 할머니는 총살당하고, 8살이던 막내 이모는 총상을 입고 집까지 겨우 기어와 있었고, 외삼촌은 사라지고 없었다. 산으로 도망갔던 외삼촌은 1949년 봄 “산에서 내려와 귀순하면 과거 행적을 묻지 않고 살려 주겠다”라는 삐라를 보고 내려왔지만 바로 체포되어 창고에 갇힌다. 제주에서 갇혀있던 외삼촌은 얼마 후 대구형무소에 수감된다. 
1971년 화원으로 옮기기 전까지 시내 삼덕동에 대구형무소가 있었다. 우리 집에서 작은형 다니던 사대부중을 가거나, 큰형 다니던 학원에 가려면 대구형무소 높은 담 옆 지나야 했다. 형무소가 이사 간 후 그 자리에 삼덕교회가 옮겨오고, 부잣집들이 많이 들어섰다. 친구 집도 많았다. 금수저였던 친구 하나는 얼마 전까지 그 동네 큰 이층집에서 새들과 같이 살았었다. 
대구형무소에 있던 외삼촌은 한국전쟁 발발 직후 경산 코발트광산에서 학살된다. 진주교도소로 이감한다고 데려가 보도연맹원들과 함께 경산중앙국민학교에 구금하고 있다가 코발트 폐광으로 데려가 학살했다고 한다. 
1960년대에 경산 중앙국민학교에 많은 후원을 하셨다는 친구 아버님 흔적을 찾아 작년 봄 경산 중앙초등학교를 방문하였었다.

경산 중앙초등학교에서 서상길을 따라 직진하다 백천교차로에서 좌회전하여 가다가 인터불고 CC 입구에서 우회전하여 조금만 들어가면 경산 코발트광산이 나온다. 차로 10분 길이다.

위령탑에는 굵은 눈물 두 방울이 새겨져 있다.

유해 발굴 때 사진들도 전시되어 있다.

오는 4월 3일 경산중앙초등학교에서 서상길 따라 경산 코발트광산까지 걸어봐야겠다.

편집 : 박효삼 객원편집위원, 심창식 편집장

박효삼 객원편집위원  psalm6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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