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철 시인 추도시

고 강기희 작가 추도식에서 추모시를 낭독하는 이승철 시인, © 김재광
고 강기희 작가 추도식에서 추모시를 낭독하는 이승철 시인, © 김재광

 

강기희 작가를 생각하며

이승철(시인)

우리 몸속에 삶과 죽음이 깃들어 있는 걸 왜 몰랐을까
지상 위로 닻을 내렸을 때는 느닷없이 홀로 떨구어졌지만
떠날 때는 이토록 만인의 가슴팍을 사무치게 하는구나.

일국의 작가로서 상처뿐인 현장에서 몸부림치다가
시인으로 예언의 나팔을 불다가 죽는 그 순간까지
글을 쓰고자 했던 그 사람, 강기희
정선이 낳은 우리시대 문화운동가로
온몸으로 떨쳐나섰던 그 사람이 기어이 떠나갔구나.

한 생을 몸부림치며 전진을 거듭하다가
돌연 마지막을 맞이하는 게 인생이라지만
뭐 살아보니, 별것도 아닌 게 인생이더니만
그대 목숨줄과 맞바꾼 정선 덕산기 숲속책방은
어이하라고, 더 뜨거워질 수 있었던 그대 아내
유진아 작가를 어찌 남겨두고 끝내
그 쉼터로 되돌아가지 못했구나.
그대 육신이 벗어던진 야속한 그 부음을
거짓이라고, 손사래치며 인정하고 싶지 않구나.

우리 생을 마감하는 마지막 열차 시간을
거부할 수 없는 게 신의 섭리라고 하지만
끝내 거역하고 말겠다는 그 단호한 의지 앞에
매일매일 페북에 떠오르는 그대 안부에 안도하며
숲속책방 그곳에 가면 다시금 환한 미소로 반겨줄
그대가 꼭 서 있을 줄 알았다.
허나 끝내 저 바람 속으로 망명한 네 얼굴이여
하지만 비련의 한생이었다고 결코 말하고 싶지 않다.

그대보다 먼저 저 흙 속으로 태곳적 바람 속으로
울며불며 소리치며 떠나간 숱한 벗들이 떠오른다.
그때 우리는 동트도록 울음을 떨구어야 했고
허공 속 저 푸른 별들도 그대 생각에 사무쳐
저 멀리서 서럽게 떨고 있었을 뿐이다.

지난 2023년 6월 3일 밤 전국 각지에서 모인
여러 다정한 벗들이 오직 그대의 쾌유만을 빌며
함께 나눈 고마운 그 말씀들을 기억하고 있기에
그대는 참으로 긴긴 고통의 시간을 깡마른 육신 하나로
버팅기며 붉은 낙엽 한 장으로 남겨지고 싶었지만
그대가 살속에서 핏속에서 피어낸 그 모국어들이
수백 수천 꽃숭어리로 만천하에 피어날 거외다.

따져보면, 인생이란 하고 많은 길 중에서 
왜 우리는 외골수 한길, 글쟁이 외길을 선택했는가.
그건 나의 상처를 밑거름삼아 이 사회를, 이 세상을
구원하기 위한 영원의 길이라고 생각했기 때문 아닌가.

끝내 멈춤을 앞둔 그 순간까지 정선아라리문학축전을 생각했던
그대의 오롯한 고향사랑, 정선 문화인 강기희 작가여
따지고 보면 인생이란 그리 오래 앙버티는 것도
중요하지만 하루하루 삶 속에 나동그라진
서글픈 사랑의 흔적을 혹은 뼛골에 박힌
비루한 상처를 그대 밤새도록 깨물고 씹고
어루만져 기어이 한소식 깨달았으니, 
그대 이제 허위허위 떠나가도 좋으리라
그러나 이제 네 서글서글한 눈동자와 
강단진 얼굴과 조선 오백년 선비다운 긴 턱수염과
전국 문학판 행사를 청산유수로 뒤흔들어대던
사회주의자로서의 능청스런 그대 말솜씨는 
이제 어디서 발견할 수 있을 것인가.

인생이란 모진 골목길 모서리에서 혹은 한복판에서
한 줄기 칼바람으로 때론 화들짝한 꽃불로
유감없이 타오르다가 문득 닳아빠진 인생을 벗어던지듯
스스로의 삶의 거죽을 육탈한 그 단호함의 절정
이제 우리가 함께 모여 당신을 위한 진혼가를 불러주마.

아무렴, 망자의 깃발 소리로 가득 찬 돛을 올려라.
어기영차 한세상을 새뚝이처럼 살아왔으니
창공을 향해 푸르뎅뎅한 그 목소리로 외쳐다오.
그대 떠나는 마지막 뱃길이 구슬프지 않도록
차고 넘치도록 술을 캐라, 술잔을 채워라.
저리 흩날리는 만장들이 꽃비처럼 펄럭거린다.
“우린 더 뜨거워질 수 있었”지만 그래도 이만큼
살아냈다면, 그래도 한세상 잘놀다 가는 거라고 생각하마.

※ 붙임( 8월 2일 정선군 사북군립병원 장례식장 추도식에서 헌정한 추도시를 시인 허락하에 소개합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영면하소서)

* 편집자 주 : 지난 8월 1일 향년 59세의 강기희 작가가 별세했다. 고인은 1964년 정선에서 태어났다. 강원대를 졸업하고 이후 1998년 월간 ‘문학21’에서 등단했다. 2000년 장편소설 ‘도둑고양이’로 제1회 디지털문학대상 수상했다.  ‘아담과 아담 이브와 이브’, ‘동강에는 쉬리가 있다’, ‘은옥이’, ‘개 같은 인생들’, ‘연산의 아들, 이황’, ‘위험한 특종-김달삼 찾기’, ‘이번 청춘은 망했다’ 등의 장편 소설과 시집 ‘우린 더 뜨거워질 수 있었다’를 펴냈다. 

고인은 2006년 도시 생활을 청산하고 정선으로 귀향했다. 2017년부터 정선 덕산기 계곡에서 숲속책방을 운영해 왔다. 정선에서 문인 활동과 집필 활동을 하던 중 폐암 선고를 받았다. 투병와중에도 2023년 7월 고향의 구석구석을 안내하는 인문 여행서 ‘정선’을 출간하기도 했다. (정보 출처 / 나무위키( https://namu.wiki/w/%EA%B0%95%EA%B8%B0%ED%9D%A))

편집 : 김미경 편집위원

김재광 주주  gamkooda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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