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엄 산>에는 종이박물관 외에도 미술관이 있다. '청조미술관'이다. '청조'는 고 '이인희' 전 한솔그룹 고문의 '호'이다. 이 전 고문은 30년 이상 수집해온 미술 작품 전시를 위해 '안도 다다오'에게 청을 넣어 다다오가 <뮤지엄 산>을 설계한 것이라 한다.

청조미술관에서 ‘옴니버스(Omniverse)' 기획전을 열었다. 지난 8월28일까지 전시라 지금은 철수했다. 이 기획전에 여성작가 12명이 참여했다. 고산금, 김수, 김원숙, 윤석남, 이선경, 장희진, 정직성, 조해영, 최욱경, 함경아, 홍인숙, 황란 작가다. 이 중 내 눈에 들어온 8명의 작가 작품만 소개하고자 한다.  

전시 주제는 ‘모든 이를 위한 우주'다. 옴니는 라틴어로 ‘만인을 위한'이란 뜻이라 한다. 옴니(Omni)와 우주(Umiverse)가 합해서 '옴니버스'가 탄생했다. 발음이 같은 단어로 옴니버스(Omnibus) 영화가 있다. 각자 독립된 에피소드를 한 데 묶어 단편집과 같은 스타일로 꾸미는 영화의 한 장르다. 이 전시회는 Omnibus 스타일로 풀어나간다. 각자의 그림은 각자의 이야기이지만, 결국 모든 이야기는 연결된다는... 

전시장에 들어가면 제일 먼저 한국 색채 추상의 선구자라는  '최욱경'의 작품을 만난다. 최욱경은 화가이자 시인이기도 했다. 1972년 시집 <낯 설은 얼굴들처럼>에 나오는 ‘나의 이름은’ 이란 시가 벽면에 등장한다. 



나의 이름은 

아주 먼 옛날 나의 이름은
마루 위에서 손 그림자와 놀던 겁 많게 '눈 큰 아이'였답니다.

한 때 나의 이름은
낯 설은 얼굴들 중에서 말을 잊어버린 ’벙어리 아이‘이었습니다.

탸향에서 이별이 가져다주는 기약 없을 해후의 슬픔을 맛본 채
성난 짐승들의 동물원에서 무지개 꿈 쫓다가 '길 잃은 아이'였습니다.

결국은 생활이란 굴레에서
아주 조그만 채 이름마저 잃어버린 '이름 없는 아이'랍니다.

' 최욱경' 작가의 1976년 작품 ‘자화상 연작' 중 <계속되는 나와 나의 생각들>
' 최욱경' 작가의 1976년 작품 ‘자화상 연작' 중 <계속되는 나와 나의 생각들>

1976년 작품 ‘자화상 연작' 중 <계속되는 나와 나의 생각들>에서는 어린 시절부터 소녀의 모습에서 성인이 된 그녀의 모습이 나온다.

1940년 서울 태생의 최욱경은 서울대 미대를 졸업하고 1963년 미국에 유학한다. 추상표현주의에 심취하여 그림을 그리다 1971년 귀국한다. 1974년 다시 미국으로 건너가서 강렬하고 화려한 색채 추상 작품을 하다가 1979년 귀국한다. 1981년부터 덕성여자대학교 교수로 재직하다 1985년 45세의 젊은 나이에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최욱경'작가의 1977년 작품 <무제> 
'최욱경'작가의 1977년 작품 <무제> 

1977년 작품 <무제>는 미국에 있으면서 그린 추상작품이다. 캔버스에 아크릴로 그린 작품인데 한국 묵화 냄새가 난다. 이곳에 전시되지 않았지만 1977년 그린 작품 <환희>나 <미처 못 끝낸 이야기>는 뉴멕시코에 있으면서 심취했던 색채 추상 작품의 진수라서 소개하고 싶었는데 저작권 무료 이미지를 구하지 못했다. 대신 볼 수 있는 사이트를 소개한다.  

작품 <환희> 보기  : 
https://www.mmca.go.kr/collections/collectionsDetailPage.do?wrkinfoSeqno=2298
작품 <미처 못 끝낸 이야기> 보기:
 https://www.mmca.go.kr/collections/collectionsDetailPage.do?wrkinfoSeqno=2299

'최욱경' 작가의 1983년 작품. <파란 선이 있는 산>
'최욱경' 작가의 1983년 작품. <파란 선이 있는 산>

그녀는 귀국 후 한국의 산, 바다, 섬의 자연적 곡선에서 가져온 구불거리는 선과 밝은 색채를 결합하여 자연과 밝음을 결합시킨 추상화를 선보였다.  <파란 선이 있는 산>도 그 시절 작품이다. 

 '김원숙' 작가의 2017년 작품 <‘매직기타 Ⅳ>
'김원숙' 작가의 2017년 작품 <‘매직기타 Ⅳ>

다음은 미국에서 활동하고 있는 '김원숙' 작가가 2017년 그린 작품 <매직기타 Ⅳ>다. 김원숙 작가의 남편은 기타를 즐겨 친다고 한다. 남편은 기타를 치고 그 앞에서 작가는 그림을 그린다. 모닥불은 그들을 따뜻하게 감싸고 산속 새들까지 찾아온다. 눈까지 펑펑 내린다. 이 정겨움에 매혹되어 포옹하는 그림자 연인에게선 러시아 출신 화가 샤갈 냄새도 난다. 샤갈은 늘 돌아갈 수 없는 고향을 그리워하며 그림을 그렸다는데  김원숙 작가도 그러지 않았나 싶다. 

작년에 김원숙 작가의 기사를 보았다. 2019년 모교인 미국 일리노이 주립대에 약 143억원을 기부했다는 기사다. 1979년 19세 어린 나이에 미국 유학을 떠난 김 작가는 장학금을 받고 일리노이대를 다녔다. 일리노이대는 김원숙 칼리지(Kim Won Sook College of Fine Art)를 만들어 그 후원에 보답했다. 기사에 따르면 작가는 "현실감 없는 돈을 갖고 있으면 재앙이 올 것 같았다"며 "남편은 한국전쟁 중 엄마가 버린 혼혈아로 길에서 자라 1956년 미국으로 입양됐다. 우리 둘 다 돈이 많은 집안에서 자란 게 아니라 큰돈을 갖고 있다가 큰일 날 것 같았다"고 기부 동기를 들려줬다. 그러기 쉽지 않은데 돈에 매몰되지 않은 초연함... 존경스럽다.  

'이선경' 작가의 2021년 작품 <유년, 너를 기억해>
'이선경' 작가의 2021년 작품 <유년, 너를 기억해>

 

'이선경' 작가의 2021년 작품  <유년- 이어진 시간> 
'이선경' 작가의 2021년 작품  <유년- 이어진 시간> 
'이선경' 작가의 2017년 작품 <우리 모두의 시간>
'이선경' 작가의 2017년 작품 <우리 모두의 시간>

'이선경' 작가의 작품 셋을 연달아 올렸다. 그녀는 2004년부터 자신을 모델 삼아 그린다. 세 작품 다 종이 위에 콩데(사생용 크레용)로 그렸다. 세  번째 작품에는 수많은 콩데와 붓을 그려 넣었다. 콩데 선의 무수한 움직임이 보인다. 얼마나 숱한 반복 작업을 했을까... 생각하니 고단한 작가의 삶이 느껴진다.

세 그림 다 두 명의 그녀가 있다. 소년 같은 나는 소녀 같은 나를 그린다. 나와 내 안의 감추어진 자아를 그리는 걸까? 특히 두 번째 그림은 참 재미있다. 거울을 보고 그림을 그리고 있는 나는 거울 속 나이고, 거울 속에 존재하는 가상의 나는 현실에서 존재하는 나다. 내면과 외면의 내가 서로 분리되기도 하면서 동시에 한데 섞여 존재하고 있다. 우리는 나를 얼마나 잘 알고 있을까?   

장희진 작가의 2017년 작품 <색의 이면>
장희진 작가의 2017년 작품 <색의 이면>

 

장희진 작가의 2018년 작품 <점차, 장면>
장희진 작가의 2018년 작품 <점차, 장면>

'장희진' 작가의 작품을 가만히 보면 곡선으로 된 요철 면이 보인다. 이런 캔버스가 있는 것이 아니라 정성스레 공을 들인 작업으로 요철 면을 만든 것이다. 그 요철 면만으로도 아름답지만 그 위에  그만의 아름다운 색을 입힌다. 어떤 형상을 그릴 때는 허공을 그린다. 즉 나무를 그리는 것이 아니라 나무 뒤의 허공을 그림으로 나무를 완성하는 것이다. 독특한 화가다.  

'조해영' 작가의  2018년 작품 <화이트 커브 2>
'조해영' 작가의  2018년 작품 <화이트 커브 2>

조해영의 <화이트 커브> 연작 시리즈 중 한 작품이다. <화이트 커브> 작품은 탄생했다 사멸하는 물줄기가 주인공이다. 굳세게 올라간 강렬함 위에서 모든 것을 내려놓고 순식간에 산화하는 물방울의 절멸이 아름답다.    

'조해영' 작가의 2014년 작품, <블루, 그레이 , 비테스> 
'조해영' 작가의 2014년 작품, <블루, 그레이 , 비테스> 

조해영 작가의 <비테스> 시리즈 중 한 작품이다. 그녀는 기차나 자동차에서 본 빠르게 지나가는 풍경의 어떤 순간을 카메라로  포착하고 이를 토대로 그림을 그린다. 사진 풍경을 그대로 그리는 것이 아니라 그 순간 느꼈던 감각과 기억을 붓질의 움직임으로 표현한다.   

그녀는 이 작업을 "머릿속으로 그 감각적 경험을 되살려 빠른 속도로 첫 화면을 그려낸다. 화면 위에는 절묘하기도 하고 망설인 것도 같은, 필요하지만 지루한 붓 자국들이 혼재한다. 이것들을 잇고 펼쳐서 내가 경험한 시공간으로 향해간다.” 고 설명한다. 

'황란' 작가의 2021년 작품 <Becoming Again Series>
'황란' 작가의 2021년 작품 <Becoming Again Series>

현재 미국에서 활동하는 '황란' 작가의 <Becoming Again Series> 작품은 매우 아름답다. 그녀가 만든 꽃 한 송이 한 송이는 종이단추, 크리스털, 비즈(beads)를 하나하나 강화유리에 박아 완성된다.  손톱에 피멍이 들도록 망치질을 한다고 한다. 그런 고된 노동 속에서 화려함이 탄생한다. 매서운 겨울 추위를 겪고 나서야 비로소 그 고운 자태 속에서 향기를 뽐내는 매화 같다고나 할까?

'윤석남' 작가의 2018년 작품 <우리는 모계가족> 
'윤석남' 작가의 2018년 작품 <우리는 모계가족> 

'윤석남' 작가의 앞에는 '페미니스트'라는 수식어가 따라다닌다. 그녀는 1939년 만주에서 태어났다. 어려서 화가의 꿈을 꾸었으나 갑작스러운 아버지의 죽음으로 가세가 기울어 꿈을 이루지 못한다. 40세 넘어 6남매를 홀로 키워낸 어머니, 동네 아주머니를 그리면서 개인전을 연다. 이후 본격적인 작가의 길로 들어선 그녀 작품의 일관된 주제는 여성과 생명, 모성, 자매애다. 여성 초상화 특히 그간 소외되었던 여성독립운동가 등 위대한 여성의 초상화를 그리면서 지난 해 2월에는 여성독립가 14인의 초상을 담은 책 <싸우는 여자들, 역사가 되다>도 냈다.  '한국 여성주의 미술의 대모'로  불릴만하다. 

마지막으로 소개하는 작품은 ' 함경아' 작가의 작품이다. 두 작품 다 한 면이 250cm가 넘는 대형 작품으로 繡를 놓아 만든 자수회화(刺繡繪畵)다. 샹들리에 이미지의 자수 회화 연작 <What you see is the unseen-Chandeliers for Five Cities(당신이 보는 것은 보이지 않는 것이다-다섯 도시를 위한 샹들리에)>이다. 

'함경아' 작가의 2015년~2016년 작품 <What you see is the unseen-Chandeliers for Five Cities BR 04-04>
'함경아' 작가의 2015년~2016년 작품 <What you see is the unseen-Chandeliers for Five Cities BR 04-04>
'함경아' 작가의 2018년~2019년 작품 <What you see is the unseen-Chandeliers for Five Cities SK-08>
'함경아' 작가의 2018년~2019년 작품 <What you see is the unseen-Chandeliers for Five Cities SK-08>

어느 날 그녀  집 앞에 떨어진 삐라를 보고 엉뚱한 생각을 하게 된다. 그녀는 북한 자수 공예가와 소통을 시도한다. 북한의 자수공예 장인들에게 도안을 보내고 비밀리에 수를 놓아 한국으로 들여오는 작업은 2008년 <Flyer/Byeongpoong Bill 01> 작품부터 시작되었다. 위 두 작품은 각각 2년여 걸쳐 제작되었다. 화려한 샹들리에 뒤에는 한 땀 한 땀 공들여 제작했지만 만날 수도 드러낼 수 없는 북한 여성들이 있다. 그녀는 이 작품에서  남북 분단의 긴장과 갈등, 역사 속에서 강대국에 의한 힘의 이데올로기가 지배하는 현실을 드러내고자 했다고 한다.  

미술관에 가서 작품만 보고 오면 되는데... 왜 글은 쓰고 싶어 이리 고생을 자처했나 싶다. 그래도 다시 한 번 그녀들의 작품을 되새길 수 있어서 참 좋다.  

* 이글의 일정부분은 <뮤지엄산> 청조미술관 작품 해설사의 설명을 기록한 것이다. 상세힌 설명을 해준 해설사에게 감사를 보내며, 또한 사진을 맘껏 찍게해준 <뮤지엄산>에게도 감사를 보낸다.

참고 사이트 : https://100.daum.net/encyclopedia/view/14XXE0057510
참고 사이트 : https://ko.wikipedia.org/wiki/%EC%9C%A4%EC%84%9D%EB%82%A8
참고 사이트 :https://www.kukjegallery.com/exhibitions/view?seq=176

편집 : 김미경 편집장

김미경 편집장  mkyoung60@hanmail.net

한겨레신문 주주 되기
한겨레:온 필진 되기
한겨레:온에 기사 올리는 요령

관련기사 전체보기
저작권자 © 한겨레:온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