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남편이 학과 교수님들 점심 회식에 갔다가 
남은 닭죽을 두 통이나 싸갖고 왔다. 
저녁으로 한 통을 먹었다. 
밥 안하고 가져온 죽 먹고 있으니 너무 행복하다. 
내일 아침도 닭죽 먹어야지. 
#닭죽을넘좋아하니까
#밥상안차려도되니까

이렇게 페이스북에 포스팅을 했더니 페친들이 엄청난 반응을 보내왔다. 알뜰하고 자상한 남편에 대한 칭찬과 부럽다는 의견 등등. 그런데 사실 여기에는 다른 이유도 있다.  백숙 먹고 난 다음에 닭죽이 양푼으로 나오니 양이 넘 많아서 다 못먹는 상황이었다. 그대로 두고 왔으면 음식쓰레기가 되었을 것일 텐데, 그걸 싸갖고 가겠다고 하니 같이 가셨던 일행들도 모두들 좋아하고 얼떨결에 찰진 닭죽을 두끼나 먹게 된 나도 좋으니 모두가 좋지 아니한가! 

 

2. 

얼마전
십 년을 끌고 다닌
낡은 의자를 내다 버렸다
누가 그리 금세 가져갔는지
시원섭섭하더니

동네 골목 구멍가게 앞에서
꼬마 아이들의 소꿉장난에
끼어 히히덕 거리기도 하고
산동네를 올라온
야쿠르트 아줌마의 지친 다리에
제 다리를 더하기도 하고
볕 즐기는 할머니의 한 잎 몸뚱이를
품어 떠받기도 하고
그놈은 여생을 그곳에서 그렇게
마칠 셈인 것 같았다 

(조정미, 「버려진 낡은 의자」, 1997)

 

▲ 캐나다 캘거리 중고물품 가게에서 새 주인을 기다리고 있는 여러가지 케이블들. 나에겐 필요하지 않지만, 누군가에겐 꼭 필요할 수 있는 물건들.

3. 

가끔 방송에 물건에 대한 집착으로 집안팎 가득히 쓰레기에 가까운 물건을 산적해놓아서 문제를 일으키는 분들의 이야기가 나오곤 한다. 이런 증상을 #저장강박장애 라고 하는데 인터뷰를 듣다보면 점점 나이가 들고 쓸모없어지는 자기자신에 대한 불안감 같은 것이 원인이 되어 아직 쓸모있다는 항변이 그와 같은 행동으로 연결되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사실, 나 자신에게서도 저장강박장애가 다소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 적어도 내 인생에 쓰레기를 수집하는 일은 없게끔 해야겠다는 생각을 늘 염두에 두고 산다. 여하튼, 나는 중고품 수집을 좋아하는데, 아직 가치가 있는데 버림받은 것들에 대한 애착이기도 하다. 새 물건을 사는 것보다 아직 가치가 남아있는 중고물건을 저렴한 가격에 사들이거나 공짜로 얻어서 쓰는 것을 백배 천배 좋아한다.

이렇게 된 데에는 우리집 내력이 좀 그렇긴 하다. 고등학교 시절 원단 샘플을 득템하여 할머니께 가져다 드렸더니 너무 좋아하시며 조각이불을 만들어주셨던 기억이라든가, 돈 주고 산 털실옷이 헤어져서 구멍이 나면 그걸 일일히 풀어서 털실을 만들어 다른 실과 합쳐서 새옷을 떠주던 엄마의 뜨개질에 대한 기억이라든가, 헌 가구를 해체해서 새로운 책꽂이를 만들어주던 아빠에 대한 기억이 21세기를 살고 있는 나에게도 여전히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그 시절은 물자들이 부족해서 그렇게 살았을 것이다. 지금 이 시절은 물자들이 너무 넘쳐나기에 그렇게 살아야 한다. 돈을 쓰는 일은 항상 가치에 염두를 두어야 하고, 새 것을 사는 데에는 적절한 고민을 해야 한다. 헌 것을 살 때에도 가치에 대한 엄정한 평가가 중요하다. 희소성, 활용가치, 미래가치 등을 꼼꼼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더불어 너무 덩치가 커서 내 생활공간을 쓸데없이 채우는지의 여부에 대해서도 잘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 가치있게 잘 살기 위해서는. 아직 쓸모있는 모든 것들과 함께 지혜롭게 잘 살아가기 위해서는. 

▲ 이 중고물품샵은 자원봉사자에 의해 운영되고 있으며, 기부된 물건을 판매한 수익금은 구호활동에 사용된다. 자원봉사자들이 케이블을 일일히 잘 정리하고 가격표를 붙여 전시해놓았다.

편집 : 객원편집위원 김혜성(cherljuk13@nate.com)

조정미 주주통신원  neoechang@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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