멋지게 파도치는 <바보시반>

시 창작교실 <바보시반> 종로 통일빌딩에서 지난해부터 개설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촛불시민 혁명의 주역들의 사랑방 <문화공간:>에서 개설한 문학 강좌로 필자, 김자현이 이끌고 있다. 2020, 새해 벽두부터 시작되었으나 바로 역병이 시작되어 드문드문 띄엄띄엄 공부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코로나 정국과 또한 <문화공간:> 내부 사태로 휘청하는 순간이 있었으나 참가한 회원님들의 열화와 같은 성원으로 지금도 이어가고 있다. <시와 함께 떠나는 시간여행>이라는 애초의 간판은 먼저 이사장님이 개설한 프로그램으로 더불어 감사드리며 <바보시반>으로 이름을 바꾸는 동안 참가 선생님들의 실력이 약 1년여 만에 일취월장하여 흥분을 감출 수 없는 시점이다. 선생으로서 이분들의 창작열을 고무 고취하고 또한 바보시반 안에서만 감상하기란 너무 훌륭한 작품들이 시의적절하게 태어나 시민사회와 함께 공유하고 알려야 하겠기에 <한겨레:> 할레에 공개하기로 한다.

또한 <바보시반> 시 창작 교실은 <문화공간:>에서 운영하는 사랑방 프로그램 중 하나로 매주 금요일 6시에 시작하여 8시에 끝나는 문학 강좌이다. 본 필자가 문학의 전 장르를 창작하는 사람으로 수필, 장단편 소설, , 칼럼, 자서전 등의 창작을 유도 지도할 수 있어 전국의 문학지망생들은 누구든 오셔서 돈이 들지 않는 시인되기, 돈이 들지 않는 문학 하기, 수준 높은 작품의 산실에 함께 하시기를 요청해 본다.

지난번 조진호님, 정주님에 이어 이번에는 본 문학 강좌에 비교적 늦게 합류한 분들조차 발군(拔群)의 실력을 과시하고 있어 그 실력을 한겨레.온에 발표하여 노력을 높이 칭찬하고 시민사회가 함께 감상의 기쁨을 나누고자 한다. 기성시인의 뺨을 치는 두 편의 시로 요즘 우쭐대는 <바보시반>이다.

하여 우선 다음은 한겨레. 온을 통해 두번째 선보이는 정주님의 작품이다.


암전(暗轉)/정 주


가을 끝자락, 
11월 관악산을 오른다
바람부는 대로 쓸려다니는
떨어진 단풍잎들

한겨울 눈보라 버텨낸 나무들에게 
따듯한 봄

햇빛의 위무는 잠깐,
폭풍우와 태풍 몇 개 힘겹게 넘긴 끝에
다시 겨울잠 준비한다

떨켜로 바리케이드 치고 단식에 들어간 나무
빨아들인 물과 영양분, 햇볕에 버무려
몸집 키워준 엽록소 군단을 해산하고   
빨강과 갈색, 노랑색 공수부대 이파리들이  
곳곳에서 지상낙하 작전중이다

앵돌아선 늦가을의 뒷모습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자니
등 뒤에서 무슨 소리 들려왔다
너도 늦기 전에 채비해야지
 
청춘의 분망(奔忙)했던 계절 지났으니 
남은 회한 거두고, 견뎌야 할 시간
따스한 햇살 누릴 수 있을  때까지
홀로 산길 걷는 연습을 해야겠다
11월의 나무에게 배운다

산에서 내려오는 길  초저녁

반달이 뒤따라온다. (2021년 11월  중순) 

필명 정주님은 지난 봄,  창작반에  들어오시고 얼마 안 되어  "그 해 오월"이라는  시로 우리 시민사회를 놀라게 했던 분이다. 젊은 날의 이력이 많이 작용했겠으나 다가온 계절과 역사성이 합류하는 지점에서 시의 적절한 작품이 태어나  이곳에서 소개드린 바 있다. 

그런데 이번에는 서정적인 필치로 가을의 대표주자 11월을 소환하여 여지 없이 맞아야할 쓸쓸한 인생의 회한을 성숙한 철학적 사유로 음미하고 있다. 

소재가 된 11월과 가을이면 아름다운 색으로 의상을 갈아입는 것은 다음 생을 기약하는 모든 식물의 생물학적 과정이다. 나무에서 인생을 배우고 노년을 맞아 등산으로 다지는 지은이의 숙연한 소회가 단풍숲길에 잔향을 풍긴다.

아직도 정열적인 그의 평소의 풍모와는 사뭇 다른 침잠하는 자신의 내면이 담담한 필치로 읽는 이조차  겸허하게 한다.  떨켜로 바리케이트를 치는 식물들의 11월을 "암전"이라 재해석한 지은이의 안목이 돋보이는 대목이다. 


다음은 김재곤 님의 풍장이다.


풍장風葬/ 김 재곤


끈끈 자욱하던 안개

탁수에 새 물들 듯 사라진 아침

아파트 주차장 빈터

천막 쪼가리 깔고 고추 너는 노부부

할매가 자루 열어 덥석 쏟아 놓으면

할배가 야윈 손으로 헤쳐모여

차국차국 구령을 부른다

앞으로- !

뒤로 돌아- !

제자리에- !

뚜벅뚜벅 진지를 채우는

새빨간 병사들 일당백이다

70년 따라온 포성과 비명

높다란 공장 굴뚝과

마천루 틈새 비집고 나와

광장을 덮는다

널브러진 철모와 총 그리고

검붉게 반죽된 흙

彼我는 없어지고 사라진 인정 위에 남은 건 환청이다

그것은 미친 전쟁

꼭두각시 아수라춤이었다

후줄근 쭈그려 앉아

가슴 속 피딱지 떼고 있나

조심조심 붉은 기억을 데리고 와

아파트 구석진 흑싸리 땅

풍장을 지켜보는 저 가을 햇살

 

가을이면 아파트 단지에서는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다. 습기가 없는 따끈따끈한 아스팔트는 너르고 너른 얼마나 좋은 천연의 건조대인가. 물고추를 널어 말려 일 년 먹거리를 준비하는 늙은 노부부를 보면서 지은이는 한국동란을 불러내고 있다. 외세에 의한 同族相殘은 적도 적이 아니고 내가 나도 아니었다. 할배는 무슨 생각으로 새빨간 물고추를 하나둘 하나 둘 병렬시키고 있는가.

짧은 한 편의 시 속에서 되살아나는 병영과 군사와 다 스러진 줄 알았던 포성과 비명이 난무하던 전장터의 모습! 고추 말리는 노부부에서도, 말라가는 고추에서도, 가을이라는 절기에서도 풍장은 일어나고 있다. 그러나 온전한 풍장을 기대할 수 없는 것이 지은이요 할배의 기억이다. 아사를 견디고 지구촌 10위권 안에 드는 경제 대국으로 우뚝 선 지금, 70년이라는 녹녹치 않은 세월이 흘렀건만 절대로 잊히지 않는 기억이 있다.

소환된 한민족의 기억을 다룸으로써 이 시는 완전한 공감, 보편성을 확보하고 있다. 할배가 너는 것은 샛빨간 물고추가 아니라 전장터의 피비린내다. ‘......꼭두각시의 아수라춤으로 역사적 오류를 정리, 민족적 함의를 상징하고 있다. 그리하여 시의 온전한 기제 참신성을 또한 획득하고 있다, 할 것이다.

부분부분 함께 고친 바가 있으나 가을이면 흔한 고추 너는 장면 하나로 풍장이라는 무게감 있는 해석을 동원했을 뿐만 아니라 청각과 시각 우리의 촉각을 자극하여 감각적인 시로 현대성을 살려내고 있다. 그저 맥 없이 귀에 듣기 좋은 말귀에 불과한 인터넷에 떠도는 시들과는 확연한 차별과 거리가 있다. 작은 소재 하나로 역사를 펼친 김재곤 님의 붉은 기억을 함께 감상한 바, 김재곤님은 이미 우수한 시인이다.

편집 : 김동호 편집위원, 양성숙 편집위원

김승원 주주통신원  heajo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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