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 뜸인가? 해 짐인가?
해 뜸인가? 해 짐인가? 달 뜸인가? 달 짐인가?

 

솟아오르는 해를 누가 누를 수 있고

지는 태양을 누가 붙잡을 수 있는가?

태산을 뛰어 넘을 힘도

구름을 뚫고 솟구칠 기백도

대양을 집어삼킬 포부도

다 한 때 잠시가 아니겠는가?

 

잘난 척 말자 잘나봤자 얼마나 잘났겠는가?

제 스스로 잘남을 갖추고 났겠는가?

아는 척 말자 알아봤자 얼마나 알겠는가?

제 힘으로 아는 게 얼마나 되겠는가?

가진 척 말자 가져봤자 얼마나 가졌겠는가?

지가 가진 것이 우주의 어느 정도인가?

나서대다가 큰 코 다치기 십상이리라.

 

오늘 나는 내 미래를 적나라하게 보았네.

보는 순간 나는 눈을 감을 수밖에 없었고

한참을 뜨지 못한 채 부동체가 되었지.

대중탕에서 그 모습이 너무 확실했기에.

두상은 쪼그라들어 젊을 때의 절반이요

이목구비 안면은 전성기를 잃고 누랬으며

어깨는 축 늘어졌고 목은 겨우 머리를 지탱

 

가슴은 갈비뼈만 도드라져 메말랐고

배는 등짝에 붙었으니 허리는 굽을 수밖에

엉덩이는 있는 건지 없는 건지 평~평

다리는 겨울 메마른 가지처럼 앙상하고

그래도 걸어서 욕탕에 왔음이 축복이네

아~ 저 모습에 얼굴만 좀 차이나지

얼마 후의 내 모습 그대로가 아닌가?

 

저 모습이 되면 무엇을 더 바라겠는가?

그래도 바라고 원함이 있단 말인가?

앉았다 일어 설수 있고 섰다가 앉을 있으며

누웠다 앉을 수 있고 앉았다가 누울 수 있으면

그만 아니겠는가? 더 이상 뭘?

더욱이 고이 숨 쉴 수 있고 걸을 수만 있다면

멈춤 없이 물마시고 음식을 넘길 수만 있다면

더 없는 행복이요 축복이 아니겠는가?

 

아침에 일어나 기지개를 켤 수 있고

밤이 되면 온전히 잠자리에 들 수 있음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지 말아야겠구나?

더구나 하루살이 생명도 있다는데

헤아릴 수 없이 그 수많은 날들을

재생과 환생을 반복하며 살아온 지난날들

얼마나 고맙고 감사하지 아니한가?

그보다 더 큰 축복과 은혜가 어디 있겠는가?

이런 저런 생각에 빠져 있는데

 

어느 분이 어른께 ‘목욕 나오셨습니까?’ 인사하니

놀라운 목소리가 그 깡마른 체구에서 나오지 않는가?

깜짝 놀라 고개를 돌려 그 분들을 바라볼 수밖에

‘어이~ 잘 지내는가?’ 생각 이상으로 우렁차다

‘등을 밀어 드릴까요?’ 묻는다. 참 고마운 분이다

‘아닐세, 됐네. 무슨 때가 나온다고’

‘그래도 등을 씻기 어려우실 테니’

‘됐네. 고마우이.’ 하며 손사래를 친다.

시골동네 조그만 목욕탕이라 정겹기도 하구나

미소가 절로 나오고 그 모습에 한참 넋이 나간다.

그래도 세상은 아직 살만하구나!

 

편집 : 김태평 객원편집위원

김태평 객원편집위원  tpkkim@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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