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비가 온다.

긴 가뭄 끝에 오는 비라서 그런가.

임이 오신 듯 반갑다.

거리로 뛰쳐나가 비를 맞고 싶다.

하지만 삶도 쌓인 나이에 맞게 살아야지

세상이목 무관타 해도 세월 때 묻은 자가

우중에 방황함을 봐줄만하겠는가?

 

그리움에 발 돋음 했던

몸과 맘이 촉촉하게 젖는다.

세차지는 않지만 봄비치고는 강하다.

1박2일 동안 그침 없이 내리니 더 좋다.

나뭇잎가지에서 떨어진 빗방울이 풀잎을 적신다.

풀잎에 이슬처럼 맺힌 빗방울들이 땅으로 떨어져 흡수된다.

땅으로 스며들지 못한 빗물이 작은 내를 이루고

졸졸 흐르더니 시냇물이 되고 강으로 흘러간다.

 

비가 오는 날은

몸과 맘이 착~ 가라앉는다.

축 늘어진 나뭇잎가지와 풀처럼

나의 심신도 그렇게 축~ 처진다.

아래로 밑으로 푹 가라앉은 나의 심신이 좋다.

 

심신은 바닥에 길고 넓적하게 늘어지고

빗물이 되어 땅속으로 스며드는 듯

젖은 흙이 되고 대지와 일체가 된다.

비 오는 날엔

나도 비가 되고 냇물이 되어

천천히 때로는 세차게 흐르고 싶다.

 

비가 그친 뒤에 부랴부랴 거리로 나선다.

이쪽저쪽 물웅덩이가 보이고

작은 고랑에도 물이 졸졸 흐른다.

서둘러 샛강이랄 수 있는 동천에 이르니

메말랐던 강바닥이 보이지 않고 강 언덕 중간까지 물이 차올랐다.

얼마나 보고 싶었던 흙탕물인가?

누런 황톳물에 부유물도 일부 떠내려 온다.

그간 찌들었던 강바닥도 깨끗해졌으리라.

 

물살도 무리지어 흐르니 그만큼 비가 많이 왔다는 거다.

가슴이 후련하고 주변만물도 생기가 발랄하다.

어느새 강변에 사람들도 많이 나왔다.

그들도 나와 같은 마음 아니겠는가?

인간들이 아무리 위대한 척 난리발광해도

천지자연의 작은 움직임에도 견줄 수 있겠는가?

 

편집 : 김태평 객원편집위원

김태평 객원편집위원  tpkkim@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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